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945
945화 지독한 노친네로군
진양은 계속해서 보라색 광구를 살폈다.
이것은 환해 일족이 가지고 있는 회심의 공법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만, 아쉽게도 이것은 환해 일족의 혈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면 익힐 수가 없다.
‘뭐, 기껏해야 참고하는 게 전부겠군.’
마지막으로 자청색 광구에는 이라는 공법이 들어있었다.
이것은 산하도를 조종할 때 쓰는 공법으로, 산하도의 힘을 빌려 쓰거나 산하도의 입구를 여는 방법 등이 포함되어있었다.
이 외에 산하도에 대한 설명도 자세히 적혀있었다.
산하도는 예상대로 매우 강력했다.
엄청난 힘 덕분인지 이미 하나의 진정한 세계를 형성한 상태였고, 오랜 시간 동안 독립된 세계로 존재한 덕분인지 환수와 같은 독특한 생명체들이 나타나게 된 것이었다.
산하도는 현재 살아가고 있는 대세계에 붙어있긴 했으나, 위치가 고정되지 않은 비경과도 같았다.
그리고 이러한 비경과 마찬가지로 고정된 출입구조차 없었다.
종합적으로 보자면 그나마 환세비록보다는 쓸만한 기능서였다.
다만, 여기에도 환세비록과 같은 조건이 붙어있다.
바로 환해 혈맥을 가진 자가 아니라면 공법을 익히는 것도, 환해를 조종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상당히 유감이었다.
사실 마음만 먹는다면 혈맥을 바꾸고 환해 일족의 공법을 손에 넣는 것도 가능하다.
단지, 그건 자신의 혈맥을 더럽히는 일처럼 느껴졌기에 별로 하고 싶진 않았다.
이왕 바꿀 거라면 자신보다 훨씬 더 강한 고수의 혈맥으로 바꾸는 게 낫다.
진양은 진룡의 혈맥조차 거부했던 사람이다.
겨우 이런 공법 하나 때문에 환해 일족의 혈맥으로 갈아탈 이유는 없었다.
기능서를 세 개나 손에 넣었으나 쓸 만한 건 하나도 없었다.
둘은 애초에 사용 자체가 불가능했고, 그나마 남은 하나는 실전된 비술 몇 개를 제외하면 전부 쓰레기뿐이었다.
무엇보다 서두에는 만법지서에 들어있던 공법이 전부 들어있는데, 겨우 이런 하찮은 비술 따위에 눈길이 갈 리 만무하다.
다만, 환세비록은 그렇다 쳐도 남은 하나의 공법에는 관심이 갔다.
잠깐의 고민 끝에 진양은 인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무언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진품 산하도는 진양이 다룰 수가 없다.
그러나 이건 공법 문제가 아니라 환해 자체의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환해는 이미 환해 일족의 혈맥과 끈끈히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해 외에도 또 하나의 산하도가 있다.
바로 죽음의 세계로 이어지는 사본 산하도였다.
사실 진품과 사본은 처음에는 하나의 본질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처음에는 환사가 다루었다는 점이다.
환사는 산하도를 기반으로 폭넓은 연구를 이어나갔고, 비로소 산하도 내에 환해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사본은 화사가 만들어낸 곳이다.
때문에, 사본 내의 세계에는 살아있는 생명체라곤 단 한 사람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거기에 윤제까지 발을 들이며 그곳은 완전한 죽음의 세계가 되어버렸다.
그러니까 만리산하인은 엄격하게 따지자면 산하도를 다루는 공법인 만큼 사본도 함께 다룰 수 있는 공법이라는 뜻이다.
진양은 비록 사본을 연화시키긴 했으나, 기껏해야 죽음의 세계로 향하는 출입구로밖에 쓸 수가 없었다.
또한 사본의 힘을 빌려서 입구를 개방하거나 봉쇄하는 정도에 그쳤다.
이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하지만 인법을 손에 넣게 된 이상 얘기가 달라진다.
적어도 시도 정도는 해 볼 수 있을 듯했다.
‘뭐, 시도해 보나 마나 큰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백옥 신문이라면 크게 걱정할 필요 없다.
기껏해야 인법 하나 배우는 건데 무슨 큰일이라도 나겠는가?
한참의 연구 끝내 진양은 마침내 만리산하인에 입문했다.
손에 결인을 맺고 산하도를 느껴보았다.
과연, 진품 산하도가 느껴졌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 있는지는 확실하게 알 수가 없었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던 상황이라 크게 놀랍진 않았다.
진양은 이어서 사본을 느껴보았다.
그것은 진양이 완벽하게 연화를 완료한 물건이었다.
조금씩 환해 내에 있는 사본의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과연, 예상대로 대장로는 사본을 자신이 직접 가지고 다닌 게 아니라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환해에 보관해놓은 듯했다.
진양은 감각에 집중하면서도 계속해서 수인을 맺었다.
같은 시각, 환해 어딘가.
이곳은 대장로가 온갖 방어 수단을 펼쳐두고 산하도를 숨긴 곳이다.
부스럭-
조용히 잠들어있던 산하도가 빛에 휩싸이며 천천히 허공으로 떠올랐다.
이어서 산하도가 부르르 떨었다.
마치 진양의 부름에 응답하듯이 말이다.
부름을 받은 산하도의 힘이 세계의 장벽을 뚫고 진양의 수인을 향해 날아갔다.
같은 뿌리를 가진 환해는 산하도에서 뿜어져 나온 힘을 막을 수가 없었고, 누군가 조종을 하는 상태가 아니라면 마찬가지로 막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뻗어진 힘은 보이지 않는 제약들을 뚫고 진양의 눈앞에 나타났다.
팟-!
진양의 손에서 튀어 오른 빛이 작은 문의 형상을 이루었다.
한 사람 겨우 지나갈 만큼 작은 문이었다.
진양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오호, 이게 정말로 될 줄이야.”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려던 진양은 우뚝 멈춰 섰다.
혹여나 문 뒤에 펼쳐진 공간이 죽음의 세계가 아닌 환해라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분명 대장로가 설치해둔 온갖 지독한 함정이란 함정은 전부 다 뒤집어쓰게 될 것이다.
잠시 고민하던 진양은 머리카락을 한 올 뽑아 분신을 만들었다.
분신은 나타나기 무섭게 지겹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봐, 본체. 이런 위험한 일은 이제 하고 싶지 않다고.”
“시끄러워. 빨리 들어가기나 해.”
분신은 한숨을 푹 쉬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 * *
상하좌우 할 것 없이 빼곡하게 은은한 빛을 뿜어내는 부문이 깔린 어느 거대한 대전.
이곳에는 범상치 않은 힘이 숨겨져 있었다.
한눈에 봐도 상당히 위험한 곳이었다.
그러나 이곳에 나타난 사람은 위험을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강력한 환술이 위험을 모두 뒤덮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든 이곳에 오는 순간 눈앞에 보이는 건 왜곡된 공간뿐이고, 모든 감각까지도 완전히 마비가 되어버린다.
이 외에 허공에는 육안으로는 볼 수 있지만, 기운은 전혀 느껴지지 않은 물방울이 둥둥 떠 있었다.
물론 실제로 이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대전 정중앙에는 산하도 사본이 둥둥 떠 있었다.
사본에서는 은은하게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바로 앞에는 한 사람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빛의 문이 만들어져있었다.
분신은 좁은 문을 비집고 간신히 밖으로 빠져나왔다.
분신은 고개를 들어 눈앞에 떠 있는 산하도를 바라보았다.
순간 시선과 감각은 한층 더 강하게 왜곡되었다.
모든 것이 추상적으로 변했고, 심지어 마음속에도 왜곡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방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때, 주위에 떠다니던 물방울이 공기의 흐름에 의해 분신의 곁으로 다가왔다.
물방울이 분신의 손에 닿는 순간 퐁- 하는 소리와 함께 물방울이 터졌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손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애초부터 손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이어서 강력한 살기를 품은 광선이 사방에서 날아들었고, 분신은 깔끔하게 증발해버렸다.
매번 사라지기 전에 남기던 머리카락마저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 * *
반대편에서 분신의 기억을 습득한 진양은 고민 가득한 얼굴로 문을 쳐다보았다.
진양은 이제 막 만리산하인에 입문했다.
상당히 초보적인 수준에도 불구하고 사본의 힘을 사용하여 협소한 통로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건 그나마 사본을 완전히 연화시킨 덕분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지금으로선 사본이 위치한 곳으로 통로를 뚫는 게 최선이다.
대장로처럼 문을 열고 환해나 죽음의 세계로 향하는 건 불가능했다.
죽음의 세계가 아닌 사본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 사본을 취하고 죽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건 아무래도 위험 부담이 상당할 듯했다.
예상대로 대장로는 상당히 깊숙한 곳에 그림을 숨겨둔 듯했다.
분신을 통해 느낀 감각대로라면 그곳은 완전히 봉쇄된 곳이 분명했다.
‘지독한 노친네로군. 도대체 환술을 몇 겹이나 겹쳐놓은 거야?’
진양이 수인을 거두자 눈앞에 나타났던 빛의 입구도 사라졌다.
아무래도 만리산하인을 한 단계 더 높은 경지까지 익히지 않는 이상 사본을 회수하는 건 불가능할 듯했다.
그렇다면 일단은 안전이 확보된 이후에 움직이는 게 좋을 듯했다.
어차피 그동안 죽음의 세계에 이변이 일어날 일도 없다.
그러니 급할 건 없다.
깔끔하게 포기하고 돌아선 진양은 대장로의 관부터 정리하기로 했다.
뚜껑을 덮은 뒤 단단히 못을 박았다.
그리고 최대한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대장로를 묻어주고, 영향도 무려 두 개나 피워주었다.
시신을 처리한 진양이 다시 진영으로 돌아왔을 때.
위흥조가 진양의 곁에서 대기하라며 보낸 외후가 곧바로 새로 들어온 소식을 공유해 주었다.
대연 쪽에 큰 난리가 벌어졌다는 내용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대연 태자가 길길이 날뛰며 환해 일족을 전부 뒤집어버리려고 벼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정보에 따르면 환해 대장로는 태자를 설득하여 환해와 연나 일족의 혼사를 성사시키도록 한 뒤 만법지서를 들고 도망쳤다고 한다.
현재 환해 대장로는 행방이 묘연한 상태이며, 태자는 눈에 불을 켜고 사방을 이 잡듯 뒤지며 찾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던 중, 대연에 심어둔 첩자가 완충지대에 접어들기 무섭게 누군가 백 리도 넘는 거대한 진법을 깔아놓은 걸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그 진법은 현재 깔끔하게 사라지고 없었다.
누군가 환해 대장로가 그곳으로 들어갔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하긴 했으나 이 주장은 금세 뒤집히고 말았다.
근처에선 전투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은 어느 이름 모를 강자가 버려진 땅에 실험을 하기 위해 진법을 설치했는데 갑자기 대영과 대연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며 황급히 진법을 설치하고 도망친 것으로 결론이 내려지는 분위기였다.
그 누구도 환해 대장로가 이런 일을 벌일 것이라고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만법지서라면 충분히 가능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환해 일족 내에서 혈맥의 각성을 이루는 사람은 점점 줄어드는 주세다.
이대로 가다간 환해 일족은 멸망할 수도 있다.
생존을 위해선 반드시 변화가 필요하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환해 일족의 환술로는 부족하다.
반드시 새로운 전승을 손에 넣고 그것을 발전의 기회로 삼아야만 한다.
하지만 작금의 시대에 온전한 전승을 손에 넣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만법지서는 그들에겐 그야말로 절호의 기회와도 같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