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434
434화 간땡이가 부어도 단단히 부었군
“사이가 나쁘다 이거지…….”
진양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호위무사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배 좀 잘 보고 있어요. 아무리 그래도 안 형은 제 사질인데. 남에게 모욕당하는 모습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순 없잖아요. 비록 아직 완전히 회복된 몸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도움을 주는 건 큰 무리는 아닐 겁니다.”
“대인, 그냥 소인이 가겠사옵니다. 여기서 쉬고 계시는 게…….”
호위무사가 걱정된다는 듯한 얼굴로 진양을 말렸다.
“괜찮습니다.”
진양은 곧장 빛이 되어 먹구름을 향해 쌩- 하고 날아가 버렸다.
본격적으로 먹구름 안으로 들어오자 주위에 가득한 보이지 않는 번개의 힘이 느껴졌다.
진양은 힘찬 기합과 함께 삼양개태지법을 펼쳤다.
그리고 그동안 오랫동안 모으기만 하고 거의 사용하지 않던 진원을 방출하여 수인을 맺었고, 인뇌 공법을 시전했다.
먹구름 가운데 강렬한 태양이 떠오르듯 빛이 터져 나왔고, 그와 동시에 진원의 파동이 주위를 휩쓸기 시작했다.
한 줄기의 붉은 빛줄기가 먹구름을 꿰뚫었다.
뜨거운 태양의 기운과 번개의 기운이 하나로 합쳐지며 적색의 번개를 만들어내며 진양을 뒤따랐다.
체내의 진원이 마치 물 흐르듯 솟구쳐나오며 소모되고 있었다.
평범한 신해 수도사였다면 결코 감당하지 못할 수준의 힘이었다.
진양은 방대한 진원을 쏟아부어 인뇌 공법을 펼쳤고, 강제로 번개에 대한 제어권을 가져왔다.
흑뇌위의 수도사들은 즉각 이러한 변화를 감지했다.
먹구름을 따라 흐르는 번개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으나, 어느덧 이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뛰어넘어서고 있었던 것이었다.
십여 명의 흑뇌위 수도사들은 한곳으로 모였다.
그리고 법보에 수인을 맺으며 번개에 대한 제어권을 다시 빼앗아오려고 했다.
북이 울리는 소리는 한 층 더 커졌고, 속도 역시 한 단계 더 빨라졌다.
그러자 먹구름 가운에 일어나는 번개의 수는 점점 더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호양의 기운에 잔뜩 젖어있는 붉은 번개는 그들이 제어할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진양은 혼자 열 사람이 소모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힘을 소모하고 있었다.
그러나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오랜 시간 힘을 소모하지 않고 쌓아두고만 있었기 때문에 지금쯤은 방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제어 가능한 수준까지 쌓이게 된다면 오히려 본인이 위험에 빠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진양은 힘의 소모 따위는 신경조차 쓰지 않은 상태로 먹구름 곳곳에 흐르고 있는 번개의 힘을 강제로 하나씩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흑뇌위 수도사들은 지쳐가기 시작했다.
제어권을 빼앗기는 속도가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빨랐기 때문이었다.
북을 두드리던 수도사도 어느새 멈춰 섰다.
새로 만들어내는 번개마다 전부 상대에게 빼앗기고 있는 상황에서 계속해서 북을 치는 건 상대를 도와주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한편 붉은색의 번개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더니 어느새 무려 사십 리에 달하는 기다란 뇌하(雷河)를 이루고 있었다.
뇌하는 거칠게 휘몰아치며 흑뇌위 수도사들을 휩쓸었다.
눈부신 빛과 함께 다른 수도사들은 전부 재가 되어 사라져버렸으나, 북을 치던 거한은 포효를 내지르며 끝까지 버텨내고 있었다.
‘어쭈? 버티네?’
하지만 재수 없게도 그는 연체 수도사인 듯했다.
진양은 대일신광을 모아 뇌하로 흘려보냈다.
그러자 곧바로 버틸 수 있는 임계점을 넘기며 거한의 불괴지체(不壞之體)는 마치 눈이 녹아버리듯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일련의 작업을 마친 진양은 다시 백옥주로 날아서 돌아왔다.
호위무사는 멍한 얼굴로 진양을 바라보며 물었다.
“대, 대인, 분명 세자님만 구해서 오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구해왔잖아요. 감히 겁대가리 없이 덤벼든 놈들을 쓸어버리는 거나 안 형을 구해오는 거나. 그게 그거잖아요?”
무슨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을 하냐는 듯한 반응이었다.
‘역시, 연체 수도사는 답이 없군. 그나마 한시라도 빨리 연기 수도사로 방향을 바꾸길 잘한 것 같아.’
마음껏 쌓여있던 진원을 비우고 나니 흡사 십 년 묵은 변이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한편 진양을 바라보는 모든 이들의 눈빛은 이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특히, 곁에 서 있던 호위무사는 잔뜩 겁을 먹었는지 갑자기 딸꾹질까지 할 정도였다.
이전까지 진양에게 공손하게 대했던 것은 단지 그가 여양후가 친히 초대한 손님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혹여나 조금이라도 불손한 모습을 보였다간 뼈도 못 추릴 것 같았다.
이게 어딜 봐서 신해 수도사가 만들어낼 수 있는 위력이란 말인가?
다시 돌아온 진양은 어느새 이전과 같이 물에 젖은 종이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얼굴이 비정상적으로 붉고, 입술은 다소 파란 빛을 띠고 있었으며, 몸이 미세하게 떨려오고 있었다.
일시적으로 많은 양의 기혈을 소모했을 경우 나타나는 증상이었다.
“쿨럭…….”
심지어 기침 소리마저 매우 힘겹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나 호위무사의 얼굴엔 여전히 공포가 남아있었다.
지금까지는 신조 이외의 문파나 세력은 별 볼 일 없는 존재로만 여겨왔었다.
그러나 이제야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여양후가 왜 젊은 시절 황천마종과 맺었던 관계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것인지도 알게 되었다.
‘황천마종은 참으로 무시무시한 곳이구나…….’
완전하지 않은 상태로도 이 정도의 힘을 낼 정도라니.
그렇다면 쌩쌩한 상태에서는 얼마나 더 무시무시한 힘을 낸단 말인가?
게다가 누군가를 구하러 간다고 하면 그 사람을 데려오는 게 일반적인 경우다.
그런데, 진양은 안기휘를 구해오는 대신 적을 모조리 쓸어버리는 쪽을 선택했다.
안기휘와 함께 온 호위무사를 포함한 모든 이들은 완전히 얼어붙고 말았다.
한 줄기의 빛과 함께 안기휘도 갑판으로 돌아왔다.
그의 얼굴엔 놀라움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 걸려있었다.
그러나 그는 진양의 모습을 살피곤 걱정된다는 듯 물었다.
“진 사숙님, 괜찮으십니까?”
“전 괜찮겠습니다. 그냥 조금 피곤해서 그런 겁니다.”
진양이 의자에 반쯤 누운 채 힘겹게 말했다.
“이렇게 싸워보는 것도 오랜만이군요. 다만, 안 형이 누군가에게 모욕을 당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니 나도 모르게 혈기가 치솟아서 말입니다. 나도 모르게 전부 쓸어버리긴 했는데, 나 때문에 놈들의 정체를 물어볼 수가 없게 되어버렸군요. 이거 미안해서 어떡하죠?”
“네? 아닙니다. 그자들은…….”
그러나 안기휘는 무언가 떠오른 듯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괜찮으니 이만 푹 쉬시지요. 상황이 정리되고 나면 사람들이 올 겁니다.”
“알겠습니다.”
진양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혹뇌위는 검객을 포위하기 위해 온갖 난리란 난리는 다 피웠다.
아무 것도 없는 황야라면 그렇다 쳐도 이곳은 아니다.
멀리 그들이 지나온 길에 수많은 사람들이 사는 모습이 보였다.
대영신조는 죄인을 법으로 엄격히 다스리는 곳이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이상 분명 치안 관리를 위한 사람들이 오게 될 것이었다.
마음대로 살육을 벌이는 행위는 다른 곳에서도 금기이며, 신조의 땅 내에서는 더욱 엄격하게 다스려진다.
다만, 이들이 난리를 피우며 여기까지 오는 동안 아무도 나서지 않았던 것은 그들이 흑뇌위라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일 것이었다.
게다가 이곳은 국경지대라 번듯한 도시 하나 찾아볼 수 없는 곳이었다.
차라리 한눈 가리고 모르는 척하고 지나가는 게 낫지, 괜히 나섰다가 미움이라도 사면 자신만 손해다.
하지만 상황이 대략적으로 정리되고 나면 뒷정리를 할 사람들이 나타나는 법이었다.
진양은 백옥주 안에 있는 선실로 돌아왔다.
바깥의 일은 더 이상 관여하고 싶지도 않았고, 관여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여양후부 정도라면 이 정도 일은 충분히 알아서 처리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때, 푸른 검광이 허공에 모여들며 젊은이의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푸른 장삼을 입고 한 손에는 장검을 든 청년이었다.
그는 잠시 망설이는 듯싶더니 검을 거두었다.
검은 푸른 빛이 되어 그의 손으로 빨려들어 갔다.
이어서 청년은 백옥주 앞으로 날아와 공손히 예를 갖추었다.
“청련검파 이장가, 안 소후야(小侯爺)를 뵙습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함께 오신 대협께도 감사 인사드립니다.”
“당신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 놈들이 먼저 날 해하려고 했기에 호위무사들이 나서준 것뿐이오.”
안기휘의 시선이 멀리 보이는 수십 줄기의 빛을 향했다.
빛은 이곳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만 됐으니 어서 가보시오. 앞으로는 조심하고.”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이장가 역시 멀리서 날아오는 빛을 보곤 곧장 포권을 취한 뒤 다시 푸른 검광이 되어 북쪽으로 쌩- 하고 날아가 버렸다.
이장가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멀리서 빛무리가 날아와 백옥주 앞을 가로막았다.
“저는 좌주의…….”
“시끄럽다. 네가 누군지는 알고 싶지 않다. 여양후부의 깃발을 보지 못한 것이냐? 감히 여양후 세자의 앞길을 막다니. 이게 무슨 짓이냐?”
안기휘가 나설 것도 없이 호위무사가 곧장 호통을 쳤다.
“그, 그게…….”
행색으로 보아 관아의 말단 졸병들인 듯했다.
불쌍한 녀석들이었다.
어디서 큰소리칠 힘도 없고, 일은 고되고, 그렇다고 제대로 일을 성공하지 못한다면 모든 것을 뒤집어쓰게 되는 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여양후부의 깃발을 본 이들은 자신들이 난처한 일에 엮이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규칙대로 뭐라도 물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이미 알고 있다. 놈들이 먼저 신분도 밝히지 않고 세자님을 공격해왔고, 우린 그저 세자님을 보호하기 위해 정당방위를 한 것뿐이다.
너희들, 좌주 관아에서 온 놈들이지? 원래대로라면 우리가 좌주 주목(州牧)을 질책할 일인데, 어찌하여 네 놈들이 우리를 질책하는 듯한 태도를 취한단 말이냐?”
호위무사의 말에 두 졸병은 당황하여 어찌할 줄 몰랐다.
신분도 밝히지 않고 여양후의 세자를 공격하다니.
설령 누구든 알아볼 수 있는 흑뇌위라 하더라도 이건 문제가 있었다.
게다가 여양후 세자가 좌주에서 자객들을 마주하다니.
만약 이 일이 자신들의 상관과 엮이게 된다면 상황은 한층 더 심각하게 변할 것이었다.
“흥! 오늘 일은 여양후 어르신께 하나도 빠짐없이 낱낱이 고할 것이다. 여양후 어르신께서 세자님을 얼마나 아끼시는지는 알고 있겠지? 과연 좌주 주목이 무슨 대답을 할지 기대가 되는구나!”
호위무사는 할 말을 마쳤다는 듯 손을 훽- 휘저었다.
백옥주는 천천히 움직이며 앞으로 나아갔으나, 두 졸병은 멍하게 백옥주가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한 졸병이 한숨을 푹 쉬며 입을 열었다.
“흑뇌위 놈들도 참. 어떻게 신분도 밝히지 않은 걸로도 모자라 여양후 세자님을 습격할 수가 있는 거지? 간땡이가 부어도 단단히 부었군.”
“이봐, 이 일은 더 이상 우리가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야. 윗선에 보고하고 우리는 이만 손 털자고.”
옆에 있던 졸병이 골치 아프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하긴, 아무래도 그게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