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treme Concept RAW novel - Chapter 35
18화.
“으으. 역시, 여기까지 오니까 또 마음이 흔들리네.”
천마와 함께 도착한 이곳은 도적단이 있는 길목 입구였다. 이곳을 지나게 되면 상대를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도적단을 만날 수 있으리라.
-아. 저것만 보면 또 뼈아픈 기억이.
-나 못 모르고 저기 지나갔다가 도적단한테 영혼까지 털렸음
-ㄹㅇ그냥 죽이지 않고 자기들 본거지로 잡아가서 아이템 다 빼앗은 다음에 죽이기도 함
-악질 새끼들임 ㅋㅋㅋ
-나도 당한 게 있어서 고렙 되고 난 다음에 ㅈㄴ양학했다.
-한 레벨 100만 넘어도 충분히 혼자서 하지 않음?
-직업에 따라 다르긴 한데, 레벨 100이면 충분함
-하지만 천마, 그의 레벨은······.
-앗 아아···
시청자들의 채팅을 지켜보고 있던 천강도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초보자 시절, 대부분 도적단에게 한 바탕 당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저 주는 퀘스트를 받고 들어갔을 뿐인데, 정말 영혼까지 털린다는 말이 맞았다.
아무리 레벨 50이 되었다고 해도 파티를 맺지 않고 도적단 소굴에 들어가게 되면 순식간에 당하고 만다.
‘나도 까불어 대다가 죽은 적이 있었지.’
천강도 예전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자. 천마님. 바로 이곳입니다.”
“흠. 그런가? 이곳에 도적들이 살고 있다는 거지?”
“예. 이 길목이 다음 도시로 갈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하지만 도적단이 길목을 지나가는 모험가를 그냥 지나칠 리 없죠. 많은 사람들이 도적단에게 당했습니다.”
“쯧. 인간의 기본조차 되어 있지 않은 놈들. 본좌가 제일 싫어하는 게 바로 이런 놈들이다. 사파라고 부르기 아까운 쓰레기들이지.”
천강은 다른 날과는 다르게 분노가 철철 넘치는 천마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천마 형 분노 모드 on
-도적단은 모두 나와 천마에게 고개를 숙여라!!
-과연 천마가 고개를 숙일지, 도적단이 고개를 숙일지
-아.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건 너무 무모한 거 같은데
-ㅋㅋㅋ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난 천마 형한테 건다.
-너두? 야 나두!
그때 누군가가 후원금을 보내며 천강에게 물었다.
[방구석폐인님이 5,000원을 투척하셨습니다!] [근데 천마 형은 무기도 없음?]그 말에 천강이 미소를 지었다.
“방구석폐인님, 5,000원 감사드립니다. 아! 물론, 무기가 있죠! 제가 그렇지 않아도 따끈따끈한 걸로 준비해 놓았습니다.”
천강은 미리 준비한 검을 인베토리함에서 꺼내 천마에게 건네 주었다.
“천마님. 이 검을 드릴 게요.”
“검?”
“예. 초보자들이 주로 쓰는 검입니다. 그냥 이름도 평범하게 검이에요.”
레벨 1부터 들 수가 있는 검.
플레이어들은 저것을 이렇게 부른다.
-음? 똥검이네.
-다른 무기는 읍나?
-근데 천마 형 레벨이 7이라서 저것 말고는 다른 걸 쓸 수가 없어
-아. 그러네.
-ㅋㅋㅋ레벨 20 될 때까진 저 똥검 써야 됨.
-근데 저거 너무 쓰레기야. 툭 하면 부러져 ㅅㅂ
-ㅇㄱㄹㅇ 데미지도 안 박힘
-어떤 놈이 저 똥검 강화 한다고 죠랄하던 거 생각난다.
-어? 그거 나도 봄
-너두? 야 나두!
-너두충 ㅗ
평범한 검이지만, 천마에게는 나름 감회가 새로웠다.
“검이라······.”
그의 기이한 표정에 천강이 물었다.
“왜 그러시죠?”
“본좌가 검을 잡지 않은지 꽤 오래 돼서 말이야.”
씁쓸해 보이는 천마의 표정에 뭔가 사정이라도 있는 것 같았다.
천강은 왠지 스토리 하나가 뽑힐 것 같아 은근슬쩍 깊이 물어봤다.
“무슨 사연이라도 있으신건가요?”
“그렇지. 본좌가 10년 전부터 검을 잡지 않았으니까. 이 검으로 가장 소중한 것을 베어 버렸거든.”
“······.”
천마의 말에 천강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아아. 나의 손이 오, 오그라든다!
-반성하자. 우리 따위의 흑염룡은 천마 형에 비해 아무 것도 아니었어.
-그런데 저런 대사 치는 것도 멋있어. 제에엔장!
-ㅋㅋㅋ나만 오글 거리는 게 아니었구나. 근데 멋있는 건 인정 ㅋㅋㅋ
시청자들도 천강과 같은 생각인 모양이었다.
‘저런 대사를 칠 수 있는 스트리머는 아마 우리 형 밖에 없겠지.’
이것이 컨셉충이 갖고 있는 장점이랄까.
더 깊이 물어 보고 싶었지만, 그건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그래서, 검이 마음에 들지 않으신가요? 초보자가 쓰는 검이라 좋지 않을 수도 있긴 합니다.”
“아우. 이런 말이 있단다. 장인은 절대 연장 탓을 하지 않는다고. 물론, 천하를 뒤집는 무기들이 있지만 보통은 거의 비슷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지.”
“그게······ 검에 부여된 능력치에 따라 데미지가 천차만별이라서요.”
“그런 건 상관없다. 본인의 기를 검에 흡수시켜 이 검이 가진 잠재력을 폭발시킬 수만 있다면, 그 어떤 검이라도 충분히 명검이 될 수 있다.”
천마의 말에 천강은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천강도 초보자 시절 저 검을 많이 써 봤다.
사냥 한번 다녀오면 매번 부셔지는 검. 그래서 플레이어들이 저걸 똥검이라 부르는 것이다.
뽑아서 때렸다 하면 콰직 부셔져 버리니, 당연히 그렇게 부를 수밖에.
-검 부셔지고 나서 천마 형이 무슨 얘기하나 들어보고 싶다 ㅋㅋㅋ
-사탄: 앗 그건 좀
-왜 ㅋㅋㅋ ㅈㄴ 귀여울 거 같은데
-손나 바카나!
-니뽄 꺼져
-진짜 똥검 때문에 성격 버린 사람 많을 거다.
-걍 맨손으로 싸우고 말지 ㅅㅂㅋㅋㅋ
시청자들의 말처럼 똥검 쓰느니 맨손으로 싸우겠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 하지만 정말로 맨손으로 싸울 순 없는 노릇이라, 울며 겨자 먹기로 써 왔다.
“저도 여러분과 같은 생각입니다. 똥검은 제발 패치 좀 해줬으면 좋겠어요. 초보자들한테 너무한 거 아닙니까?”
-ㅋㅋㅋ네가 더 너무해
-내로남불 봐라 ㅋㅋㅋ
-도적단한테 천마 형 끌고 가는 놈이
-아쿰리아스한테도 끌고 갔잖아
-PD 그는 사탄인가?
괜한 말을 꺼냈다가 오히려 욕을 먹고 있는 천강이었다. 그는 분위기 환기를 위해 헛기침을 뱉으며 천마에게 물었다.
“흠흠. 천마님. 그런데 혹시 쓰실 수 있는 검법이라도 있으신가요?”
“검법? 당연히 많지. 너무 많아서 탈이긴 하지만.”
“오오. 그러세요? 그럼,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건요?”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것이라······.”
천마는 검을 들여다 보더니, 이내 인상을 찌푸렸다.
“분하지만, 본좌의 몸으로는 아직 기초적인 것 밖에 쓸 수가 없겠구나.”
“기초적인 거라 하시면······.”
“삼재검법(三才劍法). 검을 익힐 때 가장 기본적으로 익혀야 하는 검법이다.”
“삼······ 뭐요?”
무협지에 대해 그리 많은 걸 알고 있지 않은 천강은 천마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시청자들 중에는 무협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크 그렇취. 삼재검법이야 말로 검의 기본이지!
-아따 드디어 나오는 것인가잉? 검의 기본, 검의 모든 것!
-삼재검법을 익혀야 검의 모든 걸 익혔다고 할 수나 있지 후후.
-5252 PD, 삼재검법도 모르는 것이냐? 부족하구나!!
-아니. 난 무협지를 안 봐서 뭔 소리인지 모르겠네.
-나도 삼재검법이 뭔지 모름
하지만 모든 시청자들이 천마의 말을 알아듣는 건 아니었다.
“그······ 천마님. 삼재검법이 대체 뭡니까?”
천강의 물음에 천마는 뭐 그리 바보 같은 질문이 있느냐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쯧. 아우. 너는 배울 게 한참 많구나. 검의 기본이라는 삼재검법을 모르다니.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다고 해도 검의 기초는 바뀌지 않았을 터. 이곳에서는 삼재검법이란 것도 없는 것이냐?”
“뭐······ 그렇겠죠?”
“허어. 그렇다면 이 세상에는 진정한 무사도 없겠구나. 모두 허투루 검을 쓰고 있을 테니까.”
“그건 좀······.”
방금 전 발언은 좀 위험했다.
바실레이아에서 검을 쓰고 있는 모든 플레이어들을 욕한 거나 다름이 없으니까. 그래서 천강은 얼른 말을 돌렸다.
“삼재검법이 뭔지 정확하게 설명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간단하다. 이 검법은 무당파에서 만든 것으로, 천지인(天地人) 초식을 담고 있다. 베고, 찌르고 막는 것. 이것이 삼재검법이다.”
“음······ 그러니까 베고 찌르고 막는 거라는 거죠?”
듣기에는 별로 어렵지 않아 보였다. 아니. 매우 간단했다.
정말 기본중의 기본이지 않은가.
“그렇지. 아무래도 이것은 말로 하기 보다 직접 보여 주는 것이 나을 것 같구나.”
천마는 몸을 돌려 그대로 도적단이 있는 길목에 들어가려 했다.
“처, 천마님?”
갑작스러운 천마의 행동에 천강은 헐레벌떡 뒤를 따랐다.
“처, 천마님. 잠깐만요! 아, 아직 마음에 준비가!”
하지만 붙잡기에는 이미 늦었다.
천마는 도적단이 득실거리는 곳으로 들어와 버렸다.
-ㅋㅋㅋ천마형 그냥 막 들어가 버리기
-마! 남자는 걍 직진이다, 직진!
-노빠꾸 ㅋㅋㅋ
‘젠장. 진짜 들어와 버렸네.’
천강의 레벨이라면 도적의 두목 목을 베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 퀘스트를 수행해야 하는 건 천마이지 않은가.
천강이 나설 자리는 이곳에 없다. 그저 시청자들과 마찬가지로 지켜보는 수밖에.
“응? 감히 이곳에 발을 들이다니. 네놈이 가진 걸 모두 빼앗아 버리겠다.”
영역에 들어오자마자 도적들의 격한 환영 인사가 시작되었다.
“처, 천마님. 조심하셔야 합니다. 지금 천마님 레벨로 저놈들한테 한 대만 맞아도 그대로 죽습니다.”
“알고 있다. 하지만 저 더러운 도적들이 있는데 그냥 지나칠 순 없지. 때마침 아우에게 삼재검법을 가르쳐 주어야 하기도 하고.”
천마는 도적들이 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가기까지 했다.
“처, 천마님. 조, 조심!”
그러자 도적들 중 하나가 천마에게 달려들어 칼을 휘두르려 했다.
콰콱-! 스걱-!
“응?”
천마에게 조심하라고 소리치던 천강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눈이 크게 떠졌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천마가 다가오던 도적의 칼을 피한 뒤, 위에서부터 아래로 베고 다시 가로로 벤 다음, 마지막을 찌르기로 마무리했다.
“이놈이!!”
채앵-!
그러나 레벨 차가 커서 일까.
도적은 아직 쓰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놈은 분개해 칼을 휘둘렀으나, 천마의 검에 막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검으로 흘려 보냈다는 게 맞을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다. 보았느냐?”
“예? 그, 그게 말입니다.”
천강은 어안이 벙벙한 채로 눈을 껌뻑거렸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뭐가 지나갔는지도 몰랐다.
-와 방금 봤냐?
-저것이 삼재검법인가?
-걍 휙휙 하더니 끝남
-딜교 성공? ㅋㅋㅋ
-도적 의문의 딜교 ㅋㅋㅋ
-걍 개 뚜드려 맞았네 ㅋㅋㅋ
-근데 데미지가 들어가긴 했을까?
-나 뭐가 뭔지도 못 봤음. 걍 마지막에 천마 형이 칼 막는 것만 봄
-나도임 ㅇㅇ
시청자들도 빠르게 지나가 버린 탓에 제대로 못 본 것 같았다.
“처, 천마님. 다, 다시 한번 보여 주실래요?”
“흠. 알겠다. 잘 보거라.”
천마는 다시 한번 자세를 잡았다.
검을 너무 강하게도, 그렇다고 너무 가볍게 쥐지도 않았다. 적당한 무게감을 느끼며 검이 가지고 있는 그 혼을 느꼈다.
검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것.
이것이 검을 쓰는 이들이 바라는 궁극의 목표이지 않은가.
물론, 검을 잡을 때면 매번 그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천마가 마지막으로 검을 통해 베어 버렸던 소중한 그 얼굴이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다르다. 지금 천마는 전혀 다른 세계에 몸을 담그고 있으니까.
“죽어라-!!”
도적이 우악스러운 포효와 함께 달려든다.
천마는 놈이 사정거리에 다가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놈의 급소가 보이는 순간 망설이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채앵-!
삼재검법의 1초식, 천(天)
세로로 검을 휘둘러 상대의 검을 막아낸다.
스걱-!
삼재검법 2초식, 지(地)
가로로 검을 휘둘러 적의 몸을 베어 자세를 무너뜨린다.
푸욱-!
삼재검법 3초식, 인(人).
상대가 드러낸 급소를 향해 검을 찌른다.
“커헉-!”
그렇게 하면 어떤 적이라도 능히 쓰러뜨릴 수 있다.
“뭐, 뭐야?”
-헐?
-지금 크리티컬 뜬 거냐?
-나 저런 건 처음 봐.
-크리티컬은 크리티컬인데, 지금까지 봤던 거와는 차원이 다른데?
-어? 나 저거 본 적 있어. 저거 크리티컬보다 더 크게 터졌을 때 나오는 거임.
-그럼 뭐야. 슈퍼 크리티컬 같은 거냐?
-뭐야 뭔데 대체 뭔데?
-고작 3번 쳤다고 도적이 쓰러져? 진짜 잡은 거냐?
천마가 마지막으로 검을 찌를 때, 도적의 목에 닿은 검이 황금빛을 터트렸다.
흔히 저것을 크리티컬이라 부른다. 하지만 기존 크리티컬은 황금빛이 아니라 붉은빛을 띤다고 알려져 있다. 즉, 크리티컬 그 이상의 것이 터진 것이었다.
천강과 시청자들이 동시에 놀라며 천마 앞에 무릎을 꿇은 도적을 바라보았다.
천마는 잠깐 도적의 얼굴을 내려다 보더니, 이윽고 가차 없이 놈의 목을 칼로 베었다.
스걱-!
도적의 짧은 비명과 함께 놈은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고 아이템만 그 아래 덩그러니 남겨 두었다.
천마는 검을 거두고 몸을 돌렸다.
“제대로 보았느냐? 이것이 삼재검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