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530
530화 쉽게 죽진 않겠지
청란과 진양의 발아래로 두 개의 강이 만나는 곳이 보였다.
강은 하나로 합쳐지며 거대한 강을 이루고 있었고, 이로 인해 일어난 거친 물살이 무시무시한 굉음을 뿜어내고 있었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나 두 사람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분명 두 강이 맞닿는 곳에는 성지가 있었는데, 이제 보니 그곳은 황무지로 변해 있었던 것이었다.
“이래서 책을 많이 읽어둬서 나쁠 것 없다는 겁니다. 아시겠죠?”
“확실히 그런 것 같네요.”
청란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양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허상의 흔적은 조금도 찾아내지 못했다.
그러나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중부의 경계지점까지 오고 나서야 지형이 어딘가 바뀌었다는 점을 발견했다.
울창한 숲이 깔린 이곳엔 생기가 흘러 넘쳤다.
그러나 지면에서는 그 어떠한 생명체의 흔적도,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고요함, 적막함, 정적.
이 외에는 그 무엇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삼 일 정도를 더 걸었지만 별다른 방책이 없었다.
진양과 청란은 일단은 포기하기로 하고 원래의 계획대로 먼저 자란부터 찾기로 결정했다.
참으로 기괴한 곳이었다.
신조 토박이나 다름 없는 청란조차 전혀 파악하지 못하는 곳인 만큼 진양도 아무것도 파악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비경 안으로 발을 들인 건 아니었다.
비경 안으로 들어섰다고 하기엔 이곳은 너무 넓었다.
수많은 비경을 경험해보았으나 이토록 큰 비경은 단 한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중부 지역을 벗어나 이 외의 지역을 살폈으나 별다른 이상한 점은 없어보였다.
생명체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제외하면 틀림 없는 대황 땅이 확실했다.
어쨌든 두 사람은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중부 지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원래 가려던 길을 따라 나아갔다.
그렇게 사흘 쯤 지났을 무렵.
그제서야 지면에서 생명체의 흔적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무에는 누군가 발톱으로 긁어놓은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있었고, 일부 석산에서는 누군가 남겨둔 이빨 자국도 발견되었다.
몇 번이나 확인해 보아도 그건 어느 생명체가 남겨둔 이빨 자국이 확실했다.
그런데 왜 돌에 이빨 자국을 남긴 것인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이빨 자국이 남아있는 돌은 평범한 석산의 일부일 뿐이었다.
괴산과 근접한 산맥인 만큼 상당한 경도를 가진 석산이라는 점만 빼면 특별할 것도 없었다.
어쨌든 앞으로 나아갈수록 점점 더 많은 생명체들의 흔적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자란이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한편, 두 사람은 어느새 괴산 산맥의 지맥(支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구름 높이 솟은 산봉우리의 모습이 보였다.
이곳의 바위는 강철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단단했다.
두 사람은 계속해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며 흔적을 발견할 때마다 공법을 발동하여 주위를 샅샅이 살폈다.
때문에 피로가 쌓여가며 점점 지쳐갈 수밖에 없었다.
며칠 뒤.
두 사람은 산골짜기 중간에 자리를 잡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어느덧 밤이 찾아오며 하늘에 또다시 달이 나타났다.
여전히 몇 번을 봐도 아무런 변화조차 없는 보름달이었다.
달이 어찌나 밝은지 주위엔 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밝은 달 덕분에 산에서 피어오르는 안개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천천히 증기처럼 피어오른 안개는 산봉우리 사이사이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진양은 조용히 일어나 파망지동을 발동시켰다.
진양의 눈에서 흘러나온 빛이 안개 속으로 흘러드는 순간, 진양은 앞을 가리는 안개를 뚫고 먼 곳까지 볼 수 있게 되었다.
진양은 경계심 가득한 얼굴로 주위를 살폈다.
그러나 주위엔 아무것도 없었다.
‘역시…….’
진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어느 순간부터 조용히 사방을 뒤덮기 시작한 안개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짙어지고 있었고,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각자 수련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한참 뒤, 진양이 다시 눈을 떴을 때.
청란은 이미 먼저 눈을 뜬 상태였다.
그녀의 얼굴엔 붉은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그리고 다소 넋이 나간 얼굴로 진양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띤 채 한 걸음씩 진양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그녀가 갑자기 옷을 벗기 시작한 것이다.
두르고 있던 겉옷이 천천히 흘러내리며 그녀의 몸매의 윤곽이 드러났다.
“진양, 어서 제 품에 안겨요…….”
진양은 곧바로 파망지동을 발동하여 그녀를 살폈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그녀는 청란이 확실했다.
“그렇게 보고 싶다면 기꺼이 벗겠어요…….”
이어서 그녀는 안에 입고 있던 옷도 천천히 벗기 시작했다.
그러나 진양은 가소롭다는 듯 피식 웃어버렸다.
“웃기지도 않는군. 겨우 이 정도 속아넘어갈 줄 알았냐?”
샤샥-
진양은 잔상을 남긴 채 사라져버렸다.
이어서 다시 나타난 진양은 청란의 얼굴을 향해 강력한 힘이 담긴 주먹을 내뻗고 있었다.
우드득-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진양의 주먹은 청란의 얼굴뼈를 박살내버렸다.
피가 사방으로 튀어오르는 순간, 진양의 주먹 끝에서 다시 한번 무시무시한 힘이 폭발을 일으켰다.
콰광-!
폭발과 함께 청란의 머리는 흔적도 없이 날아가버렸다.
뿐만 아니라 폭발의 여파로 인해 방원 십여 리 내에 있던 모든 것들이 가루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진양은 천천히 주먹을 거두어들이며 멍하게 서있는 머리 없는 시신을 노려보았다.
“쯔쯧, 겨우 이 정도도 버티지 못하는 걸 보아하니 가짜가 분명하군.”
이어서 머리 없는 시신은 점점 말라가기 시작했다.
팔과 다리는 마른 가지처럼 완전히 말라버렸으나, 흉부와 복부는 툭 튀어나온 상당히 기괴한 모습으로 변했다.
파망지동을 발동시켰으나 이상한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다.
진양의 수련이 부족한 탓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건지는 모르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제대로 볼 수 없다면 가장 무식하면서도 확실한 방법으로 확인을 하면 되는 것이니 말이다.
만약 눈앞에 있는 것들이 가짜라면 다행인 거고.
혹여나 진짜라면…….
‘진짜 청란이었다면 닿기도 전에 먼저 내 주먹이 박살 났겠지…….’
진양은 천천히 다가가 그녀의 시신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어서 습득 능력을 사용하려는 순간.
시신은 흔적도 없이 연기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바로 그때.
멀리서 해가 뜨기 시작했다.
밝은 햇빛이 사방을 비추기 시작하자 자욱하던 안개도 조금씩 걷히기 시작했다.
안개가 완전히 사라진 후, 진양은 주위를 살폈다.
청란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남아있는 건 진양의 일격으로 인해 만들어진 흔적이 전부였다.
아무래도 청란도 정체불명의 상대에게 납치된 듯했다.
하지만 지면에는 검붉은 핏자국이 남아있었다.
방금 진양이 보았던 것이 환각이 아니라는 증거였다.
진양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여간, 이래서 사람은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니깐? 그걸 못 버티고 끌려가다니. 누구든 수상하면 일단 주먹부터 날리고 봐야 하는 거 아냐?”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그녀가 어디로 끌려갔는지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원래의 계획대로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뭐, 그래도 실력자잖아. 쉽게 죽진 않겠지…….’
그렇게 다시 걷기 시작한 지 어느새 하루가 지났다.
딱히 특별한 걸 발견하진 못했다.
그리고 다시 밤이 되자 안개가 또다시 사방을 뒤덮기 시작했다.
겉보기에는 특별할 거 없는 평범한 안개의 모습이었으나 어제의 일을 생각해보니 조심해야 할 듯했다.
진양은 진원을 주변으로 방출하여 안개를 밀어내려했다.
그러나 안개는 너무나도 쉽게 진원의 벽을 뚫고 들어와버렸다.
이어서 금제를 펼치고 진법도 설치해보았으나 모두 허사였다.
그나마 유일하게 오동염이 조금이나마 효과가 있었다.
뜨거운 기운과 함께 수분을 날려버리니 안개가 조금이나마 걷혔던 것이었다.
하지만 매우 효과적이라고 할 순 없었다.
열기는 방원 십 장 내의 범위에 있던 나무를 전부 숯덩이로 만들어버리긴 했으나, 어느 정도 멀리 있는 안개까지는 날려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잠시 고민하던 진양은 이번에는 마수의 힘을 이용하여 자신의 온몸을 뒤덮었다.
그리고 마침내 안개를 완전히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안개를 막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게 아닌 것으로 보아 단순히 진양의 힘이 약했기 때문인 듯했다.
확실히 진양이 가진 힘에 비하면 마수의 힘은 훨씬 강했으니 말이다.
진양은 일부러 마수의 힘을 조금씩 줄여가기 시작했다.
공급되는 힘이 줄어들며 진양을 감싼 힘의 막은 점점 얇아지기 시작했다.
힘의 막은 어느새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희미해졌다.
그러나 안개를 막기에는 여전히 부족함이 없었다.
아무래도 힘의 양보단 질에 더 큰 영향을 받는 듯했다.
“진양, 여긴 또 어디냐?”
검둥이가 밖으로 고개를 쏙 내밀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힘이 계속해서 빠져나가니 궁금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나도 몰라. 그냥 누굴 도와서 사람을 찾으러 왔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빠져버렸어.”
순간 진양의 머리를 스치며 지나가는 것이 한 가지 있었다.
‘이런! 그리고 보니 걸어 다니는 고대 백과사전이 여기 있었네.’
검둥이는 현재 시대의 대해서는 거의 문외한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을 정도였으나, 고대 시대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많은 걸 알고 있다.
“혹시 여기 깔린 이 안개, 뭔지 알아보겠어?”
“아니. 어딘가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긴 하지만 자세히는 모르겠어.”
진양은 어제 있었던 일을 검둥이에게 모두 얘기해주었다.
한참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던 검둥이가 돌연 듯 입을 열었다.
“진양, 예전에 날 베었다던 그 녀석에 대해 얘기해줬던 거 기억나?”
“왜? 혹시 그 사람이랑 관련이 있는 거야?”
진양이 기대 가득한 표정으로 눈빛을 반짝였다.
검둥이가 자신을 베었던 사람을 성불시키기만 한다면 엄청난 기연을 얻게 될 거라고 했던 말은 진양의 가슴을 뛰게 했다.
그러나 죽어서도 끝까지 검을 놓지 않고 멀쩡히 살아있는 검둥이를 토막 내어 해안에 가둬버렸다는 얘기를 듣고는 이만 단념해버렸었다.
그 정도 힘을 가진 사람이라면 진양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상대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런 건 아니니까 부담스럽게 설레발부터 치진 말고. 나중에 그 녀석을 성불시키게 되면 아마 지금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거야. 그러니까 일단 미리 연습해두도록 해. 이번에 잘 버텨내면 다음에도 수월하게 버틸 수 있을 테니까.”
진양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러니까 네 숙적과 비슷한 어떤 인물과 관련된 곳일 수도 있다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