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363
363화 흑림해로
“저 사람 또 왔군. 정말 고집이 엄청난 사람이야.”
“아는 사람인가 보군요?”
진양이 그에게 말을 걸었다.
그에게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분명 만난 적 있는 것 같은, 마주한 적 있는 것 같은 기운이었으나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여기 사람이 아닌가 보오.”
“그렇습니다.”
남자가 한숨을 푹 쉬었다.
“저 사람, 아주 불쌍한 사람이라오. 지난 삼백 년 동안 흑림해로 가서 아내를 위한 영약을 구하기 위해 벌써 여섯 번이나 이곳에 온 사람이지. 삼백 년이나 흘렀는데도 아내의 생기가 여전히 살아있는 걸 보니 꽤 고생한 모양인데…….”
“아내는 왜 저런 건데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소? 난 이곳에서 지낸 지 이제 겨우 백 년밖에 되지 않았소. 그동안 사람을 본 건 이번이 두 번째요. 내가 알고 있는 건 사람이 집착 강한 매우 실력 있는 강자라는 사실 하나뿐이오. 예전에 저 사람이 흑림해에 처음 왔을 때 단 일검에 신문 강자를 베었다고 들었소. 그 이후로 그 누구도 사람에게 덤비지 않았다고 하더군. 호기심은 이만 거두시오. 그는 앞으로 반년 정도면 흑림해를 떠날 거요. 만약 흑림해로들어갈 생각이라면 저 사람은 최대한 피해 다니도록 하시오.
그나저나 여기 처음 온 것 같은데. 혹시 지도 안 필요하시오? 여기서 흑림해까지 삼 일 안에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길이 그려진 지도요. 단돈 사품 영석 한 개만 받도록 하겠소. 물론 품질은 보장하오. 정확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도 명확히 표기되어있으니 안심하고 사가도 좋소. 난 오랜 시간 이곳에서 지도 장사를 한 사람이오. 그러니 못 믿겠다면 길거리에 있는 다른 사람에게 물어봐도 좋소.”
돈을 주고 지도를 산 진양은 성 안으로 들어왔다.
이곳은 다른 곳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에 짙은 살기가 풍겨오고 있었는데, 아마 오랜 시간 전투를 한 탓일 것이었다.
무엇보다 연체 수도사의 숫자는 지금까지 지나오며 보았던 다른 도시에 비해 몇 배는 더 많았다.
진양은 객잔으로 들어가 방을 잡고 지도를 펼쳤다.
“어느새 흑림해 근처까지 오게 되다니. 여기까지 오긴 왔는데, 한번 가서 돌아보고라도 올까? 혹시 모르잖아. 운 좋게 그 흑여 고수의 무덤을 발견할 수 있게 될지도.”
“좋아. 그럼 온 김에 한 번 돌아보기라도 하자고.”
진양은 지도를 품속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장 정보상으로 향한 진양은 그곳에서 필요한 정보를 구매했다.
도문은 상당히 개방적이기 때문에 흑여 선조의 단서라면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큰 걸 바라진 않는다.
작은 단서면 충분하다.
순식간에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흑림해 서쪽 구석에 위치한 이 작은 마을에도 어느덧 익숙해져 가기 시작했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정도는 이미 완전히 파악했다.
흑림해에 대한 정보도 꽤 많이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파악한 정보와 소문을 모두 합쳐 책으로 만든다면 족히 십여 권은 될 정도였다.
그 중, 한 가지 소문이 진양의 눈이 번쩍 뜨이게 만들었다.
전설에 따르면 과거 상고의 한 진선(眞仙)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게 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이곳의 환경이 크게 변하며 흑림해가 오늘과 같은 괴이한 곳으로 변했다는 내용이었다.
흑림해에 살던 여족들은 강제로 이주를 당했으나 선묘(仙妙)에 물들며 정통 연기 수도사와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한다.
이 소문에 눈이 번쩍 뜨인 이유는 오직 한 가지.
소문이 사실이라면 어딘가에 진선의 시신이 남아있다는 뜻이다.
그 말은 곧 그것에 습득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얘기를 들은 진양은 과감하게 이것을 기억 너머로 던져버렸다.
진짜 진양을 놀라게 만든 건 또 다른 정보였다.
팔만 년 전, 당시 몰락의 길을 걷던 대윤 신조가 추후 다시 재기하기 위해 이곳에 적지 않은 보물들을 숨겨놓았다는 정보였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 누구도 작은 단서 하나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뜬구름 잡는 소문으로 여기고 있을 뿐.
그러나 진양은 아니었다.
현천비고가 흑림해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소문이 넘쳐나다 보니 좋은 점도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의 모든 소문을 단순한 옛날이야기로만 받아들였다.
가끔 수많은 소문 중 하나를 진짜라고 믿는 사람이 나타나는 것도 이상할 일은 아니었다.
진양이 작정하고 현천비고를 열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진양과 이런 소문을 연관 지을 일은 없었다.
목적은 상당히 많았다.
아무거나 하나 고르면 그만이었다.
예를 들어 일전에 보았던 아내를 등에 업은 남자.
그는 흑림해에 있는 전설 중 한 가지를 믿고 있으면서도 흑림해의 기원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 전설은 상고시대에 대한 얘기로, 상고 지부가 박살 나며 그중 한 조각이 이곳에 떨어지며 환경을 바꾸게 되었는데, 그로 인해 정통 연기 수도사들은 강력한 제약을 받게 되었고 반대로 연체 수도사들의 육신은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는 것이었다.
이러한 환경은 상고 지부에서만 자랄 수 있는 영약이 자랄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었다.
암야우담(暗夜優曇)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영약은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효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영혼이 박살 나고 육신이 완전히 소멸된다고 하더라도 잔혼(殘魂)만 남아있으면 다시 영혼을 회복시키고 육신을 형성시켜 부활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고 한다.
사실 그 남자가 몇 번이나 이곳에 찾아오고 나서야 암야우담에 대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그걸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소문을 믿는 사람은 그 남자가 유일했다.
물론 그 누구도 남자 앞에선 그것이 뜬구름 잡는 소리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진양은 수많은 소문 중에 아무거나 골라 흑림해에 들어갈 핑계로 대면 그만이었다.
어차피 뜬구름을 잡으려고 하거나 운에 부딪혀보려고 하는 사람이 한둘도 아닌데.
굳이 진양 한 사람만 이상하게 여길 일은 없을 것이었다.
그렇게 진양은 흑림해를 살펴보기로 결정했다.
성지를 빠져나온 진양은 곧바로 북동쪽으로 향했다.
성지에서 구매한 지도에 따르면 이곳을 통해 들어가면 흑림해의 남서쪽으로 빠져나오게 된다.
흑림해가 가까워질수록 주위의 숲에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무는 점점 높아져 갔고, 수관(樹冠)은 작아졌으며, 줄기는 굵어졌고, 푸른색이었던 잎은 검게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공기 중에 퍼져 있는 영기도 한층 사나워졌다.
사해에서 느꼈던 기운보다 훨씬 더 강렬했다.
이곳의 영기는 상당히 음침했다.
마치 독사가 어딘가에 숨어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괜히 숨을 크게 들이키기라도 했다간 어디선가 갑자기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상당히 위험한 곳이기 때문에 평범한 수도사들은 절대로 이곳에서 수련하지 않았다.
설령 영기를 소모한다고 하더라도 영약을 먹어 회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고 이곳의 영기를 빨아들였다간 갑자기 어느 순간에 영기가 난동을 부리게 될지 모른다.
그러나 진양은 이런 것은 일체 신경 쓰지 않았다.
장해비전은 물불 가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진양은 영기를 강제로 연화시킨 뒤 해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러자 영기는 더 이상 난폭하게 굴 수가 없었다.
성지를 빠져나온 진양은 삼 일 정도를 걸었다.
그리고 마침내 흑림해의 외곽에 도착했다.
거기서 이틀 동안 이천 리를 더 들어갔다.
깊이 들어갈수록 인적은 점점 더 줄어들기 시작했다.
거기에 힘이 점점 무언가에 의해 짓눌리고 있다는 느낌도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진원을 운용하는 동안에도 무언가 잔뜩 뭉친 느낌이 들었다.
때문에, 운용에 상당히 애를 먹었다.
공법을 시전할 때 소모하는 힘의 양도 눈에 띄게 증가했다.
하지만 육신의 힘은 여전히 달라진 게 없었다.
기혈 역시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다.
이곳에서 장해수수전을 수련하니 진도가 훨씬 더 빠르게 늘어나는 것이 느껴졌다.
생각해 보면 성지 안에 연체 수도사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도 이상할 건 없었다.
이곳은 단순히 연체 수도사들이 탐험하기 좋은 곳일 뿐만 아니라, 연체 수도사들이 수련하기에도 좋은 곳이기 때문이었다.
지난 이틀 동안 진양은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보지 못했다.
독충과 독사 같은 것들은 적지 않게 보긴 했지만, 전부 하나같이 진양을 피해갔다.
아무 생각 없이 짙푸른 숲속을 헤쳐나가다 보니 어느덧 주위의 나무들은 처음 이곳에 발을 들였을 때보다 수십 배는 더욱 거대해져 있었다.
새와 벌레가 우는 소리는 점점 잦아들기 시작했고, 숲속엔 진양이 나뭇잎을 사각사각 밟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진양은 미간을 찌푸리며 제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 조용히 주위를 바라보았다.
감각은 최대한으로 끌어올렸으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왠지 모를 엄청난 위험한 느낌이 들었다.
한순간에 진양을 죽음에 이르게 만들 수도 있는 그런 위기였다.
진양은 반시진 넘게 제자리에 가만히 선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불안한 느낌은 여전히 바뀌지도, 사라지지도 않았다.
이대로 마냥 기다릴 순 없다.
아무리 오랜 시간을 기다려도 달라지는 건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진양은 허공을 향해 마치 계단을 밟는 것처럼 발을 내디뎠다.
발끝에서 물결이 일어나며 십여 층의 지척천애가 펼쳐졌다.
한 걸음 만에 진양은 무려 십여 장 밖으로 움직였다.
콰광-!
진양의 뒤쪽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지면을 덮고 있던 낙엽은 전부 먼지가 되어 사방으로 흩날렸다.
진양의 등 뒤로 검은 솥이 나타나며 날아온 것들을 막았다.
쨍-
청량한 금속음이 귓가에 울려 퍼졌다.
미풍이 불어와 주변 수백 장의 땅을 휩쓸었다.
그리고 거대한 나무의 아랫부분을 전부 가루로 만들어버렸고, 나무는 굉음을 내며 쓰러졌다.
진양이 서 있는 곳을 제외한 모든 곳의 풀과 나무가 전부 먼지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진양은 여전히 아무런 영문도 알 수가 없었다.
진양은 거북이 등껍질과 검은 솥을 방패 삼아 자신을 보호했다.
이어서 눈부신 빛의 기둥이 그에게 쏘아져 주위 수백 장 땅을 비추었다.
진양은 이런 상황을 만든 존재의 정체에 대해 파악하기 시작했다.
함정은 아닌 듯했다.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도 요괴일 가능성이 컸다.
체형은 그다지 크지 않지만, 속도는 상당히 빠르며 힘은 장사처럼 넘쳐흘렀다.
그러나 일말의 기운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진양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엄청난 위기감이 갑작스럽게 다가오며 긴장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위기감이 느껴지는 순간, 그것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한 마리의 어두운 초록빛을 가진 독사였다.
다섯 척 정도의 길이에 손가락 두 개 정도 되는 굵기, 그리고 꼬리 대신 머리가 달린 녀석이었다.
놈은 입을 벌리며 날카로운 두 개의 독니를 드러냈다.
그리고 진양의 목을 노리며 날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