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557
557화 평생 안줏거리
시간은 쉬지 않고 흘렀다.
어느덧 해가 산 너머로 지기 시작하자 사방에서 음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때, 남가일몽이 나타났다.
두 팔은 어디 갔는지 사라지고 없었고, 부릅뜨고 있는 두 눈에는 눈알이 없이 휑하게 비어있었다.
“이만 날 죽이시오.”
“정말로 나가고 싶지 않은 겁니까? 아니면 나갈 방법이 없어서 그런 겁니까?”
“방법은 있지만 별로 살고 싶지는 않소. 바깥이라고 해서 이곳과 다르다는 법은 없으니 말이오. 나는 평생을 이 가짜와 진짜가 공존하는 세상에서 살아왔소. 이젠 뭐가 진짜고 가짜인지 구분조차 안 갈 정도로 혼란스럽소. 영제에게 죽는다고 해도 과연 그게 끝일지 의문이오. 불확실한 쪽에 걸 바엔 조금이나마 확실한 당신의 힘을 믿고 싶소. 완전한 죽음을 말이오.”
진양은 다소 놀란 눈치였다.
‘뭐야? 내가 다른 사람들을 성불시킬 수 있다는 걸 안 건가? 도대체 언제 안 거지?’
“그게 절 선택한 가장 큰 이유입니까?’
“그렇지 않소.”
남가일몽은 씁쓸하게 웃으며 회상에 잠긴 듯 말했다.
“당신에게서 요사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오. 그때 당신은 혼자 도망가지 않았소. 먼저 어떻게 해야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해 물었고, 그리고 나서야 나와 손을 잡기로 하였소.
과거 곤경에 처했을 때 요사도 이와 같이 행동했었소. 그때 나는 처음으로 진실을 느끼게 되었소. 그리고 처음으로 내가 진정으로 살아있다는 것도 말이오.”
진양의 얼굴에 복잡한 표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유였기 때문이다.
“이만 날 죽이시오. 내일 아침 해가 뜨면 시간의 파도가 일렁이기 시작할 걸세. 그때쯤 되면 영제는 나를 죽였을 거라 생각할 거요. 놈은 지금도 당신이 만든 또 다른 나를 상대하느라 정신이 팔려있소. 아마 다른 곳에 정신을 팔 틈은 없을 테니 시간은 충분할 게요.”
남가일몽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피었다.
곧 죽으러 가는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 마치 그토록 꿈꾸던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편히 가시길.”
진양은 예를 갖춘 뒤 탕혼검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남가일몽의 미간을 꿰뚫었다.
이어서 습득 능력을 사용하자 황금색 광구가 손에 잡혔다.
진양은 그것을 머릿속에 넣은 뒤 질 좋은 나무로 만들어진 관을 꺼내 그의 시신을 수습했다.
적당한 곳을 찾아 땅을 파고 관을 묻었다.
비석을 세우는 게 맞을지 고민하긴 했으나 결국엔 세우지 않기로 결정했다.
어느덧 해가 산 너머로 사라져가며 노을도 점점 사라져가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주위엔 컴컴한 어둠이 깔렸다.
* * *
같은 시각.
신정이 아예 사라져버린 이곳에서 눈이 반쯤 뒤집힌 혈라마는 영제와 최후의 결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는 팔을 하나 내어주는 대신 마침내 영제를 산산조각 내버리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영제는 어찌 된 일인지 사라지는 그 순간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치 혈라마를 비웃는 듯한 모습이었다.
산산조각 난 채 사라져가는 영제의 모습을 보던 혈라마가 갑자기 고함을 내질렀다.
그의 눈에서는 붉은빛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고, 몸에서는 마기와 황금빛이 뒤섞이며 뿜어져 나와 하늘 위로 솟구쳤다.
영제가 사라지는 마지막 순간, 그가 팔로 변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영제 이 비겁한 놈아! 당장 튀어나오지 못하겠느냐! 겨우 나의 성불을 막겠다고 나의 본체와 싸움을 벌일 용기조차 포기하다니. 비겁하구나!”
* * *
진양은 남가일몽이 묻힌 곳 앞에 향을 세 개 피워놓은 채 중얼거렸다.
“비록 하찮은 힘이지만 당신이 원하는 진실에 닿게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그때, 허공에서 제포를 입은 남자가 나타났다.
팔 한쪽이 없는 그는 무덤을 바라보며 잔뜩 실망했다는 듯 말했다.
“남가일몽이 죽었구나. 뭐, 누구 손에 죽었든 그건 중요하지 않지. 어쨌든 다음 세계에서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을 테니까. 나쁘진 않군.”
진양은 놀란 눈으로 허공에 둥둥 떠 있는 영제를 바라보았다.
전혀 생각지 못한 상황이었다.
‘뭐야? 혈라마랑 싸우고 있는 거 아니었어? 저 녀석이 왜 여기 있는 거지?’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 텐데.
어째서 이곳에 나타난단 말인가?
“참으로 놀라운 젊은이로군.”
영제가 진양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순간 진양의 몸이 남가일몽의 묘에서 밀려나는 것이 느껴졌다.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둘러싸인 진양은 묘로 가까이 가고 싶어도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눈여겨보지 않던 개미 새끼 한 마리가 이런 엄청난 변수를 가져올 줄은 몰랐구나. 나의 문을 지워버린 건 네 녀석이 짓이지? 허나 그건 잘못된 선택이었다.
혼자 조용히 떠났더라면 아마 짐도 절대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허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는 건 너 하나뿐이다.
혼자 조용히 떠났으면 좋았을 것을. 괜히 다른 사람을 챙기려다가 약점을 보이고 말았구나. 그 바람에 짐에게 모든 사실을 들키고 말았어.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겠다. 나를 이곳에서 데리고 나가라. 그렇게 한다면 목숨도 살려주고 무한한 영광과 권력을 주겠다. 허나 거절한다면 넌 영원히 이곳에 갇히게 될 것이다. 잘 생각하거라. 짐은 기껏해야 일만 년이면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는 몸이다.”
아무래도 마지막 순간인 만큼 진양이 자신의 문 앞에 서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사실은 그저 남가일몽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었을 뿐이지만 말이다.
진양은 조용히 영제를 올려다보았다.
조용히 고개를 숙이는 척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홀로 문밖으로 도망쳐버릴지 고민해 보았다.
그러나 이번은 다른 때랑은 다르다.
한번 무릎을 꿇으면 더 이상 일어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잠시 고민하던 진양은 순간 남가일몽의 마음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죽는 순간까지도 간절히 원하는 것이라…….’
진양이 아무런 대답이 없자 영제가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은혜도 모르는 놈.”
이어서 그가 손을 뻗자 빛이 번쩍이며 지면으로 떨어졌다.
진양은 등껍질과 검은 솥을 꺼내 뒤집어쓰며 온몸의 진원을 기혈로 바꾸어 육신의 강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빛에 닿는 순간 온몸의 뼈가 바스러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내장까지 모두 찢어지는 듯한 통증과 함께 입에서 왈칵 선혈이 쏟아져나왔다.
그러나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이건 겨우 시작에 불과했다.
등껍질은 형상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산산조각 나 버렸고, 검은 솥 역시 번쩍이는 빛에 휩싸이며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그때였다.
손가락의 형상이 나타나 영제의 힘을 역으로 밀어내며 영제를 향해 날아갔다.
아차 싶었으나 영제는 나지막한 신음 소리와 함께 날아가 버렸다.
마치 청각을 잃은 것처럼 머릿속이 웅웅거렸다.
밟고 있던 대지는 완전히 박살 나며 사라져버렸다.
진양은 거대한 구덩이의 중심에 서 있었다.
곧바로 용혈보술을 사용하여 육신을 회복했고, 강제로 진원을 사용하여 천천히 하늘 위로 떠올랐다.
그리고 굳은 얼굴로 다시 멀쩡한 모습으로 날아돌아온 영제를 노려보았다.
“검은 솥이 사라지다니. 조금 아쉽긴 하네요. 그래도 의외군요. 이런 힘이 숨겨져 있었을 줄이야. 뭐, 당신에게 일격을 가한 거라면 그거로 충분하긴 하지만요.”
“흥!”
영제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소매를 휘두르자 빛무리가 해일처럼 몰려왔다.
빛의 해일이 지나간 곳엔 그 어떤 것도 남지 않았다.
그러나 진양은 씨익 웃으며 영제를 향해 중지를 들어 보였다.
“그럼 수고!”
이어서 빛의 해일이 진양을 덮쳤다.
그리고 해일이 지나가고 난 자리에 진양은 사라지고 없었다.
* * *
자욱한 안개가 깔린 어느 숲속.
진양이 모습을 드러냈다.
털썩-!
그대로 바닥에 쓰러진 진양은 힘겹게 묵양을 꺼냈다.
“날 지켜줘.”
진양은 온몸의 힘을 회복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새어있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영제 그 녀석, 아마 사실을 알게 되면 미쳐버리겠지?”
“말했잖아. 항상 준비해서 나쁠 건 없다고 말이야. 언제 어디서 써먹을지 모르잖아!”
진양은 용혈보술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며 회복에 집중했다.
요상 단약을 하나 먹고 나니 진원의 회복이 빨라졌고, 곧바로 회복된 진원을 기혈로 전환시켜 육신 회복에 보태니 전체적으로 회복 속도가 크게 늘었다.
검은 솥도 부서져 버렸고, 등껍질도 완전히 박살이 나버렸다.
덕분에 구 할 이상의 힘은 막아낼 수 있었고, 남은 일 할의 힘도 옆으로 흘려버렸기에 영제의 힘은 진양에게 거의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았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파로 인해 발생한 힘까지 막아내진 못했다.
왜 그렇게들 경지에 목숨을 거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힘의 양으로 승부할 경우 그 한계가 매우 명확하다.
그러나 그 한계를 뚫을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경지인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양이 많다고 해서 채울 수 있는 부분이 아닌 것이다.
영제 같은 극강의 강자라면 아무렇게나 팔을 휘둘러도 진양에게 치명상을 입히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진양은 뭐가 그리도 좋은지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영제의 본체와 정면으로 맞서 싸운 것.
그를 떼어내고 도망쳤을 뿐만 아니라 몰래 한 방 먹인 것까지.
이거야말로 평생 술자리 안줏거리 아니면 뭐겠는가?
진양은 단지 남가일몽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었을 뿐인데, 영제 혼자 진양이 자신의 문 앞을 지키고 있을 거라고 착각했다.
그래서 단순히 주변의 모든 것을 파괴해버리면, 주변의 지형을 모두 날려버리면 문을 찾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었다.
진양은 심지어 한 뼘 단위로 문의 위치를 세세하게 기록해두었기 때문에 설령 주위의 모든 것이 날아가 버린다고 하더라도 문의 위치를 다시 찾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물론 영제는 이러한 사실을 모른 채 영영 일념의 세계 속에 갇히게 되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렇게 진양은 거대한 구덩이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허공을 향해 날아올랐고, 이어서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려는 찰나 진양은 일념의 바다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뭐, 이러고도 끝까지 쫓아온다면 그건 인정해줘야지.’
어느 정도 몸을 회복하고 난 진양은 다시 묵양을 소환했다.
그리고 그의 등 뒤에 올라타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지역을 벗어났다.
안개가 벗어난 지역을 완전히 벗어난 뒤.
어느새 멀어진 안개를 바라보던 진양은 한 가지 중요한 일이 떠올랐다.
일단 호랑이 입속에서 살아나오긴 했으나 그렇다고 다 끝난 게 아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살펴보니 보름달이 떠 있었다.
이제 겨우 일념의 바다를 탈출했을 뿐.
완전히 시간의 파도의 범위에서 벗어난 건 아니다.
다시 해가 뜨기 전에 반드시 이곳을 벗어나야만 한다.
“북서쪽으로 최대한 빠르게 움직여줘. 반드시 해가 뜨기 전엔 이곳을 벗어나야 해.”
묵양에게 부탁을 한 뒤 진양은 눈을 감으며 자신의 꿈 세계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