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512
512화 대체 언제인지……
“계 공자님, 조금 더 크게 놀아보시는 건 어떠시겠습니까? 만약 공자님께서 이기신다면 최근 몇 달간 따간 영석을 모두 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공자님께서 지신다면 제 소원을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청설.
몇 달 전에 여심과 함께 장향각으로 들어온 기생이다.
사실 본명은 따로 있었으나 이곳으로 와서 청설이라는 이름으로 예명을 만들었다.
‘청’ 항렬자를 써서 청설이라는 이름을 가진 것도 있으나, 계무도 덕분에 성공하게 된 청우의 기운을 받고자 청설이라는 이름을 선택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현재 그녀는 장향각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가진 마작 선수로, 심지어 일부 손님 중에는 그녀에게 노래를 주문하고선 노래 대신 마작을 함께 치자고 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다음 가는 실력을 지닌 마작 선수가 바로 그녀와 함께 들어온 여심이었다.
최근 몇 달 동안 마작을 치면서 번 영석의 수는 이곳에서 일하면서 번 것의 몇 배나 될 정도로 훌륭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돈이 전혀 아쉬울 것 없는 천천소와 썩어날 정도로 돈이 넘쳐나는 계무도 외에는 그녀들과 함께 마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공자님, 그렇게 하시죠. 사나이답게 크게 노셔야죠.”
옆에 있던 여심이 한마디 거들며 나섰다.
“어허, 또 쓸데없는 소리를! 도박은 과하면 중독되는 법. 이만 포기하세요.”
진양은 단칼에 거절해버렸다.
애초에 시간을 죽이기 위해 마작을 시작한 것뿐이다.
그러니 괜히 무리하게 무언가를 걸면서까지 마작을 할 필요는 없었다.
“이만 식사 시간이네요. 다들 해산합시다. 다음에 또 하자고요.”
진양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편, 사건은 여전히 진전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였다.
‘빌어먹을 신조 놈들. 하여튼 철밥통들이 문제라니깐.’
한 가지 일로 벌써 몇 달이나 질질 끌고도 아직도 아무런 소식이 없다니.
그동안 헌국공과 엽건중의 사이는 더욱 나빠졌다.
조금이라도 상대가 이득을 본다 싶으면 달려들어 물고 늘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여전히 건재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아니었다.
일단 형부에선 시랑 한 사람, 낭중 세 사람이 좌천되었다.
이 외에도 공부에서 두 사람, 병부에서 두 사람, 호부에서도 한 사람이 좌천되었다.
이들은 전부 정오품 이상의 관직을 가지고 있는 자들로, 매일 조정의 조회에 참석할 자격을 가지고 있는 만큼 상당한 신분을 가진 자들이었다.
물론, 이 외에도 목이 날아간 하급 관리들까지 더한다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모든 일은 엽건중이 혼자서 벌일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분명 친왕 중 한 사람이 그의 배후를 지켜주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분명했다.
헌국공 역시 미친 듯이 날뛰고 있긴 했으나, 남은 두 친왕들은 일절 관여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이 일과 관련 없는 자들도 그저 불구경하듯 구경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누가 엽건중의 뒤를 봐주고 있는지는 너무나도 뻔했다.
숨길래야 숨길 수가 없었다.
물론 다들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진 않고 있었지만, 사실 엽건중의 뒤를 봐주고 있는 자의 정체에 대해선 이미 두 달 전에 밝혀진 바가 있다.
그의 뒤를 봐주고 있는 건 대제의 둘째 아들, 바로 조왕이었다.
어쨌든 이러한 사실이 밝혀지며 엽건중과 헌국공의 기 싸움은 한층 더 치열해졌다.
그리고 상황이 기 싸움 쪽으로 집중되기 시작하며 사건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기 시작했고, 이러한 이유로 사건엔 여전히 아무런 진전이 없었던 것이었다.
때문에, 현재 그 누구도 사건의 주인공인 계무도에게는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가끔 하급 관리들이 찾아와 늘 하던 것처럼 형식적인 질문 몇 가지를 하고 계무도가 이도에 잘 머물고 있는지 확인을 하고 가는 것이 전부였다.
진양은 작정하고 판을 뒤집을 생각으로 진천고를 울렸었다.
이에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이끌리게 되었다.
그리고 사건은 마침내 한층 더 시끌벅적한 방향으로 발전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애초에 진양이 쏘아 올린 사건과는 다소 상관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규정대로라면 계무도는 사건이 종결되기 전까지는 반드시 이도에 머물러야 했다.
언제 심의가 열릴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기약 없는 기다림에 진양은 지루해 미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문밖을 나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때문에, 진양은 길 상가에 얌전히 머물고 있었던 것이었다.
심지어 이곳에 발이 묶여 있는 바람에 유령 경매도 벌써 몇 년째 연기가 되고 있었다.
물론 현재 진양의 본체는 최대한 외부 노출을 피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일부러 연기를 시킨 것도 있다.
괜히 경매를 열었다가 불필요한 관심을 받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진양은 방 안에 누워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고발당한 자가 일부러 사건을 질질 끄는 상황은 매우 자주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수는 없는 법!
‘슬슬 뭐라도 해볼 때가 됐어.’
진양은 폐관 수련을 한다며 문을 굳게 걸어 잠갔고, 수련을 하면서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깊은 생각에 빠졌다.
여심은 마작판에서 딴 돈을 챙겨 콧노래를 부르며 방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방 안으로 들어온 그녀는 곧바로 언제 그랬냐는 듯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현재 그녀는 장향각으로 팔려 온 신분이었다.
비록 기예만 팔고 몸은 팔지 않는 신분이 되긴 했으나, 동시에 이중간첩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대우는 일전에 헌국공부에서 받던 대우와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였다.
그녀는 몹시 불안했다.
신분도 불안정하고, 배경도 없었으니 말이다.
헌국공부에서 참모로서 온갖 권한을 누리던 그녀는 하루아침에 빈털터리가 되어버렸다.
조금 더 열린 생각을 가지고 현재의 상황에 임한다면 청우와 같이 어느 정도 배경 있는 자의 은혜를 입어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지금처럼 계속 이곳에 머물러야 할 것이었다.
물론 지금이야 그녀의 차가운 모습과 쌀쌀맞은 성격을 모두가 좋아해준다고는 하지만 그게 끝까지 지속된다는 보장은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막무가내로 높은 집안의 자제가 찾아와 억지를 부린다면 그녀도 결국은 몸을 파는 기생이 되어버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처음 그녀가 장향각에 왔을 때 많은 사람이 의외라는 듯 그녀를 쳐다보았었다.
그러나 그녀는 겁내지 않고 용감하게 돌파하기로 했다.
적어도 여기까지 온 이상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보이겠다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특히 마작을 배우고 난 뒤엔 더더욱 그렇다.
이곳에서 벌어들인 영석은 색을 팔아 번 돈도 아니었고, 간첩으로서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해내고 받은 보상도 아니었다.
전부 마작판에서 직접 실력으로 따낸 돈들이었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신선한 기분이었다.
오랜 시간 지고 있던 무거운 짐을 마침내 내려놓은 기분이랄까?
심지어 차라리 그때 완전히 버림을 받고 진짜로 길 상가로 팔려 왔어도 나쁘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랬다면 차라리 자신의 힘으로 돈을 벌어 몸값을 지불하고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시 현실로 돌아올 시간이다.
그녀에겐 여전히 임무라는 무거운 족쇄가 발을 잡고 있었다.
사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천천소나 계무도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용기가 나질 않았다.
과거에 대해선 묻지 않는다.
이것이 길 상가의 철칙이다.
때문에, 이곳으로 팔려 온 여인들의 과거에 대해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성을 버리고 여심이라는 이름만 취하여 예명을 지었지만, 그 누구도 그녀의 과거에 대해 캐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언젠가 이곳을 떠나게 된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었다.
이곳을 떠나게 되는 그 순간부터 길 상가와는 모든 연이 끊어지게 되는 것이었다.
매일 수많은 사람이 길 상가를 찾고, 또 사라지기도 한다.
이들의 생사 여부에 대해서는 알 방법이 없다.
그러나 이곳으로 팔려 오는 여인들이 어떤 일을 겪고 이곳으로 팔려 오는지에 대해서는 모두가 잘 알고 있었다.
이들 중 평민은 없었다.
대부분 이름 있는 문파나 집안에서 큰 죄를 지어 팔려 오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이곳으로 온 지도 어느새 몇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그녀의 과거를 궁금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또한 과거에 알고 지내던 사람과 이곳에서 만나는 일도 벌어지지 않았었다.
그러나 멍하게 앉아있는 그녀의 눈동자에는 절망이 가득했다.
즐겁게 마작판에서 놀며 돈을 딸 때와 현실이 대조되며 절망은 한층 더 깊어져 갔던 것이다.
헌국공과 엽건중에게 이러한 대우를 받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녀는 현실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애초에 그녀가 충신이건 말건 그런 것 따위엔 관심이 없었던 것이 분명했다.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거울을 바라보며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하게 웃어 보였다.
이어서 자신의 얼굴에 드리워진 절망을 완전하게 걷어내고 난 뒤에서야 입을 열었다.
“누구세요?”
“여심 언니, 저 청설이에요. 혹시 쉬고 계시는데 제가 찾아온 건 아니죠?”
“아, 청설이구나. 들어오렴.”
여심이 문을 열자 청설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언니, 오늘도 꽤 많이 따신 것 같던데요. 물론 덕분에 계 공자님과 천 공자님을 제외한 다른 남자들은 감히 언니에게 말도 못 걸게 되긴 했지만 말이에요.”
“얘도 참. 두 분께선 그저 우리가 힘들게 번 돈을 가져가기 미안하셔서 봐주는 것뿐인걸.”
여심이 호호 웃으며 말했다.
사실 그녀의 말대로 계무도와 천천소는 생각보다 매우 진지하게 마작판에 임하지는 않았다.
돈이 썩어나는 두 사람인데, 기껏해야 몇 푼이나 된다고 마작판에 목숨을 걸고 덤벼들겠는가?
두 사람에게 마작은 그저 단순한 오락에 불과했다.
물론 그것과는 별개로 계무도의 마작 실력이 상당히 처참한 수준인 것도 있긴 했지만…….
“계 공자님은 정말 좋으신 분 같아요. 길 상가에 오신지 거의 일 년이 다 되어가는데 지금까지 여색을 탐하시는 걸 본 적도 없고, 오히려 저희들에게 재미있는 놀이까지 가르쳐주셨잖아요. 덕분에 저희도 더 이상 힘들게 일할 필요 없이 손님들과 마작만 함께 해주면 되고요. 게다가 손님들도 돈을 잃고도 즐거워하시니 이거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 아니겠어요?”
“그렇긴 하지.”
청설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피어올랐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기쁨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여심의 마음은 한층 더 무거워지는 느낌이었다.
‘마지막으로 내 감정에 솔직해져 본 게 도대체 언제인지…….’
물론 청설이 이런 여심의 근심을 알아차릴 리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