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988
988화 당했다!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거대한 메뚜기처럼 생긴 이족들이었다.
수십 장이 넘는 몸집을 가진 거대 메뚜기가 하늘을 먹구름처럼 뒤덮고 있었다.
날개가 움직이며 만들어지는 소리는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불쾌함이 몰려올 정도였다.
진양도 듣고 있으니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이 외에 별다른 느낌은 없었다.
먹구름 사이에서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화염이 뿜어져 나오며 칠십여 장에 달하는 거대한 체구를 가진 거인이 나타났다.
그는 손에 화염에 휩싸인 거대한 몽둥이를 들고 이곳저곳을 향해 휘두르고 있었다.
몽둥이가 지나간 자리에 있던 이족들은 전부 잿더미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모두 덤벼라!”
거인의 피부 위로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그는 피하지 않고 모든 공격을 맨몸으로 받아냈다.
몸에 빼곡하게 새겨진 문신에서 은은한 빛이 흘러나와 그가 휘두르고 있는 화염 몽둥이로 모여들고 있었다.
몽둥이에 피어오르는 화염은 계속해서 불어나고 있었다.
진양은 멀리서 바라보기만 할 뿐 가까이 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몽둥이에 타오르고 있는 건 단순한 화염이 아니라 거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기혈이었다.
기혈의 위력과 몽둥이의 무게가 더해지며 몽둥이가 휘둘러질 때마다 지나간 자리에 왜곡 현상이 일어났다.
정통으로 맞는다면 골로 가기 십상이었다.
이 외에 녀석이 동시에 두 개의 신통력을 시전하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받아낸 공격을 전부 자신의 힘으로 바꿔 무기에 흘려 넣고 있었기에 무기의 위력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무지막지한 힘을 가진 만큼 복잡한 방식으로 전투를 벌일 필요는 없다.
그저 몽둥이를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상대에겐 충분히 위협적이다.
진양은 멀리서 지켜보기만 할 뿐 끼어들진 않았다.
머리 뒤로 솟아있는 두 개의 후광, 그리고 새까만 피부.
이 정도만으로도 그의 정체를 알아내기엔 충분했다.
그는 황작이 분명했다.
게다가 그에게선 황작에게 주었던 후광 장비의 기운이 명확하게 느껴졌다.
한참이 지나고 난 뒤.
먹구름처럼 몰려들던 이족은 거대한 몽둥이에 맞아 전멸했다.
이족들이 모두 죽고 나자 몽둥이는 점점 작아지기 시작했고 종국에는 완전히 사라졌다.
이어서 황작의 몸도 원래의 크기로 돌아왔다.
진양은 그제서야 비주를 타고 그곳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황작은 지친 듯 넋이 나간 얼굴로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그의 시선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비주로 향했다.
그곳에 진양이 서 있는 것을 본 황작은 화들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
“진 선생?”
진양은 탕을 담아두었던 호리병 하나를 꺼내 그에게 던져주었다.
“일단 회복부터 하고 얘기하시죠.”
호리병에 든 탕을 조금 마시고 나니 황작의 얼굴에도 조금씩 핏기가 돌기 시작했다.
“아주 훌륭한 탕이군요. 혹시…….”
“그냥 선물로 드리는 겁니다. 가지셔도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황작은 사양도 하지 않고 재빨리 호리병을 챙겨 넣었다.
단약보다 더 강력한 회복력을 가진 물건을 순천사에서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와 다름없었다.
물론 순천사 내에도 탕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있었지만 대부분 평범한 수준에 불과하다.
심지어 단약사보다도 희귀했다.
때문에, 진양의 탕은 단숨에 마셔버리기 아까울 정도로 소중한 보물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럼 이제 슬슬 얘기를 나눠보도록 하시죠. 왜 절 보고 귀신을 본 것처럼 놀라신 겁니까?”
“정말 진 선생 맞으십니까?”
황작은 그제서야 미심쩍은 눈초리로 물었다.
진양은 한숨을 푹 쉬며 손을 뻗었고, 황작의 목에 걸려있던 후광 목걸이가 스스로 날아 진양의 손으로 날아들었다.
진양은 목걸이를 다시 돌려주었다.
“이제 됐습니까?”
“물론이죠.”
황작은 고개를 끄덕이며 목걸이를 다시 받아들었다.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다들 진 선생께서 이족에게 끌려가신 줄로만 알고 있거든요.”
진양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겨우 그 이유 하나 때문에 죄다 여기까지 몰려온 겁니까? 누가 누구한테 잡혀가요? 도대체 어디서 그런 얘기를 들은 겁니까? 몇 명이나 온 거죠?”
“진 선생, 진정하시고 천천히 질문하시죠. 너무 갑작스러워서 조금 경황이 없습니다.”
황작의 얼굴은 다소 창백했다.
아무래도 전투에 상당한 힘을 소모한 듯했다.
진양은 탕을 한 그릇 더 따라 황작에게 건네주었다.
잠시 뒤.
탕을 마신 황작의 얼굴은 마치 불타오르듯 붉게 달아올랐다.
피곤함은 눈 녹듯이 모두 사라졌다.
“자, 이제 제 질문에 답해 주시죠.”
진양의 표정에 황작은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주작 누님께서 선생이 추격수에게 붙잡혀갔다고 하시더군요. 그 얘기를 듣고 혈란 누님께선 한시라도 빨리 진 선생을 구해야 한다고, 혹여나 돌아가셨으면 시신이라도 건져와야 한다며 모두를 이곳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대량의 이수들이 나타나 길을 막았는데, 시간이 지체되자 혈란 누님께서 직접 나서서 이수들을 모두 쓸어버리셨습니다. 그 바람에 당분간은 더 이상 전투를 벌일 수 없는 상태가 되셨습니다. 살기가 너무 강해지는 바람에 여기서 조금이라도 더 적을 베었다간 아군에게도 피해를 줄 수도 있는 상태가 되셨거든요.
혈란 누님께서 손을 써주신 덕분에 여기까지 빠르게 올 수 있었긴 합니다만…….”
“잠깐만요. 그럼 주작 소저는요?”
“혹시 주작 누님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혈란 누님께서도 휴식을 취하러 가시기 전에 주작 누님을 잘 감시하라고 당부하셨거든요.
어딘가 문제가 있을 거라곤 눈치는 챘지만 그게 사실일 줄은 몰랐습니다. 어쩐지 갑자기 두 번째 층으로 다시 돌아간다 했더니. 제가 이족들에게 발목을 잡힌 걸 보고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냥 가버리시더군요…….”
황작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이를 바득 갈았다.
“그래서 돌아가기 전에 뭐라고 하고 갔나요?”
“해명할 시간이 없다며 급하게 돌아가 버렸는데…….”
황작은 순순히 진양의 물음에 답했다.
잔뜩 굳어있는 진양의 표정을 보니 문득 두려워졌다.
혈란이 주체하지 못하고 살생계를 펼칠 때부터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걸 눈치챘다.
진양은 눈을 감고 잠시 깊은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잠시 뒤.
“일단 돌아갑시다. 가는 길에 그동안 있었던 일들 전부 얘기해 주세요. 생각나는 건 무엇이든요.”
진양은 황작을 끌고 비주에 오르며 비주가 최대한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 있도록 큼직한 영맥을 하나 꺼내 사용했다.
배가 움직이기 시작하며 황작은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모두 얘기해 주었다.
꽤 긴 내용이었지만 간단히 줄이자면 단순했다.
적을 만나면 싸우고, 적을 베고 나면 다시 앞으로 나아가고가 반복되었던 것이었다.
황작의 얘기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으나 진양은 이미 어딘가 단단히 잘못된 것을 느꼈다.
황작 같은 연체 수도사는 천마에게 상당히 치명적이다.
그러나 그는 이곳으로 오는 동안 천마와 단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아예 다른 종족은 마주치지도 않았다.
이곳으로 오는 동안 마주한 건 오직 이수, 그리고 허공 거대 괴수들뿐이다.
대부분 지성을 완벽히 갖추지 못한 녀석들이 전부였다.
전부 평소에도 자주 마주하는 적인 만큼 겉보기엔 크게 이상할 게 없다.
하지만 분명 기억 속에서 보았던 건 최소 수십 개의 종족이다.
이들 중 단 하나도 마주하지 않았다니.
일전에 청우마 일족과 잠시 대화를 나눴을 때 그들의 족장이 끝까지 싸우겠다는 의견을 고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분명 의지가 완전히 왜곡된 게 분명했다.
그러나 이들은 전장엔 코빼기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이쯤 되니 그들이 무슨 목적인지 알 것 같았다.
겉으로는 목숨 걸고 덤벼들며 길을 막으려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혈란이 어쩔 수 없이 손을 쓰도록 만든 것이다.
먼 곳까지 나온 순천사들이 이상한 걸 깨닫고 다시 돌아가려는 순간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대량 학살을 벌인 혈란은 이미 당분간은 살생계를 펼칠 수 없는 상태에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얼마나 출전을 한 겁니까? 사장은 총 몇 명이 나왔죠?”
“총 네 명의 사장이 네 개의 부대를 이끌고 나왔습니다. 거점은 평소에는 출전하지 않는 두 명의 사장이 지키고 있습니다.”
진양의 표정이 한층 더 굳어졌다.
‘당했다!’
상대가 진양을 밖으로 끌어낸 이유.
처음에는 단순히 자신을 죽이려는 게 목적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이게 다가 아니었다.
둘이나 되는 천마가 나타났다는 건 진양의 육신을 차지하는 게 가장 큰 목적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만약 실패한다면 죽인다.
하지만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진양은 이미 두 번째 층을 비우게 된다.
자신이 직접 강화시킨 진군을 뚫고 다시 안쪽으로 들어가지 않는 이상 드넓은 허공 속에서 순천사를 만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나 다름없다.
그사이 순천사들 사이에는 진양이 이족에게 끌려갔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소식을 들은 혈란은 어떻게든 진양을 찾아오기 위해 혈안이 된다.
설령 죽었다 하더라도 반드시 제대로 확인을 해야만 한다.
시신은 고사하고 손가락 하나라도 이족들에게 넘겨선 안 된다.
그들이 무슨 기괴한 일을 벌일지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 거점에는 비전투 인원에 해당하는 사장 둘만이 남아있다.
이들이 남은 순천사를 이끌고 정면으로 이족들과 전투를 벌이는 건 무리다.
그저 진군에 의지하여 싸우는 게 전부다.
진양은 머릿속으로 진군 중에서도 가장 약하고 공략하기 쉬운 곳을 떠올렸고, 그곳을 향해 비주를 빠르게 몰았다.
어느덧 진군과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진양은 비주의 속도를 늦추었다.
힘은 최대한 숨기면서 비주가 관성을 따라 앞으로 움직이도록 했다.
그렇게 몇 시진 정도 흘렸을 무렵.
누군가 비주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를 보는 순간 황작의 눈이 새빨갛게 달아올랐고, 몸에선 기혈이 피어올라 뜨겁게 타올랐다.
“진정하세요. 일단 상황 파악이 우선입니다.”
진양은 진정하라는 듯 황작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고 선수에 모습을 드러낸 주작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떻게 됐나요? 너무 늦은 건가요?”
“다행히 늦지 않았습니다. 아직 대규모 공세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누가 공격을 하려는 건지도 알아내지 못했고, 어디 숨었는지도 전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주작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황작은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두 사람이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뭐라고 말을 하고 싶었으나 심각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기에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진양은 안도의 한숨을 푹 쉬었다.
“그나마 다행이군요.”
“진 선생?”
황작은 매서운 눈으로 주작을 노려보았다.
이 모든 것이 주작이 꾸민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지금 당장은 해명할 방법이 없군요. 허나 그런 눈을 쳐다보실 것 없습니다. 주작 소저는 내부 첩자가 아니니까요.”
주작은 황작을 바라보며 침착하게 말했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어 어쩔 수가 없었다. 네 실력이라면 충분히 그 이족들을 쓸어버리고도 남을 거라고 믿고 있었지.”
“흥!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황작은 싸늘하게 한마디 했다.
아무래도 현재의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