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556
556화 놈을 죽여
“이게 다 뭐죠?”
가희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인형을 바라보며 물었다.
“설마 절 못 믿으시는 건 아니죠? 그런 게 아니라면 그냥 아무 말 없이 따라와 주세요. 자세한 건 나중에 한가할 때 얘기해드리도록 할 테니까요.”
가희는 분신의 눈빛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알겠어요.”
가희는 혈육 인형을 연화시킨 뒤 묵양이 시키는 대로 순순히 그의 몸 안에 있는 공간으로 들어갔다.
분신은 머리를 긁적이더니 펑- 하고 사라져버렸다.
묵양은 분신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꽤 쓸만한 신통력인걸. 나중에 나도 가르쳐달라고 해야겠어.”
이어서 묵양도 모습을 감추었다.
같은 시각.
바깥에선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쾅-!
거칠게 문을 연 그들의 눈에 중상을 입은 채 가만히 앉아있는 대제희가 보였다.
이어서 누군가 다급히 외쳤다.
“어서 대제희를 붙잡아라!”
가희의 혈육 인형은 두 눈을 감은 채 아무 말 없이 이들에게 끌려갔다.
혈라마는 신정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올랐다.
그곳은 영제의 보좌가 있는 곳이었다.
그는 조용히 영제의 보좌에 앉았다.
두 눈은 새빨갛게 충혈되어있었고, 광기에 휩싸인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신정이 박살 났으니 네놈의 근간이 날아간 것이나 마찬가지일 터. 영제, 이번엔 과연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구나.”
혈라마는 자리에서 일어나 영제의 보좌를 산산조각 내버렸다.
이어서 가장 높은 곳에 선 채 자신을 따르고 있는 중생들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힘이 또다시 비약적으로 상승하는 것이 느껴졌다.
바로 그때였다.
콰과과광-!
멀리 보이는 한 대전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꽤 큰 폭발이었기 때문에 아래를 받치고 있던 구름도 함께 가루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이어서 멸망의 힘을 담은 검은 물결이 주위를 휩쓸며 주변에 있던 모든 것을 가루로 만들어버렸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이를 시작으로 신정 곳곳에서 연쇄적으로 폭발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파괴의 힘은 거대한 한 마리의 흑룡이 되어 이곳의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혈라마는 멍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할 틈조차 없었다.
파괴의 힘을 품은 흑룡이 무시무시한 포효성을 내뱉으며 혈라마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퍽-!
혈라마는 선혈을 뿜으며 하늘 위로 솟구쳤다.
그렇게 족히 천 리 정도 솟구쳤을 무렵, 고개를 돌려 신정이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신정부터 시작하여 방원 천 리 내의 범위가 평지로 변해있었다.
이보다 더 깔끔할 수는 없었다.
심지어 흔히 보이던 바위조차도 찾아볼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이런 미친놈!”
누가 봐도 묵양의 짓이었다.
하지만 별다른 수는 없었다.
도대체 영제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미치광이에게 밉보인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을 뿐이었다.
허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신정을 폭파시켜버리다니.
물론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신정이 파괴되었으니 영제의 근간이 통째로 날아간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에게 필요한 건 신정이 아니라 생명체들이다.
상황은 점점 더 혈라마에게 유리해지고 있었다.
혈라마는 곧바로 자신의 본거지로 돌아갔고 줄곧 회복에만 집중했다.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낼 때를 위해서 말이다.
* * *
성지 서쪽.
돌아온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대제주가 사람들을 이끌고 하늘에서 내려왔다.
“대제주 대인, 오랜만입니다.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그런데,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진양은 폐관을 하던 장소에서 나와 사람 좋은 미소와 함께 예를 차리며 대제주 일행을 맞이했다.
대제주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진양과 자란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리곤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대제희께선 중상을 입어 쓰러지셨고, 신정은 악랄한 자들에 의해 파괴되었습니다. 단지 이 소식을 전하려고 온 것뿐입니다.”
“에이, 대인 농이 과하십니다. 대제께서 멀쩡히 살아계신데 누가 감히 신정에 반기를 든단 말입니까?”
진양은 자란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손짓과 함께 앞으로 한걸음 나서며 물었다.
이어서 진양의 얼굴에 웃음기가 천천히 사라졌다.
굳은 대제주의 표정을 보고 심상치 않은 걸 느낀 탓이었다.
“대인, 그게 사실이었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물론 소식만 전하러 온 건 아니고.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대제주가 뒤에 있던 부하를 향해 눈짓을 하자 부하가 은거울을 꺼내 진양과 자란을 비추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도착했던 곳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아뇨. 갑자기 그건 왜 물어보시는 겁니까?”
진양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대제주는 아무 말 없이 은거울을 바라보다가 이번에는 자란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다.
“기억 안 납니다.”
자란은 차가운 목소리로 짧게 대답했다.
“뭐, 그렇다면 별일 아닙니다.”
대제주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천하가 혼란하니 이만 저희와 함께 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마침 대제희님께서도 중상을 입으셔서 그런지 오랜 친구들을 그리워하고 계시거든요.”
‘능구렁이 같은 놈. 진작 되먹지 못한 놈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조용히 지내던 진양을 의심했을 뿐만 아니라 아예 죽음의 구덩이로 몰아넣을 생각을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러나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미소를 지었다.
“저야 좋죠. 제가 먼저 물어보고 싶었던 말인걸요. 다만 대인께서 허락하지 않으실까 봐 물어보지 못했을 뿐입니다.”
이어서 진양이 자란에게 말했다.
“가서 짐 챙기도록 하세요. 마침 상황도 이러니 대제주 대인과 함께 가는 게 훨씬 더 안전할 겁니다. 적어도 벌벌 떨면서 이러고 지내고 있는 것보단 나을 테니까요.”
자란은 짐을 챙기러 들어갔고, 진양은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대인, 지난번에 주셨던 책은 모두 잘 읽었습니다. 다만…… 혹시 이보다 더 좋은 책은 없겠습니까?”
“참으로 학구열이 대단하신 분이군요. 나중에 신정이 재건되고 나면 공부하러 오시지요. 아마 원하시는 건 없는 것 빼고 다 있을 테니까요. 그전까지는 아마 이 정도로도 충분히 보고 남을 겁니다. 다만, 안에 있는 공법은 경솔히 익히셔선 안 됩니다. 그저 참고 용도로만 사용하시죠.”
대제주는 흔쾌히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책이 든 상자를 진양 앞에 꺼내놓았다.
“감사합니다, 대인!”
진양은 싱글벙글 웃으며 책이 든 상자를 들며 방 쪽으로 돌아섰다.
“잠깐 자란한테 좀 다녀올게요. 이렇게 귀한 책을 주셨는데 괜히 실수로 섞이기라도 하면 안 되잖아요.”
방으로 돌아온 진양은 상자에 든 책과 옥간을 하나씩 꺼내 습득 능력을 사용했다.
그리고 모든 작업을 마치고 나서야 자란과 함께 대제주를 따라나섰다.
그렇게 대제주 일행을 따라나선 지 하루 정도 지났을 무렵.
묵양이 가까이 있는 게 느껴지는 순간 진양은 곧바로 대제주를 바라보며 묵양에게 전음을 날렸다.
‘놈을 죽여.’
바로 그 순간.
옥련이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 났다.
이어서 밝은 빛과 함께 강렬한 힘의 파동이 몰아닥쳤다.
진양은 놀란 얼굴로 대제주에게 소리쳤다.
“뒤 조심하세요!”
고민할 겨를도 없었다.
대제주는 곧바로 빛을 뿜어내며 자신의 뒤를 막아섰다.
하지만 그의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대신 그의 앞에는 기괴한 미소를 짓고 있는 묵양이 서 있었다.
퍽-!
두 개의 금속으로 만들어진 팔 중 하나는 그의 가슴을 꿰뚫고 있었고 나머지 하나는 그의 머리를 꿰뚫고 있었다.
이어서 퍼석- 하는 소리와 함께 그는 두 동강이 나버렸다.
진양은 곧바로 손을 뻗어 그를 성불시켰다.
그리고 보라색 광구를 잡아 자신의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이어서 진양과 자란은 혈육 인형을 바깥에 남겨둔 채 묵양의 체내에 있는 공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묵양과 함께 홀연 듯 사라져버렸다.
잠시 뒤.
번쩍이던 빛이 사그라들며 진양과 자란, 그리고 대제주의 시신이 드러났다.
“도망쳐!”
자란의 혈육 화신은 빠른 속도로 대제주의 시신을 관에 수습한 뒤 달리기 시작했다.
이 모습을 본 대제주의 부하들은 더 이상 고민할 틈이 없었다.
이들은 곧장 내달리며 진양을 쫓기 시작했다.
묵양은 진양이 시킨 대로 최대한 기척을 숨긴 채 주위를 빙빙 돌았다.
그러다 마지막 날이 되자 처음 일념의 바다로 들어온 곳 근처로 왔다.
진양은 그제서야 검둥이에게 숨겨두었던 책자를 꺼냈다.
그리고 절반 정도 사용한 책자를 쓸어 만지며 씨익 웃어 보였다.
“역시 원래 사용하던 게 더 좋단 말이지.”
이어서 대제주와 관련된 내용이 적힌 쪽을 포함하여 몇 장을 뜯어낸 후 곧바로 소멸시켜버렸다.
진양은 빼곡하게 적혀있는 내용을 보며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뭐든 미리 준비해서 나쁠 건 없지.”
내용을 읽어나가던 진양은 금세 자신의 문에 대한 내용을 찾아냈다.
꽤 자세히 기록이 되어있었다.
문의 위치는 거의 한 뼘 단위로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었고, 심지어 문의 중심이 어디 있는지까지도 기록되어 있었다.
이 외에 주변에 참고할 수 있는 다른 것들도 상세하게 기록이 되어있었기 때문에 주변의 땅이 파괴된다고 하더라도 언제든 문을 찾을 수 있을 듯했다.
어쨌든 모든 것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에, 해가 지기 전까지만 문이 있는 곳으로 간다면 문제없이 이곳을 벗어날 수 있을 듯했다.
대략 시간을 계산해보니 마지막 순간까지는 이제 대략 일 각 정도가 남았다.
그러나 남가일몽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진양은 가희와 청란, 자란을 모두 밖으로 꺼내주었다.
이어서 손으로 자신의 미간을 누르자 한 줄기의 빛이 튀어나와 문의 형상을 이루었다.
“들어가세요. 반 시진 뒤에 다시 밖으로 꺼내드릴게요.”
자란은 이런 상황이 익숙한지 군말 없이 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 떠올랐는지 뒤돌아 가희를 바라보았다.
가희는 무언가 복잡한 심정으로 진양을 한참 쳐다보는 듯싶더니 이내 아무 말 없이 자란의 뒤를 따라 문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세 사람이 모두 들어간 뒤.
진양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문질렀다.
일전에 남가일몽이 가르쳐준 방법은 꿈 공간을 만들어 이곳에 있는 물건과 이 세계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을 모두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방법이다.
그리고 이 방법을 쓰기 위해선 남가일몽의 공법을 기본적으로 익혀만 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진양에게 자신의 공법을 가르쳐준 것이다.
공법들을 익히지 않는다면 오직 자신만 이곳에서 나갈 수 있다.
하지만 단시간 내에 속성으로 익힌 만큼 아직 공법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꿈 공간은 기껏해야 반 시진 정도 유지되는 것이 전부다.
때문에, 반 시진이 지나기 전에는 반드시 모든 일을 마쳐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