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384
384화 넉넉하게 주세요
성지 내의 어느 한 객잔에서 진양이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책상에 엎드려있었다.
잔뜩 찌푸려진 그의 얼굴에서 상당한 고뇌가 느껴졌다.
“길일 하나 계산하는 게 이리도 어렵단 말인가? 하긴. 괜히 잘못 계산했다가 이상한 물건이라도 나오면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될 테니…….”
순간 진양의 머릿속에 어느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진양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래! 정의, 이런 일은 정의 그 녀석이 전문이잖아. 그런데, 그 녀석 지금 어디 있는지 모르는데. 뭐, 정 아니면 몽 사숙께 부탁드리면 되겠지.”
* * *
“에취!”
음산한 기운으로 가득 찬 무덤 안.
조용히 관을 만지작거리던 장정의가 갑자기 재채기했다.
그 순간, 거북이처럼 느릿하던 장정의의 몸놀림은 마치 토끼와 같이 빨라졌다.
장정의는 펄쩍 뛰어오르며 망설임 없이 곧장 몸을 돌려 무덤 입구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무덤 입구에 도착했으나, 오히려 속도를 더욱 높여 무덤을 빠져나왔다.
무덤에서 도망쳐 나온 장정의는 백여 장을 더 달리고 나서야 조금씩 멈춰 섰다.
그리곤 뒤돌아 삼 척 정도 되는 크기의 구멍을 바라보았다.
무덤을 도굴하기 위해 자신이 파놓은 것이었다.
다행히 장정의를 쫓아오는 귀신 같은 건 없었다.
발걸음을 멈춘 장정의는 한참 동안 제자리에서 깊은 생각에 빠졌다.
딱히 재수 없는 일을 당한 것도 아닌데 그의 표정은 잔뜩 일그러져있었다.
이어서 그는 한 무더기의 물건을 바닥에 쏟아놓았다.
나판(나침반), 거북이 등껍질, 점을 볼 때 사용하는 제비, 그리고 두텁고 거대한 책까지.
다양한 물건이 있었다.
장정의는 물건과 별이 떠 있는 하늘, 그리고 주위 환경을 둘러보며 무언가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잠시 뒤, 장정의는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쏟아놓은 물건을 모두 챙기기 시작했다.
“이상하군. 분명 계산은 틀리지 않단 말이지. 그런데, 왜 관을 열려는 순간 갑자기 재채기가 나온 거지? 설마 방향을 잘못 잡은 건가?’
한참을 생각해 보았지만,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장정의는 잠시 고민하는 듯싶더니 물건을 챙겨 뚫어놓은 구멍을 다시 메꿨다.
그리고 영향을 꺼내 피운 뒤 세 번 절하곤 미련 없이 그곳을 떠났다.
“이건 누가 봐도 좋지 않은 징조야. 괜히 잘못했다간 무슨 일을 당할지도 모른다. 무슨 일을 당하기 전에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는 게 좋겠어.”
장정의는 이제 막 탁본을 마친 책을 챙겨 황급히 그곳을 벗어났다.
내용이 궁금하긴 했지만, 우선은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였다.
* * *
같은 시각.
진양은 자신이 장정의를 시켜 온갖 무덤을 뒤지며 단서를 찾도록 시켰다는 걸 완전히 잊고 있었다.
“에잇! 못 해 먹겠다.”
하루도 지나지 않아 진양은 계산을 포기해 버렸다.
역시 각자 자신에게 맞는 옷이 있는 법.
맞지 않은 옷을 억지로 입으려고 해봤자 힘만 빠질 뿐이다.
진양은 그 길로 성지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산 좋고 물 좋은 산자락 중턱에서 멈춰 섰다.
진양은 탁자를 꺼내고 그곳에 초상화를 걸었다.
그다음 향을 피우며 중얼거렸다.
“제자 진양, 몽 사숙님을 뵙습니다.”
잠시 뒤, 향이 초상화를 휘감자 초상화 속의 준수한 외모를 가진 청년이 천천히 그림 밖으로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이 녀석, 또 무슨 일로 날 찾는 게냐? 일이 있으면 내가 아니라 네 스승을…….”
몽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잠깐, 그건 음패수잖아? 어디서 얻은 게냐?”
진양의 소매 밖으로 머리만 쏙 내민 채 혀를 날름거리는 음패수를 발견한 것이다.
음패수는 차가운 눈빛으로 몽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나 몽의는 기이한 미소를 띤 채 음패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음패수의 두 눈에 소용돌이가 일어났다.
그의 시선은 초상화에서 걸어 나온 사람을 지나 공간을 뚫고 지나갔고, 진짜 몽의와 눈을 마주치게 되었다.
음패수의 시선은 눈알 없이 비어있는 구멍과 마주하게 됐다.
순간 알 수 없는 기운이 공간 너머에 있는 음패수를 덮쳤다.
음패수는 잔뜩 겁을 먹은 듯 머리를 움츠렸고, 눈을 감은 채 벌벌 떨기 시작했다.
“허허, 이 녀석. 사람을 몹시 무서워 하나 보구나. 그나저나 네 스승이 뱀고기를 꽤 좋아하는데. 얼른 가져다 한 그릇 바치지 않고 뭐 하는 게냐!”
“어허, 사숙님. 이 친구는 음식이 아니라고요.”
음패수는 이전에 만났던 뱃사공보다 눈앞에 있는 몽의를 더 두려워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쓸데없는 소리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고. 그래서 또 무슨 몹쓸 짓을 하려고 날 찾는 게냐?”
“몹쓸 짓이라뇨! 제가 얼마나 의협심 강하고 선량한 사람인데요. 별 건 아니고 길일을 계산해 주셨으면 해서요. 제가 원하는 일을 이룰 수 있는 날을 알고 싶습니다.”
몽의는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폈다.
그리곤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으로 발아래를 가리켰다.
“이곳 정도면 훌륭하구나. 지맥이 오랜 시간 변하지 않고 온고하게 유지되고 있어. 많은 기운이 쌓여있는 걸로 봐선 오백 년 안에 이곳에서 걸출한 인물이 나오겠구나. 길일이라면 내일 유시(酉時) 삼각을 노려보거라.”
몽의가 툴툴거리며 한마디 덧붙였다.
“이런 간단한 것조차 날 불러 귀찮게 하다니.”
“하지만 정확히 해야 하는 일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고요.”
“그래서, 더 이상 볼 일 없는 거지? 그럼 난 이만 간다.”
돌아가려던 몽의는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듯 다시 뒤돌아섰다.
“아, 그리고 보니 정의 그 녀석은 잘 살아 있더냐? 살아있으면 당장 돌아오라고 전해 주거라. 백날 싸돌아다니지 말고.”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숙님. 나중에 돌아가게 되면 꼭 선물 챙겨갈게요.”
몽의는 대답 대신 손을 흔들어 보이곤 다시 초상화 안으로 들어갔다.
진양은 초상화를 다시 챙기면서도 속으로 감탄했다.
‘역시 전문가는 전문가란 말이지. 어떻게 구체적인 시간까지 한 번에 맞출 수 있는 거지?’
위풍은 몽의가 지금까지에 오를 수 있었던 건 단순히 전투력이 강했기 때문이 아니라는 말을 했던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말이 충분히 이해됐다.
그리고 온갖 무덤이란 무덤은 전부 파헤치고 다니는 장정의 그놈이 어째서 단 한 번도 재수 없는 일을 당하지 않는 것인지도 이해가 됐다.
‘그 스승에 그 제자로군.’
진양은 탁자와 초상화를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몽의는 이미 진작 모습을 감췄으나, 음패수는 여전히 잔뜩 겁을 먹은 상태였다.
진양은 못마땅하다는 듯 한마디 했다.
“살면서 이렇게 겁 많은 녀석은 또 처음 봤네. 너 음패수 맞냐?”
진양에게 한마디 듣긴 했으나 음패수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감히 시간의 강을 몰래 훔쳐볼 정도라니…….’
도저히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심지어 뱃사공보다 한술 더 뜬 격이 아닐 수가 없었다.
진양은 한숨을 푹 쉬었다.
‘이런 녀석을 암야우담화 꽃잎을 무려 한 개나 주고 바꿔오다니. 아이고, 속 쓰려!’
진양은 음패수는 무시한 채 제자리에서 향로를 꺼내 향을 피웠다.
향에선 자욱한 연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진양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정신을 집중하며 연기로 목욕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충분히 자기를 빨아들였다.
다음 날이 되어서야 모든 준비가 끝났다.
진양은 흑여 선조가 잠들어있는 관을 꺼내 조심스럽게 향로 앞에 내려놓았다.
“자, 어르신. 우리 서로 피곤하게 하지 말자고요. 끝까지 책임지고 고향까지 모셔드릴 테니까 여비는 넉넉하게 주는 걸로 합시다. 알겠죠?”
진양은 공손하게 고개를 숙여 예를 갖춘 뒤 영향을 피웠다.
미신 따위를 믿는 건 아니지만 그동안 너무 무감각하게 살아오다 보니 이번 기회가 상당히 귀하게 느껴진 것이다.
왠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재수 없는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잠시 뒤.
유시 삼각이 되기 전 진양은 관을 열었다.
흑여 선조의 시신을 깨끗이 닦고 깔끔한 수의까지 입혔을 즈음 유시 삼 각이 되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제발!’
진양은 엄숙한 얼굴로 흑여 선조의 손을 잡았다.
이어서 황금색 빛이 피어오르자 진양의 얼굴은 한층 더 엄숙해졌다.
황금색 광구 한 개와 보라색 광구 한 개가 나왔다.
광구 안쪽에는 서적의 형상을 닮은 기능서가 들어있었다.
진양은 광구를 모두 머릿속으로 집어넣은 뒤 남은 의식을 치렀다.
흑여 선조의 관에 부장품을 넣고, 관 뚜껑을 덮은 뒤 제문을 읽었다.
그다음 장명등에 불을 붙이고 영향을 피워 하룻밤 동안 흑여 선조의 명복을 빌어주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나서야 진양은 다시 관을 거두었다.
‘좋아. 그럼 어디 한번 살펴볼까?’
진양은 떨리는 마음으로 획득한 기능서를 살펴보았다.
황금색 광구 안에 들어있던 건 예상대로 무함경이었다.
이 공법은 수행하는 데에 쓰이고 있는 현재의 공법과는 완전히 다른 공법이었다.
무함경이야말로 다른 잡다한 것 없이 오직 육체만 단련하는 진정한 연체 공법이었다.
한 곳에만 모든 힘을 쏟아야만 진정으로 정점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만큼 입문 요구치도 상당했다.
육신의 강도부터 오장육부, 그리고 쌓아온 기반까지.
모든 조건을 만족해야만 익힐 수 있었다.
조건이 맞지 않는 자가 함부로 수련했다간 오히려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이 공법은 순수하게 육신을 제련시키는 공법으로, 후기에 도달하면 자신의 영혼을 분쇄하여 육신 안으로 녹아들게 만들 수도 있었다.
단순히 육신 단련 쪽으로만 본다면 무함경은 그야말로 정점 중에서도 정점이었다.
물론 육신만 단련하고 신통력을 수련하지 않는다고 해서 신통이 아예 파생되어 나오지 않는 건 아니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이를 인간이 익힐 경우엔 스스로의 혈맥을 자극하고 단련하여 자신도 모르는 전승되어온 신통력이나 공법에 대해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다고 했다.
어쨌든 진양은 이미 무함경을 익힐 수 있는 조건을 모두 갖추었다.
다음으로는 보라색 기능서였다.
그곳엔 견성술(牽星術)이라는 공법이 들어있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상당히 난해했다.
모든 내용이 머릿속에 각인되듯 새겨졌으나, 조금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충 살펴본 바로는 방향을 잡을 때 쓰는 공법 같아 보였다.
그런데, 겨우 방향 따위나 잡는 공법이 어째서 무려 보라색 기능서에서 나온단 말인가?
당장은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급할 건 없었다.
나중에 시간 날 때 천천히 살펴보면 될 것이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황금색 기능서와 보라색 기능서를 하나씩 얻지 않았는가?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진양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무함경을 수련하면서 천천히 흑여 땅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원하던 무함경을 손에 넣긴 했지만, 약속대로 흑여 선조를 흑여 땅으로 데려다줘야 하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