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e Genius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28
“캐피탈리즘이라······ 누구 거야?”
휴대폰으로 파일을 전달 받은 진성현 부장이 물었다.
“문시열 감독님 시나리오에요.”
“···문시열 감독?”
“네.”
휴대폰을 다시 내려놓으며 진성현 부장이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문시열 감독이라면 진성현 부장도 이름 정도는 아는 감독이었다.
‘ 감독이었던가? 그런데 문시열 감독이 도준이를 어떻게 알고 따로 시나리오를 보낸 거지?’
물론 업계 사람이라면 도준의 연락처를 알아내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함께 작업하고 싶은 상대라면 순서를 지키는 게 예의였다.
거기에 배우가 작품을 최종 선택한다고들 하지만 그 사이에 수많은 비즈니스 관계가 끼어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니 진성현 부장이나 소속사를 통해서 먼저 연락하는 게 배우 본인에게 시나리오를 주는 것보다는 훨씬 더 수월하게 계약이 성사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물론 소속사가 마음에 들지 않아할 만한 내용이라면 무리를 해서라도 배우에게 먼저 시나리오를 건네고는 하지만··· 그것도 어떤 식으로든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을 때나 가능한 얘기였다.
그런 진성현 부장의 의문을 안다는 듯 도준이 문시열 감독과의 인연을 전했다.
“일전에 임지유 팀장님 내외랑 점식 식사한 적 있었잖아요.”
“아아, 어. 너 미국 오기 전에 밥 먹는다고 그랬었지. 임 팀장이 미국 출장 때 어지간히 잘 챙겨줬나 봐. 가족이랑 같이 밥도 먹고.”
당시 진성현 부장에게 정확히 왜 임지유 팀장의 남편까지 함께 밥을 먹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던 도준이었다.
기회가 되면 경찰에 알아 보고 싶은 일이 있어 경찰인 남편분까지 만난것이라 설명하려고 했었는데 속깊은 얘기를 할 기회도 없이 미국으로 와야만 했다.
그랬더니 임지유 팀장의 가족과 밥을 먹을 만큼 출장 때 사이가 돈독해졌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것도 사실은 사실이었다.
“네. 그때 우연찮게 문 감독님을 만났는데, 임 팀장님 남편분이랑 잘 아는 사이시더라고요. 그래서 여러가지로 얘기 나누다가 저도 흥미가 생겨서 새 작품 시나리오 쓰시면 저한테 보내달라고 했었어요.”
“아, 그래? 임 팀장 남편은 뭐 하는 사람인데 문 감독을 알아?”
“경찰이요.”
“···경찰? 의외네. 평범한 회사원인 줄 알았더니.”
진성현 부장이 칵테일을 한 모금 마시며 목을 축이고는 이야기를 이었다.
“경찰이 영화 감독이랑 왜··· 아, 뭐 자료조사 하다가 친해졌대?”
역시 눈치 빠르고 노련한 진성현 부장이었다. 도준은 만화책 속 숱한 명탐정들도 울고갈 빠른 추측에 잠시 놀랐다가 바로 “네” 하고 답했다.
“문시열 감독이면 좀··· 어두운 영화하는 사람이잖아.”
도준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라고 코미디 영화도 있긴 한데 대부분은 그런 영화긴 하죠. 이번 영화도 가볍진 않고.”
제목만 봐도 이번 작품 역시 사회 문제를 조명하는 무거운 주제의 영화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완전히 시리어스한 작품에는 출연한 적 없었던 도준이니 진성현 부장으로서는 소재 자체가 꺼려지는 건 아니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을 것이다.
진성현 부장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문시열 감독이면 아예 이름 없는 감독도 아니고, 실력이 없는 감독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도준 정도 되는 배우가 우선순위를 두고 작품을 검토할 만한 감독은 아니었다.
‘천만 흥행작이 있는 메이저 감독도 아니고, 그렇다고 영화제에서 수상을 한 것도 아니니까······.’
동시에 도준의 시나리오 보는 눈도 믿는 진성현 부장이었다.
‘그렇지만 그만큼 시나리오가 괜찮다면······.’
차기작으로 문시열 감독의 작품을 선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스타 배우들이 급이 높아진 이후 이름 있는 제작진의 작품에 주로 출연하는 것은 이유가 있었다.
단지 ‘급’을 맞추려고 그러는 게 아니었다. 이름이 있다는 건 다음 성공도 어느 정도는 검증됐다는 뜻이었다.
한 번 성공한 배우들은 계속해 성공해 ‘망했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를 원했고, 그러니 계속해 이름 있는 제작진의 작품에 출연하게 되는 것이었다.
과연 할리우드 작품이나 유수한 드라마, 영화 제작진들의 제의를 거절하고 출연할 만큼 문시열 감독의 시나리오가 괜찮을지가 관건이었다.
“넌 이 작품 뭐가 그렇게 맘에 들었는데?”
“사실은 소재를 들었을 때부터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어요. 시나리오까지 보고 괜찮으면 출연하고 싶었는데··· 제가 보기엔 시나리오도 충분히 좋은데, 처음부터 소재에 마음을 빼앗긴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사실 모든 것을 차치하고서 도준이 마음에 들어 출연하고자 하면 못 할 것은 없었다.
소재가 얼마나 마이너하든, 시나리오가 엉망이든 도준이 출연하게 되면 투자나 제작에는 문제가 없었고, 심지어 수익성도 어느 정도 보장될 테니까.
그러나 대중 앞에 서는 배우로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만 할 수는 없다는 게 도준의 생각이었다.
자신이 아무리 SG 그룹에 대한 복수심에 익명이지만 백천 사장의 범죄를 다룬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고 해도 그것은 ‘강도준’이라는 개인의 마음이었다.
‘배우 강도준’이 쌓아온 필모그래피와 쌓아갈 커리어, 도준에 의해 움직이는 수많은 스태프와 팬들, 커다란 자금을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늘 그런 것들을 염두에 두기 때문에 도준은 연기 잘하는 예술가이자 훌륭한 ‘상업’ 배우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진성현 부장이 끄덕이며 말했다.
“알았어. 한번 제대로 보고··· 생각해 보자. 차기작으로 적당할지.”
서울에 가면 곧바로 시나리오부터 검토해 봐야 할 듯싶었다.
***
도준이 한국에 돌아온 지 열흘. 그사이 한국의 날씨도 무더운 여름으로 진입해 있었다.
반년 만에 돌아온 한국에서 도준은 오랜만에 제대로 된 휴식을 취했다. 그래 봐야 계속해 집에서 휴식을 취한 것이라 미국에서의 생활과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였어도 TV를 틀면 한국의 프로그램이 전부 나온다는 것부터가 달랐다.
일주일 정도는 집 생활만 하다가 이후로는 바깥에 나가 그간 만나지 못했던 이들을 만났다. 호철과 강산도 만났고, 오랜만에 이치훈도 만났다.
그렇게 열흘의 시간을 여유롭게 지내고 나자 다시 또 스케줄이 밀려 들었다.
도준의 할리우드 생활을 궁금해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었다. 온갖 곳에서 인터뷰 제의가 밀려들었다.
그중에서도 주요 일간지와 패션지 인터뷰를 골라 수락했다.
계약이 끝난 광고들과 재계약을 하기도 하고, 새로 들어온 광고도 있었기 때문에 광고 촬영 일정도 차 있었다.
그렇게 인터뷰와 이런 저런 부가적인 촬영을 하다 보면 여름도 금세 지날 듯했다.
“형··· 근데 안 더우세요?”
스케줄을 안내하고 상의하려 직접 도준의 집에 찾아왔던 규홍이 손바닥을 펄럭이며 물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조율할 것은 차기작에 관한 것이었다.
차기작은 진성현 부장이 와서 얘기하기로 한 터라 진성현 부장을 기다려야 했다.
“더워?”
“네. 너무. 저 얼음물 좀 마실게요.”
도준은 워낙 더위를 잘 타지 않는 편이라 더위를 많이 타는 규홍에게 도준의 집은 식물원 같은 느낌이었다.
삐—
맥을 못 추는 규홍에 도준이 피식 웃으며 얼른 리모컨으로 온도를 낮춰 주었다. 하긴 이전에도 스케줄을 마치고 벤에 오르면 규홍이 온도를 완전히 낮춰 놓아 도준은 카디건을 챙겨 입기도 했다.
달그락거리며 얼음 정수기에서 규홍이 얼음을 뽑아 먹고 있을 때였다.
벨이 울리며 진성현 부장이 도착했다. 규홍이 얼른 나가 문을 열었다.
“어였어여?”
“뭐? 이거는 이제 말도 제대로 못 해.”
아주 친숙한 핀잔으로 시작하는 인사였다. 얼음을 얼른 씹어 삼키며 규홍이 다시 제대로 “오셨어요?” 하고 인사했다.
진성현 부장은 차를 타고 왔음에도 주차장에서 로비로 오는 그 잠깐 사이 길이 더웠다며 들어오기 무섭게 에어컨 온도를 낮추라고 성화였다.
도준이 안 그래도 방금 낮췄다고 답하자 진성현 부장이 끄덕이며 거실 소파에 앉아 쉬었다.
“형, 부장님, 떴나 봐요!”
그때 부엌에서 진성현 부장의 몫까지 물을 따라 거실로 돌아온 규홍이 도준과 진성현 부장에게 휴대폰을 흔들어 보였다.
오늘은 JK 미국판 7월호의 발행일이기도 했다. 규홍이 휴대폰을 거실 테이블 위로 밀어넣었다.
JK 공식 인스타에 7월호 커버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오······.”
처음으로 확인하는 커버 사진 최종본은 제인이 추가했던 샤헬의 다이아몬드 수트를 입은 상반신 사진이었다.
주변은 흑백에 가깝게 색을 뺀 상태로 다이아몬드의 영롱한 빛과 도준의 얼굴이 도드라지게 보정된 사진이었는데, 도준의 검은 눈이 또렷하게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도준에게 붙잡혀 잠시 움직일 수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와, 다르네. 잘 나왔다.”
여태껏 본 도준의 사진 중에서도 역대급이라 불릴 만한 신선하면서도 깊이 있는 사진이었다. 진성현 부장이 감탄하며 자신의 휴대폰을 확인했다.
공식 인스타뿐 아니라 JK USA를 검색하자 서점 가판대에 진열된 잡지 사진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미국 전역에 깔린 도준의 얼굴이 가히 볼 만했다.
도준의 JK 커버 모델 발탁 소식은 세계 언론에 알려지면서 큰 화제를 모은 바 있었다.
아시아 최초 JK 커버 모델.
대중들도 대중들이었지만 한국 패션 업계는 더욱 들썩거렸다. 이것이 얼마나 큰일인지 가장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커버 모델, 거기에 뉴욕 시장이라고까지 불리는 제인 안투가 도준을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했다는 후문까지 돌자 미국 패션 업계에서 한국의 모델과 패션에 관심을 갖는 등 파급 효과가 대단했다.
JK 지부들 중에서도 대대로 패션 명가로 불리는 프랑스나 이탈리아, 자본력이 좋은 중국이나 일본에 밀리던 한국 지부가 오랜만에 어깨를 펴고 본사의 지원을 받게 된 것도 이에 기인했다.
“오, 정 대리 연락왔는데. 마리한테 직접 연락왔는데 현지 반응이 엄청나게 좋다고 너한테 전해달라고 했대.”
인터넷으로 도준의 화보를 검색하다가 정은지 대리로부터 온 메시지를 확인한 진성현 부장이 말했다.
“벌써 반응이 있다구요?”
“인스타 팔로워수랑 인터넷 사이트 방문율부터 바로 올랐단다. 판매 부수는 이미 걱정 안 해도 되는 수준이잖냐.”
전세계 JK USA예약 판매 부수가 이미 사상 최고치를 달성한 상태였다.
곧이어 기사가 나가며 한국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도 도준의 이름과 JK, 모델 등 관련 단어들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실물 도착하면 감탄은 그때 또 한번 하기로 하고··· 또 한 번 실검을 뜨겁게 할 차기작 얘기를 해 볼까?”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진성현 부장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을 본 후, 진성현 부장은 도준이 왜 그렇게 이 시나리오에 매료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진 부장에게 그것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시나리오 자체의 재미였다.
재미있었다. 그래서 진성현 부장은 도준의 차기작으로 이 괜찮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시나리오, 좋은 것 같아. 규홍이도 재밌다고 했고, 임 팀장도 기대 이상이래. 네가 나오면 흥행도 문제 없을 정도라고.”
“다행이네요. 다들 마음에 들어하셔서.”
“그럼 문 감독한테도 정식으로 연락 넣어 볼게. 너한테 들어온 역할은 그거지? 주인공. 경찰.”
도준이 “아······.” 하며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
“아니요, 그··· 악역이요.”
끝
ⓒ 천태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