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869
869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현재는 죽은 백씨 가문의 가주는 한때 이부 좌시랑이었던 사람이다.
사실 그는 이부 상서로 내정되어있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부족한 경지로 인해 일찍 사망하는 바람에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가주는 죽을 땐 죽더라도 백씨 가문을 위해 무언가는 남겨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죽기 직전 다소 급하게 혼사를 성립시켰다.
주왕의 아버지는 사실 별다른 재능이나 능력이 있던 사람은 아니다.
황족이라는 신분을 제외하면 매우 평범한 사람이었던 것이었다.
그는 백씨 가문의 전임 가주의 손녀를 자신의 아내로 맞이했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 주왕이 태어났다.
주왕의 아버지는 영제의 친손자로, 오래전에 죽은 열일곱 명의 황자들 중 한 사람이었다.
가내 항렬로 따진다면 영제는 주왕의 증조부였던 것.
백씨 가문은 주왕과 관계를 맺게 되었고, 주왕의 명성이 날로 높아지며 자연스럽게 주왕의 뒤로 줄을 서게 되었다.
얼마나 큰 도움을 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성의는 보여야 하는 법이다.
물론 주왕도 백씨 가문에 꽤 큰 도움을 주었다.
현재 주왕은 유일한 태자 후보자가 되었다.
모두가 만족스러운 상황이었다.
영제 역시 그를 태자로 책봉할 의향이 있는 듯했다.
이렇게 되니 자연스럽게 아부를 떨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진양은 차를 마시며 한참 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다.
대국공에게 얻은 그림 속에 그려진 곳이 주왕의 생모의 집이라니.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이렇게 되면 현재로서 유추해볼 수 있는 가장 가능성 있는 가설은 단 하나뿐.
주왕이 대국공과 손을 잡은 이유, 그리고 대국공이 주왕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했던 이유.
그것은 바로 혈맥이다.
이것이 진양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답이었다.
이를 기반으로 생각을 이어나가 보았다.
만약 주왕이 전조 황족의 혈맥을 가지고 있다면?
심지어 전조 대제의 혈맥을 이어받은 사람이라면?
그렇다면 모든 것이 말이 된다.
만약 이 사실을 주왕이 알게 되었다면 선택지는 단 두 가지뿐.
그저 조용히 평범하고 자유로운 황족으로 살아가며 조정의 일에 관심을 두지 않든지, 그게 아니라면 단 한 가지의 길밖에 없다.
물론 태어나기 전에 자신의 태생을 결정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죄가 없어지지 않는다.
이런 혈맥을 가지고 태어난 것 자체가 원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어서 대국공이 대영 신조의 황실 묘지와 대영의 국운을 탈취하려 했던 것, 그리고 고통 분담 등의 작전을 계획했던 것을 떠올려보았다.
상당히 현묘한 계획들이었다.
그러나 이것들은 전부 성공률이 낮은 계획이었다.
여기에 혈맥 가설까지 더하여 생각해 보았다.
전조 황족의 혈맥을 가진 자가 대제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면 국운을 마음대로 건드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되면 대제부터 국운까지 전부 다 전조에게 속하게 되는 것이다.
겉으로는 대영 신조라는 이름을 걸고 있었으나 사실 그 속은 대윤 신조가 되는 것.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필요한 모든 것을 대윤 신조가 갖게 되는 셈이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고통 분담 계획은 사실상 두 부분이었던 것이었다.
생각할수록 등골이 서늘해졌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생각해낼 수 있는 건 진양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애초에 이와 관련된 정보조차 없으니 말이다.
게다가 주왕의 아버지가 아무리 평범한 사람이었다곤 해도 어쨌건 황족이자 영제의 친손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영제는 신경 쓰지 않을지 몰라도 다른 사람들은 아니었다.
황족이 자신의 반려자를 선택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인 만큼 결코 대충 할 순 없었던 것.
아마 백씨 가문은 위부터 아래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조사를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런 문제가 없기에 혼사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현재 진양의 손에는 새로운 정보가 들려있다.
심지어 직접 백부 안까지 들어가서 족보를 뒤져보기까지 했었다.
무려 삼백십삼 대에 걸쳐 작성된 족보를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살펴보았으나, 아무리 살펴봐도 전조와의 연관성은 털끝만큼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물론 전조와 어느 정도 관련이 있는 사람이 있긴 했지만, 이들을 하나씩 전부 대조해서 살펴보자니 다소 억지로 끼워 맞추는 느낌이 강했다.
진양은 한숨을 푹 쉬었다.
너무나도 단순한 관계다.
조사가 시작되면 숨길래야 숨길 수가 없다.
아무것도 찾지 못하긴 했으나 진양은 오히려 정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혈맥과 전승은 문파와 가문에 속한 수도사라면 매우 중요시 여기는 것이다.
혈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드시 찾아야 한다.
전조가 멸망하던 시대까지 조사를 한다고 해도 반드시 찾아야 한다.
다만, 조사할 양을 생각해 보니 너무 많았다.
세대가 이어질수록 혈맥 관계는 그물처럼 복잡하게 얽히고설키며 뻗어져 나갔고, 이 모든 걸 살펴본다면 삼만 년 전까지 살펴봐야 할지도 모른다.
여기에 중간에 대가 끊어진 자들까지 전부 더한다면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수에 이르게 된다.
진양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생각을 날려버렸다.
일단 이쪽에는 희망을 갖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영석과 자신에게 필요하지 않은 자원은 넘쳐난다.
부하들에게 일을 맡기고 적절한 보상을 쥐여주면 그만이다.
일단 시간과 힘을 많이 소모하는 일에만 집중할 때가 아니다.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형, 설마 또 저를 죽이시려는 겁니까?”
장정의는 잔뜩 울상이 되어있었다.
“정의야, 그런 식으로 말하면 이 사형이 상당히 서운하단다.”
갈수록 정의를 속이는 것이 어려워지고 있었다.
이건 별로 좋은 현상이 아니었다.
지금 진양이 퍼뜨리려는 헛소문은 후일을 위해 미리 발판을 깔아두는 것이다.
그러므로 절대로 자신이 헛소문의 발단이라는 사실이 발각되어선 안 된다.
이미 대국공이라는 좋은 견본이 있다.
불필요한 입을 하나 더 늘리면 훗날 허점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오게 되어있다.
그러니 깔끔하게 죽이는 게 가장 완벽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으로서 이런 방법을 쓸 수 있는 건 장정의 한 사람뿐이다.
물론 장정의를 써먹으려는 건 단순히 이런 이유 하나 때문이 아니다.
진양이 전도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남은 묘지기도 발각될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장정의는 이미 이곳에서 오랜 시간을 활동했기 때문에 이미 누군가에게 주목을 받고 있을 확률이 상당히 높았다.
진양 혼자 발각되는 건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헛소문이 퍼져나간 뒤 누군가 그것을 진짜로 여기고 장정의까지 끌어들이게 되면 더 이상은 발을 뺄 수가 없게 될지도 모른다.
설령 묘지기 몽의가 아직 살아있긴 하지만, 현임 전도인이 죽어버린 이상 후계자를 아직 물색해두지 않았을 리가 없다.
진양과 가까운 사이이면서도 무덤 도굴을 좋아하는 사람.
그건 장정의 한 사람뿐이다.
게다가 몽의는 장정의에 대한 걱정이 매우 컸다.
혹여나 장정의의 비밀이 밝혀진다면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이건 진양이 찾아낸 신분을 완전히 세탁할 수 있는 방법 중에서도 가장 쉬운 방법이다.
아무리 못미덥고 못마땅해도 어쨌든 정의는 진양과 같은 편이다.
누군가에게 붙잡혀가는 걸 그냥 두고만 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아예 한 번에 모두 처리해버리고자 했던 것이었다.
매도 먼저 맞는 놈이 낫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괜히 꼬투리 잡히고 나서 뒤늦게 대응하는 것보단 자신이 먼저 선수를 치는 것이 훨씬 낫다.
진양은 잔뜩 울상이 되어있는 장정의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그냥 우리 두 사람에게 다소 귀찮은 일이 생겨서 미리 말해주는 것뿐이라고. 그래야 이유라도 알고 죽을 테니 말이야.”
“귀찮은 일이요?”
장정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래. 믿기진 않겠지만 내가 전도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거든.”
“네?”
장정의는 입을 쩍 벌렸다.
도저히 상상조차 못 했던 일이었다.
‘저 철저한 인간이 자신의 정체를 들키다니. 말도 안 돼!’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물론 아직 확실한 증거는 없겠지만, 이미 냄새를 맡은 이상 머리부터 꼬리까지 전부 다 파헤치려고 들 거야.
너도 알다시피 도문에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은 두 사람이 있지. 그중 한 사람인 내가 발각된 거야.
사실 이건 큰 문제가 될 것도 없어. 이미 이럴 걸 예상하고 만반의 준비를 마쳤거든.
하지만 넌 다르잖아. 만약 네 정체까지 탄로 난다면 죽고 싶어도 못 죽는 상황에 빠지고 말 거라고.”
장정의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사형, 그럼 이번엔 어떻게 죽으면 되겠습니까?”
“이번엔 고생을 좀 할 거야. 그래도 남에게 붙잡혀서 죽고 싶어도 못 죽는 상황에 빠지는 것보단 낫잖아. 안 그래?”
진양은 품속에서 기이과를 하나 꺼내 장정의에게 주었다.
“일단 먹어. 몸보신부터 하도록 해. 이번엔 상당히 처참하게 죽어야 될 거야. 시신은커녕 영혼까지도 완전히 깔끔하게 사라지도록.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말이야.”
장정의의 표정이 한층 더 딱딱하게 굳었다.
진양이 먼저 선의를 베푼다는 건 그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장정의는 일단 기이과를 꿀꺽 삼켰다.
“자, 여기 완벽하게 죽을 수 있는 공법 몇 개를 준비해놨거든. 천천히 한 번…….”
진양이 장정의에게 자살 공법을 꺼내주려는 순간.
장정의가 그를 말렸다.
“사형, 그렇게까지 하실 것 없습니다.”
장정의가 씨익 웃으며 손가락 두 개를 펼쳤다.
“그런 거라면 스무 개 정도 이미 가지고 있거든요. 그중에 세 개는 신통력이고, 여덟 개는 보술(寶術)이랍니다.”
“…….”
진양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미리 준비해둔 옥간을 장정의에게 찔러주었다.
“공법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손해될 건 없잖아. 이건 내가 특별히 신경 써서 힘들게 구한 것들이란 말이다. 심지어 일부는 이미 실전된 공법도 포함되어있지. 어디 가서 구하려고 해도 절대 구할 수 없는 그런 거 말이야.”
장정의는 조용히 옥간을 받아들었다.
왠지 자신이 말실수를 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든 것이다.
징그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걸 보니 만약 여기서 거절했다간 분명 맞아 죽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정의는 옥간을 받아든 채 조용히 진양의 계획에 귀를 기울였다.
* * *
일주일 후.
조성 백씨 가문의 묘지가 누군가에 의해 도굴을 당했다.
그러나 어딘가 이상했다.
명기(冥器)들도 그대로였고, 심지어 누군가 묘지를 부순 것도 아니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상당한 도굴 실력을 가진 자가 접근하여 도굴을 한 듯했다.
어찌나 깔끔했는지 도굴을 당하고 하루가 지나고 나서야 이곳의 묘지기가 도굴당했다는 사실을 발견할 정도였다.
어쨌든 겉보기엔 모든 것이 멀쩡했다.
그러나 단 하나, 시조의 묘비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