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534
534화 진짜 망한건가?
진양은 다시 기회를 보다가 도망치려 했으나, 남자들은 또다시 진양을 노려보며 도망치지 못하도록 붙잡았다.
두 번이나 도망에 실패한 진양은 단념하기로 했다.
남자들은 도무지 싸움을 끝낼 생각이 없는 듯했다.
게다가 진양에겐 일말의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진양은 조용히 한 쪽에 선 채 이들이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한참 뒤.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자 남자들은 그제서야 희미한 빛이 되어 각자의 무덤으로 돌아갔다.
모두 사라지고 나자 주위는 고요해졌다.
‘이제야 끝이 난 모양이군.’
진양을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무덤이 있는 곳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장벽이 방원 십 리가 채 되지 않는 이 땅을 가로막고 있는 듯했다.
진양은 아홉 개의 무덤 중 한 무덤 앞으로 다가갔다.
비석에 쓰여 있는 글씨는 이미 세월의 흔적으로 인해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내가 웬만해서 모르는 사람 무덤은 함부로 안 파겠는데. 이번엔 어쩔 수가 없네요. 미안하지만 이건 당신네들이 전부 자초한 겁니다!”
진양은 무덤을 파헤치려 했으나 무덤에 손을 댈 수가 없었다.
마치 허상을 향해 손을 뻗은 것처럼 말이다.
진양은 중간에 있는 무덤과 남은 여덟 개의 무덤도 전부 만져보았으나 마찬가지로 손이 닿지 않았다.
아무래도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무덤을 만질 수 없는 듯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밤이 된다고 해서 만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밤이 되면 분명 그 남자들이 또다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젠장……. 어쩔 수 없지.’
진양은 일단 밤이 될 때까지 다시 기다리기로 했다.
한참 뒤.
어느덧 해가 지며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땅속에서 서늘한 바람이 솟구쳐오르며 귀곡성이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그리고 지난 밤 만났던 아홉 명의 남자들이 기다렸다는 듯 일제히 무덤 밖으로 튀어나왔다.
이어서 지난밤과 똑같은 상황이 또다시 벌어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남자들은 이대로 진양을 놓아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렇다고 힘으로 돌파할 수도 없었다.
진양이 목숨을 걸고 덤벼도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아홉 명 모두 꽤 강한 실력자였기 때문이다.
‘이판사판이다!’
진양이 소리쳤다.
“잠깐!”
순간 남자들은 싸움을 멈추고 진양을 바라보았다.
“그만 싸우고 먼저 제 얘기 좀 들어주시면 안 됩니까?”
남자들은 그렇게 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그전에 악수 한 번씩만 합시다. 아, 참고로 악수란 서로 손을 맞잡으며 인사를 하는 겁니다.”
“갑자기 그건 왜 해야 하는 것이오?”
“제가 살던 곳에서는 이렇게 인사하는 관습이 있어서요. 왜요? 안 되나요?”
남자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합시다. 그 악수라는 거.”
남자는 아홉 명 모두 번갈아 가며 악수를 했다.
그러나 결과는 매우 실망스러웠다.
능력이 발동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전부 죽은 자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이상할 정도로 강력한 음기를 품고 있었다.
하지만 귀신 특유의 기운이나 사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게다가 겉모습 또한 귀신과도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악수를 통해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전력을 다해 싸운다고 하더라도 이들 모두를 이기는 건 무리라는 사실이다.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에 어느 정도 수준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무려 아홉이나 되는 남자들을 모두 죽음에 이른 걸로 보아 심상치 않은 실력자인 건 확실했다.
어쨌든 무력으로는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없을 듯했다.
‘그렇다면 말빨로 밀어붙이는 수밖에.’
“좋습니다. 인사도 끝났으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그래서 제가 어떻게 해드리면 되겠습니까?”
“간단하오. 대나 소저가 누구의 여인인지만 말해주면 되오.”
모두들 같은 뜻이라는 듯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 진정들하고 잘 들어보세요. 사실 모두들 한 번씩 그녀를 가졌었잖아요? 그럼 이런 싸움은 크게 의미가…….”
진양은 최대한 좋은 말로 이들을 설득하려 했으나, 진양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자들이 난리를 쳤다.
“무슨 소리! 오직 한 사람만 대나 소저를 가질 수 있소!”
“그렇소! 어떻게 여러 사람이 동시에 대나 소저를 갖는단 말이오?”
막무가내로 나오는 남자들의 모습에 진양은 이가 갈렸다.
‘망할 놈들!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
딱 한 사람만 골라야 한다니.
그럼 남은 여덟은 적으로 돌리라는 소리 아닌가?
“좋습니다. 제 생각엔 그 누구도 대나 소저라는 분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아홉 명의 남자들이 동시에 매서운 눈빛으로 진양을 노려보았다.
“당신, 설마 대나 소저를 빼앗을 생각인 게요?”
“이럴 줄 알았어. 어쩐지 인상이 썩 좋지 않다 했더니.”
“맞아! 대나 소저 곁에 착지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세상에 이런 미친놈들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진양은 답답해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어쩔 수 없지.’
진양은 정숙 팻말을 꺼내 들어 진원을 불어넣었다.
“다들 조용!”
팻말에서 흘러나온 빛이 사방을 덮치는 순간.
시끄럽게 떠들던 남자들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진양은 팻말을 땅에 꽂은 뒤 불골금신이 들어있는 관을 꺼낸 뒤 관뚜껑을 열었다.
불곰금신에서 황금빛 불광이 뿜어져 나와 남자들의 몸 위로 쏟아졌다.
미약하긴 하지만 남자들이 품고 있는 귀기와 사기가 불광과 맞닿는 순간 치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러나 남자들은 전혀 아무렇지 않은 듯한 모습이었다.
‘……젠장. 망했네.’
진양은 억지로 웃음을 쥐어짜며 재빨리 불골금신을 다시 집어넣었다.
“크흠……. 미안합니다. 실수로 물건을 잘못 꺼냈네요.”
불골금신마저 먹히지 않는다는 건 귀신이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죽은 사람도 아니다.
그럼 도대체 뭐란 말인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무력으로 상황을 해결할 수 없다는 건 다시 한번 증명되었다.
이렇게 되면 진양도 더 이상 뾰족한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에 빠지려는 순간.
진양은 무언가 떠오른 듯 대나의 무덤 쪽으로 고개를 훽 돌렸다.
순간 진양의 머릿속으로 한 줄기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
진양은 이를 바득 갈며 싸늘한 눈빛으로 남자들을 노려보았다.
“탐욕밖에 남지 않은 한심한 인간들 같으니.”
순간 남자들의 눈빛이 두 배 정도 더 싸늘하게 변했다.
진양은 뒤로 한걸음 물러서며 대나의 무덤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쳐다보면 뭐 어쩔 건데요? 얘기를 해도 듣는 척도 안 하더니. 이젠 절 죽이기라도 할 셈입니까? 이럴 거면 뭐하러 제게 물은 겁니까? 제가 이 소저와 무슨 관계가 있다고 이러는 거냔 말입니다.
그리고 당신들, 서로 싸우기 바빴지 대나 소저의 의견은 들어보기라도 했습니까? 사랑은 개뿔. 이건 그냥 단순히 소유욕에 눈이 멀어 사리 분별조차 못 하는 거 아닙니까?
당신들은 대나 소저를 정말 사랑하긴 한 겁니까? 제가 보기엔 그냥 전리품으로 여기는 것 같은데요.
쓸데없이 저한테 물어볼 것 없습니다. 어차피 전 아무도 안 고를 거니까요. 가서 대나 소저께 직접 물어보도록 하세요.”
남자들은 아무 말 없이 진양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오기 시작했고, 진양은 계속해서 뒤로 물러섰다.
그렇게 어느덧 무덤가까지 온 진양은 아예 비석 위로 올라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제 할 말은 여기까지입니다. 스스로 당당하다고 생각하시면 와서 죽여도 좋습니다. 하지만 먼저 판결을 내려달라고 한 건 당신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먼저 판결을 내려달라고 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니 죽인다? 그것도 대나 소저의 무덤 앞에서? 대나 소저가 당신들을 어떻게 생각할지 아주 기대가 되는군요.”
진양은 끝까지 당당한 척하고 있긴 했으나 계속해서 몸을 뒤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면서 뒤쪽에 있는 무덤을 힐끔 쳐다보았다.
‘이봐요. 힘 좀 써봐요. 얼굴도 모르는 당신 때문에 내가 죽게 생겼단 말입니다. 당신이 도와주지 않으면 나도 목숨 걸고 싸우는 수밖에 없다고요!’
하지만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고 무덤을 향해 소리쳤다.
“대나 소저! 얼른 나와서 이것 좀 보시지요.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먼저 판결을 내려달라고 해놓고 이제 와서 마음에 안 드니 죽이려고 하다니. 살다 살다 이런 위군자는 또 처음 보네!”
남자들의 눈빛에선 어느새 살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젠장……. 진짜 망한 건가……?’
바로 그 순간.
무덤을 뚫고 여인의 섬섬옥수가 쑥 솟아올랐다.
이어서 빠른 속도로 가장 앞쪽에 서 있는 남자의 뺨을 후려갈겼다.
뺨을 맞은 남자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뒤로 날아가 버렸다.
진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성공이다.’
비록 확실치 않은 도박이었지만 어쨌든 성공했으니 된 거다.
입 아프게 떠들어봤자 뭐하겠는가?
어차피 결론도 나지 않을 텐데.
그때, 진양이 앉아있는 묘비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새하얀 옷을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났다.
그녀는 진양을 등진 채 서 있었다.
그러자 남자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살기 가득한 눈빛을 거두며 몸을 비비적거리기 시작했다.
“대나 소저, 드디어 나오셨군요.”
“헤헤, 소저.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습니다.”
“소저,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대나는 ‘흥’하고 콧방귀를 뀌고는 뒤돌아 진양을 바라보았다.
순간 진양은 넋이 나가버렸다.
외모를 자세히 살펴볼 것도 없었다.
알 수 없는 엄청난 매력을 가진 눈빛만 봐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살면서 이보다도 더 아름다운 건 본 적이 없다고 감히 장담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러면 안 돼!’
진양은 재빨리 광폭 공법을 사용하여 자신의 감정을 억지로 눌러버렸다.
등을 타고 식은땀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남자들이 한 여인을 두고 목에 핏대를 세웠던 이유.
이제서야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진양은 비석에서 내려와 그녀에게 포권을 취했다.
“초면에 다소 무례했던 것 같습니다. 너그럽게 용서해주시지요.”
“당신, 절 보고도 아무렇지 않은 건가요?”
딱딱한 진양의 태도에 그녀는 다소 놀란 듯 물었다.
“소저께선 절세 미녀라는 호칭조차 아까울 정도로 아름다우십니다만. 아쉽게도 전 마음에 품고 있는 여인이 있어서 말입니다.”
“그렇군요.”
진양을 바라보는 대나의 눈빛이 바뀌었다.
이어서 그녀가 고개를 가볍게 숙이며 말했다.
“불필요한 일 때문에 발목을 잡게 되어 참으로 송구스럽습니다. 여기 사과의 의미로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사양하지 말고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대나는 겉보기에 평범하게 생긴 청옥 비녀를 진양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뒤에 있던 남자들을 향해 싸늘하게 말했다.
“뭐 하고 있어요? 빨리 이분께 사죄드리지 않고!”
남자들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듯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진양에게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