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356
356화 점점 더 무시무시해지는구나
사람 대 사람으로서의 관계라면 인정하지만, 문파는 그 정도까진 아니다.
그래서 자신이 도문의 다음 세대 전도인이라는 신분에 대해서 크게 개의치 않게 여기는 것이다.
돈이 충분해진 뒤로는 도문의 정보망을 이용해 정보를 얻을 때도 낼 돈은 충분히 쓰며 아끼지 않는다.
이번 일을 끝까지 붙잡으며 단호하게 나왔던 것, 그건 두 노친네에게 자신의 입장을 확실하게 전하기 위함이었던 것이었다.
‘그 이후로는 다들 알아서 할 테지.’
“사형?”
여전히 겁에 질려있는 장정의가 조심스럽게 진양을 불렀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진양은 장정의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그를 일으켜 세웠다.
“정의야, 두 노친네가 나한테 말도 없이 사고를 친 건 그렇다 치겠는데. 일이 이렇게까지 됐는데도 내게 한마디도 안 해주면 어떡하냐? 그러다 이 사형이 눈이 돌아서 널 정말로 완전히 죽이기라도 한다면 얼마나 억울해? 네가 미리 얘기해 줬다면 지금처럼 몇 번이나 죽이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거라고.”
“사형, 정말로 고의로 그런 건 아닙니다. 한순간의 욕심에 이기지 못하고 제안을 받아들인 건 충분히 반성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존께서 말씀하시길, 반성했으면 됐으니 묘지기의 신물만 가져오면 제가 새로운 묘지기가 될 거고, 제 말을 들으실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신물은 전임 묘지기가 부장품으로 가져가 버렸더군요. 사존께서도 손에 넣으실 수 없다고 하던데…….”
장정의는 잔뜩 울상이 되었다.
진양의 진심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 태도가 바뀐 듯하자 해명을 한 것이었다.
도문 내의 능침은 심지어 몽의조차 함부로 돌파하지 못하는 곳.
장정의 따위가 덤벼들었다간 어떤 꼴이 날지는 너무나도 뻔했다.
이 일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진양은 더 이상 추측하고 싶지 않았다.
일은 이미 벌어졌다.
더 이상 장정의를 밟아줄 생각도 없었다.
오히려 장정의가 있어야 앞으로의 일이 훨씬 더 잘 풀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의가, 걱정 말거라. 과거의 일은 이미 모두 지나간 거니까. 난 생각보다 그렇게 길게 원한을 가져가는 사람이 아니거든.”
진양은 최대한 선한 표정으로 겁을 잔뜩 집어먹은 장정의를 위로했다.
“사형의 넓은 아량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나 장정의, 앞으로 사형께서 가시는 곳이라면 어디든 함께하겠습니다!”
한숨 돌렸다 싶은 장정의는 그새를 참지 못하고 아부를 해대기 시작했다.
“뭐, 그런 것까진 됐고. 잠시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하지만 전 그만한 능력이 안 되는데…….”
장정의는 은근슬쩍 빠져나가려 했다.
“어허! 정의야!”
진양은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난 그저 네가 조사해 주었으면 하는 일이 있어서 이렇게 맡기려는 거란다. 이건 네 능력이 필요한 거라서 그래. 이쪽으로는 네가 나보다 훨씬 뛰어나거든.”
“아, 그런 거라면 문제없습니다. 뭐든 말씀하시죠.”
장정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네가 여러 가문의 조상묘를 파헤치고도 멀쩡히 살아있다는 얘기를 듣고 상당히 놀랐다. 확실히 이런 쪽으로는 네가 나보다 훨씬 더 훌륭한 것 같구나. 어쨌든, 내가 조사하고 싶은 건 여족에 관한 거야. 여족들 중에 을 수련한 사람이 누가 있는지, 어디에 묻혀 있는지를 조사해 줘. 이 정도는 간단하지?”
“여족…….”
장정의의 표정이 급격히 굳었다.
진양은 미소를 지은 채 장정의의 어깨를 잡고 있는 손에 힘을 주었다.
“뭐든 말하라며? 설마 이렇게 간단한 부탁도 못 들어주겠다는 건 아니겠지? 설마 또 날 속인 거냐?”
“제가 어찌 사형을 또 속이겠습니까요? 그런데 여족은 좀…….”
“좀? 좀 뭐?”
“아, 알겠습니다. 한번 해 보도록 하죠…….”
“해 보도록 한다고?”
“아닙니다. 바,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맡겨만 주세요!”
“사형, 혹시나 제가 먼저 죽게 된다면 스승님께 먼저 가서 죄송하다고 전해주세요.”
장정의의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그는 아쉬움 가득한 표정으로 진양의 팔을 붙잡은 채 한참 동안 떠나지 못했다.
누가 보면 죽으러 가는 줄로 오해할 법한 장면이었다.
“정의야, 원래 착할수록 명이 짧다는 말이 있잖아. 너 같은 사고뭉치는 죽고 싶어도 쉽게 죽을 수 없을 테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게다가 대영 신조 남부의 열여덟 개 주 중에서 열다섯 개 주에서 사고를 쳐놓고도 살아남았잖아. 겨우 여족 무덤 하나 찾는 것뿐인데, 이 정돈 쉽잖아?”
“사형, 그래도 오랜만에 만났잖아요. 사형을 조금 더 따라다니면서 가르침을 받고 싶은데…….”
“어허! 정의야!”
진양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이어서 장정의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진지하게 말했다.
“우리 정의, 태화역형도 쓸 줄 알면서 뭘 그렇게 두려워하는 거야? 내 모습으로만 변하지 않으면 돼. 내 스승님의 모습으로 변하던, 네 스승님의 모습으로 변하던 상관 없다고. 네가 마음먹고 도망치기로 한다면 과연 누가 널 잡을 수 있기라도 할까?”
“아, 알겠어요. 그럼 바로 출발하도록 할게요.”
질질 끌며 어떻게든 늦게 가려던 장정의는 갑자기 흠칫하며 한마디를 남기더니 쌩- 하고 떠나버렸다.
어느 정도 멀리 떨어졌을 무렵 뒤를 돌아보자 진양이 뒷짐을 진 채 미소 짓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에 장정의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수십 리를 날아온 장정의는 다시 땅 위로 착지했다.
그리곤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표정은 다소 굳어있었다.
“진양, 점점 더 무시무시해지는구나. 예전부터 싸하다는 느낌이 들긴 했었는데. 이제 보니 단순히 싸한 정도가 아니구나. 태화역형에 대해선 도대체 어떻게 알고 있던 거지? 하여튼 갈수록 예측 불가능한 인간이라니깐.”
도문으로 들어온 그는 방목되던 진양과는 다르게 여러 가지를 배웠다.
무덤 도굴, 풍수지리, 사기, 기만 등 수많은 기술을 배웠다.
도문 내에는 실전 연습장으로 쓸 선조들의 무덤이 많이 있었고, 거기에 장정의 역시 애초에 무덤 도굴 쪽으로 관심이 있고 재능도 있었기 때문에 그의 실력은 날이 갈수록 늘어갔다.
진법과 능침의 풍수지리부터 산천 지맥의 형세 변화까지.
모든 것을 익혔다.
도문 내에서 무덤을 도굴할 땐 가장 가장자리에 있는 평범한 문파의 능침부터 실전 연습을 이어나갔다.
구사일생의 순간이 연달아 이어졌으나, 성과는 나름 짭짤했다.
그도 그럴 것이 무덤을 만든 사람들은 도문 내에서도 역대급으로 지독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지독한 인간들이 만든 무덤이 아니었다면 진작 도굴당하고 없어졌을 것이었다.
어쨌든 이런 환경 속에서 공부하고 연습하다 보니 장정의의 실력은 날이 갈수록 일취월장했다.
공부를 마친 장정의는 곧바로 다른 문파의 조상묘를 도굴했다.
어려운 무덤만 건드리다 보니 다른 문파의 무덤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었다.
추격자들을 따돌리는 것 역시 일도 아니었다.
만약 진양에게 목덜미를 잡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낸 것만 아니었다면 그는 결코 꼬리를 밟힐 일이 없었을 것이다.
장정의는 스스로를 무적이라고 생각했었다.
진양을 다시 만나기 전까지 말이다.
그는 스스로를 천재라고 생각했다.
도문 내에서 같은 기술을 구사하거나 배우는 자들 중에 자신을 따라올 자는 없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방목되어 있는 진양조차 여러 방면으로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다.
상상으로는 단 몇 초식만에 진양을 제압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진양의 주먹질에 찍소리도 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나마 진양이 조금 봐준 덕분에 무사히 부활할 수 있었다.
그마저도 봐주지 않았다면 장정의는 완전히 소멸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진양은 그에게 ‘내가 네 사형이야’라는 사실을 뼛속까지 새겨줄 생각인 듯, 무시무시한 훈계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열 살이나 늙어버린 얼굴, 그리고 잃어버린 구 할의 전리품.
생각만 할수록 주저앉아 엉엉 울고 싶은 심장이었다.
뒤늦게 후회가 되긴 했지만 물은 이미 엎질러지고 말았다.
이번 일로 확실하게 깨달은 사실이 한 가지 있었다.
바로 진양에게 절대로 개겨선 안 된다는 사실이다.
진양은 그야말로 예측 불가능한 인간이었다.
게다가 또 어디서 알아 온 건지 장정의가 태화역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까지 알고 있었다.
이대로 영영 도문에 돌아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진양은 분명 손쉽게 그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었다.
그렇게 길을 가는 내내 장정의의 후회는 이어졌다.
종문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 성장해나가는 진양이 부러우면서도 두려웠다.
이대로 전심을 다해 돕지 않으면 다음번에 만날 땐 정말로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양에게 덤비거나 반항하는 것보다 차라리 여족의 비밀을 캐고 다니거나 녀석들의 선조의 무덤을 파헤치고 다니는 게 훨씬 더 안전하다고 느껴졌다.
적어도 전문 기술은 사형에게 뒤처지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대에게 들킨다고 하더라도 정말로 들키는 건 자신의 모습이 아닌 다른 사람의 모습이었다.
여차하면 얼굴과 신분을 바꾸고 남만에서 도망쳐버리면 그만이었다.
여족이 추격해올 가능성은 낮았다.
장정의가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어디서 행방을 찾는단 말인가?
이렇게 된 이상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냥 조용히 진양이 시킨 일을 해내는 수밖에 없었다.
운 좋게 무덤 속에 처박혀있는 보물들을 손에 넣게 될 수도 있었다.
이 정도는 충분히 기대해 볼 만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진양이 시킨 일을 잘 해내는 것이겠지만.
장정의가 정말로 여족에 대해 알아보러 갔는지 진양은 알 수가 없었다.
이전에 여러 번 죽였던 게 아직 약빨이 남아있는지도 확신할 수가 없었다.
장정의가 큰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감히 도망을 치진 못할 것이다.
단지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의 차이는 있겠지만.
장정의를 떠나보내고 난 진양은 자신도 슬슬 움직이기로 했다.
가지고 있는 헌일의 시신을 돌려준다면 흑여와 절친한 사이까지는 바랄 수 없어도 서로 악수 정도는 나눌 수 있는 사이는 기대할 수 있을 것이었다.
여족은 시신이 무사히 땅에 묻히는 것을 상당히 중요시 하기 때문이었다.
여족의 다른 부족들 중 적어도 백여는 진양을 배척하지 않을 것이다.
일전에 나무 인간에게 받았던 삼생귀류의 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백여의 성수(聖樹)다.
이걸 가지고 있으면 여족 땅으로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침략자나 적으로 오해받지 않을 수 있을 것이었다.
여족 구지(九支)중 흑여와 백여는 실력도 꽤 높은 편에 속하며, 가장 깊고 은밀한 곳에 숨어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 둘이 서로 사이좋게 지내고 있는 덕분에 여족이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