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890
890화 뒷북치지 말고 미리미리 좀
며칠 뒤.
진양은 북방 국경지대의 어느 황무지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대영과 대연 사이에 있는 완충지대에서 주위를 순찰하고 있던 수도사가 이 모습을 보고 말았다.
진양이 무슨 목적으로 이곳에 나타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대영을 벗어나 북쪽으로 가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이 사실은 곧바로 위흥조에게도 전해졌다.
정보를 입수한 위흥조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진양은 명목상 관직에 앉아있긴 했지만, 자신의 행동에는 전혀 제약을 받지 않는 그런 존재였다.
물론, 이건 진양에게만 주어진 특혜는 아니다.
다른 관리들도 평소에는 행동에 그 어떠한 제약도 받지 않았으니까.
수도사로서 천하를 누비고 다니는 건 매우 정상적인 일이다.
그러다 무언가 깨달음을 얻으면 조용히 폐관에 들어가 수행을 하는 것도 크게 이상할 게 없는 일이다.
신조 사람들의 업무 효율이 극도로 낮은 건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이런 상황을 모두 이해해 주고 넘어갔기 때문이다.
때문에, 진양이 대연으로 향하는 걸 의아하게 여기면서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대수롭지 않은 소식으로 여기며 대제에게도 보고하지 않았다.
위흥조는 보고하러 온 부하를 물린 뒤, 곧바로 밖으로 나가 옥련에 올랐다.
옥련에 올라 문을 닫는 순간.
위흥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눈앞이 번쩍이며 옥련의 사방의 벽에서 검은 쇠사슬이 튀어나와 눈 깜짝할 사이에 옥련 내부를 꽁꽁 싸맨 것이다.
누군가 차탁 앞에 앉아 여유롭게 차를 마시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차를 마시는 자세 그대로 사방에서 튀어나온 쇠사슬에 의해 사지가 속박이 되어 있었다.
위흥조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진 대인, 또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것이오?”
“대인,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손님을 이런 식으로 접대하는 법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남의 옥련에 몰래 숨어들고도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시오? 목숨이 붙어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시오.”
위흥조가 손을 한 번 휘젓자 쇠사슬은 빛무리가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위흥조는 맞은편에 앉아 진양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듣기만 해도 짜증이 올라오는 목소리, 그리고 기운.
누가 봐도 진짜 진양이 확실했다.
“이제 막 대연으로 갔다는 소식을 입수한 참이었는데. 이젠 나의 옥련에 나타나다니. 말해 보시오. 이번엔 또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게요?”
“대인, 전조 세력이 계속해서 저희를 노리고 있다는 건 분명 알고 계실 겁니다. 그런데,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으실 셈입니까? 놈들이 정신 못 차리고 있는 틈에 우리가 먼저 찔러서 밖으로 끌어내야죠.
그리고 무슨 일을 꾸민다뇨. 일개 우시랑밖에 안되는 저조차 매일 전조 녀석들을 뿌리 뽑을 생각에 잠도 못 자고 있는데, 정천사의 수장이신 위 대인께선 무엇을 하고 계신지요?
아무것도 안 하면서 오히려 저를 의심하시다니. 이건 너무한 거 아닙니까?”
진양은 억울하다는 듯 호소했다.
위흥조의 미간이 한층 더 찌푸려졌다.
진양이 매번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을 때마다 강한 불쾌감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토를 달 여지는 없었다.
진양이 한 말 중 틀린 말은 단 한마디도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놀고만 있는 줄 아시오? 놈들은 이미 오랜 시간 동안 깊숙한 곳에서 자신의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고 있소. 모습을 드러내는 건 기껏해야 잔챙이 몇 놈들뿐. 정작 핵심 인물들은 코빼기조차 보이지 않고 있는데. 무슨 수로 놈들을 치라는 것이오?”
“그래서 제가 찾아온 것 아닙니까? 마침 녀석들을 유인해낼 좋은 생각이 떠올라서 말입니다. 그러니까 협조를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려운 건 아닙니다. 제가 유인한 녀석들을 붙잡아주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뭐, 붙잡을 수 없다면 죽여도 상관은 없지만요.
어떻습니까?”
위풍조가 불신의 눈초리로 물었다.
“놈들을 무슨 수로 유인해낸단 말이오?”
“무슨 수로 유인하긴요. 이미 얘기했었잖아요.”
진양이 미간을 찌푸렸다.
“제 수중에 만법지서가 있다고 했던 거 기억나시죠? 어차피 열지도 못할 거 경매에 올릴 생각이라고 했던 그 물건 말입니다.”
이어서 진양은 옥련 내부를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걱정 마시오. 나의 옥련은 그 누구도 함부로 내부를 엿볼 수 없도록 되어 있으니까.”
진양의 모습을 본 위흥조가 한마디 했다.
진양은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가볍게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두 사람 중간에 한 권의 두터운 황금색 서책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이겁니다. 이 정도면 놈들을 유인하고도 남지 않겠습니까?”
위흥조는 그것을 가져와 자세히 살펴보았다.
열어본 흔적은 없었다.
무엇보다 이것을 열어보기 위해선 열쇠도 필요하지만, 정확한 방법으로 열어야만 한다.
만약 힘을 사용하여 강제로 열려고 한다면 책은 곧바로 스스로 파괴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지난번 만법지서에 대한 얘기를 듣긴 했지만, 그 이후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당장 진양에게 내놓으라고 할 수 없는 것도 있었지만, 아무리 진양이 괴짜라고 해도 영석이나 자원으로 가늠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진 절세보물을 경매에 내놓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편, 위흥조는 진양의 태도에 혀를 내둘렀다.
전승은 세력의 기반이자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제자나 자원 등은 노력을 통해서도 충분히 얻을 수 있지만 전승은 아니기 때문이다.
진양이 정말로 전조 세력에게 깊은 원한을 가지고 있어서 복수를 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대제희를 위해 이러는 것인지.
확실하게 알 순 없었지만 아마 둘 다 맞을 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아마 복수의 목적이 조금 더 클지도 모른다.
이런 엄청난 물건을 가지고 협박을 한다면 전조 녀석들도 어쩔 수 없이 기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게다가 상당히 중요한 물건인 모습을 드러내는 자들도 결코 보잘것없는 잔챙이는 아닐 것이다.
“물론 지금으로선 가장 좋은 방법이긴 하겠지만. 정말로 괜찮겠소? 이리 귀한 물건을…….”
“대어를 낚으려면 그만큼 좋은 미끼를 써야 하는 법이죠. 다만, 겨우 한 마리 낚아 올리자고 비싼 미끼를 쓸 수는 없는 법. 가장 좋은 건 줄줄이 다 건져 올리는 것이겠죠.
이 기회에 부하들에게 철저히 조사하도록 하고, 의심이 가는 자들은 누구든 전부 잡아들이라고 하세요. 전조 대제의 법신의 위치라도 찾게 된다면 저로선 크게 손해 볼 것도 없습니다.”
진양은 한층 더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괴산 거점은 이미 버리고 떠났으니 더 이상 얘기할 건 없을 것 같고. 이제 남은 곳은 몇 곳 없을 겁니다.
남만은 일단 제가 꽉 잡고 있으니 굳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될 것 같고요. 흑림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웬만한 고수들도 앞가림하기 힘든 곳인 만큼 그런 곳을 거점으로 선택했을 리는 없을 테니까요.
사해황막 역시 가능성은 적습니다. 시골맥과 윤전사 외에 다른 강자들이 그곳에 자리 잡고 있다면 분명 눈에 띄었을 테니까요.
동해는 비록 수많은 사람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곳이긴 하지만, 제가 동해에 많은 인맥을 두고 있는 만큼 발각될 확률도 높은 곳입니다. 그러니 아마 동해도 아닐 겁니다.
그렇게 되면 남은 곳은 오직 한 곳, 북쪽뿐이죠.
아마 십중팔구 대연 어딘가에 숨어있을 겁니다.”
위흥조의 표정이 한층 더 심각해졌다.
이런 추측을 전혀 해 보지 않은 건 아니다.
다만, 진양처럼 확신을 하진 못했을 뿐이다.
정천사는 대영 신조 내에서만 힘을 쓸 수 있다.
그러니 국경 밖이라면 아무래도 진양보단 한 수 아래일 수밖에 없다.
진양이 이토록 확신에 가득 차 있다는 건 분명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사전에 모든 조사를 마쳤을 것이다.
“하지만 대연일 가능성도 그다지 크진 않다고 생각하오. 놈들의 입장에선 조용히 강 건너 불구경하는 게 가장 이득일 테니 말이오.
무엇보다 황태손과 태자의 치열한 싸움만으로도 벅찬데, 이런 일까지 손을 뻗칠 여유는 없을 것이오.”
“전부 다 아니라면 어디 마땅히 떠오르는 곳이라도 있으시단 말입니까?”
진양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뭐라고 말씀해 보시지요. 그럼 녀석들이 하늘로 솟구치기라도 했단 말씀이십니까?”
위흥조의 미간이 한층 더 찌푸려졌다.
사실 의심이 가는 곳이 한 곳 더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다면 남은 곳은 더 북쪽에 있는 극북뿐이겠군.”
“하지만 전 그쪽엔 아는 사람이 전혀 없어서 말이죠.”
잠시 뜸을 들이던 진양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이렇게 하시죠. 서로 임무를 분담하는 겁니다. 어차피 사해황막, 남만, 동해, 괴산은 가능성도 그다지 크지 않고, 저나 대제희 전하가 그곳에 있는 다른 분들께 조사를 부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겁니다.
하지만 극북빙원 쪽은 정말로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말입니다. 그러니 대인께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어떠십니까?”
다섯 개 중에 네 개를 진양이 맡겠다고 자처한 이상 위흥조도 더 이상 뭐라고 할 말은 없었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좋소. 그럼 극북빙원 조사는 내가 맡도록 하겠소.”
“잘 됐군요. 그럼 전 이만 올해 유령 경매 준비로 바빠서 가봐야 될 것 같네요. 특별히 중요한 일 아니면 찾지 말아 주세요. 전 지금 대영에 없는 거니까요.
제 진짜 행방에 대해선 무조건적으로 비밀을 지켜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될 테니까요.
이건 대인께서 도와주셔야 합니다. 다들 제가 대영을 떠났다고 소문을 내주세요. 아마 경매가 시작되면 전조 녀석들도 빈틈을 보이기 시작할 겁니다.
때가 되면 부하들에게 너무 늦지 않도록 움직이라고 해 주세요. 매번 상황이 다 끝난 뒤에 뒤늦게 나타나서 뒷북을 치더라고요.”
“…….”
위흥조의 표정이 한층 굳어졌다.
마침 물어보려고 하던 참이었으나 진양에게 선수를 빼앗긴 것이다.
“안 떠나고 뭐 하시오?”
“대인께서 절 이도 밖으로 내보내 주셔야죠. 아니면 어떻게 몰래 이도를 빠져나갈 수 있겠습니까?”
위흥조의 옥련은 아무런 검사 없이 성문을 통과했고, 곧장 이도 밖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도에서 어느 정도 멀어지자 진양은 조용히 옥련을 빠져나갔다.
위흥조는 조용히 마부를 불렀다.
“아직 남아있을 수도 있는 진양의 흔적을 모두 찾아 지우거라. 혹여나 누군가 조사를 한다고 해도 진양이 이도를 이미 떠났다는 사실만 알 수 있도록 하거라.”
다시 이도로 돌아온 위흥조는 곧바로 영제를 찾아갔다.
그리고 진양과 상의했던 내용을 그대로 보고로 올렸다.
영제는 당연히 찬성이었다.
오히려 진양이 자발적으로 움직여주니 크게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영제는 진양의 작전을 허락했을 뿐만 아니라 특별히 친위대의 고수들도 내어줬다.
혹여나 유혈 사태가 벌어진다면 이들이 곧바로 나서서 해결해 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