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543
543화 십 년이라니
노인은 술잔을 채우며 잔을 내밀었다.
“진 선생, 한잔하시게나.”
그는 상당히 예의 바른 모습이었다.
“누구십니까?”
진양은 상대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남의 꿈에 들어온 걸 봐선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질질 끌 것 없으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시죠.”
“진 선생, 너무 날카롭게 굴 필요 없소. 사실 난 이미 일 년 전부터 이곳에서 당신을 관찰하고 있었소. 단지 마땅히 말을 걸 기회가 없었을 뿐이오. 그러다 오늘 마침 자네를 감시하던 자가 떠나가더군요. 게다가 진 선생도 마침 깊은 잠에 빠져있던 참이라 이쪽이 더 안전할 것 같아 꿈속으로 찾아온 것뿐이오.”
남자가 포권을 취했다.
“남가일몽이라고 하오. 물론 지금 보고 있는 모습은 꿈속에서의 모습일 뿐이지만.”
“남가일몽이요? 그렇다면 맹가 일족, 아니, 남가 일족?”
진양은 놀란 눈으로 상대를 바라보았다.
일전에 남가일몽이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그가 맹가 일족의 선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이토록 쉽게 남의 꿈속에 들어오는 것도 그렇고, 스스로를 남가일몽이라고 소개하는 점에서 일말의 위화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가 맞는 듯했다.
“남가 일족?”
남가일몽은 잠시 어리둥절한 모습이었으나 이내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아무래도 내 후손들이 당신이 살고 있는 시대까지도 잘 살아남은 모양이오.”
당신이 살고 있는 시대라니.
상대의 한마디에 진양은 놀란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겁니까?”
“말했다시피 지난 일 년간 당신을 관찰했소. 성공적으로 모든 사람들을 속이는 걸 보고 진심으로 감탄했소. 심지어 영제가 당신에게 붙여둔 감시자마저도 완전히 속아 넘어간 듯했소. 제법이오. 겨우 일 년 만에 당신에게 붙은 감시자를 떼어낼 줄이야.
당신이 책을 읽는 모습도 아주 인상 깊게 보았소. 보아하니 항상 만사에 대비하는 성격인 것 같소. 허나 이런 모습에서 당신에게 급박함이 느껴졌소.
설마 이곳에 누군가 세계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사람이 있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지오?”
그는 진양이 자신의 말을 소화할 시간도 줄 겸 자신의 앞에 놓아진 잔을 비웠다.
“오호, 참으로 훌륭한 술이군. 꿈속에서 이런 훌륭한 술을 마셔볼 줄은 몰랐소. 이름이 무엇이오?”
“취생몽사라는 술입니다.”
“좋은 이름이군. 혹시 내게도 조금 나눠주실 수 없겠소? 대신 내가 알고 있는 공법을 가르쳐드리겠소. 물론 원한다면 전부 다 가르쳐드리는 것도 가능하오.”
남가일몽은 취생몽사가 상당히 마음에 든 모습이었다.
“술이야 나눠드릴 만큼 충분히 남아있긴 합니다만. 그런데, 공법을 전부 다 가르쳐주신다는 거 정말입니까?”
“어차피 내 공법인데 못 가르쳐드릴 것도 없소. 무엇보다 진짜 나는 이미 오래전에 죽은 몸이오. 그런데, 당신의 얘기를 들어보니 내 후손들이 그렇게 잘 지내는 것 같진 않은 것 같소. 성까지 바꾸다니.
맹가 일족이라고 하셨소? 이 정도라면 아마 제가 남겨두었던 다른 공법도 전부 실전되었을 것이오. 공법은 얼마든 가르쳐드릴 테니 만약 내 후손들 중 괜찮은 녀석이 있다면 대신하여 전수해 주셨으면 하오. 물론 괜찮은 녀석이 없다면 그냥 넘어가도 상관은 없소.”
남가일몽은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
“그나마 꿈이니까 이런 얘기도 하지. 바깥에서는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소. 참으로 씁쓸하군.”
진양은 크게 놀란 모습이었으나, 이어서 먼저 상대의 잔을 채웠다.
“자, 어르신. 마음껏 드시지요.”
진심으로 놀랐다.
일념의 세계에 있는 생명체 중에 세계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었다.
“어르신은 무슨. 단지 내가 걷는 특별한 길이 이 세계에 잘 맞는 것뿐이오. 꽤 오랜 시간 동안 몇 번이나 경험했으나 전혀 이해하지 못하던 걸 영제가 이곳에 나타나고 나서야 마침내 깨달았소. 됐소. 더 얘기해서 뭘 하겠소? 어차피 알아봤자 좋을 것도 없을 테니 말이오.”
“어르신, 하지만 제게 그런 걸 말씀해 주러 여기까지 오신 것 아닙니까?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듣고 나면 금방 잊도록 하겠습니다. 이 시대에만 망각하게 만드는 공법이 있는 건 아니거든요.”
“하긴. 사실 마침 답답해 미치려던 참이었소. 감히 생각하기도 그렇고, 말을 할 수도 없었으니까 말이오.”
남가일몽은 피식 웃으며 아래쪽에서 춤을 추고 있는 무녀를 힐끔 바라보았다.
“시간의 강에 대해 들어본 적 있소?”
“들어본 적은 있죠.”
“시간이 흐르는 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소. 뿐만 아니라 시간을 되돌려 과거로 돌아가는 것 또한 불가능하오. 하지만 이 세계에는 시간의 강에 강력한 파도를 일으킬 수 있는 강력한 존재가 있소. 그렇게 일어난 파장이 바로 이 세계인 것이오. 시간의 강을 벗어난 파도이자 시간을 따라 흐르거나 변하지 않는 파도지.
파도가 칠 때마다 순환은 계속해서 반복되오. 그리고 영원히 멈추지 않는 반복의 시간을 보내며 나는 몇 번의 생을 살아왔소. 그러다 문득 어느 한 번의 생에서 우연히 몽경을 남기게 되었던 적이 있소. 그때부터 나는 의구심을 갖고, 이와 같이 순환이 반복될 때마다 매번 몽경을 남겨왔소.
그렇게 몇 번이고 상황이 반복되고 나니 마침내 왜 그런 것인지 깨닫게 되었소. 이 파도 속에 존재하는 나는 그저 어느 강자가 남긴 일념으로 만들어진 존재라는 사실을 말이오.
그때가 아직도 후회되오. 진상을 알고 나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절망감이 느껴졌거든. 아무리 발버둥을 치고 무슨 짓을 해도 결국은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오게 될 뿐이었소.”
그의 얼굴에는 영원히 해탈할 수 없다는 절망감이 짙게 깔려있었다.
‘영원히 환생하지 못 한다라…….’
진양의 얼굴도 한층 더 진지해졌다.
“더 이상 이런 식으로 반복되는 게 싫어서 완전한 죽음을 맞고 싶었소. 그러기 위해선 외부인의 힘을 빌려야만 했는데, 당신이 들어오기 전에는 영제가 있었소. 그래서 원래는 그의 손에 죽을 계획이었는데, 그가 나의 벗인 요사를 죽이고 삼켜버리는 걸 보고 마음을 고쳐먹었소.
죽고 싶긴 하지만 그에게 삼켜지는 최후를 맞고 싶진 않았소. 대신 그를 영원히 빠져나갈 수 없는 무한한 윤회의 굴레 안으로 가둬버리고 싶다는 마음이 들더군.”
진양은 조용히 남가일몽의 말을 경청했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고,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굴레 속에서 수도 없이 생을 반복한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미쳐버리지 않는 게 오히려 신기할 정도였다.
한편, 영제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런 돌연변이가 있을 줄은 모르고 있을 것이었다.
진양이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아무리 그렇게 말씀하셔도 제겐 영제를 이길 힘이 없는 걸요. 그는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유감스럽지만 더 이상 물러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오. 지난 일 년간 당신을 관찰했다고 했었지. 내가 보기에 당신은 매우 똑똑한 사람이오. 영제의 끄나풀들이 찾아와 기억을 지우려 했을 때 당신은 매우 협조적이었소. 아마도 그들이 왜 이런 일을 벌이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오.”
남가일몽이 손을 뻗자 그의 앞에 눈금이 그려진 허상이 나타났다.
“당신이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는 건 파도가 이미 요동치기 시작했다는 뜻이오. 아마 반복의 굴레가 다시 시작되려는 것이겠지. 이제 남은 건 겨우 십여 년뿐이오. 이 시간 안에 반드시 빠져나가야 하오.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이곳에 완전히 녹아들든지, 아니면 시간의 파도에 휩쓸려 영원히 사라져버리던지 둘 중 하나의 최후를 맞게 될 것이오. 이는 결코 사람이 견뎌낼 수 있는 힘이 아니란 점 유념해 주셨으면 좋겠소.”
눈금은 총 열두 개였는데, 어느새 일부 눈금이 투명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한참 고민하던 진양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당신은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지 않으신 겁니까?”
“그러고 싶긴 하지만 그럴 수가 없소. 이곳에 있는 건 무엇이든 가지고 나갈 수 있지만, 이곳에 있는 생명체는 가지고 나갈 수 없거든.”
“그렇다면 제가 들어온 입구로 다른 사람을 데리고 나가는 건요?”
“불가능하오. 당신 스스로의 입구는 당신만 지나갈 수 있소.”
남가일몽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하지만 외부인을 데리고 나갈 수 있는 방법은 하나 알고 있긴 하오.”
진양은 한층 더 진지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좋아요.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죠. 왜 저를 찾아오신 겁니까?”
“처음에는 단순히 당신이 어떤 물건을 가져갔기 때문이었소. 원래는 물건만 가지고 가려고 했는데, 그러다 당신이 외부인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이오. 그래서 나는 할 수 없는, 오직 외부인만 할 수 있는 일을 부탁하고 싶어서 찾아온 것이오.
만약 내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하신다면 내가 가진 모든 걸 주겠소. 원한다면 내 목숨도 주겠소.
아, 그렇다고 어려운 부탁은 아니오. 그저 당신이 이곳을 떠나기 전에 나를 완전히 죽게 도와주기만 하면 되오.”
진양이 뒤쪽으로 등을 기대며 물었다.
“듣고 보니 딱히 다른 의도가 있는 것 같진 않군요. 그런데, 제가 왜 당신을 도와야 하죠? 그리고 왜 당신의 말을 믿어야 하는 거죠?”
“믿지 않겠다고 하면 나 역시도 별다른 방법은 없겠지만. 이곳으로 들어온 사람 중 영제 이외에 당신을 포함해 총 다섯 명이 더 있소. 한 사람은 오직 수련밖에 모르는 여자고, 또 하나는 책밖에 모르는 여자고, 또 하나는 영제의 신하고, 마지막으로 남은 건 영제의 여동생이오.
물론 그녀는 영제와 관계가 상당히 좋지 않은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여동생인 만큼 영제를 져버리는 일을 하진 않을 것 같소. 어쨌든 전부 다 부탁을 하기에 적합한 인물은 아니오.”
“당신의 목숨도, 당신이 가진 지식이나 물건, 공법도 전부 필요 없다고 하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과연 그렇게 할 수 있겠소? 당신은 살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사람이잖소. 심지어 살아남기 위해 놈들이 순순히 기억을 지우도록 놔두기까지 하지 않으셨소? 그 모습을 보고 느꼈소.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당신은 분명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다소 자존심이 상하긴 했으나 상대의 말에 마음이 흔들린 건 사실이었다.
“아직 제 질문에 대한 답은 듣지 못한 것 같습니다만.”
“만약 당신마저 내 부탁을 거절한다면 십 년 뒤에 영제를 찾아가 죽는 수밖에 없겠지. 그때가 되면 당신도 죽게 될 것이오. 영원한 윤회의 굴레 속으로 들어갈 기회조차도 없이 영원히 말이오.”
진양이 한숨을 푹 쉬며 손사래를 쳤다.
“좋아요. 일단 부탁은 들어드리는 걸로 합시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무엇을 할지는 나중에 얘기하기로 하고요. 일단 알고 있는 것부터 까 보세요. 전부 하나도 남김없이 말이에요.”
십 년이라니.
그게 사실이라면 진양도 미리 준비를 해 두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