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treme Concept RAW novel - Chapter 51
27화.
“바실레이아 대륙은 네브레 길드의 소유가 될 것인가? 5대 명문 길드로 알려진 팬텀 길드가 네브레 길드와의 전쟁에서 결국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네브레 길드는 새로운 왕국을 선포하였고, 그 왕국의 왕으로는 플레이어 판테온을 선정했습니다.”
“네브레 왕국이 세워지고, 새로운 왕의 탄생을 알리는 즉위식이 있었습니다. 플레이어가 왕으로 임명받은 것은 사상 최초이며, 판테온은 네브레 왕국을 제국으로 만들 것임을 천명했습니다.”
판테온이 이끄는 네브레 길드가 마침내 승리를 거머쥐면서, 새로운 왕국을 건설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을 뉴스로 접한 천강은 혀를 차며 고개를 흔들었다.
“쯧쯧. 좀 버텨 주길 바랐는데. 이렇게 되면 네브레 길드의 영향력이 너무 커지잖아.”
네브레 길드가 날이 가면 갈수록 위용을 떨치고 있어 적잖게 걱정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천웅과 같이 tv를 보고 있던 천마는 별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니. 그의 생각은 너무 단순했다.
“항상 한쪽 세력이 흥하고 나면 다른 세력이 무너지게 되어 있지. 그러나 또 다른 세력이 흥하여 기존에 있던 세력을 무너뜨리기 마련이다. 저놈들도 제 욕심대로 했다가는 오래 가지 못할 게야.”
“음······.”
“뭘 그리 보느냐?”
“부장님 스타일이 뭔지 조금은 알 것 같아서.”
“응? 부장님? 그게 무엇이냐?”
“역시, 모를 것 같았어. 부장님이란 말이지······.”
천강이 부장님에 대해 설명해주자, 천마는 천마신교 흑살단을 이끄는 수장 같은 개념인가? 하고 중얼거렸다. (물론 그게 뭔지는 천강도 몰랐다.)
천마는 아직 이 세계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 그때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항상 천강에게 물어 보곤 했다.
마치 몇 살 밖에 되지 않은 어린아이가 호기심에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해야 할까.
“끄으응-.”
이 핸드폰도 그랬다.
처음 스마트폰을 이용해 보았던 천마는 그야 말로 신세계를 경험했었다.
언제 어디서든 통화가 가능하며 아무리 저 먼 외국에 떨어져 있어도 화상 통화를 할 수가 있다.
그뿐인가?
전화가 싫으면 문자라는 것을 날려 대화를 주고받을 수도 있다.
“나 때는 말이다. 전서구를 보내면 며칠을 기다려 답신을 받곤 했지. 한번은 본좌가 너무 답답해서 직접 뛰어가 서찰을 전해 주기도 했다.”
“직접 뛰어갈 정도면 서찰을 주지 않고 그냥 얼굴 보고 얘기하면 되는 거 아니야?”
“······헛!”
저런 반응을 볼 때면 천강도 왠지 웃음이 터져 나왔다.
“형도 스마트폰을 잘 활용해 봐. 이런 세상에 살려면 먼저 스마트폰부터 잘 쓸 줄 알아야 돼. 기본이야, 기본.”
“끄으응. 뭔가 어렵구나.”
“갓 태어난 얘기들도 핸드폰은 만질 줄 알거든?”
“그, 그렇지만 본좌는 한번도 이런 걸 본 적이 없단 말이다!”
“한 달 넘었잖아. 언제까지 안 쓰려고 그래? 핸드폰비 아깝게. 그리고 인터넷에 온통 형 얘기 밖에 없다니깐? 그런 거 보는 재미도 쏠쏠 하다고.”
천마는 뭘 그런 걸로 흥분을 하냐며 손을 저었다.
“강호에서도 항상 본좌의 얘기 밖에 나오지 않았다. 아마 지금도 본좌의 얘기만 하고 있을 걸? 여기라고 다르겠느냐. 본좌는 그 어디를 가더라도 천하를 떠들썩하게 만들지.”
“······.”
저 대단한 자신감도 참 병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원래 사람이 그런 건지 모르겠다.
‘원래 내가 아는 형은 저렇지 않았는데.’
천마, 아니. 천강의 진짜 형 천웅은 저 성격과 정반대였다. 집에 오랫동안 틀어박혀 방에서 나오지 않을 때도 있었고, 어떤 때는 아예 밖으로 나가 며칠 동안 들어오지 않는 경우도 허다했다.
저러다가 어디서 애 하나 만들어 와가지고는 버리고 가는 건 아닌지 얼마나 걱정을 했던가.
몇 번이고 천강은 천웅을 설득해 어머니를 도와 집안을 일으키려 했지만, 천웅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자기 인생은 자기가 살 거라며 식당에서 일하는 어머니는 거들 떠 보지도 않고 무시했다.
그래서 한번은 너무 화가 나 천강이 천웅과 심하게 다툰 적도 있었다. 그때부터는 아예 한 마디도 나누지 않고 지냈던 것 같다.
갑자기 천웅이 심각한 정신병을 앓기 전까지는 말이다.
“형.”
“음? 왜 그러느냐? 설마, 또 이까짓 거 하나 못 한다고 구박하려고!”
“아니.”
천강이 짐짓 진지한 표정을 짓자, 천마도 입을 다물었다.
“내가 나쁜놈이고, 이기적인 건 알겠는데, 가끔 이런 생각을 해. 형이 내가 알고 있는 형으로 돌아오지 않았으면 한다고.”
“그게 무슨 소리냐?”
“형이 앓고 있는 병. 그건 정신병이잖아. 의사는 기억상실증이라고 하고. 언제 어떻게 나을지는 아무도 모른데. 그냥 시간이 가면 저절로 낫는다는 얘기지.”
“그런데 너는 본좌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았으면 하는 거고?”
“그렇지.”
“······방송 때문이냐?”
천마의 눈빛이 살짝 사나워졌다. 그러자 천강은 고개를 저으며 대꾸했다.
“응? 뭐, 방송은 아무래도 괜찮아. 당장 안 한다고 하면 많이 아쉽겠지만, 돈 때문에 가족의 영혼까지 팔아먹을 생각은 없어.”
천마는 조금 의외라고 생각했다.
“그럼?”
“지금의 형이 오히려 좋다고 해야 하나. 형은 기억나지 않겠지만, 형이랑 나랑 말도 안 섞은지가 꽤 됐거든. 우리가 예전에 심하게 다툰 적이 있어서.”
“다퉜다고? 왜 그런 거지?”
“뭐, 뻔하잖아. 형은 진짜 놀고 먹는 백수였고 일을 하는 건 나랑 엄마뿐이었으니까. 엄마는 매일 식당 일을 하지, 나도 매일 알바 하면서 다니지. 그와중에 형은 아무것도 안 했잖아.”
“······.”
천마는 자신이 저지른 죄는 아니지만, 왠지 동생과 어머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우야.”
“응, 형.”
“그 방송 말이다. 그걸 하면 돈이 되는 게 맞지?”
“맞아. 형이 노력······ 이라기보다는 정말 자연스러운 컨셉 덕분에 아마 돈을 꽤 많이 벌게 될 거야.”
“그 돈이면 어머니는 일을 하지 않으셔도 괜찮은 거고?”
그렇지 않아도 천마는 허리가 아프다며 낑낑 대시는 어머니가 매번 마음에 걸린 차였다. 그래서 일부러 식당에 따라가 일을 도와드리려 했지만, 정신부터 빨리 차리라며 극구 사양하셨다.
“응. 형은 아직 실감이 나지 않겠지만, 형은 뉴튜브에서 떠오르는 스타야. 당연히 벌어들이는 돈도 엄청나겠지. 내가 광고를 한 두 개 때려 박은 게 아니니깐.”
“음······.”
“근데 아무리 돈이 좋다고 해도 가족을 억지로 팔아먹으면서 벌고 싶지 않아. 뭐, 나랑 형이 공사판이라도 뛰면 어머니가 일을 안 하셔도 되겠지. 평생 우리 둘을 먹여 살리려고 노력하셨잖아. 이제 그만 쉬게 해 드려야지.”
만약 천마가 여기서 방송을 그만 하고 싶다고 한다면 천강도 그땐 어쩔 수 없다고 여길 것이다.
돈도 좋지만, 무엇보다 가족을 우선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윽고 천마가 말했다.
“본좌는 방송을 그만 두고 싶은 생각이 없다.”
“정말?”
“본좌라고 마음이 편하겠느냐. 어머니가 매일 저렇게 밤늦게까지 일을 하시는데! 그리고······ 본좌는 정신병이 아니다. 믿기지 않겠지만, 본좌는 네가 알고 있는 친형이 아니야.”
“으응··· 그래.”
역시, 믿지 못 하는 눈치다.
아니. 뭔가 애써 부정한다고 해야 하는 걸까.
하긴. 천마도 매순간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다.
“하지만 본좌는 지금 이 상태도 좋다. 본좌에게 처음으로 가족이 생긴 거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본좌는 본래 고아였다. 부모도, 형제도 없었지. 그래서 신교를 만든 것도 가족을 만들기 위한 수단이었는지 몰라. 그렇게라도 하면 외로움을 조금 덜 수 있을까 하여······. 하지만 그들은 결코 본좌의 가족이 될 수 없었다.”
“결혼을 하면 되잖아.”
“후후. 혼인이라. 한때 그런 생각도 한 적이 있었지. 그러나 패도를 걷는 순간부터 본좌는 가족을 가질 수가 없었어. 오직 천하를 일통하겠다는 생각 밖에 없었으니까.”
그 말에 천강이 짧게 숨을 내쉬었다.
“형도 꽤 이기적인 사람이었구나.”
“맞아. 이기적이고 멍청했지. 지금 생각해 보면 본좌는 배신을 당한 게 아닐까. 본좌가 말했지? 의식을 통해 이곳에 떨어진 것 같다고. 만약 그 의식이 처음부터 계획된 것이었다면?”
“형을 죽이기 위해서?”
“그래. 그럴 가능성이 충분해. 본좌은 공포와 두려움으로 모두를 지배했으니까.”
“그거 폭군이네.”
“맞다. 폭군이지. 하지만 그땐 그게 맞는 줄 알았어. 그리고 막다른 길이었지. 본좌는 이미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가족으로 여겼던 것조차 검으로 베고 말았으니까.”
저번에도 했던 말이다.
검을 내려놓았던 이유.
그건 바로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긴 것을 베었기 때문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게 무엇인지 깊이 물어보고 싶었지만, 대답을 해 줄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본좌는 그런 실수를 두 번 반복하고 싶지 않아. 그리고 어쩌면 이것은 하늘이 준 기회라고 생각한다.”
“기회?”
“본좌가 하늘에 예쁨을 받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지금이라도 가족이란 걸 갖고 그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라는 것이겠지.”
“뭔가 얘기가 점점 심오해지는데?”
“아무튼, 본좌는 방송을 그만 둘 생각이 없다. 그리고 아우는 얼마든지 본좌를 써 먹거라. 그 돈으로 본좌의 가족이 편안해질 수만 있다면야, 상관없다.”
“······큭!”
그 말에 천강은 가슴 한쪽이 쩌릿해왔다.
형을 돈벌이로 이용해 먹었다는 양심의 가책이 들기도 하면서 동시에 드디어 장남의 진정한 모습을 보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러나 본좌는 욕심이지만, 무공을 되찾고 싶다. 모든 걸 내려놓기에는 너무나도 답답하구나.”
“오히려 내가 바라는 바지. 형이 무공을 찾는 과정이야 말로 시청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니까. 물론, 도대체 어떻게 그런 무공을 쓸 수 있는지는 미스테리지만.”
“당연한 거 아니겠느냐? 본좌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 천하를 지배하던······.”
갑자기 천강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백날 그렇게 해 봤자 안 믿어! 아니. 절대 안 믿을 거야! 그걸 믿는 순간, 형은 내 형이 아닌 게 되잖아!”
천강의 번뜩이는 눈과 마주한 천마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짓다 이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그런 이유 때문이었나.
“알겠다. 본좌는 네 형이며, 너는 본좌의 아우다. 이 사실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다. 본좌는 절대 가족을 버릴 생각이 없다.”
처음 가져 보는 가족이다.
첫 만남은 매우 황당했지만, 이들이 가진 따뜻함에 천마는 금방 녹아 들었다. 가족이란 이런 것일까 하면서.
천강의 얘기를 들어보면 천마의 본래 몸 주인은 어지간히 망나니였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가족이라고 감싸며 보살펴 주는 것을 보면 이것 또한 가족의 정과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천마도 포기하고 싶지가 않았다.
매번 늦은 밤 퇴근을 하면서도 아들들의 얼굴을 보며 미소를 지으시는 어머니.
돈에 환장한 것처럼 굴면서도 옆에 착 달라 붙어 조금이라도 더 도움을 주려하는 동생.
저렇게 귀여운 동생을 왜 이제까지 형이라는 놈은 못 괴롭혀서 안달이었는지 모를 정도다.
“그래서, 돈은 언제 들어오는 것이냐? 어머니가 하루라도 빨리 일을 그만 두셨으면 좋겠구나. 자식들이 이렇게 장성하거늘, 어찌 어머니가 쉬지 않고 일을 하실 수가!”
“효심이 아주 추운 겨울날에 죽순이 자라나올 정도네. 그렇지 않아도 기다리는 중이야. 오늘이 정산일이거든.”
“충분히 나오느냐?”
그 물음에 천강이 입이 찢어질 것처럼 미소를 지었다.
“응. 아마도? 정확히 얼마가 나올지는 나도 잘 몰라. 이게 미리 볼 수가 없거든. 그래서 솔직히 좀 불안하기도 하고. 아마 지금쯤이면 슬슬······.”
말을 하고 있는 때 천강의 핸드폰이 반짝 거리면서 알림음을 울렸다.
“어! 드, 들어왔다!”
입금을 알리는 알림에 천강은 손을 벌벌 떨며 금액을 확인해 보았다.
“헉!”
그리고 천강의 눈과 입이 동시에 쩍 벌어지면서 들고 있던 핸드폰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완전히 굳어 버린 천강에게 손을 휘휘 저으며 천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죽었느냐?”
#
# 28 – 27583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