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948
948화 남을 비웃은 대가
“백부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제가 만든 향의 수준이 이 정도로 엉망이었단 말입니까?”
나송은 씁쓸한 표정으로 뒤에 있던 가주를 바라보았다.
가주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 문제가 아닐 게다. 향의 문제가 아니라 그동안 연나 일족이 이곳을 열 번이나 방문하며 인도자가 향에 질려버린 게 문제일 게다.”
진양은 당연한 것 아니냐는 표정으로 조용히 피식 웃었다.
이곳에 오기 전에 본 자료를 통해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처음 지나왔던 베틀이 있던 부유섬은 유일하게 마음대로 통과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의관도(衣冠島)라는 이름을 가진 두 번째 부유섬부터는 얘기가 달라진다.
의관도는 영이 깃든 옷들이 살아가고 있는 섬이었는데, 바로 이 옷들이 길을 안내하는 인도자인 것이다.
문을 열고 의관도 반대편으로 가기 위해선 반드시 인도자의 안내를 받아야 하며, 문도 그들이 직접 열어주어야 한다.
연나 일족도 처음에 이곳에 왔을 때는 한참을 헤맸었고, 온갖 고생을 한 끝에 간신히 통과 하는 법을 알아냈다고 한다.
처음에는 인도자들이 향에 상당히 굶주려있던 탓인지 아무 향이나 가져다 피워도 흔쾌히 통과를 시켜줄 정도로 널널했었다.
다만, 연나 일족도 모르는 사이에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연나 일족은 대황 전체를 통틀어 가장 우수한 향을 만드는 자들이다.
때문에 연나 일족이 가지고 다니는 향은 아무리 질이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일반적인 향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고급에 속한다.
바로 이 점에서 문제가 생겼다.
처음에는 흔쾌히 향을 즐기던 옷들이 시간이 흐르며 길들어져 버리고 만 것이다.
연나 일족은 어쩔 수 없이 그들을 만족시키지 위해 더욱 높은 수준의 향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고, 이러한 악순환은 계속해서 반복되고 말았다.
무엇보다, 앞으로 나아가려는 자마다 자신이 만든 향을 모두 준비해야 했다.
사람마다 하나의 인도자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지난번에 이곳을 찾아왔던 연나 일족의 사람들 중 구 할의 인원이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옷의 도움 없이는 앞으로 나아갈 수도, 문을 여는 것도 불가능했다.
연나 일족의 사람들은 각자 사방으로 흩어져 자신이 만들어온 향을 피우며 인도자를 구하기 위해 애를 썼다.
나송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인도자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이전보다 훨씬 더 냄새도 좋고 질도 좋은 향을 꺼내든 것이었다.
확실히 방금 전에 거절당했던 향과는 차원이 다른 품질의 향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망쳤던 치마가 다시 나타났다.
그러나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옅은 귤색의 평복과 검은 통치마도 함께 있었다.
세 벌의 옷은 향로를 따라 몇 바퀴나 빙빙 돌았고, 한참 동안 향을 맡은 뒤에야 향로 옆에서 멈춰 섰다.
나송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한 번에 셋이나 낚다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았다.
하지만 나송은 곧바로 옷을 고르지 않았다.
그의 향을 맡고 인도자가 되기를 허락한 것은 전부 여인의 옷이었기 때문이다.
남자 옷은 아직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이번 여정에 적지 않은 여자 수도사들도 함께 온 건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이곳에서 막혀 다시 돌아가야 하는 불상사를 겪는 것보단, 실력은 조금 약해도 여자 수도사들을 앞으로 내보내는 것이 훨씬 더 이득이다.
겨우 옷 하나 유혹하자고 이런 짓을 하다니.
나송의 뿌듯해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진양은 기가 찰 수밖에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 옷, 푸른 장삼이 하나 다가왔다.
그런데, 한눈에 봐도 깡말라 보이는 녀석은 세 벌의 여자 옷이 모여있는 것을 보자마자 경기를 일으키며 숲속으로 도망쳐버렸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세 벌의 여자 옷 사이에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검은 통치마는 가장 먼저 나타났던 초록 치마를 날려버렸다.
그리곤 남은 귤색 평복과 주먹질을 하며 나름 치열하게 싸우기 시작했다.
펄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서로를 향해 보이지 않는 주먹을 날리는 옷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기가 찰 수밖에 없었다.
옷을 불러온 나송조차도 황당하다는 듯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하하!”
진양은 참지 못하고 배를 잡고 큰소리로 웃었다.
“나 공자, 두 여인이 당신을 두고 싸우고 있군요.”
얼마 지나지 않아 싸움에서 밀린 평복은 다시 숲속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고, 남은 검은색 통치마는 향로와 나송을 혼자 독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되니 나송도 별다른 수가 없었다.
의관도를 통과하려면 어쩔 수 없이 검은 통치마를 선택하는 수밖에.
나송의 미간이 있는 대로 잔뜩 찌푸려졌다.
도무지 어찌해야 할지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옷들이 향로를 두고 다툼을 벌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지금까지는 연나 일족이 향로를 피우고 옷을 골랐었는데, 이제는 버릇이 나빠질 대로 나빠진 옷들이 서로 싸우며 경쟁자까지 몰아내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나송의 향냄새를 맡은 다른 옷들도 멀리서 몰려들고 있었으나, 검은 통치마의 흉흉한 모습에 감히 선뜻 나서는 옷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래도 검은 통치마가 다른 녀석들에 비해 월등히 강한 녀석인 듯했다.
이렇게 되면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나 공자, 이만 단념하고 입으시지요. 여기까지 와서 남녀를 따질 게 뭐가 있겠습니까?”
진양은 진지하게 말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한편, 진양의 머리카락 틈에 숨어있던 백리칠도 이 모습을 보고 눈물까지 흘리며 웃었다.
과연, 몰래 진양을 따라온 보람이 있었다.
혼자 바다에 남아 노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었던 것이었다.
한참을 웃은 진양은 자신도 그제서야 향을 하나 꺼내 피웠다.
이미 자료를 통해 향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미리 향을 챙겨둔 것이다.
이것은 예전에 거대 고래 요왕 대시강두경에게 얻은 용연향으로 만든 향이다.
축유향을 만들 때를 빼면 거의 쓸모가 없었기 때문에 주머니 구석에서 먼지만 쌓여가고 있던 참이었는데, 이걸 이런 식으로 쓰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향을 피워 향로에 꽂아두니 은은한 향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마치 사람이 향을 맡는 게 아니라 향이 스스로 사람의 콧구멍으로 들어가 코끝을 자극하게 만드는 듯한 그런 향이었다.
그렇게 일 다경 후.
숲속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각양각색의 옷들이 몰려들었다.
어림잡아 보이는 옷만 해도 백여 벌에 이르렀다.
그들은 앞다투어 향을 맡기 위해 몰려들었다.
진양은 흡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진양의 얼굴에서 미소가 점점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옆에서 이 모습을 보고 있던 나송의 찌푸려졌던 얼굴은 반대로 다시 펴지고 있었다.
“하하하하!”
몰려든 옷 중에는 남자 옷도 있었고 여자 옷도 있었다.
다만, 여자 옷이 조금 더 많은 듯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수적으로 유리한 여자 옷들이 서로 손을 잡고 남자 옷을 전부 다 내쫓아버리기 시작했다.
결국 수십 벌 정도 남은 옷은 전부 다 여자 옷뿐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 실력이 비등한 탓이었는지 우위를 가리지 못했다.
그렇게 자료에서 보던 상황이 이어졌다.
수십 벌의 옷이 진양과 향로를 빙 둘러싸며 선 것이다.
그러니까, 진양에게 직접 입을 옷을 고르라는 뜻이었다.
머리카락 사이에 숨어있는 백리칠은 웃다가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그녀는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징표 안에서 배를 잡고 데굴데굴 굴렀다.
진양의 표정은 있는 대로 찌푸려졌다.
함부로 남을 비웃은 대가가 이리도 빨리 찾아올 줄은 몰랐던 것이었다.
사실 진양은 아무리 노력해봐야 향 제작 기술로 연나 일족을 따라잡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재료에 최대한 공을 들이기로 했다.
적당한 재료면 아무리 못해도 옷 한 벌 정도는 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망할 녀석들! 그럼 이제껏 좋은 재료로는 한 번도 향을 만들어본 적이 없었던 거야? 물론 용연향이 귀한 물건인 건 맞지만. 아무리 그래도 연나 일족 정도 되면 충분히 쓸 수 있을 법한 재료일 텐데.’
뒤늦게 후회가 몰려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용연향을 조금이라도 덜어냈어야 하는 건데!
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해봤자 때는 너무 늦고 말았다.
“나 공자, 계속 그렇게 웃다간 뱃가죽 찢어집니다.”
진양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섬이 떠나라 웃어대는 나송을 흘겨보았다.
“진 선생, 참으로 통이 크십니다. 용연 같은 귀한 재료로 훈향을 만드시다니. 하하하……. 아이고, 실례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아니, 근데 왜 전부 이런 옷들뿐입니까? 이 흉포한 옷들 말고 다른 옷은 없는 겁니까?”
진양의 얼굴은 더 이상 찌푸리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찌푸려진 상태였다.
이렇게 된 이상 아예 다른 방법을 강구해 보기로 했다.
“물론 있긴 합니다만, 그들은 훈향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옷이라서 말입니다. 진 선생께서 알고 계시는 양식의 옷이라면 무엇이든 있는 곳입니다. 다만, 우리 연나 일족은 훈향을 사용하는 게 가장 편해서 지금까지 훈향을 사용했던 것뿐입니다.”
순간 진양은 자신이 중요한 사실을 하나 간과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연나 일족으로부터 받은 자료는 연나 일족이 직접 겪은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즉, 그곳에 적힌 해결 방법도 모두 연나 일족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뜻이다.
진양은 연나 일족의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면 굳이 연나 일족의 방법을 따를 이유도 없다.
사람도 각양각색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영이 깃은 옷이라고 해서 다를 바가 있겠는가?
“뭐든 있단 말이죠? 예를 들면 갑옷 같은 녀석들 말이에요.”
“물론입니다. 예전에 일족 중 한 사람이 본 적이 있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나송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만, 녀석들은 훈향 정도로 넘어오는 녀석들과는 달리 성격이 조금 괴팍…….”
하지만 진양은 나송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살신전을 하나 꺼내 땅에 꽂았다.
그러자 살자비의 강력한 살기가 살신전에서 뿜어져 나왔고, 순식간에 주변의 분위기를 싸늘하게 물들였다.
진양을 둘러싸고 있던 수십 벌의 여자 옷들은 잔뜩 겁에 질려 곧바로 사방으로 도망쳐버렸다.
그중 한 녀석은 도망치는 와중에도 진양의 향로를 챙겨가는 것을 잊지 않았다.
“지, 진 선생, 이게 도대체 무슨…….”
당황한 나송을 말을 더듬기까지 했다.
하지만 더 이상 고민할 틈이 없었다.
그는 검은 통치마가 도망가기 전에 재빨리 달려들었고, 치마가 스스로 양쪽으로 열리며 나송에게 입혀지며 다시 하나로 합쳐졌다.
“놀랄 것 없습니다. 이건 그때 기념품으로 챙겨둔 모조품이거든요.”
“그건 저도 압니다. 다만, 얼른 다시 집어넣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그런 걸 꺼냈다간 가장 흉포한 놈이 나타날 테니까요. 진 선생의 생명까지도 위협할 정도로 무서운 놈입니다!”
하지만 나송은 이 말을 마지막으로 검은 통치마에 의해 숲속으로 끌려가 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