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568
568화 하나같이 무식한 놈들……
“하하……. 심 대인한테 맞아 죽기라도 할까 봐 걱정돼서 저도 모르게 그만…….”
청란이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눈앞에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은 누가 봐도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듯 싸우는 사람들의 모습은 아니었다.
“껄껄. 이런 훌륭한 청년에게 어찌 손을 댈 수 있단 말인가? 나의 곤란한 상황에 큰 도움이 되는 조언까지 주었는데. 오히려 고마워해야 하는 법이지.”
심성낙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자신의 처지가 생각났다.
“청란아, 이제 순천사 밥을 먹은 지도 꽤 됐을 텐데. 성질머리를 죽이는 방법도 익혀야 하지 않겠느냐? 이도는 전선이 아니야.”
이어서 진양에게 포권을 취했다.
“진양, 그럼 난 아직 처리해야 할 공무가 남아있어서 이만 가보도록 하겠네. 나중에 부하를 데리고 형부로 찾아오면 곧바로 내게 오시게나. 그럼 이만.”
“살펴 가세요. 나중에 시간 되면 또 들리시고요.”
진양 역시 포권을 취하며 그를 문 앞까지 배웅했다.
그렇게 심성낙을 배웅하고 돌아와 보니 청란이 심성낙의 잔을 킁킁거리고 있었다.
그녀가 미심쩍은 눈초리로 진양을 바라보며 물었다.
“설마 이상한 약을 탄 건 아니겠죠?”
“어허! 절 뭘로 보시고 그런 말씀을. 심 대인께서 불같은 성격을 가지고 계신 건 맞습니다만. 소저가 생각하시는 것처럼 그렇게 앞뒤 없으신 분은 아닙니다. 그저 상의하고 싶으신 일이 있어서 찾아오신 것뿐입니다. 전 그에 맞는 작은 도움을 드린 것뿐이고요.”
“그렇군요.”
청란은 잔에 남아있는 술을 비웠다.
그리곤 푹 한숨을 쉬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잘 좀 도와주세요. 걱정이 돼서 그런가, 도저히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순 없겠더라고요.”
“다 잘 될 거니까 걱정 말고 쉬고 계세요. 그리고 전하께 다른 건 신경 쓰실 필요 없으니 요양에만 신경 쓰시라고도 전해주시고요.”
그렇게 청란은 반나절 정도 더 머물며 진양과 술잔을 주고받았다.
청란을 보내고 난 뒤.
어느덧 하늘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묵양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왜 아직도 안 돌아오는 거지? 설마 정말로 사절단 녀석들과 마주치기라도 한 건가? 아닌데……. 그랬다면 진작 처리하고 돌아오고도 남을 시간인데.’
* * *
콰광-!
홍여사 근처 시장에서 굉음과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다.
폭발의 여파가 피어오르려는 순간.
하늘에서 눈부신 빛이 흘러내려 여파를 순식간에 제압해버렸다.
연기가 모두 사라지고 나자 방금 전까지만 해도 건물이 서 있던 자리에는 무려 백여 장이나 되는 거대한 구덩이가 만들어져있었다.
한쪽에는 묵양이 서 있었고 반대편에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한 모용가악과 복면인이 함께 서 있었다.
‘젠장. 저질러버리고 말았군. 진양 그 녀석이 조용히 처리하라고 했었는데.’
주위를 살펴보던 묵양은 뒤늦게 후회를 했으나 때는 이미 늦고 말았다.
‘뭐, 어쩔 수 없지. 이미 엎질러진 물인걸. 후환을 남겨둘 바에는 차라리 깔끔하게 목숨을 끊어버리는 게 더 좋겠지.’
그때, 하늘에서 빛이 번쩍하며 관포를 입은 심성낙이 천천히 내려왔다.
큼직한 도장을 들고 있는 그의 뒤로 사자의 몸과 용의 머리를 한 이수의 허상이 나타나 있었다.
이수에게서 뿜어져 나온 강한 위압감이 묵양과 사절단의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묵양은 여전히 칼을 거두지 않았고, 상대 역시 묵양을 향해 강렬한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감히!”
심성낙의 대갈과 함께 이수의 허상이 울부짖었다.
그러자 하늘에서 빛이 번쩍이며 지상으로 내리꽂혔다.
잠시 뒤.
묵양과 사절단은 각각 빛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쇠창살에 갇히게 되었다.
쇠창살에 갇힌 묵양은 조용히 고개를 들어 심성낙을 바라보았다.
분명 진양이 가지고 있던 초상화 중에서 보았던 사람이었다.
같은 편이긴 했으나 꽤 강한 실력자인 만큼 진짜 실력을 써야만 완전히 꺾을 수 있는 자다.
그러나 머리 위에 모여있는 강렬한 빛을 발견한 묵양은 순순히 단념하기로 했다.
지금은 누가 봐도 상대가 유리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사절단의 표정은 한층 더 찌푸려져 있었다.
특히 복면인은 끝까지 화를 누르지 못하며 저항하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가 난동을 부리려고 하자 곧바로 쇠창살이 뻗어 나오며 족쇄와 수갑이 되어 그의 사지를 붙잡았다.
그렇게 기괴한 자세로 묶여버린 복면인의 모습을 본 묵양은 저항을 포기하고 진양이 자신을 데리러 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쇠창살에 갇힌 모용가악은 매서운 눈빛으로 심성낙을 노려보았다.
“나는 대연 신조의 사절단으로 온 모양가악이다! 누군데 감히 내게 이리도 무례하게 군단 말이냐?”
그러나 심성낙은 개의치 않다는 듯 차갑게 말했다.
“당신이 누구인지는 궁금하지 않소. 이도에 왔으면 이도의 규칙을 따라야지.”
심성낙은 더 이상 변명의 기회는 주지도 않고 곧바로 이들을 데리고 형부로 돌아갔다.
그리고 하나도 남김없이 전부 형부 감옥에 하옥시켰다.
감옥에 갇히게 된 모용가악은 화가 치밀어올랐다.
이제 막 부임해온 신임 형부 상서의 손에 붙잡히게 될 줄이야.
심지어 그가 직접 나서서 자신을 하옥시킬 줄이야.
전혀 생각지도 못 한 일이었다.
‘머리는 장식으로 달고 있는 놈인가? 어찌 이런 황당한 짓을 한단 말인가!’
* * *
주왕부.
소식을 들은 주왕은 잠시 놀란 듯했으나 이내 큰소리로 웃었다.
“심성낙, 정신 나간 놈인 건 알고 있었지만 정말로 이런 짓을 벌일 줄이야. 아무리 대제희를 위해 한 일이라지만 이토록 생각 없이 굴 줄은 몰랐어. 기껏해야 작은 시비로 비롯된 싸움에 불과하거늘. 사절단의 고수뿐만 아니라 모용가악까지 전부 하옥시킬 줄이야. 이미 작정하고 하옥시킨 이상 쉽게 풀어주진 않을 텐데.
좋아. 아주 좋아! 스스로 불구덩이로 뛰어들지 못해 안달이 난 놈이로구나. 형부 상서로 부임한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은 애송이 주제에 이런 사고를 치다니.”
* * *
진양의 저택.
심성낙이 묵양과 모용가악, 그리고 그 일당을 하옥시켰다는 소식은 금세 진양에게도 전해졌다.
당황한 진양은 순간 아무 생각이 없어져 버렸다.
그렇게 사고를 치지 말라고 했는데도 길거리에서 싸움을 벌이다니.
게다가 싸움을 벌였으면 상대의 숨통이나 제대로 끊어놓아야 할 것 아닌가?
그 와중에 기회를 놓치지 않은 심성낙도 기가 찰 정도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결코 웃고 넘길 일이 아니다.
겨우 이런 작은 일로 사절단을 하옥시키다니.
적절한 이유를 대지 못한다면 심성낙 역시 결코 무사하진 못할 것이다.
모용가악 역시 선을 넘는 일을 저지른 것이 아니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석방될 것이다.
때문에, 그가 감옥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오히려 그에겐 유리한 상황이 펼쳐지게 될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머리가 지끈거려 참을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지. 또 이 몸이 직접 나서는 수밖에. 도대체 어떻게 된 게 하나같이 무식한 놈들 뿐인 건지…….”
* * *
형부 감옥.
어두컴컴한 감방에 갇힌 모용가악은 어느새 평정심을 되찾은 모습이었다.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겨우 이런 작은 일로 사신으로 온 자신을 하옥시키다니.
고대부터 사신은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었다.
때문에, 아무리 어느 시대든 두 나라 간의 사이가 안 좋아도 절대로 사신을 베거나 모욕을 주는 일은 없었다.
그러니 별로 걱정이 되진 않았다.
작정하고 대연 신조와 전쟁을 하려는 게 아닌 이상 자신을 풀어줄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영 신조 역시 그가 여기서 죽는 걸 바라진 않을 것이었다.
현재 대연 신조의 내부 상황은 매우 복잡하다.
현임 태자와 암암리에 황태손이라고 불리고 있는 모용가악의 치열한 분쟁 때문에 오랜 시간 동안 소모전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모용가악이 죽는다?
그렇게 되면 대연 신조 내부에서 벌어지던 소모전은 곧바로 끝이 나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더 이상 쓸데없는 데 힘을 쓸 필요가 없어진 대연 신조의 태자는 곧바로 외부로 눈길을 돌릴 것이었다.
그가 가장 먼저 눈길을 돌릴 곳은 누가 봐도 대영 신조뿐이었다.
이는 대영 신조의 입장에서 가장 바라지 않는 결과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을 대략적으로 파악하고 나니 그는 마음이 편해졌다.
그저 조용히 기다리고만 있어도 자신에게 상황이 유리하게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유리하게 돌아간 상황은 대제희를 타이르는 데 꽤 훌륭한 기회로 작용할 수도 있었다.
어쨌든 아무리 생각해도 모든 상황은 자신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그가 조용히 눈을 감은 채 깊은 생각에 빠져있을 때.
홍여사에 남아있던 사절단 일행은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대영 신조에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
사건에 대한 소문은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많은 사람들이 이번에는 대영 신조가 다소 선을 넘었다고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특히 이제 막 부임해온 형부 상서가 이런 짓을 벌이다니.
그것도 직접 나서서 타국에서 온 사절단을 체포한 것으로도 모자라 하옥시키다니.
이건 대놓고 조정을 난처하게 만들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상황을 지켜보던 주왕은 기다렸다는 듯 황제에게 상주문을 올렸다.
심성낙이 다시 전선으로 갈 기회를 얻고자 일부러 이런 일을 꾸민 게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그 외에 한시라도 빨리 모용가악을 석방해야 한다는 내용도 함께 들어있었다.
전자에 대해서는 아무런 답변이 없었으나, 후자에 대해서는 곧바로 허락이 떨어졌다.
그렇게 사건이 벌어진 시점부터 주왕이 직접 형부 감옥으로 찾아오기까지는 겨우 몇 시진밖에 걸리지 않았다.
참으로 놀라운 속도가 아닐 수 없었다.
주왕이 직접 형부까지 찾아왔으나 심성낙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진양이 찾아올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던 것이었다.
현재 상황은 자신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괜히 나서서 일을 더 크게 만드는 것보다는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모용가악을 주시하라는 조언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진양의 근첩호위가 모용가악과 길거리에서 싸움을 벌였다.
만약 그가 상황을 주시하지 않았다면 싸움은 훨씬 더 심각한 수준으로 치달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때문에, 이 모든 것이 진양이 일부러 꾸며낸 일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어쨌든 일단은 진양이 무슨 말을 할지부터 들어보기로 했다.
* * *
같은 시각.
주왕은 모용가악이 갇혀있는 감방으로 찾아왔다.
그는 감방 내에 있던 모든 이들을 물린 채 모용가악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돌연 웃음을 터뜨렸다.
“이도에서의 첫 만남이 이런 곳에서 이루어질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전하께서는 이곳에서 나가실 생각이 전혀 없으신 것 같군요.”
“잘 알고 있으면서 굳이 왜 여기까지 온 겁니까? 괜히 쓸데없는 헛수고라는 걸 잘 알고 계실 텐데요.”
모용가악은 매우 평온한 모습이었다.
여유롭게 미소까지 머금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일말의 걱정조차 되지 않는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