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e Genius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52
152화에 계속 –
152화 Warming up (3)
뉴욕 현대 미술관은 영어로는 더 뮤지엄 오브 모던 아트, 줄여서 ‘모마’라고도 불리는 곳이었다.
모네, 클림트, 마티스, 피카소의 그림부터 앤디 워홀과 잭슨 폴록의 작품까지 전시된, 근대부터 현대까지를 아우르는 뉴욕 최고의 미술관.
‘뉴욕 최고’라고 해서 단순히 뉴욕 한 도시만을 아우르는 것도 아니었다.
세계 3대 박물관이 루브르, 바티칸, 대영 박물관이라면 뉴욕 현대 미술관은 세계 3대 미술관에 꼽히는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전시를, 그것도 자신만의 특별전을 여는 것은 예술가들에게는 말로 다 설명 못 할 영광이었는데 다시 말하자면 그만큼 세계에서 인정받은 예술가만이 특별전을 열 수 있기도 했다.
그리고 크리스토퍼 엘런은 뉴욕 현대 미술관에서만 벌써 두 번째 특별전을 여는 현대 사진계의 거장이었다.
“어떻게…… 어제 말씀하신 부분 수정해서 위치를 살짝 내렸는데…… 마음에 드세요?”
미술관이 개장하기도 전인 이른 아침, 이번 특별 전시 총책임을 맡은 큐레이터가 엘런의 뒤를 따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반년 전부터 엘런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전시를 기획하고, 사진을 담을 프레임 하나까지도 엘런과 의견을 주고받은 큐레이터였다.
휴관일이었던 어제는 준비를 모두 마치고 관람객이 관람할 동선에 따라 엘런과 함께 전시 관람 리허설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확인, 또 확인하는 것은 엘런이 이번 전시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큐레이터 또한 이번 전시가 엘런에게 커다란 의미가 될 것이라 확신했다.
‘그의 작품 세계가 변화를 맞이하는 분기점이 될 거야.’
그간 그가 찍어 온 사진은 모두 도시의 일면들이었다. 풍경이 주가 되고 인물은 부수적으로 등장했다.
또 색감이 화려한 것이 특징이었다. 눈이 부신 듯한 느낌의 선명한 도시.
그러나 이번 전시의 메인 작품은 흑백 사진이었다.
‘그것도 인물 사진…….’
오랫동안 이번 전시의 메인 작품을 결정하지 못하던 엘런이 처음 사진을 보여 주었을 때의 놀라움을 큐레이터인 그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역시 사진계의 거장다웠다.
“아름다워요.”
처음 그가 내뱉은 말은 그것이었고.
“이번 전시의 주제이자, 내 작품 세계의 중심인 ‘도시’를 상징적으로 표현했습니다.”
큐레이터는 엘런의 말을 곧장 이해했다.
‘도시를 만들어 낸 것도, 이룬 것도 결국 사람일 테니까…….’
거기에 정적이면서도 역동적이고, 흐릿하면서도 선명한 아름다움이 사진에 진하게 배어 있었고 그것은 ‘도시’ 그 자체였다.
“맘에 들어요. 좋습니다.”
전시장 중앙에 걸린, 이 전시회의 유일한 인물 사진의 작품명은 이었다.
앞에서 엘런이 끄덕거렸다. 아주 미세하게 위치가 조정된 것이었지만.
“다시 봐도 너무 아름다운 사진이에요. 이 사진을 못 썼다면 정말 아쉬웠을 거예요.”
“내 평생의 한으로 남았을 겁니다. 우리 작업실 건물 청소부가 사진 속 배우를 알아보지 못했다면…… 하아…… 생각하기도 싫군요.”
엘런의 말에 큐레이터가 동의한다는 듯 끄덕였다.
“평소에 사진만 생각하지 말고 드라마도 보고 해야겠어요. 드라마 배우였다니…… 하긴 보통의 외모는 아니죠.”
“하하. 맞아요. 일상을 살기에는 너무 매혹적인 얼굴을 갖고 있어요. 곧 실물을 보겠네요.”
“그러게요. 그날은 렌즈에 담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여기에 담아야겠어요.”
엘런이 제 눈을 가리키며 말했다. 큐레이터가 빙긋 미소 지으며 다시금 커다란 인물 사진을 눈에 담았다.
계속해서 보고 싶어지는 사진이었다.
이 사진은 수영장 시리즈에 이은 엘런의 또 다른 대표작이 될 것이 분명했다.
* * *
엘런의 특별 전시회가 열리자 안 그래도 늘 관람객으로 붐비는 뉴욕 현대 미술관은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일반인들이 느끼기에는 너무 난해한 여타의 현대 미술 작품과 달리 엘런의 사진은 직관적이고 명확한 주제를 담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엘런의 작품은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볼 때와 같이 그저 보기만 해도 마음이 평온해지는 매력과 함께 ‘아름답다’는 단순하고 명쾌한 감상을 이끌어 냈다.
엘런의 사진이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획득할 수 있는 이유였다.
“이게 엘런의 신작인가?”
전시회 입구에는 엘런이 사진작가로 활동한 지 얼마 안 됐을 무렵의 초창기 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 사진들을 지나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주유소, 호텔 그리고 도로’ 시리즈를 따라 걸으면 전문가와 대중 모두에게 극찬받았던 ‘수영장’ 시리즈가 나왔다.
그리고 뒤를 돌면 맞은 편에는 흰 벽면을 가득 채운 커다란 흑백 사진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와…….”
“…… 환상적이네.”
“엘런의 인물 사진이라니…….”
“너무 아름답다. 어떻게 빛을 이렇게 쓸 수가 있지?”
사진의 크기도 크기였지만 그 내용물에 사람들은 압도됐다. 저마다 감탄을 하느라 웅성거림이 일 정도였다.
“와, 역시 가장 아름다운 건 인간이 만들어 낸 것들이 아닌 신의 피조물인 인간이라는 건가.”
“몽환적이면서도 현실적이네…… 모델 누구야? 보통 사람은 아닌데.”
“제목이…… …… 너무 딱이잖아?”
“여태까지 엘런의 작품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면모인데 그럼에도 뛰어나다는 게 느껴져.”
“모델 누구야?”
“아, 여기 설명 부분 봐봐. ‘길을 가다 우연히 마주친 이름 모를 남자는 도시가 꾸는 꿈 같기도, 꿈꾸는 도시의 모습을 형상화한 듯도 하다…… 사진을 허락해 준, 배우 도준 강에게 감사를 올리며’ 이렇게 돼 있네…….”
“역시 배우였던 건가? 그런데 우연히 찍힌 거라고? 하긴 나도 카메라 들고 있는데 이렇게 생긴 남자가 내 눈앞에 있다면 셔터부터 누르긴 했을 텐데.”
“그러니까 말이야…… 아, 나 이 사람 잡지 커버에서 본 것 같기도 한데…… 아닌가. 드라마였나……. 어?”
친구와 토로하듯 대화하던 금발 머리의 남자가 사진을 한 발짝 떨어져 전체적으로 감상하려 뒤로 물러설 때였다.
“니, 닐슨? 야, 닐슨…… 저기.”
“왜 그래…… 어?!”
그가 친구의 옆구리를 찌르자 사진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던 친구가 짜증스럽게 그를 돌아보았다.
경호원으로 보이는 어깨가 벌어진 검은 양복 남성 두 명과 동양인 무리. 그 가운데에서 걸어오고 있는 것은 분명히 사진 속 모델이었다.
엘런에게 초청장을 받은 도준이 직원들과 함께 전시회 셋째 날인 오늘 전시회에 온 것이었다.
도준을 발견한 이들의 눈이 모두 커졌다. 그들의 입에서 사진을 보았을 때처럼 와, 하는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사진 속 인물이 바로 앞에 있어 나오는 신기함의 감탄사이기도 했고, 사진 속과는 또 다른 분위기의 얼굴을 향한 감탄사이기도 했다.
사진 속의 도준이 몽환적 매력을 담고 있다면, 현실의 도준은 깔끔한 인상의 반박할 수 없는 조각상 같은 미남이라는 느낌이었다.
“맞지? …… 사진 속 주인공.”
“어, 맞아. 맞는 것 같아. 보니까 알겠다. ‘닥터 원’이었네! 와…… 카메라만 있었다면 정말 당장 사진 찍고 싶어지는 얼굴이네.”
전시회장은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금발 머리의 친구가 아쉬움의 입맛을 다셨다.
도준을 발견한 이들도 놀라고 있었지만, 전시회장에 도착한 도준과 직원들 또한 생각보다 더 대단한 전시회의 스케일에 놀라고 있었다.
게다가.
“제 사진이 이번 전시회 메인 작품인 줄은 전혀 몰랐는데요.”
사진 하나 전시회에 걸리는 것인 줄 알았는데 도준의 사진이 무려 메인 작품이었다.
미술관 측은 전시회 홍보 때에는 ‘베일에 가려진 새로운 차원의 신작 공개’라고 돼 있어 이전에 이미 공개된 수영장 시리즈를 내세웠었다.
그것을 보고 왔기 때문에 도준도 자신의 작품이 이번 전시의 메인일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전시회가 시작되고, 도준과 일행이 뉴욕에 도착했을 때는 전시회 티켓부터 팸플릿, 전시회장 곳곳에 도준의 사진이, 이 걸려 있었다.
“그러니까요. 아니, 이렇게 크게 벽에 걸릴 줄은…….”
임지유 이사가 작품 속 도준과 실제 도준을 번갈아 보며 답했다.
일행을 안내하는 전시 관계자는 한국어를 알지 못했으나 액션과 감탄사만으로도 충분히 그 분위기를 이해했기에 설명했다.
“이제 3일 지났지만 이번 전시와 에 대한 반응은 기대 이상이에요. 기대치가 낮았던 것도 아닌데 말이죠. 곧 타임스 스퀘어에도 광고가 나갈 겁니다.”
모두 영어가 가능한 직원들이었기 때문에 관계자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메인 작품을 토대로 한 영상일 거고요.”
그 뜻은 도준의 얼굴이 타임스 스퀘어 전광판에 뜬다는 뜻이었다. 임지유 이사와 함께 온 홍보팀 직원들의 얼굴에 놀라움이 스쳤다.
“이러다가 우리 잘리겠어.”
임지유 이사가 우스갯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말대로였다. 홍보팀이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도 타임스 스퀘어 전광판에 얼굴이 걸리게 생겼으니 직원들은 차마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그럼 이제 엘런 씨를 만나러 가실까요? 사무실 곧 도착하신답니다.”
관계자의 안내에 도준이 끄덕였다.
안 그래도 사람들이 점점 몰려들어서 어서 자리를 피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인파가 몰리는 건 익숙했지만, 현재의 도준은 속 모델이었다.
실제의 도준과 속 도준은 분명히 다를 것이므로 괜히 괴리감을 주어 작품 감상에 방해가 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었다.
‘이렇게 좋은 사진을 찍는 이는 어떤 사람일까.’
세계적인 사진작가인 크리스토퍼 엘런을 만나러 가는 도준의 얼굴에 기대가 어렸다.
* * *
크리스토퍼 엘런의 작품 속 모델이 된 도준의 이야기가 기사로 나가자 한국에서의 반응은 말할 것 없이 뜨거웠다.
엘런도 도준도 각자의 분야에서 톱의 위치에 있는 이들이었기 때문에 그 시너지가 대단했다.
현대 예술에 대해서 별 관심 없던 도준의 팬들이 크리스토퍼 엘런의 작품을 찾아보는가 하면, 예술계에 몸담은 이들이 크리스토퍼 엘런의 뮤즈가 된 도준에게 큰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이미 JK 커버 모델 이후 겪었던 일이기도 했지만, 다시금 온갖 패션쇼에서 초대 손님으로 와 달라는 러브 콜이 잇달았다.
당시에는 미국 쪽에 한정되어 있었다면, 현재는 이탈리아와 프랑스같이 문화에 보수적인 유럽 쪽에서도 도준을 화보에 쓰고 싶다는 연락이 오는 상황이었다.
이미 세계적으로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도준이었지만, 확실히 현대 예술 거장의 작품 속 주인공으로서 알려지는 것은 또 다른 의미였다.
“흐음…….”
그러나 쏟아지는 관심과 사랑 속에서도 도준의 입에서는 어쩔 수 없는 한숨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