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592
592화 잡아들여라!
추굉심은 이도에서 내릴 결정을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 명령도 돌아오지 않았다.
분명 지금쯤이면 자신이 보낸 상주문과 대제희가 보낸 상주문 모두 대제에게 닿았을 텐데.
이상하게 대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군영 내에는 또다시 새로운 유언비어가 돌기 시작했다.
사신망사 공법 안에는 자신의 몸을 제물로 바치는 공법이 포함되어있다는 소문이었는데, 이 때문에 이것을 익힌 사람은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죽는다는 내용이었다.
무시무시한 내용인 만큼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고, 이 사실이 추굉심의 귀에 들어갔을 때는 이미 퍼질 만큼 퍼지고 난 뒤였다.
지금 알 수 있는 건 최초로 유언비어가 퍼지기 시작한 게 취사군 내에서 퍼졌다는 사실 뿐이었다.
추굉심은 꼭지가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
‘대제희, 조용히 취사군 막사 안에서 요양이나 하고 있을 것이지. 이 무슨 개짓거리란 말이냐!’
그래서 그는 그 길로 곧장 대제희가 머물고 있는 취사군 막사로 향했다.
* * *
추굉심의 표정은 대놓고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상황이 상황이라 그런 건지 자신의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전하를 뵙습니다.”
“추 대인, 군영 내에 퍼진 유언비어 때문에 절 찾아오신 거죠?”
“그렇습니다.”
그녀가 먼저 말을 꺼내자 추굉심은 기다렸다는 듯 그녀를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전하, 소인이 조사를 해 보니 처음으로 소문이 흘러나온 곳은 바로 이곳 취사군이라고 하더군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추 대인, 딱 한 번만 얘기할 테니 잘 들으세요. 소문이 퍼진 건 저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일입니다. 미안하지만 사람 잘못 찾아왔어요.
취사군은 비록 전장에 나서지는 않지만 여타 모든 장수들과 병사들이 모이는 곳인 만큼 여러 사람들과 두루 친분을 가지고 있죠.”
“그렇군요. 아무래도 소인이 오해를 한 것 같습니다.”
추굉심은 억지로 웃음을 쥐어 짜내며 예를 갖춘 뒤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추굉심이 떠나고 난 뒤 진양이 뒤에서 걸어 나왔다.
“말했잖아요. 이런 상황에서는 무조건 소저의 짓이라고 생각할 거라고 말이에요.”
“흥, 누가 소문을 퍼뜨린 지는 모르겠지만 보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소문은 애초에 돌지도 않았었다고요. 추굉심이 직접 뿌렸을 리는 없고, 그렇다고 우리가 뿌린 것도 아니고. 하지만 이도에서 소식이 들려오기 무섭게 누군가 소문을 퍼뜨리다니. 이도 놈들, 하여튼 도움은 되지 못할망정 발목이나 잡기나 하고 말이야.”
가희의 목소리에선 날카로운 살기가 느껴졌다.
“그들 역시 이도에서 소식을 입수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도의 사람들이 하진 않았을 거예요. 그럴 상황이 아니거든요. 대제는 정세를 안정시키려고 어떠한 대가로 불사하려는 상황인데 이런 때에 유언비어를 퍼뜨린다면 군대 내에서 발언권을 가진 두 사람의 관계를 이간질하는 꼴이 되잖아요. 이런 짓을 해봤자 이도 사람들 입장에서 좋을 게 뭐가 있겠어요? 괜히 대제에게 밉보이는 건 당연하고 여러 사람에게 원한도 사게 될 텐데요.”
“이젠 어떻게 하죠?”
“일단 소문을 퍼뜨린 사람을 먼저 잡고 보죠. 소문을 퍼뜨린 사람이 말을 절반까지만 했을 리는 없을 테니까요.”
“네? 그 말은…….”
가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번 지켜보자고요.”
* * *
진양과 가희가 조용히 지켜보기로 결정한 사이.
다시 자신의 막사로 돌아온 추굉심의 얼굴은 썩 밝지 않았다.
그는 몰래 사람을 붙여 취사군의 동태를 감시하도록 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자 또 다른 유언비어가 흘러나왔다.
대단한 소문은 아니었고 진양과 추굉심의 사이가 썩 좋지 않다는 내용의 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추굉심은 얼마 지나지 않아 소문을 퍼뜨린 자를 잡아들였다.
소문을 퍼뜨린 건 취사군 내의 말단 졸병이었다.
나이도 별로 많지 않고, 실력도 약하고, 재능도 없고, 처음으로 전장으로 나선 그야말로 애송이였다.
소문을 퍼뜨린 자를 잡았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추굉심은 부하들을 데리고 취사군 막사로 우르르 몰려갔다.
“전하, 유언비어를 퍼뜨리던 자를 붙잡았습니다. 허나 혼자 판단을 내리기엔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전하와 함께 이 자를 심문하여 배후에 어떤 자가 있는지 알아보려고 합니다.”
“추 대인, 이미 모든 권한을 다 넘기지 않았습니까? 그냥 알아서 처리하면 됩니다.”
“아닙니다. 전하, 제가 어찌 감히 그럴 수 있겠습니까?”
추굉심이 바깥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끌고 와라!”
말이 끝나기 무섭게 스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앳된 얼굴의 병사가 하나 끌려왔다.
겨우 삼원 경지밖에 되지 않는 젊은 병사의 얼굴엔 공포가 가득했다.
그는 잔뜩 겁에 질린 채 곧장 이마를 바닥에 찧었다.
“저, 전하. 저는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어찌 감히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전 정말로 아무 소문도 퍼뜨리지 않았습니다.”
가희와 진양의 미간이 동시에 찌푸려졌다.
두 사람 다 그를 알아본 것이다.
그는 취사군 내에서도 매우 소심하고 조용한 편이었는데, 감히 누구에게 원한을 사거나 할 만한 인물은 절대 아니었다.
이런 사람이 무슨 담으로 유언비어를 퍼뜨린단 말인가?
그러나 그의 말을 들으며 진양은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놀라서 정신이 나간 건지, 아니면 일부러 저러는 건지…….’
현재 가희는 요양 중이라 군 내의 모든 사무를 추굉심에게 넘긴 상태다.
그런데 저 녀석, 가희에게만 억울하다고 하고 옆에 있는 추굉심은 깨끗하게 무시하고 넘어간 것이다.
“건방진 놈!”
추굉심이 일갈했다.
“끝까지 궤변을 늘어놓는 걸 보니 형벌을 내리지 않을 수 없구나!”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양옆에 큼직한 쇠몽둥이를 든 병사들이 다가와 병사를 찍어 눌렀다.
“누가 네게 이런 짓을 하라고 사주한 것이냐! 당장 불지 못할까!”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몇 대 맞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살이 너덜너덜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병사의 비명은 점점 더 미약해져 가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골로 갈 것 처럼 위태로운 상황 가운데 추굉심이 힐끔 가희의 눈치를 보며 계속해서 병사에게 물었다.
“누가 지시한 거냐! 당장 불라니깐!”
그의 하반신은 이미 피떡이 되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는 간신히 고개를 들어 가희의 뒤에 있는 진양을 쳐다보았다.
“진 대인…….”
이 말을 마지막으로 그는 머리를 떨군 채 숨을 거두었다.
진양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이런 제기랄!’
차라리 가희라고 했으면 문제 될 건 없다.
어차피 추굉심은 믿지도 않을 것이고, 설령 믿는다고 해도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양을 지목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추굉심은 곧바로 가희 뒤에 있는 진양을 노려보며 외쳤다.
“잡아들여라!”
“추 대인, 같은 말을 두 번 반복하고 싶진 않습니다.”
가희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진양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매섭게 추굉심을 노려보았다.
“이번 일은 저와 제 사람들과는 추호도 관계없는 일입니다.”
“전하, 송구하오나 누군가 증언을 한 이상 제대로 조사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소인의 책임이자 의무니까요.”
추굉심의 태도는 매우 강경했다.
이대로 진양을 데려가지 못한다면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 듯한 기세였다.
진양은 한숨을 푹 쉬었다.
누군가 뒤에서 일부러 추굉심과 가희를 정면으로 맞붙게 만들기 위해 일을 꾸미고 있는 게 확실했다.
현재 추굉심의 상태로 보아 더 이상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눈앞에 벌어진 일이 사실일 것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희와 크게 틀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진양을 잡아가려고 하는 것이다.
반대로 가희는 절대로 추굉심이 진양을 데려가도록 놔두지 않을 생각이었다.
만약 이대로 두 사람의 사이가 틀어진다면 군영 내에는 큰 혼란이 일어나게 된다.
비록 가희가 한때는 전설로 불리던 존재인 건 맞지만 아직 군대를 이끈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 단순히 이 점 하나만으로 병사들이 완벽하게 명을 따르도록 만들 수는 없었다.
하지만 추굉심은 병부 상서다.
그 아래 분명 그를 진심으로 믿고 따르는 장수와 병사들이 있을 터.
분위기가 점점 험악해지자 진양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가희에게는 안심하라는 듯 눈빛을 보낸 뒤 추굉심을 쳐다보았다.
“추 대인, 제가 한마디만 해도 되겠습니까?”
“이제 와서 무슨 할 말이 있단 말이냐? 뭐, 자백이라도 하겠다는 것이냐?”
진양은 대답 대신 바닥에 누워있는 시신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시신에 손을 얹었다.
습득 능력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역시…….’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전 이 사람이 누군지도 모릅니다. 이름도 모르고, 마주쳐본 적도 없고, 그저 취사군 내에서 가장 담이 작은 병사라는 사실 밖에 모릅니다.”
“그게 지금 상황이랑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냐?”
“당연히 상관있죠. 이렇게 소심하고 담 작은 녀석이 어떻게 감히 그런 유언비어를 퍼뜨릴 수 있었을까요?
좋습니다. 제가 이 녀석에게 사주했다고 쳐보도록 하죠. 그럼 제가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이 소심하고 담 작은 녀석에게 감히 그런 유언비어를 퍼뜨리도록 용기를 불어넣을 수 있었을까요? 스스로도 결국은 죽게 될 걸 잘 알고 있었을 텐데 말이죠.”
추굉심은 미간을 찌푸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진양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진 대인이라는 호칭. 이곳에 온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그런 호칭은 처음 들어보는군요. 취사군 내에 있는 사람 중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시지요. 평소에 다들 저를 어떻게 부르는지 말입니다. 죽은 이 녀석, 아무리 신참이라곤 해도 이곳에 온 지 한 달은 되었을 텐데, 아직까지 제 호칭을 모른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게다가 전하께서는 얼마 전에 군영 내에 있는 첩자들을 대부분 소탕하셨습니다. 그 이후로는 모든 권한을 추 대인께 넘겨드렸으니, 새로 온 신참들이 어떤 사람인지는 추 대인께서 가장 잘 알고 계시지 않겠습니까?
추 대인, 이미 단단히 작정을 하고 오신 걸로 봐선 사건의 진상과는 상관없이 이미 이 일을 전하께서 저지른 일로 단정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게다가 이름조차 모르는 한낱 신참의 말만 믿고 저를 잡아가려 하시다니.
좋습니다. 정 그렇다면 잡아가시지요. 원하는 대로 고문도 하시고, 죄도 뒤집어씌우시고, 보잘것없는 이 목숨 가져가셔도 좋습니다.
그런데, 그다음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죠? 절 죽이고 난 다음은 전하를 노리실 건 아닌지요? 아니면 폐하께 상주문을 올려 전하를 고발하기라도 하실 건지요?”
진양은 추굉심으로 앞으로 다가와 나지막한 목소리로 한마디 덧붙였다.
“추 대인, 벌써 잊으셨습니까? 대인께서 처음 오셨을 때, 전하께선 마음만 먹었더라면 과거의 상처가 다시 일어난 것과는 상관없이 간단하게 대국을 장악하실 수 있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