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483
483화 우연의 일치?
연단방(煉丹房) 내부.
어느 한 수도사가 옥병에 새로운 재료를 넣기 위해 뚜껑을 여는 순간.
갑자기 단로(丹爐)가 흔들리며 뜨거운 기운이 솟구쳐올랐다.
놀란 수도사는 황급히 수인을 맺으며 단로를 안정시켰다.
그러나 그 순간 단로에서 흘러나온 꽃잎 크기의 기운이 옥병 안으로 흘러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흘러 들어간 기운은 옥병에 들어있던 다른 재료와 섞이며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단로를 안정시킨 수도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원래 하려던 대로 새로운 재료를 옥병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그러나 잠시 뒤.
콰과광-!
엄청난 굉음과 함께 옥병은 폭발해버렸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에 대처할 틈이 없었다.
폭발과 함께 박살 난 단로 조각이 수도사의 머리로 날아가 박혔고, 그는 눈도 감지 못 한 채 그대로 죽어버렸다.
수도 없이 반복해온 작업이었으나 어째서 이번에는 폭발을 한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단로가 폭발하며 방어 금제까지 붕괴되어버렸다.
도관의 지붕은 폭발과 함께 날아가 버렸고 뚫린 지붕 위로 푸른 연기가 솟구쳐올랐다.
도관 전체가 쑥대밭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어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사방에서 쏟아져나와 상황을 파악하려는 듯 주위를 살폈다.
적이 기습해온 것이 아니라 단로가 폭발했다는 것을 확인한 이들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주위를 수습하기 시작했다.
이어서 누군가 관주에게 상황을 보고하기 위해 관주가 수련하고 있는 정실로 향했다.
그러나 한참을 불러도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그는 곧장 문에 걸려있는 간이 금제를 해제시키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 온몸에 괴상한 붉은 문양이 퍼진 채 눈을 부릅뜨고 죽어있는 관주를 발견했다.
제자는 너무 놀라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한참 동안 멍하게 있던 그는 뒤늦게 주위를 살폈고, 그제서야 관주가 혈옥지네에게 물려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연단방이 폭발하고 관주가 죽었다.
누군가의 소행이 아닌 단순한 우연의 일치였으나 도관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만약 이 사실이 발각된다면 어떤 꼴을 당하게 될지도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쉽게 도망칠 수도 없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관주 다음가는 인물로 보이는 자가 임시 관주를 자처하며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다들 멍하게 서서 뭐 하고 있는 게냐? 폭발한 연단방 따위 다시 지으면 그만이다. 어서 각자 자리로 돌아가. 그리고 오늘 외출이 가능한 녀석만 가서 대인께 상황을 보고하고 오거라. 이 외에 다른 자들은 그 누구도 이곳을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다!”
소란은 금세 잦아들었다.
그러나 도관 내의 사람들의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하루 사이에 두 사람이나 죽어 나갔다.
그중 한 사람은 관주였고, 나머지 한 사람은 이번 임무에서 중책을 맡고 있는 연단사였다.
도인들은 주변을 수습하며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런 단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은거울을 꺼내 살펴보기로 했다.
하지만 누가 봐도 이건 사고였다.
한 사람은 단순히 실수 때문에 죽게 된 것이고 나머지 한 사람은 순전히 재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상황이 마무리되며 도관은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두 명의 도인이 뒷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잠시 뒤.
음기가 짙게 깔린 구덩이에 도착하자 한 사람이 들고 있던 자루를 구덩이 안으로 던져버렸다.
이어서 옆에 있던 사람이 들고 있던 등불을 후- 하고 불었다.
그러자 불꽃이 구덩이로 날아가며 구덩이 전체를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다.
“안타깝긴 하지만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잖아. 그저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라고.”
등불을 든 자가 불타오르는 구덩이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뭐라고 중얼거리는 거야? 다 끝났으면 얼른 가자고.”
자루를 들고 있었던 남자가 인상을 쓰며 한마디 했다.
“자넨 무섭지도 않은 겐가? 생각해 보라고. 두 사람이 괜히 아무 이유 없이 죽었겠나? 분명 벌을 받은 거라고. 혹시 모르지. 이다음은 우리가 될지도…….”
“재수 없는 소리 하긴. 됐고 다 했으면 얼른 돌아가자고. 괜히 꾸물거리다가 또 한 소리 듣겠어.”
그러나 그의 표정도 안 좋은 건 마찬가지였다.
죽은 두 사람은 도관에서 가장 중요한 두 사람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 모두 비슷한 시기에 이런 일을 당한 것이다.
그때, 열기로 인해 바위가 조금씩 갈라지며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루에 들어있던 불에 아직 완전히 타지 않은 무언가가 데굴 굴러나오며 바위틈으로 들어갔다.
자루 안에는 이미 죽은 지 꽤 된 듯 새파랗게 변한 갓난아이의 시신이 들어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시신 주위로는 짙은 원한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이어서 잿더미에서도 원한의 기운이 흘러나와 시신 안으로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시신 주위를 맴도는 원한의 기운은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다.
원한도 여러 종류가 있다.
그러나 이 중 가장 순수한 원한이 바로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나 제대로 빛도 보지 못한 채 죽어간 어린아이의 원한이다.
비록 그 기운은 매우 옅었으나 원한의 결정체라고 불러도 될 만큼 순수 그 자체였다.
세상에 갓 태어난 아기는 그야말로 아무런 잡념이 없는 존재다.
여기에 원한이 생겨나니 이보다 더 순수한 원한은 존재할 수가 없었다.
사도 수도사 중에는 귀신을 부리는 수도사가 있다.
이들이 부리는 귀신 중 가장 유명한 역귀가 바로 구자귀모(九子鬼母)라는 귀신이 있는데, 앞서 말한 순수한 원한으로만 만들 수 있는 존재이다.
한데 지금.
운 좋게 불에 타지 않은 태아의 시신으로 원한이 흘러 들어가며 극도로 순수한 원한이 한곳에 모이게 되었다.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원한을 가진 존재가 된 것이었다.
구자귀모조차 힘의 역류를 다스리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그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만들어진 것이었다.
* * *
한편.
산 입구에서 곯아떨어져 있던 가복덕은 단로가 폭발하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잠에서 깨어났다.
‘뭐야? 아직도 아무도 날 발견하지 못한 건가?’
이렇게 된 이상 직접 도관 문 앞까지 찾아가 보기로 했다.
진양의 말대로 놈들의 안방 문 앞까지 가보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반나절이 지나도 그를 발견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가복덕은 황당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도망 다닐 땐 귀신같이들 찾아내면서 대놓고 죽으라고 오니까 아무도 나타나지 않다니…….’
간만에 자신의 액운으로 좋은 일이나 해볼까 싶었는데 이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다니!
가복덕은 털썩 주저앉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사실 안쪽에서는 하루 사이에 일어난 소란으로 인해 그 누구도 대문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중이었다.
심지어 각종 진법까지 작동하며 대문을 안팎으로 완전히 봉쇄한 상태였다.
때문에,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가복덕이 이 사실을 알 리 만무했다.
한참 곯아떨어져 있던 가복덕이 부스스 잠에서 깨어났다.
벌써 사흘이나 지났건만 아직까지도 아무도 그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설마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밖에는 답이 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왜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도관 문을 걸어 잠그고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는단 말인가?
가복덕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도관 입구가 잘 보이는 반대쪽 언덕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누군가 나오면 따라갈 생각이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마침내 누군가 문밖으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이쯤 되자 가복덕은 자신의 판단이 옳았다는 생각이 한층 더 강해졌다.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가복덕은 상황이 바뀌었으니 계획도 바꾸기로 했다.
잠시 뒤.
한눈에 봐도 백포 도관의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누군가 밖으로 걸어 나왔다.
가복덕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한편, 도관 내부는 다시 평온함을 되찾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음기로 가득 찬 뒷산 구덩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 누구도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 * *
같은 시각.
바위틈 사이에 누워있던 갓난아이의 시신은 마침내 주위에 있던 모든 음기를 빨아들였다.
그리고 그 순간 아이의 시신이 눈을 번쩍 떴다.
아이의 눈엔 검은자가 없었다.
마치 백지같이 새하얀 흰자만이 있었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아이는 천천히 틈 깊은 곳으로 기어들어 가며 이곳에 있는 사기와 음기, 그리고 살기를 남김없이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음기로 가득 찬 구덩이 근처.
며칠 전 이곳에 불을 놓았던 수도사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의 안색은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걱정과 근심이 가득 찬 듯하면서도 무언가에 잔뜩 겁에 질린 모습이었다.
조심스럽게 구덩이 가까이 다가온 그는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다는 것을 몇 번이고 확인하고 나서야 품속에서 향로를 꺼내 내려놓은 뒤 향을 하나 피웠다.
그리고 구덩이를 향해 세 번 절을 한 뒤 향로에 향을 꽂았다.
“여러분, 미안하게 됐습니다만 이 일은 정말로 저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입니다. 전 그저 시키는 대로 불을 놓은 게 전부일 뿐이라고요. 당신들의 원한이 엄청나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최근 며칠간 도관에 벌어졌던 일들은 아마도 당신들이 벌인 거겠죠.…….”
젊은 수도사는 바닥에 무릎을 꿇은 뒤 세 번 머리를 쿵쿵 찧었다.
“전 정말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놈들이 이런 못돼 처먹은 짓을 할 줄 알았으면 애초부터 이곳에 오지도 않았을 거라고요. 이렇게 빌 테니까 제발 한 번만 봐주세요. 이건 전부 윗선에서 꾸민 일입니다.
몰래 얘기를 들어보니 조정의 사람이 이런 일을 벌이고 있는 것 같더군요. 아마 인태주의 주목이 이 일과 밀접하게 연관되어있을 겁니다. 그때 왔던 그 사람, 그가 바로 인태주 주목입니다. 어쨌든 제가 아는 건 여기까지입니다만…….
제발 한 번만 봐주세요. 살려주신다면 매일 찾아와 이렇게 향도 피우고 명복도 빌어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떠들어대던 수도사는 한참 향이 피어오르고 있는 향로는 놓아둔 채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향로에 꽂힌 영향에서 짙은 연기가 뿜어져 나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연기는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의해 흡수되듯 구덩이에 소복이 쌓여있는 재 안으로 빨려들어 갔다.
젊은 수도사는 다시 도관으로 조용히 돌아왔다.
향을 피워서 그런지 그는 아무런 일도 당하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여전히 재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원한을 품은 자들이 귀신이 되어 저주를 내린 게 틀림없다고. 진작 향을 피울 걸 그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