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460
460화 저 녀석이 왜 깨어있는 거지?
영맥이 담긴 상자의 반대편 상자에는 백금색의 큼직한 도장(圖章)이 들어있었다.
도장 위엔 괴상한 모양의 뱀이 똬리를 틀고 앉아있었다.
도장에선 알 수 없는 위암감이 뿜어져 나와 진양의 가슴을 짓눌렀다.
황금색 두루마리도 한 장 들어있었다.
복잡한 무늬와 같이 생긴 무언가 새겨져 있었으나, 진양은 그것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두루마리 안에 엄청난 힘이 서려 있다는 것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외에, 금박이 입혀진 책도 한 권 들어있었다.
표지에 ‘만법지서(萬法之書)’라는 글씨가 큼직하게 쓰여 있는 책이었다.
진양은 그것들은 가만히 놔두고 다시 영맥이 든 상자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영맥을 하나 꺼내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다행히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았고, 진양은 안도하며 남은 영맥을 모두 챙겨 넣기 시작했다.
영맥을 모두 챙긴 진양은 다시 책과 도장이 있는 상자로 돌아왔다.
도장에 손을 대보았으나 습득이 불가능했다.
옆에 있는 두루마리와 책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소 아쉽긴 했지만, 진양은 욕심을 거두었다.
이곳은 대윤 신조에서도 가장 은밀하면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현경사 놈들이 만들어둔 공간이었다.
이런 곳에서 과한 욕심을 부렸다간 무슨 일을 당하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애초에 이런 걸 목적으로 이곳에 들어온 것도 아니었다.
애매하게 욕심을 부리다가 화를 당할 바엔, 적당히 먹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게 훨씬 나았다.
다 무너져가는 절을 한 바퀴 돌아본 진양은 실망한 듯 한숨을 푹 쉬었다.
온갖 개고생을 하며 비밀창고에 도착했건만 겨우 이게 다란 말인가?
그래도 수백 개나 되는 영맥을 챙겼으니 완전히 쪽박은 아니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자리를 털고 떠나려는 순간.
누군가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어째서 다른 건 챙겨가면서 가장 가치 있는 보물들은 가져가지 않는 것이냐?”
놀란 진양이 고개를 훽- 돌리자 절 중앙에 있던 무면 석상에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석상은 흥미롭다는 듯 진양을 쳐다보았다.
“아쉬운 듯한 표정으로 보아 물건의 가치는 충분히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어째서 가져가지 않는 것이냐?”
“사람이 주제를 알아야죠. 제게 속하지 않은 물건은 함부로 손대지 않는 게 도리 아니겠습니까?”
진양은 조용히 한걸음 뒤로 물러서며 대답했다.
“그렇다면 영맥은 어째서 챙겨가는 것인가?”
“땅에 떨어진 돈은 가져가는 사람이 임자 아닙니까?’
“하하! 기가 막힌 얘기이긴 하지만 그래도 틀린 말은 아니로구나.”
석상은 호쾌하게 웃고 난 뒤 상자를 가리켰다.
“저 도장은 한때는 도기(道器)에 버금가는 엄청난 보물이었다. 단지 지금은 깊게 잠들어있을 뿐, 도기의 원래 위력을 되찾을 수 있는 방법만 알고 있다면 강한 실력이 없는 자라도 엄청난 힘을 부릴 수 있게 되지.
그리고 그 옆에 있는 만법지서는 대윤 신조의 모든 공법을 집대성하여 만든 서적이지. 잡다한 공법이 아닌 정수 중에서도 정수만 모아두었기 때문에 극소수만 익힌다고 하더라도 천하를 호령할 수 있을 정도지.”
“그렇군요. 그럼 그 옆에 있는 두루마리는요?”
“두루마리는 과거 대윤 신조의 대제가 남긴 물건이지. 이것은 책봉에 사용되는 성지(聖旨, 황명이 적힌 칙서)로 내용은 온전하나 아직 이름은 쓰여있지 않은 물건이고.”
석상이 손을 뻗어 상자를 가리키자 황금색 두루마리가 날아와 진양 앞에 펼쳐졌다.
“하늘의 뜻에 따라 황명을 내리노니…….”
누군가 위엄 넘치는 목소리로 칙서를 읽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별다른 내용은 없었다.
석상의 설명대로 황명이 적힌 칙서였는데, 중신으로 책봉한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이를 받아들이면 대윤 신조의 신하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칙서의 마지막 책봉자의 이름이 적혀있는 곳은 텅 비어있었다.
“이곳에 이름을 적으면 신조의 두터운 신임을 받는 신하가 되지. 그리고 상자 들어있는 강력한 도기 도장과 만법지서의 새로운 주인이 될 수 있다.”
“직접 써야 하는 건가요?”
진양은 영 못 내키지 않는다는 듯 칙서를 바라보았다.
다 망한 신조에 무슨 놈의 신하란 말인가?
석상은 진양이 물건을 가져가려고 할 때는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다가 물건을 챙기지 않자 뒤늦게 나타나 진양을 붙잡았다.
게다가 이젠 자신의 이름까지 적고 물건을 가져가라고 꼬드기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보다 더 허접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 네 손으로 직접 적어야 한다.”
“썩 내키진 않는데. 그냥 물건만 가져가면 안 되나요?”
“안 된다.”
“왜요? 저한테 주려는 거 아니었어요?’
“어차피 그냥 가져가봤자 쓸 수도 없다.”
“그냥 여기까지 온 김에 기념품으로 갖고 있어도 되잖아요. 물건의 주인이 될지는 나중에 천천히 생각해도 될 거 같은데.”
“그건 안 된다.”
“아쉽군요…….”
말로는 그렇게 얘기하고 있었으나, 진양은 일말의 미련도 없이 돌아섰다.
그렇게 떠나는 진양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석상은 진양이 절 밖까지 가고 나서야 다시 그를 불러세웠다.
“가져가거라. 전부 그냥 주겠다.”
진양은 그제야 다시 돌아와 물건을 모두 챙겼다.
물건에 손을 대는 순간, 습득 능력 발동이 가능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진양의 입꼬리가 한쪽으로 올라갔다.
‘멍청하긴.’
“그럼 정말 가져갑니다? 나중에 딴말하기 없기예요.”
“가져가거라. 절 뒤쪽으로 돌아가면 이곳을 떠나는 길이 보일 것이다.”
의외로 아무렇지 않은 상대의 모습에 진양은 어딘가 미심쩍었다.
하지만 당장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기에 조용히 그곳을 빠져나왔다.
절을 빠져나온 진양은 석상이 가르쳐준 대로 절 뒤쪽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석문이 우뚝 서 있었다.
비경 입구였다.
진양은 비경 입구를 연 뒤 머리카락을 하나 뽑아 분신을 만들었다.
그리고 먼저 비경 안으로 들어가도록 했다.
잠시 뒤.
분신이 해제되며 분신의 기억과 경험이 진양의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뭐야? 그럼 여기가 진짜 출구란 말이야?’
겉보기엔 크게 위험한 곳처럼 보이진 않았다.
적어도 이곳을 벗어나는 길은 맞는 것처럼 보였다.
진양은 비경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별다른 제약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아주 약간의 기운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자세히 느껴보니 이곳은 흑림해의 가장자리에 있는 곳으로, 바다 쪽과 가까이 있는 황무지 일대였다.
현재 진양이 밟고 있는 곳은 어느 산에 있는 동굴 안이었고, 동굴 벽 한쪽엔 석문이 우뚝 서 있었다.
진양의 시선이 석문으로 향하자 석문이 천천히 소멸했다.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말이다.
진양은 그제야 가져온 세 개의 보물을 차례대로 연화시켰다.
만법지서는 펼쳐지지 않았다.
하지만 큰 상관은 없었기에 일단은 주머니에 따로 챙겨놓았다.
도장 역시 연화가 끝났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진원을 흘려보았으나 마찬가지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아무래도 석상이 틀린 말을 한 건 아닌 듯했다.
그러나 두루마리는 달랐다.
진양이 그것을 연화시키는 순간, 은은한 빛과 함께 적혀있던 내용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었다.
바뀐 내용을 읽어본 진양의 표정은 곧장 딱딱하게 굳어졌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노예 계약서’나 다름없었다.
몸부터 영혼까지 모두 바치겠다는 내용이었고, 심지어 죽어서도 신조의 귀신으로 남겠다는 내용이었던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후손까지도 전부 하수인으로 바치겠다는 내용까지 포함되어있었다.
‘이럴 줄 알았다.’
뭐든 공짜는 의심부터 해야 한다.
그런데, 문득 석상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습득 능력의 규칙대로라면 오직 물건의 주인이 직접 허락해야만 물건을 습득할 수 있었다.
그 말은 즉 석상이 물건의 주인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현경사가 남겨놓은 사람인 걸까?
그건 아닐 것이었다.
과거 살아남은 현경사의 사주는 멀리 사해로 도망가 그곳에서 현천성종을 세웠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 물건들, 특히 도장은 누가 봐도 황족의 물건이었다.
물론 세월의 흔적 때문에 도장에 뭐라고 적혀있는지는 알아볼 수 없었지만, 크기나 대략적인 모양으로 보아 칙서에 적힌 것과 똑같았다.
‘설마 대윤 신조의 옥새?’
이 모든 추측이 사실이라면 석상은 황족일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이러한 추측을 뒷받침해 줄 증거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상관은 없었다.
비밀창고를 털러 들어간 목적은 달성한 셈이니 말이다.
이제 남은 계획대로만 일을 처리하면 모든 게 끝난다.
진양은 노예 계약서와 도장을 든 채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신전후, 기다려라. 조만간 큰 선물을 하나 보낼 테니까…….”
* * *
같은 시각, 무너져가는 절 내부.
석상의 어깨에 똬리를 틀고 있던 뱀이 츠츠츳- 하는 소리를 냈다.
그러자 석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맞다. 오랜 시간이 흘렀으니 우리로선 별다른 선택지가 없어. 혼자 이곳까지 들어왔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들이 증명된 셈이다. 실력은 다소 부족해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여러모로 우리가 필요로 하던……. 응?”
석상은 다소 놀란 듯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리곤 이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래도 우리가 그자를 과소평가한 모양이야. 나와 물건들 사이의 연결고리가 끊어진 게 느껴진다. 허나, 상관없다. 어쨌든 그자가 물건을 가지고 있기만 하면 되니까. 시간이 흐를수록 그는 우리 편이 될 수밖에 없을 거다.”
뱀은 마치 웃기라도 하는 듯 괴상한 소리를 냈고, 석상도 호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 한 괴수가 성큼성큼 절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진양의 발목을 물고 놔주지 않던 바로 그 녀석이었다.
괴수가 나타나자 뱀과 석상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절 안으로 들어선 괴수는 주위를 맴돌며 킁킁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절을 떠났다.
괴수가 사라지고 나자 석상 위로 다시 얼굴이 나타났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두려움, 놀람, 걱정이 뒤섞인 복잡한 표정이었다.
“저 녀석이 왜 깨어있는 거지? 도대체 누가 녀석을 깨운 거야?”
얼마 지나지 않아 흑림해 외곽에 곰과 사자를 닮은 괴수가 나타났다.
진양의 발목을 노리던 바로 그 괴수였다.
괴수는 보이는 수도사마다 손과 발을 전부 물어뜯었고, 곧바로 어디론가로 성큼성큼 떠나버렸다.
뒤쪽으로 손과 발이 한쪽씩 없거나 법보가 박살 난 수도사들이 겁에 질린 얼굴로 이를 갈고 있었다.
“움직이지 마시오. 저 괴수가 그냥 떠나도록 놔두시오…….”
* * *
진양은 외해에서 이제 막 돌아온 수도사의 모습으로 변장을 한 뒤 신우주로 돌아왔다.
그리고 돌아오자마자 수하들과 접선하여 수집한 최신 정보들을 넘겨받았다.
진양은 길을 걸으며 넘겨받은 최신 정보들을 살펴보았다.
대략 계산해 보니 비밀창고를 찾으러 들어간 지 어느덧 일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쯤 되니, 현경사 비밀창고에 대한 소문은 숨길래야 숨길 수 없는 소문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