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704
704화 과연 예상대로
멀리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아주 먼 곳에서부터 빠르게 밀려오는 듯한 그런 소리였다.
그때, 진양의 뒤에 있던 석벽에서 붉은 선혈이 흘러내렸다.
흘러내린 선혈은 한곳으로 모여 졸졸 흐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눈 깜짝할 사이에 거대한 강을 이루며 어느새 파도까지 치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흘러내린 핏물이 한 곳으로 흐르며 거대한 파도를 만들어냈고, 사방에서 진양을 향해 몰려들었다.
파도가 치며 튀어 오른 물방울이 진양을 향해 날아왔다.
물방울은 진원의 보호를 완전히 무시하며 뚫고 들어왔다.
물방울이 피부에 닿자 마치 맹독에 닿은 것처럼 피부가 썩어들어갔다.
그러나 거기서 그치지 않고 다른 곳까지도 퍼져나갔다.
진양은 곧바로 이화접목 신통력을 사용했다.
다행히 독이 온몸을 타고 흘러가는 건 멈췄다.
그러나 처음 물방울이 튄 곳은 여전히 썩어들어가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육신으로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육신으로 한참을 버티고 나니 물방울의 힘이 사라지며 살이 썩는 것도 멈추었다.
진양의 팔뚝에는 이미 손가락만 한 구멍이 여러 개나 뚫려있었다.
심지어 일부 구멍에선 새하얀 뼈까지 드러나기도 했다.
겨우 물방울 몇 방울 튀었을 뿐인데도 이 정도 위력이라니.
눈앞에 넘실거리는 파도를 보니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물론 사방에 넘실거리는 핏물을 전부 해안에 넣어버리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이것들을 해안으로 흘려보내기 위해선 먼저 육신이 버텨줘야만 한다.
때문에 해안으로 흘려보내는 방법은 포기해야만 했다.
괜히 호기롭게 덤벼들었다간 눈 깜짝할 사이에 온몸이 녹아내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목씨 가문의 시험이다.
거대한 진법으로 후손들을 시험하는 것.
혹은 후손이 아닌 외부인을 시험하는 것.
이것을 통과하는 자는 살아남을 것이고, 통과하지 못하는 자는 죽을 것이다.
“귀찮아 죽겠군!”
진양은 성낙진판을 꺼냈다.
그리고 진법을 펼쳐 넘실거리는 파도를 먼저 밖으로 밀어냈다.
성낙진에서 별빛이 반짝였다.
보라색 달이 떠오르며 강렬한 빛을 뿜어냈고, 진법의 힘이 만들어지며 넘실거리는 붉은 파도와 맞붙기 시작했다.
진법 내에서 바라보니 별이 뜬 하늘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마치 별의 강이 빠른 속도로 하늘을 따라 흐르며 빛을 내뿜고 있었고,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진양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두 진법이 서로 맞붙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진법을 파훼할 수 있을까?’
진양은 목씨 가문의 사람이 아니다.
심지어 바깥에 있는 진법이 어떤 진법인지조차도 모른다.
눈앞에 있는 피의 파도가 무엇인지, 진법의 내핵은 무엇인지도 전혀 아는 게 없다.
심지어 진법의 형상이나 부문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진법을 파훼하는 건 무리다.
이런 종류의 진법은 현재 진양의 진도 수준과 실력만으로 파훼하기엔 무리다.
진법의 내핵에 대해 알아보려면 일단은 파도를 버텨내야만 한다.
그러나 그것부터가 일단 불가능하다.
붉게 물든 바다는 겉보기에는 피로 만들어진 바다인 것처럼 보이지만 피비린내는 조금도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사도의 냄새가 나는 것도 아니었다.
다소 악랄하고 가혹하긴 했지만 진법인 건 확실하다.
진법이 성낙대진과 오랜 시간 대치하고도 멀쩡한 걸로 보아 아마 지맥과 땅의 기운과 이어져 있어 끊임없이 힘이 솟아나는 듯했다.
성낙대진에는 상고의 부서진 달이 진안으로 끼워져있다.
때문에,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힘이 솟아나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아마 만 년이 지나도 승부가 갈리지 않을 것이다.
물론 진양이 직접 성낙대진을 펼쳐 힘으로 눈앞에 펼쳐진 혈해대진(血海大陣)을 눌러버리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강제로 부수는 건 결코 답이 아니다.
애초에 그런 식으로 뚫고 가도록 설계된 시험은 아닐 것이다.
괜히 그랬다간 국물도 못 건지도 쫓겨날지도 모른다.
만 년 전의 사람이 꾸며놓은 수에 넘어간 것도 분해 죽겠는데 여기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나간다면 더욱 미칠 것만 같았다.
두 진법이 서로 맞부딪치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번쩍이며 일어나는 빛마다 무한한 현묘함을 품고 있었다.
혈해대진은커녕 스스로의 성낙대진조차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성낙대진의 진안과 진기(陣基)에는 상고의 부서진 달 외에도 한 무더기의 보물로 만들어진 별빛들이 있다.
그것들의 현묘함은 진양이 전부 깨달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단순히 사용하는 것이 전부일 뿐이다.
한참을 살펴보았으나 여전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진양은 진법 가장자리로 향했다.
바깥에서 넘실거리고 있는 피의 바다를 바라보며 진법의 형상 뒤의 내용을 파악해보고자 했다.
한참 뒤.
진양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아무래도 방법을 바꿔야 할 듯했다.
아무래도 정공법으로 나가기엔 효율이 너무 떨어졌다.
단순히 살펴보기만 하다간 천 년이 지나도 답이 없을 듯했다.
설령 정공법으로 파훼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진법 안으로 들어가 깨닫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그렇게 방법을 바꿔보고자 했으나 여전히 진양의 실력으로는 혈해의 힘을 버텨낼 수 없다는 문제에 부딪혔다.
진양은 곰곰이 생각했다.
실력 문제는 일단 단기간 내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굳이 혈해를 몸으로 버틸 필요는 없다.
현상을 뚫고 본질을 찾는다.
현재 진양에게 필요한 건 혈해가 자신에게 피해를 입히지 못하도록 하는 것.
혈해 자체를 어딘가로 옮겨버리거나 혹은 삼켜버린다면 더 이상 혈해로 인한 피해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여기까지 생각한 진양은 흑옥 신문을 소환했다.
그리고 그것을 혈해를 향해 던져버렸다.
치이이익-
흑옥 신문은 혈해에 완전히 잠겼고 혈해는 부글거리며 끓어올랐다.
그리고 잠시 뒤.
아무 일도 없던 듯 혈해는 원래의 모습을 돌아갔다.
흑옥 신문은 멀쩡했다.
하지만 혈해를 삼키진 못했다.
예상대로 혈해는 단순히 음험하고 사악한 힘들이 모여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었다.
겉보기와는 다르게 말이다.
진양은 덤덤한 표정으로 흑옥 신문을 다시 거둬들였다.
흑옥 신문이 훨씬 더 강화되었어도 상관없다.
어차피 거기서 거기였으니 말이다.
아무런 효과가 없어도 마찬가지다.
원하는 결과는 이미 얻었다.
동술로 혈해의 형상을 꿰뚫어 볼 수 없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혈해 자체가 진법의 힘에 의해 만들어진 환상 같은 게 아닌 진짜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물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훨씬 더 간단해진다.
진양은 진법 밖으로 손을 뻗어 물 안으로 손을 넣었다.
단단한 천금이라도 녹여버릴 듯한 강렬한 힘이 빠른 속도로 피부와 살을 뚫고 들어왔고 이어서 팔뚝까지도 삼키기 시작했다.
진양은 곧바로 검은 물로 이루어진 사람의 형상으로 변했다.
그러자 피부 표면을 침식해오던 붉은 물은 수신(水身)을 적시기 시작했다.
검은 물로 이루어진 몸은 점점 검붉은색으로 변했다.
이것은 예전에 삼수소체정법을 익힐 때 얻은 연체 공법이다.
꽤 오래전에 얻은 공법이긴 하지만 거의 사용할 기회가 없었다.
육신의 힘이 점점 더 강해지며 공법을 쓸 기회가 점점 더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진양이 이 공법을 익혔던 건 새로운 신통력을 얻기 위한 조건이자 모든 물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영수(靈水)인 천일진수를 얻기 위해서였다.
어쨌든 이 공법을 손에 넣은 뒤로는 물 속성을 가진 것이라면 무엇이든 몸속으로 연화시켜 수신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영수가 가진 신묘함까지 손에 넣을 순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영수를 연화시키면 반드시 그 영수가 가진 피해에 면역을 갖게 된다는 점이다.
진양은 계속해서 물을 연화시켰고, 연화가 진행될수록 수신은 점점 더 검붉은색으로 변해갔다.
이쯤 되자 진양은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혈해를 향해 한 발자국 발걸음을 내디뎠다.
파도가 일렁일 때마다 일어나는 힘이 느껴지긴 했으나 혈해 본연의 힘은 더 이상 진양에게 아무런 피해도 입힐 수가 없었다.
“과연, 피해를 줄이는 것보단 방어를 높이는 게 훨씬 더 잘 먹히는군…….”
진양은 그제서야 성낙진판을 거둬들였다.
그리고 혈해를 걸어 다니며 혈해대진을 조금 더 자세히 연구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혈해대진의 비밀은 한 겹씩 벗겨져 나갔다.
진양의 마음속에도 복잡한 진법의 구조가 하나씩 완성되어갔다.
그렇게 한참 뒤.
진법 도안이 마침내 완성되었다.
그리고 파훼법부터 탈출하는 방법까지 모든 것을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진양이 한 걸음 내딛자 혈해가 거꾸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이어서 한 걸음 더 내딛자 혈해는 사라지고 굵직한 혈하(血河)로 줄어들었다.
그렇게 일곱 걸음을 내디뎠을 무렵 피처럼 붉던 물은 깔끔하게 사라졌고 모든 것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진양의 눈앞에는 비석이 놓여있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처음 서 있던 곳과 정확하게 일곱 걸음 정도 떨어져 있었다.
주변에 가득하던 책장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것들은 애초에 눈속임을 위한 것이었다.
그때, 글씨가 사라졌던 비석 위로 또 다른 글자가 나타났다.
‘홍수진(紅水陣)은 어땠는가?’
글자를 보니 진양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과연 예상대로였다.
무식하게 힘으로 진법을 뚫고 나오거나 박살 내버리는 건 답이 아니었다.
누가 이런 곳을 남긴 건지는 몰라도 상당히 머리를 쓴 모습이었다.
애초에 시험 따위는 없었다.
비석에서 말한 홍수진 그 자체가 바로 목씨 가문의 전승이었던 것이었다.
진도에 정통한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진법을 연구하여 파훼법을 알아내려고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진법 도안을 손에 넣게 된다.
진법 도안을 완벽하게 익히고 나서야 파훼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목씨 가문의 제자들은 이런 방법을 시도했을 것이다.
하지만 외부인이라면 다르다.
보물과 전승에 눈이 멀어 그저 진법을 빠져나올 방법만을 강구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진법을 빠져나온다고 해도 비석에 적힌 글을 보고 허탈함을 느꼈을 것이다.
애초에 이 모든 것이 함정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테니까.
진양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떠났다.
석벽으로 다가가니 석문이 나타났다.
석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니 이번에도 석문은 스스로 닫혔다.
진양은 완전히 닫힌 석문을 힘으로 열었다.
문을 열자 세 면이 석벽으로 되어있는 평범한 석실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곳에는 여러 권의 고서적들이 쌓여있었다.
중간에는 그림이 하나 걸려있었다.
간단히 여인의 뒷모습을 묘사해놓은 그림이었다.
그림을 살피던 진양은 이어서 고서적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일단 습득이 가능한 것이라면 내용에 상관없이 전부 챙기고 보기로 했다.
진양은 마지막으로 하나의 옥간을 놓아둔 뒤 그림을 향해 손을 뻗어 습득 능력을 발동시켰다.
하지만 습득이 불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