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481
481화 진양을 쫓는 가복덕
진양은 고개를 돌려 반대편을 살폈다.
대략 십 리 정도 떨어진 곳에 마을이 있었다.
마을 곳곳에 흰색 깃발이 걸려있는 것으로 보아 초상을 치르고 있는 듯했다.
진양의 시선이 손으로 향했다.
가복덕은 분명 앞으로 가다 보면 사악한 자들이 살육을 벌이고 있다고 했었다.
그러나 이곳으로 오는 길에 수상한 기운은 조금도 느끼지 못했었다.
아무래도 어제 보았던 죽어 있던 기괴한 자가 단독으로 저지른 짓인 듯했다.
마을에서 단체로 초상을 치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정말로 무언가 일이 벌어지긴 한 듯했다.
‘이러면 또 그냥 지나갈 순 없지.’
괜히 원혼을 품은 자들이 다시 일어나 난리를 칠 수도 있으니, 들린 김에 이들을 모두 성불시켜주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이건 핑계였다.
사실은 가복덕에게 정말로 액운이 옮은 것인지 확인해보고 싶었을 뿐이다.
진양은 곧장 마을로 향했다.
그리고 한창 초상을 치르고 있는 어느 한 집 근처에 숨어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완전히 해가 지고 난 뒤.
어두운 밤이 되자 영당 앞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상주를 제외하고 남아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진양은 조심스럽게 영당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관에 누워있는 시신에 손을 댔다.
시신에 손을 대는 순간 하얀 광구가 잡혔다.
진양은 광구를 챙겨 조용히 다시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온 진양은 광구를 머릿속으로 집어넣었다.
죽은 노인의 마지막 집념이 든 광구였다.
살아있을 때 몰래 숨겨두었던 돈이 어디 있는지 누군가에게 말을 하려 했으나, 말을 하기도 전에 숨이 넘어간 듯했다.
습득 능력에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한 진양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이왕 여기까지 온 거 좋은 일 하나 더 하자는 마음으로 노인이 생전 숨겨두었던 돈을 찾아 집 문 앞에 놓아두고 나왔다.
이 외에도 마을에서 초상을 치르는 집은 두 집이 더 있었다.
진양은 여기까지 온 김에 살펴보고 가기로 했다.
첫 번째 집은 병으로 죽은 남자의 초상을 치르고 있었다.
그에게선 하얀색 기능서가 나왔는데, 어업용 그물을 짜는 법이 들어있었다.
두 번째 집은 출산을 하다 죽은 여인의 초상을 치르고 있었다.
집안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강력한 원한이 느껴졌다.
음풍이 사방에서 불어오고 있었고, 여인의 영혼은 떠나지 못하고 이곳을 맴돌고 있었다.
그녀는 금방이라도 원귀로 변해버릴 듯한 모습이었고, 시신에서도 불길한 기운이 뿜어져나오는 것으로 보아 금방이라도 벌떡 일어나 강시가 될 모양새였다.
진양은 그녀를 성불시켜주었다.
만약 그대로 놔두었다면 그녀는 역귀가 되어버렸을 것이다.
그랬다간 마지막 목숨을 다해 낳은 아이에게 해를 끼쳤을 것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 그녀도 원치 않을 것이었다.
그런데, 여인을 성불시키고 얻은 하얀색 광구에서 뜻밖의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광구 안에는 여인의 생전의 기억이 들어있었다.
화면이 다소 흐릿하긴 했으나 여인이 끙끙 앓는 소리와 함께 산파가 어쩔 줄 몰라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난산(難産)인 듯했다.
화면이 흐릿하여 잘 보이진 않았으나, 대화를 나누고 있는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백포를 입은 사람이라는 건 알아볼 수 있었다.
다행히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는 뚜렷하게 들려왔다.
“이미 늦었어. 아이의 머리가 위로 향해있군. 이미 죽은 거나 다름없어.”
“어쩔 수 없지. 이만 가자고. 다음 마을에선 조금 더 신중히 하도록 해.”
“그래야지. 그 멍청한 녀석이 실수하는 바람에 마을을 세 개나 쓸어버렸잖아. 그러다 웬 미친놈이 죽어라 쫓아오더니 이젠 아예 코빼기도 보이지 않네. 어떻게 됐는지도 모르겠군…….”
“신중해야 한다니깐? 함부로 범인(凡人)들을 죽이는 건 금기시된 일이잖아. 설령 부족할지라도 절대로 실수해선 안 된다고. 괜히 일이 잘못되기라도 했다간 대인께서 우릴 용서하지 않으실 거야.”
“알았으니까 이만 가자고.”
기억은 여기까지였다.
진양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뭐야? 진짜였잖아?’
아무래도 은둔지법(隱遁之法)을 썼다가 범인에게 발각된 듯했다.
그런데, 범인을 해친다니.
수도사가 아무 이유 없이 범인을 해치는 경우는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이는 신조뿐만 아니라 남만이나 사해 모두 마찬가지다.
범인을 해치는 건 금기 중의 금기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정신 나간 미친놈이라도 무고한 범인을 학살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한데, 엄격한 법으로 다스려지는 대영 신조의 땅에서 이런 일을 벌이는 자가 있을 줄이야.
진양은 조용히 마을을 빠져나와 주위를 살펴보았다.
수도사들이 다녀갔던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때문에 대화를 나눴던 두 사람이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진양은 정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이런 일을 마주치면 도무지 그냥 지나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혹여나 수상한 자들이 있을까 싶어 주위를 살펴보았다.
누구든 잡아 죽여 죽은 자들의 원혼을 달래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일말의 흔적조차 남기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들은 조직적으로 이런 일을 벌이는 게 분명했다.
상당히 철저한 것으로 보아 결코 한 사람의 작품은 아닐 것이었다.
그래서 진양은 다음 마을을 지날 때 이러한 사실을 소문으로 퍼트렸다.
이건 금기 중의 금기다.
때문에, 진짜든 가짜든 누군가 나서서 조사해봐야 할 일이었다.
제대로 조사하여 뿌리 뽑지 않는다면 이러한 일은 또다시 반복될 것이다.
진양은 계속해서 오행산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마을을 빠져나와 백 리도 채 못 걸었을 즈음.
하늘에서 두 줄기의 빛이 날아와 진양의 앞을 가로막았다.
백포를 입은 두 도인이었다.
두 사람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진양을 노려보았다.
“수도사시오?”
“계무도라고 합니다. 수도사는 맞긴 합니다만, 왜 갑자기 남의 앞길을 막는 겁니까?”
“누군가 이 근처에서 무고한 생명을 함부로 해치고 다닌다는 얘기가 있소. 이미 방원 천 리 내의 범위를 우리 백포 도관에서 봉쇄한 상태이니, 특별한 일이 없다면 최대한 빨리 이곳을 떠나는 것이 좋을 것이오.
그자는 수도사들을 정혈만을 노리고 있다고 하오. 보아하니 혈기 왕성한 연체 수도사인 것 같은데, 표적이 되기 십상이니 목숨이 아깝다면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는 게 좋을 게요.”
말을 마친 두 사람은 진양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진양이 어디로 가려는지 확인하려는 듯 말이다.
세 걸음 정도 걸어가던 진양은 한숨을 푹 쉬며 멈춰 섰다.
온갖 못된 녀석들을 보아왔지만 죄 없는 범인을, 그것도 임산부를 건드리는 놈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대로 그냥 가자니 도무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게다가 지금은 본체를 드러낸 상태도 아니고, 상대가 누구든 충분히 박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보고도 못 본 척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찝찝하단 말이지.”
“그게 무슨 말이오?”
두 도인이 경계하듯 한걸음 물러섰다.
쌩-!
진양은 순식간에 두 사람 앞으로 다가와 두 사람의 머리를 손으로 붙잡았다.
“쓰레기 같은 놈들. 도궁 강자라면 몰라도 한낱 영태 조무래기 따위가 내 앞을 가로막아?”
이어서 상대가 대꾸할 틈도 없이 진양은 씨익 웃으며 두 사람의 머리를 맞부딪쳤다.
퍼석-!
불쾌한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머리가 터진 채 지면 위로 털썩- 쓰러졌다.
“이제야 좀 후련하네.”
이어서 두 사람에게 습득 능력을 사용하려는 순간.
멀리서 한 줄기의 빛이 다급히 이쪽으로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가복덕이었다.
“저, 저건!”
진양의 얼굴은 순식간에 새하얗게 질렸다.
잠시 시신을 앞에 두고 망설였으나 진양은 도망치기로 결심했다.
이런 녀석들에게 좋은 게 나와봤자 기껏해야 영석밖에 더 있겠는가?
설령 공법이 나온다고 해도 보잘것없는 수준일 것이다.
생각을 마친 진양은 가복덕이 다가오기도 전에 쌩- 하고 도망쳐버렸다.
잠시 후.
가복덕은 타고 온 검에서 내리며 쓰러진 두 시신을 살폈다.
그리곤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계무도라고 했었나? 생각보다 강한 사람이구나. 이리도 쉽게 이들을 처리해버리다니. 하지만 만약 다른 사람들과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잠시 망설이던 가복덕은 쓰러진 두 시신을 재빨리 불태우곤 진양이 도망친 방향을 따라 다시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루 뒤.
백포를 입은 수도사 두 사람이 가복덕이 떠난 자리로 왔다.
그들은 땅에 쌓여있는 재를 발견하곤 서로를 바라보았다.
“며칠 전에도 한 사람이 어디선가 죽었는데 이번엔 무려 두 사람이나 죽었다. 이건 엄중한 사안이다. 대인께 받은 보물을 쓰자고. 철저히 조사해야 해.”
두 사람 중 다소 나이가 많아 보이는 자가 말했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중년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은거울을 꺼내 공법을 펼쳤다.
잠시 뒤.
하루 전에 있었던 일들이 은거울 속에 나타났다.
중년인은 거울 속에 나타난 자의 입 모양을 유심히 살폈다.
그리곤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발각된 건 아닌 듯하군. 그냥 성질머리 나쁜 수도사 녀석이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힌 게 분해서 저지른 일인 것 같아.”
중년인은 은거울을 다시 집어넣으려고 했다.
그러나 은거울은 멈추지 않고 빠른 속도로 이전보다 훨씬 더 과거에 있던 일을 비추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중년인의 흑발은 하얗게 물들어가기 시작했고 얼굴은 자글자글해지기 시작했다.
놀란 중년인이 황급히 거울을 멈추려 했으나 거울은 멈출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중년인은 놀란 얼굴로 제자리에 굳어버리고 말았다.
옆에 있던 남자는 무언가 일이 잘못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황급히 검을 뽑아 중년인의 팔을 잘랐다.
잘린 팔과 함께 은거울이 땅에 툭- 하고 떨어졌다.
중년인은 비명을 내지르며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의 머리는 절반 이상 백발로 뒤덮여있었다.
검을 든 남자는 조심스럽게 은거울을 주워 들었다.
‘이건 분명 대인께서 직접 하사하신 물건이다. 정천사의 보물이라고 하셨었던 것 같은데. 갑자기 왜 이런 일이……?’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설마 제대로 된 걸 구하지 못해서 반쪽짜리를 구해다 준 거란 말인가……?‘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두 사람은 크게 당황했다.
“어서 돌아가자고.”
폭삭 늙어버린 남자가 힘겹게 가쁜 숨을 내쉬며 말했다.
“무려 둘이나 죽었는데 돌아가서 뭐라고 얘기할 겐가?”
“뭐라고 얘기하긴. 그때 그 깡마른 수도사 녀석이 한 짓이잖나. 신경 쓸 거 없어. 그리고 그 연체 수도사 녀석도 웬만하면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이런 녀석들은 보통 집착이 엄청난 녀석들이라고. 우리의 계획에 대해 알고 있는 것도 아니니 그냥 무시하자고.”
한 번에 둘이나 비어버렸으니 이들 역시 좋은 소리는 못 들을 것이다.
물론 중간에 나타난 연체 수도사에 대해서는 보고를 해야겠지만, 동료가 죽은 일은 깡마른 수도사에게 모두 뒤집어씌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