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660
660화 놈을 죽여라
진양은 적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흑옥 신문에 선 채로 적이 나오기를 한참을 기다렸으나 적은 나타나지 않았다.
‘꽤 신중한 녀석들인 모양이군.’
상당한 거리에서 공격을 가한 것도 그렇고, 공격이 실패했음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니.
흑옥 신문에 드러났던 갈라진 흔적들은 진작 사라지고 없었고, 응룡 조각상도 눈을 감은 채 잠든 모습이었다.
상대는 아마 오래전부터 진양을 쫓아다니며 백리칠을 찾아내기만을 기다렸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이토록 그의 능력을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알 수 있는 건 추격자의 정보력이 상당하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한때 백리칠이 유령호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뿐만 아니라 진양과 백리칠의 사이가 매우 가깝다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분명 특별한 방법으로 백리칠을 찾아낼 것이라고 판단을 내리고 진양을 쫓아다닌 것이 확실했다.
어쩌면 진양의 곁에 있는 강력한 실력을 가진 첩신호위 묵양이 사람이 아니라는 것까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까 날아왔던 화살이 모든 것을 증명한다.
환우궁(幻羽弓), 그리고 살신전(殺神箭).
이것들은 전도(箭道)의 고수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이다.
환우궁은 모든 것을 꿰뚫고 목표물을 명중시키는 신통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방어나 법보 등만 뚫고 사람은 뚫지 못한다.
살신전에 대해서는 일전에 청란에게 들은 적이 있다.
살신전은 신조 내에서도 금기시된 살인 무기로 제작 방법이 상당히 복잡하다고 한다.
제작 비법은 기밀 중에서도 기밀로 여겨지는데, 신조 공부에서는 심지어 단독으로 공방을 둘 정도다.
그곳에서 일하는 연기사들은 외부인과는 거의 접촉하지 않는다고 한다.
살신전은 재고 물량까지 엄격하게 관리가 되는 무기로, 신조 내에서는 거의 조정을 제외하고는 소지가 불허된다고 보면 된다.
만약 다른 세력이 이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밝혀진다면 그날로 그들은 신조에서 영원히 지워지게 된다.
어쨌든 이건 상당히 위험한 물건이다.
어느 정도 수준을 갖춘 전도 강자가 이것을 사용할 경우 수천 리도 더 떨어진 목표물조차 순식간에 명중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살신전은 서려 있는 힘이 다할 때까지 멈추지 않고 날아가 목표물의 숨통을 끊어놓는다.
과거 초조가 멸망을 앞두고 있을 때, 그들은 마지막으로 남은 모든 힘을 끌어모아 살신전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대영 신조와의 마지막 전투에서 초조의 한 전도 강자가 수명까지 불태워가며 이것을 쏘았다고 한다.
쏘아진 화살은 무려 사만팔천 리나 떨어진 영제에게로 날아갔다.
그렇게 날아간 화살은 무려 여덟이나 되는 도궁 강자와 셋이나 되는 도궁 강자의 법상, 그리고 세 개의 최상급 법보를 뚫고도 영제의 가슴에 명중했다.
다행히 영제는 상당한 실력자였기 때문에 그대로 살신전의 힘을 받아내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피부만 조금 뚫린 작은 부상이었으나, 이는 만 년 이래 영제가 입은 유일한 부상이었다.
현재 대영 신조에 보존된 살신전 제조법은 원본과는 달리 초조에서 빼앗아온 공법을 기반으로 해서 다소 개량시킨 제조법이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신조 내에서는 금기시되는 물건이 되었다.
심지어 대외적으로 전투를 벌일 때조차 거의 사용하는 경우가 없다.
그나마 이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곳은 대영 신조의 천궁(天穹, 하늘. 여기선 ‘하늘을 수호하는 자’라는 의미로 쓰임) 순천사들이다.
살신전은 강력한 살상력을 가진 법보지만 일회용은 아니다.
목표를 죽인 이후로도 힘을 모두 소진하지 않는 이상 그 자리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살신전을 소모품으로 사용하는 조직은 순천사뿐이다.
외역의 사마와의 교전에 사용되는 살신전은 전부 소모품으로 사용된다.
한번 쏘아지면 높은 확률로 힘을 모두 소모하게 되기 때문에 회수가 상당히 어렵다.
그러므로 살신전은 오직 순천사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다른 곳에서는 발각될 확률이 너무 높고, 만약 발견된다면 영제의 손에 죽게 되기 때문이다.
영제는 자신의 신변 안전에 대해 상당히 민감한 사람인 만큼 다른 황제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만약 과거에 맞았던 살신전이 영제와 동급의 강자가 쏜 화살이었다면, 설령 운 좋게 살아남는다고 하더라도 지금까지도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며 요상에 힘을 쏟아야만 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한숨이 나왔다.
순천사라니!
진양이 잘못 알고 있는 건 아닐 것이다.
단순히 청란만 이런 얘기를 했다면 가볍게 듣고 넘겼을 것이다.
머리보단 힘을 중시하는 사람이라 썩 믿을만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란조차 같은 얘기를 하는 걸 듣고 나서야 믿게 되었다.
이번 일에 순천사까지 끼어들게 되다니.
사실 크게 놀랍진 않았다.
살신전을 구해온 자는 애초에 뒷일은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설령 상대가 이 사실을 알았거나 자신도 이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걸 안다고 해도, 순천사에는 가희의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다.
한발 물러서서 생각해 본다고 해도, 설령 진짜 가희의 사람이라 하더라도 굳이 진양의 체면을 생각해 줄 이유는 없다.
백리칠만 찾고 나면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알았다.
그러나 살신전까지 나타난 이상 이번 일은 결코 쉽게 끝날 일은 아닌 듯했다.
만약 흑옥 신문이 말도 안 될 정도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었다면 백리칠은 진양의 눈앞에서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설령 진양이 육신으로 막아선다고 해도 말이다.
수천 리를 날아온 살신전이 마치 허상을 뚫고 지나가듯 묵양을 관통하는 순간 진양은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시 느껴졌던 힘은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묵양을 제외하고 모두를 죽일 수 있을 만큼 강력했었다.
돌이켜 생각해봐도 등골이 오싹했다.
한참 생각에 잠겨있을 즘.
묵양이 굳은 표정으로 다시 돌아왔다.
“미안……. 놓쳤다.”
“어쩔 수 없지. 애초에 이런 수단까지 쓸 사람이었다면 도망갈 길까지도 마련했을 테니까. 그래도 언젠간 찾게 될 거야. 대황 전체를 통틀어봐도 이 정도 수준까지 전도를 익힌 사람은 몇 없을 테니까.”
진양은 묵양을 다독여주었으나, 묵양은 여전히 표정이 굳어있었다.
첩신호위로서 이런 일이 두 번이나 발생하고 나니 수치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상대는 아마 전도로 상당히 명성을 떨치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가 전도의 고수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몇 없을지도 모른다.
대황에 검도 고수는 사방에 널려있다 할 정도로 많이 있다.
그러나 전도는 아니다.
도궁 경지에만 올라도 동급의 검도 강자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명성과 인정을 받는다.
그도 그럴 것이 진정한 전도 고수는 그보다 훨씬 더 강한 검도 고수보다 더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진양도 두려운 건 마찬가지였다.
얼굴조차도 모르는 사람이 수천 리 밖에서 화살로 자신을 죽일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한편 묵양은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사방을 날카롭게 살피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경계심 바짝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긴장 풀어. 어차피 더 이상은 공격해오지 못할 거야. 제 아무리 대단한 명사수라 하더라도 스스로의 위치가 탄로 나게 된다면 그건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으니 말이야.”
묵양은 아무 말 없이 비주로 올라갔다.
그리고 배에 달린 뚜껑을 열고 여러 잡동사니를 쏟아냈다.
그다음 자신의 다리를 떼어 그것을 인형으로 만든 뒤 비주를 개조하기 시작했다.
속도가 빠른 것만 빼면 평범한 비주와 다를 게 없는 모습이었으나, 묵양과 새로 만들어진 인형들의 개조 작업으로 많은 것이 바뀌기 시작했다.
하얗고 매끄럽던 표면은 새까맣고 광택 없는 모습으로 바뀌었고, 그 위로 빼곡한 부문이 겹겹이 깔렸다.
그러자 비주에서 이전과는 다른 묵직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모든 개조를 마친 뒤 묵양은 자신의 발가락을 하나 뽑아 비주에 꽂아 넣었다.
“이젠 안전할 거야. 나와 비슷한 경지를 가졌거나 그보다 높은 경지를 가진 게 아닌 이상 절대로 쉽게 뚫고 들어오진 못할 거야.”
“신경 쓰지 마. 아무리 높은 경지에 오른 고수라도 모든 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나중에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때 복수해도 늦지는 않으니까.”
묵양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긴 했으나, 수치스러운 기분을 떨쳐내는 건 쉽지 않았다.
진양은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너무 낙담하진 말고. 대신 상대를 죽여도 좋으니 시신만은 남겨줘. 그 정도는 어렵지 않겠지?”
“물론이지.”
“그리고 조금 이따 왕덕복에게도 감시 수단을 심어줘. 인형을 붙여도 좋고, 다른 수단도 상관없으니 우리가 녀석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만 있으면 돼. 대신 아무도 모르게 몰래 해야 해. 가능하겠어?”
“그 정도야 어려울 것도 없지.”
진양은 흡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묵양과 대화할 때는 굳이 쓸데없이 말을 장황하게 할 필요가 없어서 편했다.
그야말로 척하면 척이었으니 말이다.
진양은 일행들과 함께 선실로 돌아왔다.
이어서 왕덕복과 유모자를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비록 살인을 즐기는 건 아니지만, 이번만큼은 이유 불문 네놈들을 죽이지 않은 게 후회가 되는구나.”
진양은 의자를 가져와 앉으며 차가운 눈빛으로 유모자를 노려보았다.
“방금 정체 모를 강자의 습격을 받았다. 환우궁과 살신전을 쓴 것 같은데, 내가 찾으려던 교인이 놈들의 화살에 맞아 죽었다.”
왕덕복과 유모자의 얼굴은 곧장 사색이 되었다.
유모자는 황급히 바닥에 엎드리며 해명했다.
“대인, 저는 정말 아무것도 모릅니다. 홍희 상회에 두 명의 도궁 강자가 있다는 건 알지만, 단 한 번도 그들이 전도를 익히는 건 본 적이 없습니다.”
진양이 손짓으로 묵양을 불렀다.
“난 함부로 무고한 사람을 죽이지는 않는다. 묵양, 가서 왕 장거는 풀어주고 오도록 해. 이 일은 왕 장거와는 아무 상관 없어.”
묵양이 왕덕복을 데리고 선실 밖으로 나갔고, 진양은 무릎을 꿇은 채 겁에 질려있는 유모자를 노려보았다.
“이제 내 첩신호위는 이곳에 없다. 남은 건 어린아이 하나와 신해밖에 되지 않는 부하 한 사람뿐. 마지막으로 발버둥 칠 기회는 지금뿐이다. 어떻게 하겠느냐?’
“대인, 저는 정말로 아무것도…….”
“흑피, 놈을 죽여라.”
진양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뒤에서 흑피가 일어났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표정과 함께 침을 뚝뚝 흘리며 유모자에게 달려들었다.
유모자는 그대로 얼어버렸다.
흑피가 포효와 함께 달려들자 유모자는 곧바로 방어 공법을 펼쳤고, 은은한 빛이 피어오르며 세 겹의 막이 생겨났다.
이어서 흑피의 손이 무시무시한 파공음을 내며 방어막을 스쳐 지나갔다.
과하게 힘을 많이 쓰는 바람에 흑피의 손목은 그대로 부러져버렸다.
하지만 흑피는 멈추지 않고 곧장 방어막을 깨물었다.
방어막에서 빛이 번쩍이며 버텨내곤 있었지만 오래 버티진 못할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