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482
482화 역으로 이용하다
중년인과 검을 든 남자는 현장에서 수백 리 정도 떨어진 어느 한 도관으로 향했다.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도관이었는데, 비바람을 맞아 곳곳이 부서진 곳이었다.
누가 봐도 잘 관리되고 있는 곳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두 사람은 미리 말을 맞춘 대로 상부에 보고를 올렸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한 도인이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지. 뭐, 우리들의 계획을 알아차린 게 아니라면 웬만해선 건드리지 않도록 하거라. 괜히 건드렸다가 잘못 엮였다간 우리만 손해다. 나머지 한 녀석은 사람을 보내 찾아 죽이도록 하거라. 반드시 아무도 없는 황야에서 끝내야만 한다.”
* * *
진양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꼬박 하루를 달렸다.
‘이쯤 왔으면 더 이상 따라오지 않겠지?’
진양은 그제야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그렇게 최양평의 탕을 마시며 소모한 기력을 회복하기 위해 한참 가부좌를 튼 채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겨우 몇 시진 지나지 않았는데 멀리서 누군가 검을 타고 날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에 진양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지며 순간적으로 살기가 올라왔다.
‘끈질긴 자식이군. 그냥 끝내버릴까?’
그러나 금세 단념해버렸다.
괜히 건드렸다가 더 큰 화를 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었다.
죽이자니 놈이 했던 말이 마음에 걸렸고, 도망치자니 당장 수련을 포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 손해를 보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잠시 고민하던 진양은 제자리에 서서 놈이 다가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잠시 뒤.
그가 가까워지자 혹여나 자신을 놓치며 지나갈까 봐 손을 흔들며 큰소리로 그를 불렀다.
“여깁니다! 여기요!”
가복덕은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산 중턱 쪽에서 누군가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황급히 지면으로 다가가 진양과 백여 장 정도 떨어진 곳에 착지했다.
“이봐요, 당신. 내가 죽는 꼴을 봐야 속이 시원한 겁니까?”
“그런 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걸 어디서부터 얘기를 해야 할지…….”
“아니, 그러니까 왜 자꾸 날 따라오는 건지나 얘기해 봐요. 내가 당신 눈앞에서 죽어야 만족할 겁니까?”
“대협, 무언가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전 절대로 대협을 해치려는 게 아니에요. 당신을 도우려고 온 겁니다. 사실 전 실력은 안 되지만 그래도 나름의 믿는 구석이 있거든요. 누구든 당신을 죽이려고 한다면 제가 달려들어 막겠습니다. 절 죽이려는 자들은 전부 죽게 되어있으니까요.”
“됐고, 두 눈 뜨고 잘 보기나 하세요.”
진양은 한 자루의 검을 꺼내 자신의 가슴으로 가져다 댔다.
“당신이 날 이렇게 만든 겁니다. 분명 얘기했죠. 다시 만나면 그땐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고…….”
“계, 계 대협! 잠시 기다려…….”
놀란 가복덕이 진양을 말리려 했으나 때는 늦고 말았다.
진양은 들고 있던 검으로 자신의 가슴을 찔렀다.
쨍그랑-
날카로운 금속음이 터져 나왔다.
고개를 숙여 살펴보니 가슴에는 아주 작은 자국만 남아있었고, 손에 들고 있던 검은 두 동강으로 부러진 상태였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가복덕 역시 멍한 얼굴로 두 동강난 검을 살폈다.
아무리 봐도 그가 손에 든 검보다는 훨씬 더 좋은 재질로 만들어진 검인 듯했다.
진양은 당황했다.
어떻게든 그를 떨쳐내려고 펼친 고육지책이었으나, 아무렇게나 꺼내든 검이 이리도 허술한 검일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진양은 부러진 검을 한쪽으로 던져버리며 자신의 가슴을 탕탕 두드렸다.
“자, 봤죠? 전 아무리 죽고 싶어도 쉽게 죽지 않는 사람이다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만 좀 따라오라고요.
그렇다고 오해하진 마세요. 당신이 착한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으니까요. 당신을 죽이려다가 역으로 죽은 사람 말고 다른 사람들의 죽음은 당신과 상관 없다는 것도 알고 있고요.”
“계 대협, 전 그저…….”
“말 돌리지 말고 제 말이 맞는지, 아닌지 먼저 대답해 보세요.”
“그렇긴 합니다만…….”
“아까 분명 사악한 도인들이 범인 마을을 공격하여 학살을 벌이고 있다고 했잖아요. 그 사람들을 돕고 싶은 거죠? 그럼 절 따라오면 안 되죠.
곰곰이 생각해 보라고요. 이렇게 날 따라다니다가 괜히 내가 재수 없는 일을 당하기라도 하면 어쩔 건데요?”
“…….”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는 알겠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위험에 빠질까봐 걱정이 된다는 거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럼 이렇게 하죠. 당신이 정의의 사도가 되는 겁니다. 가서 놈들이 당신을 죽이게 만들고 역으로 놈들을 죽게 만드는 거죠. 이러면 저도 위험에 빠질 일도 없을 테고, 원하는 대로 사악한 도인 녀석들도 쓸어버릴 수 있게 되는 거니까요.”
“아……!”
가복덕은 멍하게 입을 벌리며 무언가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제 말이 맞죠? 지금으로선 이게 최선의 방법이라고요. 마침 녀석들이 어디 출신인지 알고 있거든요. 백포 도관이라는 곳 소속이라고 하더군요. 대충 지은 이름만 봐도 정상적인 문파는 아닌 것 같은데. 어쨌든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더 늦었다간 더 많은 희생자가 나올지도 모르니까요.”
“네? 그게 무슨…….”
“이렇게까지 얘기했는데도 못 알아들은 겁니까?”
진양이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두드렸다.
“아무것도 할 필요 없습니다. 그냥 백포 도관 앞에 가서 가만히 있기만 하면 돼요. 녀석들이 당신을 죽이려고 달려든다면 분명 재수 없는 일에 휘말려서 알아서 죽게 될 겁니다. 그럼 당신은 정의의 사도가 되는 거죠. 자, 이만하면 알아들었죠? 얼른 가봐요!”
“그렇지만…….”
“그렇지만 이고 뭐고 얼른 가보라니까요? 괜히 지체하다간 녀석들 전부 도망치고 없을 겁니다. 그럼 전 이만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뒷일은 당신에게 맡기도록 하죠. 자, 그럼!”
말을 마친 진양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쌩- 하고 도망쳐버렸다.
멀어지는 진양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가복덕의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한참 동안이나 도무지 진정할 수가 없었다.
원래 사람이라는 동물은 가까이 다가갈 수 없을수록 더욱 가까이 가고 싶어지는 법.
진양의 알려준 방법은 그로선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방법이었다.
지금까지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다가가면 항상 말로는 처참했었다.
물론 자신을 향해 달려든 적들도 곱게 죽진 못했으나 어쨌든 가복덕은 썩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었다.
심지어 자신도 재수 없는 일에 휘말릴 때도 있었다.
연체 수도사가 된 것은 연체 공법이 지천에 널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흔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범인들의 마을에서조차 찾아낼 수 있을 정도였다.
어쨌든 연체 수도사의 길을 걸은 덕분에 상대에게 백의 피해를 주고 자신은 팔십의 피해를 받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
사실 진양과 함께하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지금까지 자신에게 우호적이었던 사람 중 유일하게 가까이 접근하고도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던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아무리 식견이 짧은 가복덕이라도 진양이 엄청나게 강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진양의 말을 들은 가복덕은 마침내 큰 깨달음을 얻었다.
재수 없는 자신의 운명을 탓할 게 아니라 이걸 역으로 이용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러면 모든 것이 깔끔하게 해결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왠지 찬란한 미래가 자신을 반겨주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진양을 따라가고자 했던 마음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가슴이 뜨겁게 끓어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가복덕은 그 길로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리고 처음 두 백포를 입은 도인을 만났던 곳부터 뒤지며 백포 도관을 찾기 시작했다.
* * *
같은 시각.
한 시진 넘게 달려온 진양은 그제야 뒤를 돌아보았다.
다행히 가복덕은 그의 뒤를 쫓아오지 않고 있었다.
진양은 이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살았다…….’
이쯤 되자 백포 도관 녀석들이 불쌍해지기까지 했다.
온갖 액운을 품고 있는 자가 놈들의 안방 바로 코앞에 들어앉게 된 꼴이니 말이다.
‘그나저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또 좋은 일을 하고 말았군.’
악한 녀석들을 쓸어버림과 동시에 길을 잃고 방황하던 영혼을 구해준 것이다.
하지만 지금 진양은 진양이 아니라 계무도다.
진양의 신분일 때처럼 맨날 좋은 일만 하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
이제 오행산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기에 계속해서 고행을 이어나가기로 했다.
* * *
한편, 밥 먹듯 재수 없는 일을 겪어오며 평생을 절망에 빠져 살던 가복덕은 구명줄이라도 잡은 기분이었다.
오랜 시간 쌓여온 한이 한 방에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마침내 빛으로 향하는 길을 찾았기 때문이었다.
지금과 같은 열정이라면 당장이라도 천궁 경지를 뚫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가복덕은 처음 도인들을 만났던 곳을 중심으로 주위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대략 열흘 정도를 뒤진 결과 마침내 어느 한 산 중턱에서 백포 도관을 찾을 수 있었다.
건물 현판에는 대문짝만한 글씨로 ‘백포 도관’이라고 쓰여 있었다.
게다가 백포 도관에서 백포를 두른 도인이 날아오는 모습만 봐도 이곳은 백포 도관이 확실했다.
‘좋았어!’
가복덕은 숨을 한번 크게 내쉰 뒤 백포 도관이 자리 잡고 있는 산의 입구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대로 곯아떨어져 버렸다.
살아가야 할 의미를 찾고 나니 정신 상태부터가 달랐다.
물론 잠들기 직전까지도 머릿속엔 수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여느 때와는 각오가 달랐다.
설령 죽는다고 하더라도 더 이상 여한은 없었다.
오히려 백포 도관 녀석들을 전부 쓸어버릴 수 있다는 생각이 기분이 좋아졌고, 적어도 일생을 살아오며 한 번쯤은 착한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렇게 가복덕은 녀석들이 자신을 죽이러 올 때까지 잠이나 자기로 했다.
그러나 무려 하루 가까이 자고 일어났으나 백포 도관 녀석들은 아직까지도 그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들이 죽이려는 녀석이 자기네들 안방 코앞까지 다가와 곯아떨어져 있을 줄 누가 상상이나 하겠는가?
* * *
도관 뒷마당 정실(靜室) 내부.
도포를 입은 한 중년인이 수인을 맺으며 수련에 한참 열을 올리고 있었다.
잠시 뒤.
그가 수련을 마치며 기운을 거둬들이기 시작한 순간.
갑자기 벽 한구석에 작은 틈이 벌어지며 붉은 지네 한 마리가 그가 있는 곳으로 기어 오기 시작했다.
괴이한 기운에 지네는 크게 놀란 듯했으나, 이내 쌩- 하고 달려들어 중년 도인의 목을 물었다.
중년인은 한참 기운을 거둬들이고 있었다.
때문에, 지네의 독은 기운과 함께 섞여 기해 안으로 흘러 들어가고 말았다.
도인은 놀란 표정과 함께 눈을 번쩍 떴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진원이 온몸을 타고 흐르며 몸 곳곳에서 붉은 균열 비슷한 문양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붉은 지네의 몸에 새겨진 것과 같은 문양이었다.
한참이 지났으나 도인은 눈을 부릅뜬 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대로 숨이 끊어져 버린 것이다.
그러나 밖에 있는 사람들은 안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눈치챌 수조차 없었다.
그렇게 중년인은 아무도 모르게 정실 안에서 소리소문없이 죽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