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462
462화 아들 사랑으로 인한 변절
여양후와의 만남은 그렇게 끝이 났고, 여양후는 다시 할 일을 하러 돌아갔다.
그리고 바로 그날.
검유주 주목 허문정은 곧장 사람을 통해 큰 선물을 보내왔다.
어디서 진양의 취향에 대해 알아 왔는지는 몰라도 각종 자원과 재화 외에 무려 팔천 권에 이르는 옥간도 포함되어있었다.
여행기부터 시작하여 온갖 잡다한 내용이 적힌 서적이었다.
읽을거리가 생기자 진양은 방 안에 틀어박혀 책만 읽었다.
그러다 지루하면 잠시 쉴 겸 수련을 했다.
영태 경지에 오른 뒤로 아직까지 정식으로 제대로 된 수련을 한 적이 없었다.
아무래도 이제 때가 된 듯했다.
같은 시각.
진양이 퍼트리라고 했던 소식은 허문정에 의해 밤낮없이 멀리 퍼져나갔다.
그저 소식을 접한 헌국공이 난감한 처지에 빠진 허문정을 한 번만이라도 눈여겨 보아주길 바랄 뿐이었다.
* * *
일주일 뒤.
검유주 초씨 가문, 사당.
이곳은 조상의 위패를 모셔둔 장소였다.
안에는 백발의 노인이 앉아 이미 꺼져버린 혼등에 공법을 시전하고 있었다.
잠시 뒤.
혼등의 심지에서 불꽃이 피어올랐고, 다시 천천히 타오르기 시작했다.
흐릿한 그림자가 심지 위로 나타났다.
이어서 그가 재수 없게 허공 안으로 추락하는 장면이 흘러갔다.
노인의 눈에서 무시무시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역시, 정말로 만법여의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게로구나. 신전후, 이놈! 감히 우리 초씨 가문을 뭘로 보고! 며칠 전에 사람을 보내 같잖은 위로까지 하더니. 다 알면서 이런 짓을 한 게로구나.”
* * *
신좌주 주목부 깊숙한 곳에 자리한 밀실 내부.
굳은 표정을 지은 채 앉아있는 주목, 그리고 그와 마주하고 있는 노인의 모습이 보였다.
다소 푸르딩딩한 얼굴의 노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조심스럽게 몸을 앞으로 숙이며 손에 수경(水鏡)을 든 채 그를 안심시켰다.
“대인,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공자께서 공법을 수련하실 때 영혼의 일부를 떼어 이곳에 보관해 두었습니다. 마침 사용할 수 있으니, 누군가 강제로 흔적을 지우지만 않았다면 반드시 알 수 있을 겁니다.”
노인은 공법을 시전했다.
그리고 반 시진 뒤.
수경 위로 새파랗게 공포에 질린 얼굴이 나타났다.
“아버지, 저 너무 억울하게 죽었어요…….”
“무슨 일이 있었던 게냐?”
수경 위로 나타난 얼굴은 죽기 직접 있었던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얘기한 뒤, 한참의 통곡을 한 뒤에야 천천히 물결치듯 사라졌다.
수경을 바라보는 신좌주 주목의 얼굴엔 비통함과 분노가 가득했다.
“변자주! 근 몇 년간 네게 충성을 다했건만. 그 대가가 나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죽이는 것이란 말이냐?”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심리를 가지고 있다.
온갖 악행을 저지르던 자가 갑자기 칼을 내려놓고 선행을 베푼다면 모두가 그를 칭찬해 준다.
반대로 선행을 베풀던 자가 작은 악행이라도 저지를 경우엔 마치 대역죄인을 대하듯 그를 비난한다.
이러한 심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사람은 나락에 빠졌을 때 고통에 빠지는 게 아니다.
평범한 자리에 있던 누군가를 하늘 높은 곳으로 데리고 가 모든 것을 내려다보게 하다가, 어느 순간 그곳에 익숙해질 즈음 다리를 부러뜨리고 나락으로 밀어버린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고통이자 절망이다.
그게 아니라면 배신자들이 생겨날 이유가 없었다.
사람의 마음은 바다와도 같으니, 욕망을 채우기엔 끝이 없다.
욕심은 때에 따라 다른 법.
마치 지금과 같이 소식이 퍼지기 무섭게 사건을 추적하는 이부터 시작하여 사람을 보내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는 이들까지.
물론 이들 중 제대로 된 증거를 가져올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었다.
하지만 극소수로도 충분했다.
무엇보다 구지신후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신좌주 주목이 두 눈으로 직접 확실한 증거를 확인했다.
지금껏 구지신후에게 충성을 다해왔건만, 그 대가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죽음이라니!
그것도 신전후 세자의 손에 의해 시신조차 찾을 수 없는 곳에서 맞이한 처참한 죽음이었다.
구지신후는 사실을 숨긴 것도 모자라 태연하게 사람을 보내 위로까지 했다.
그야말로 사람을 놀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진상에 대해 알게 된 신좌주 주목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뒷조사를 이어나갔다.
그러나 결과는 여전히 실족사였다.
스스로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허공으로 떨어진 것이지, 신전후 세자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신전후는 너무 멀리까지 생각하지 말라는 말을 전해왔다.
그의 태도는 신좌주 주목을 극도로 실망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그는 곧바로 헌국공 쪽으로 붙어버렸다.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는 신전후의 약점이란 약점은 전부 다 불어버렸다.
덕분에 헌국공 밑에서 수십 년을 노력한 사람보다 더 큰 공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한편, 헌국공은 크게 기뻐했다.
신좌주가 가져온 정보는 전부 꽤 쓸만한 정보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정보를 제공한 사람이 신전후가 깊이 신뢰하던 사람이었으니, 그 정확도는 말할 것도 없었다.
신좌주 주목의 배신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하던 것이었다.
하지만 증거가 너무나도 확실했다.
만법여의 같은 엄청난 보물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남경을 통틀어 손에 꼽을 정도였다.
신좌주 주목이 신전후 세력에서 누리고 있는 지위를 생각해 보면, 신전후 세자가 만법여의를 가지고 비경에 들어갔다는 사실은 매우 쉽게 알 수가 있다.
그야말로 빼도 박도 못할 정확한 증거였다.
반대로 신전후는 증거를 잡혔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주목은 아들을 끔찍하게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 증거가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뻔했다.
이렇게 되자 신좌주 주목의 마음은 완전히 돌아서게 된 것이었다.
* * *
한편 진양은 여양후로부터 일말의 사건에 대해 전해 듣게 되었다.
이 사건 때문에 허문정은 극도로 신경까지 써가며 진양에게 한 보따리나 되는 선물을 보내온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진양이 돈을 받은 것 이상으로 일 처리를 잘해주었다며 칭찬까지 했다.
참으로 모순적인 상황이었다.
잔양은 일이 이렇게까지 흘러올 줄은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사실 생각해 보면 그저 아들 하나 죽은 것이 전부인 일이다.
수도사의 세계에서 육친의 관계는 평범한 사람들과는 달리 매우 가벼운 편이었다.
특히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은 집안일수록 더욱 그렇다.
수도사는 매우 긴 수명을 가지고 있다.
주목의 자리까지 올라갈 만한 사람이라면, 제아무리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구석의 주를 맡고 있는 주목이라 하더라도 최소 신문 정도의 경지를 갖추고 있었다.
거기에 신조에서 하사받은 수많은 보물까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손쉽게 도궁 강자 정도의 힘을 부릴 수 있게 된다.
아무리 못해도 삼천 년은 살아갈 수 있을 텐데, 그동안 원한다면 아들 정도는 하나 더 낳으면 그만이었다.
신좌주 주목이 아무리 아들을 끔찍하게 아낀다고 하더라도 신전후를 배신할 정도까지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사실 이번 일은 모든 사건의 도화선이나 마찬가지였다.
불신과 실망의 도화선 말이다.
신전후는 아마 사건이 드러나기 무섭게 이렇게 신좌주 주목을 위로하려 했을 것이었다.
대국을 위해 어쩔 수가 없었다.
밀정이 몰래 숨어들었을지도 모르고, 죽은 공자로 가장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천 번의 실수를 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만큼은 놓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이 모든 것은 대국을 위한 것이었다.
이토록 신중했기 때문에 비밀창고의 일은 원만하게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니 아들의 일은 잘못 대응해버렸다.
신전후가 조금만 자세를 낮추고 진심을 털어놓았다면.
논공행상할 때 신좌주 주목도 함께 언급했더라면.
신좌주 주목이 설령 마음속으로는 불편해하더라도 변절까지 하진 않았을 것이었다.
신전후는 이번 일로 비밀창고의 계획이 제대로 성공하지 못했다는 걸 확신했다.
그리고 진양은 이번 일로 정보 수집은 항상 사전에 철저히 해야 한다는 사실을 또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신전후가 정보 수집을 조금만 더 철저히 했더라면 이런 마찰은 빚어지지도 않았을 것이었고, 실망과 변절까지 이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정보망을 지금보다 더 발전시켜야겠다는 생각이 한층 더 강하게 들었다.
이번 사건만 끝나면 곧바로 정보망 발전에 착수할 예정이었다.
진양은 검유주에 머물며 수하들을 시켜 남경 곳곳에서 정보를 모아 검유주로 가져오도록 했다.
이번 일은 수하 세 사람의 능력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충심까지 바라진 않았다.
다른 마음만 먹지 않으면 됐다.
게다가 충심이란 건 생각보다 오래가지도 않는다.
그러니 시키는 일만 잘하면 된다.
확실한 보상과 대우를 해 주었는데도 배반을 한다?
그건 더 이상 직속상관의 문제가 아니므로 붙잡을 수 없을 것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또다시 석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진양은 수련을 핑계로 도시 안에 콕 박혀 움직이지 않았다.
평소에도 그저 영태 경지의 수련을 조금씩 이어가는 것이 전부였다.
석 달쯤 지나고 나서야 신전후가 두 번째 부대를 비경 안으로 파견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전의 추측대로 변소무는 앞서 지나갔던 길마다 모종의 표시를 해두었다.
덕분에 뒤이어 들어간 자들은 많은 시간을 아낄 수 있었다.
벌써 석 달이나 지났으니 아마도 비밀창고가 있는 비경에 도착하고도 남았을지도 모른다.
* * *
비밀창고가 있는 비경 내부.
입구에서 은은하게 빛이 피어오르며 한 수도사가 나타났다.
무리를 이끌고 있는 건 한 장군이었다.
그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상고 지부의 조각이라니. 이러니 아무도 못 찾았던 게로군…….”
그의 곁에는 옥관을 쓴 백발과 하얀 수염의 사십 대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가 서 있었다.
붉은 관복을 입은 것으로 보아 관원인 듯했다.
그는 손에 삼 척 정도 길이의 청동 나판(羅盤, 나침반의 일종)을 들고 있었는데, 중간에 혈옥등사(血玉螣蛇)의 조각상 외에 다른 건 보이지 않았다.
“황 장군, 너무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이미 여기까지 왔는걸요. 게다가 예부의 보물인 등사나판(螣蛇羅盤)까지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이곳이 정말로 현경사의 비밀창고가 맞다면 전조의 기운이 깃든 물건은 금방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온 대인만 믿겠습니다.”
황 장군은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는 신전후에게 중용 받는 사람이었다.
그의 조부는 한때 신전후를 따라 초조(楚朝)를 멸했던 인물이었다.
영토 확장의 공을 인정받아 신전후에게 상당한 총애와 신뢰를 받고 있었고, 그의 가문은 이에 따른 혜택까지 누리고 있었다.
때문에, 오랜 시간 동안 신전후를 따르며 충성을 다해왔다.
온 대인이라고 불린 관원은 신전후 옆에 붙어 오직 현경사 비밀창고에 관한 일만 처리하도록 예부에서 파견 보낸 인물이었다.
과거 초조의 실력은 보잘것없는 수준이었다.
남경과 비교하자면 겨우 한두 개의 주에 불과할 정도였다.
반대로, 당시 대윤 신조는 영토 면적만 해도 오늘날의 남경 십팔주보다 훨씬 더 넓었다.
대윤 신조가 아직 멸망하지 않았을 때 대영 신조의 영호는 사실 대윤 신조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대영 신조의 사람들이 이번 일에 처음부터 끝까지 신경을 쓰는 이유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