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459
459화 영맥이잖아!
괴수는 진양이 무슨 짓을 하든지 신경조차 쓰지 않고 오직 오른발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진양은 방금 전 있었던 일을 떠올려보았다.
분명 진양이 오른발을 내딛기 무섭게, 놈이 나타나 오른발을 깨물었었다.
‘설마?’
진양은 다시 한 번 진원을 발끝으로 흘려보냈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놈의 입이 살짝 벌려졌고, 진양은 그 틈에 재빨리 신발에서 발을 빼냈다.
과연, 예상대로 놈은 진양의 신발을 미친 듯이 물어뜯기 시작했다.
‘저게 도대체 뭐지?’
진양은 놈이 신발에 정신 팔린 틈에 최대한 멀리 도망쳤다.
뒤를 돌아보니 진양의 힘이 끊어진 신발은 괴수에게 뜯겨 가루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괴수는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아주 작은 조각 하나까지 남김없이 몽땅 집어삼키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목표물이 사라지고 나자 괴수가 진양을 쫓기 시작한 것이었다.
게다가 달려오는 놈의 속도는 꽤 빨랐다.
진양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두들겨 맞아도 아무렇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강해지는 괴수라니.
아무래도 골치 아픈 녀석이 걸려든 듯했다.
이대로는 도망만 치다간 도무지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았다.
진양은 곧장 화혈마도를 꺼내 놈을 향해 휘둘렀다.
분명 화혈마도에 정통으로 베였음에도 불구하고 놈은 털가죽 하나 상하지 않았다.
“이런 쓸모없는 녀석!”
진양은 울분을 토하며 화혈마도를 해안 안에 다시 가둬버렸다.
해안 속에 갇혀만 있다가 이제야 나가나 싶었는데, 바깥 공기를 마시기도 전에 다시 해안 속으로 갇히게 되었다.
마두는 인생 다 산 것 같이 울상을 지었다.
녀석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위에 있는 검둥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대인, 아무래도 저 정말로 망한 것 같습니다. 저런 이름 모를 짐승조차 제대로 베어버리지 못하다니…….”
진양은 계속해서 도망치고 있었고, 괴수는 연신 거친 숨을 내쉬며 죽어라 진양의 뒤를 쫓았다.
놈의 눈에는 진양의 오른발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가다간 안 되겠다 싶었는지 진양은 얼마 남지 않은 취생몽사를 꺼내 작은 사발에 담아 바닥에 내려놓았다.
한참 달리던 괴수가 코를 킁킁거리는가 싶더니 술을 사발째로 들이켜 버렸다.
그리곤 계속해서 진양의 뒤를 쫓았다.
그렇게 놈은 연속으로 여덟 사발이나 되는 술을 마셨다.
하지만 전혀 취한 기색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오히려 놈의 속도는 이전보다 훨씬 더 빨라진 모습이었다.
그렇게 도망치기 시작한 지 며칠이 지났다.
갑자기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진양의 표정이 굳어졌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지난번 번개의 비가 내린 이후로 벌써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더 이상 생각해 볼 틈도 없이 번개가 장대비처럼 마구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진양은 재빨리 진원을 거두었다.
그리고 검은 솥과 등껍질을 뒤집어쓰곤 육신으로 버텨내기 시작했다.
이어서 번개가 사방을 휩쓸었다.
번개에 맞은 괴수는 새까맣게 그을렸다.
그러나 놈은 여전히 집착스럽게 진양의 뒤를 쫓고 있었다.
‘……망했다.’
저런 말도 안 되는 괴수에 대해선 살면서 들어본 적조차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되먹은 녀석이 때려도 아무렇지도 않고, 술을 먹여도 소용이 없고, 무시무시한 번개에 맞고도 멀쩡할 수 있단 말인가?
하루 뒤.
벌렁 누워있는 진양의 몸 위로 번개가 떨어졌다.
이어서 번개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괴수에게도 날아갔다.
놈은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쓰러져있었다.
그러나 놈은 계속해서 허우적거리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놈의 시선은 여전히 진양의 오른발에 고정되어있었다.
간신히 진양과 일 척 정도 떨어진 거리까지 다가왔을 무렵.
놈은 마침내 지친 듯 거칠게 숨을 내쉬며 완전히 퍼져버렸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앞발은 진양의 오른발을 향해 휘적거리고 있었다.
“미친놈! 진짜 징하게도 질긴 놈이로구나. 알았어. 내가 졌어. 내가 졌다고! 자, 실컷 물어라. 분이 풀릴 때까지 원 없이 물어도 좋으니까 제발 나 좀 놔줘!”
진양은 포기한 듯 놈의 입으로 발을 뻗었다.
그러나 놈은 가까이 있는 종아리는 관심이 없는지 굳이 몸을 힘겹게 움직여 진양의 발뒤꿈치를 물었다.
그러고 나서야 평온한 얼굴로 쓰러진 채 지친 체력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하루 뒤.
체력을 회복한 진양은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발아래 괴수를 대롱대롱 매달고서 말이다.
진양은 이미 해탈한 듯한 표정이었다.
더 이상 통증은 느껴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실수로라도 놈을 치기라도 할까 봐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괜히 때렸다가 이것보다 더 강해지기라도 하면 난처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현경사 놈들을 너무 얕잡아봤구나. 이런 말도 안 되는 함정을 파두었을 줄이야…….”
괴수를 질질 끌고 가는 진양의 얼굴은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이런 미친 괴수를 풀어놓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현경사 놈들이 용서되질 않았다.
웬만한 함정들은 어떻게든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라도 있지, 괴수는 도무지 떨쳐낼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놈은 말도 안 되는 수준의 맷집은 물론이고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민첩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두들겨 맞을수록 더욱 강해지는 녀석이었다.
거기에 덤으로 무는 힘까지 함께 강화되었다.
때문에, 이대로 가다간 얼마 지나지 않아 놈의 턱 힘에 발이 박살 나버리고 말 것 같았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놈을 매단 채로는 둔법을 쓸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진양은 울며 겨자 먹기로 놈을 질질 끌며 걸어서 이동하는 수밖에 없었다.
한편,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어느새 또다시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번에도 역시 하늘에서 번개가 내려치기 시작했다.
번개의 위력은 앞으로 나아갈수록 점점 더 강해져 가는 것이 몸으로 느껴졌다.
하루 종일 번개를 맨몸으로 버텨낸 진양과 괴수는 지친 듯 땅 위에 벌렁 누워있었다.
이때가 유일하게 놈의 무는 힘이 절반 정도 약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대충 모아둔 힘을 거의 다 연화시켜 갈 쯤.
진양은 최양평의 탕 한 그릇과 술 한 사발을 따라 괴수에게 밀어주었다.
“내가 잘못했어. 앞으로 다시는 네 머리를 밟지 않을 테니까 제발 좀 놔달라고! 이거 먹고 이제 사이좋게 지내는 거야. 알겠지?”
진양은 두 손을 모아 놈에게 간절하게 빌었다.
향긋한 탕의 냄새와 술 냄새에 괴수는 코를 연신 킁킁거렸다.
“사양하지 말고 먹어. 그래도 나름 같이 번개 목욕을 버텨낸 사이잖아. 정을 생각해서 조금 나눠준 것뿐인데, 설마 못 먹을 걸 줬겠냐?”
괴수가 가만히 있자 진양은 탕을 한 그릇 더 따라서 꿀꺽꿀꺽 마시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군침을 흘리던 괴수도 탕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천천히 진양의 발을 놓기 시작했다.
그렇게 탕 쪽으로 머리가 슬금슬금 돌아가려던 그 순간, 놈은 갑자기 다시 원래의 위치로 돌아와 진양의 발을 깨물었다.
“소심하긴. 설마 내가 도망이라도 갈까 봐 그런 거냐? 난 그냥 네게 탕 한 그릇 대접해 주고 싶은 게 다라고.”
괴수는 진양의 눈치를 슬쩍 살피며 발을 문 입에 힘을 조금씩 풀었다.
여전히 가만히 있는 진양의 모습에 놈은 그제야 안심하며 정신없이 탕과 술을 핥아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녀석이 절반 정도 음식을 해치웠을 때.
진양의 몸이 눈 깜짝할 사이에 수십 장 뒤로 날아갔다.
발끝으로 진원을 모아 튀어 나간 것이기 때문에 그가 서 있던 자리는 움푹 파여있었다.
이어서 허공으로 튀어 오른 진양은 빛으로 휩싸였고, 왔던 방향을 따라 쌩- 하고 날아가 버렸다.
괴수는 망연한 얼굴로 진양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면서도 곧바로 움직이진 않았다.
머리로는 쫓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몸은 남은 탕을 모두 마셔야만 갈 수 있다는 듯 미친 듯이 그릇을 핥아대고 있었다.
그렇게 괴수는 남은 탕과 술을 모두 마신 뒤에야 진양이 사라진 방향을 향해 달려 나갔다.
잠시 뒤.
괴수가 떠나고 난 자리로 진양이 착지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휴, 드디어 떼어낸 건가…….”
멀리 도망간 척하면서 허공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어쨌든 놈을 간신히 떼어낸 진양은 다시 빛이 되어 앞을 향해 날아갔다.
그렇게 삼 일 정도를 날아가고 나서야 지도에 표기된 건물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 위에 건물 하나만 우뚝 서 있었다.
마치 산 위에 남아있는 허물어진 절과 같이 단순한 구조의 건물이었는데, 한 층의 영광(靈光)이 모여들어 광막을 이룬 채 그곳을 보호하고 있었다.
딱히 입구를 지키는 존재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금제가 걸려있는 것도 아니었다.
진양은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가며 전방을 유심히 살폈다.
혹여나 함정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막상 다가가서 살펴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얼굴 없는 석상이 보였다.
석상의 어깨엔 흠천보감을 휘감고 있는 놈과 비슷하게 생긴 뱀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진양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흠천보감을 꺼내 쥐었다.
혹여나 갑작스러운 일이 벌어질 경우를 대비하여 신물을 꺼내든 것이었다.
다행히 우려하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진양은 그제야 양쪽을 살펴보았다.
양쪽에는 각각 일 장 정도 되는 돌로 만든 큼직한 상자가 놓여있었다.
상자 가까이 다가가니 흠천보감에서 미약하게 빛이 피어올랐다.
이어서 상자가 스스로 열렸다.
안에는 주먹만한 구체가 여러 개 들어있었다.
반투명한 색의 구체였고, 기괴한 냄새까지 풍기고 있었다.
반투명 구체 내부에는 수정구처럼 생긴 구체가 들어있었다.
대략 어린아이의 주먹만한 크기의 구체였고, 은은한 영광을 뿜어내고 있었다.
진양의 얼굴이 밝아졌다.
구체는 요수(妖獸)의 근막으로 만든 교지(膠脂)였다.
무언가를 봉하여 보관할 때 쓰는 물건이었다.
교지에 싸여있는 수정구엔 자욱한 기운이 가득했다.
“이건 영맥이잖아!”
영맥이란 팔품 영석을 칭하는 말이었다.
영맥을 땅에 심으면 곧장 영석 광맥이 뻗어져 나오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광맥에선 영석을 끊임없이 퍼낼 수 있게 된다.
게다가 영석 광맥이 있는 곳에선 진한 영기가 뿜어져 나오기까지 한다.
때문에, 황무지도 비옥한 땅으로 만들 수 있는 엄청난 가치를 가진 물건이기도 하다.
상자 안에는 족히 수백 개에 달하는 영맥이 들어있었다.
진양은 입맛을 다시며 손을 비비적거렸다.
지금까지 무언가 물건을 팔 때 항상 영맥으로 가격을 매겼었지만, 나중에는 전부 영석으로 환산하여 받았었다.
머리가 어떻게 되지 않는 이상 진짜 영맥으로 값을 치르는 이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영맥은 그만큼 귀한 물건이었다.
그러나 진양은 곧바로 영맥을 챙겨 넣진 않았다.
일단은 다른 상자도 확인해 보자 싶었다.
진양은 뒤돌아서서 뒤에 있는 다른 상자도 열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