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66
66화
낚시터에서 생긴 일 (2)
어민협동조합.
어민들 90%가 가입한 단체로 동해 물고기는 모두 여기서 유통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통을 단일화하면 어민들끼리 불필요한 경쟁을 줄일 수 있었고. 어협은 이 협상력을 바탕으로 유리한 가격 협상을 할 수 있었다.
노인 또한 한때는 동해 지부 조합원장까지 갔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위치에 오르면서 못 볼 꼴도 많이 봤던 터였다. 그 얘기는 아직도 떠올리고 싶지 않다.
“어르신. 이게 겨울철에서 가장 큰 경매라는데 정말 그렇습니까?”
삼인방은 보건소에서 받은 빵과 우유를 우물거리며 물었다.
노인은 상념을 지우고 웃음을 보였다.
“그럼. 동해에서 잡은 물고기가 다 나오는데 날인데, 볼거리도 많제. 백화점도 여기서 고기 떼다 파는 거야.”
세 사람은 작은 탄성을 질렀다.
도시에서 살면서 경매를 볼 기회가 얼마나 있겠나. 시장에서 흥정을 해 본 경험도 없는 이들이다.
“그래도 젊은 것이 좋네. 얼굴색이 금세 좋아지고. 이제 좀 괜찮남?”
“덕택에요. 어르신 아니었으면 골로 갈 뻔했습니다. 이 은혜를 어찌 보답해야 할지.”
“보답은 무슨. 담부텀 뭐 함부로 주어 먹지 말어. 바다 생물이 얼매나 위험한디.”
“네. 당분간은 밥상에 고등어만 올라와도 기겁하겠네요.”
박 조사관이 능청을 떨자 노인도 슬며시 웃었다.
“낚시 코스는 영 별로여도 관광은 좀 아는구먼. 경매 구경할 거면 날짜 잘 잡아 왔네.”
“그래요? 겨울이라서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들었는데.”
“이 맘이 젤 적당할 때야. 여름 되면 사람이 똥파리보다 더 많으니까. 자네들 발도 못 들였을걸.”
노인은 슬쩍 웃으며 명함 한 장을 내밀었다.
[원광수산]“여가 내 업장일세.”
“아, 어르신도 오늘 경매에 참여하시나 보군요.”
“암- 동해에서 원광오징어 모르면 이북에서 왔지. 할 거 없으면 놀러들 와.”
“초대해 주시면 감사하죠. 가서 짐이라도 나르겠습니다.”
확실히 박 조사관은 처세에 능한 사람이다. 입속에 달콤한 사탕처럼 아양을 떨자 노인이 크게 웃었다.
촌에서 살며 젊은 사람들과 농담 나눌 기회가 얼마나 있겠나. 노인은 손주들 재롱잔치 보는 할아버지처럼 웃었다.
“그럼 내리더라고.”
그렇게 수산시장에 도착하니 그 장대한 규모에 입이 떡 벌어졌다.
과연 동해에서 가장 큰 수산시장다운 규모.
서울에선 구경도 못 해 본 생선들이 파닥거렸고, 시장 안은 관광객과 도매상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오징어 사세요- 오징어. 오늘 경매에 참가할 싱싱한 대명 오징어입니다!”
“거기 아재요. 과메기 한 바가지 안 사 갑니꺼. 우리 미루 과메기는 백화점에 납품하는 상품입니다.”
“골라, 골라. 삼치가 다섯 마리에 만 원.”
시장통에 들어서니 메가폰 소리가 눈길을 끌었다. 생선 구경보다 더 재밌는 건 이걸 파는 흥정 소리다.
휘황찬란한 광경에 삼인방은 눈동자가 부지런히 굴러갔다.
“어르신. 무슨 삼치가 저렇게 쌉니까? 여긴 값을 거의 다 절반도 안 받네요?”
“떨이 상품이니껜.”
“떨이요?”
“경매로 올리기엔 중량이 안 나가거나, 상품성 애매한 것들 파는 장사다 이 말이여.”
“아.”
“맛은 똑같은데 떨이라서 가격만 싼 것이여. 눈썰미 있음 한번 골라들 봐.”
노인이 자랑스레 말할 때였다.
“아니, 왜 우리는 장사 못 하게 해요?!”
시장 중앙에서 날카로운 아줌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눈을 돌려 보니 대여섯 되는 장정들과 아줌마가 대치하고 있는 상황.
“아줌마. 거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여긴 우리 조합원들 자리라고.”
“어디 뭐 명찰이라도 박아 놨어요? 대체 여기가 언제부터 어협조합원 자리야.”
“거기 아줌마가 깔고 앉은 빨간 바가지! 그게 우리 조합원들이 맡아 놨단 표시야. 명찰이 버젓이 있구만 어딜 얌체처럼 깔고 앉아.”
중년 아줌마는 빨간 바가지를 내동댕이쳤다.
“이게 어딜 봐서 명찰이야!”
“왜 늦장 오셔 가지고 먼저 온 사람한테 행패람.”
“행패? 이 썩을 놈들아! 네들이 어협에 가입 안 한 사람들 왕따시키려고 이러는 거 누가 몰라?”
“뭐야?”
“비조합원들 장사 못 하게 훼방 놓는 거 아니야!”
순식간에 수산시장의 이목이 모두 쏠렸다.
이건 흥정하다 보면 으레 나오는 입씨름이 아니었다.
“이 아줌마가 겨울에 더위를 자셨나.”
“아니라면 아니라고 해 봐!”
“아니야! 여긴 우리 어협조합원들이 새벽부터 줄 서서 맡은 자리요. 아, 뭣들 하냐? 얼른 이 아줌마 자리 빼.”
그리 말하자 주변에 있던 장정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놔! 그거 함부로 건들지 마!”
“비키세요, 그만 좀.”
“나 진짜 네들하고 같이 죽을 수도 있어! 그거 안 내려놔.”
그렇게 양측 간의 충돌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그만들 하시게. 최 반장.”
노인이 좌우를 헤치며 그들 앞에 섰다.
옆에서 볼 땐 잘 몰랐는데, 노인은 아무래도 중요한 위치를 맡고 있는 모양이다. 그의 등장해 기세등등 달려들던 장정들이 멈칫하기 시작했다.
“영감님은 또 여기 웬일이십니까?”
“뱃사람이 경매장에 왜 왔겠나. 고기 팔러 왔제.”
“그럼 가던 길 가세요. 곧 경매 시작하는데 여기서 노닥거릴 시간 있습니까.”
“최 반장. 나도 오늘 말장난할 시간 없으니, 좋은 말로 할 때 그만둬.”
노인이 단단한 목소리로 말하자 사내도 멈칫했다.
“김 씨네 말도 틀린 게 없잖나. 자네들이 빨간 바가지 하나씩 던지고 가면 누가 목 좋은 곳에서 장사하나.”
“우리가 그 사정까지 봐드려야 합니까?”
“그럼 어디 한번 경찰 불러 보시게. 어협 간부들이 목 좋은 곳에 알박기한다. 비조합원들 장사 못 하게 방해한다. 진짜 끝까지 가겠나?”
사내는 주변을 살폈다. 막무가내처럼 보이는데 막상 또 경찰은 부르기 싫은 모양.
그가 손가락을 까딱거리자 장정들이 슬금슬금 물러났다.
“가세요- 가. 뭐 구경들 났습니까?”
“하던 일 하세요.”
장정들이 구경꾼들을 물리치자 그가 슬쩍 다가왔다.
“영감님. 그걸 아시면 고집 그만 부리시고, 어협에 재가입하세요.”
“이런 꼴 보이면서 재가입하라고?”
“안 그럼 더한 꼴 보시든가. 오늘은 물러 가 드리지만 다음엔 어림없어요.”
“어림없다라. 협박으로 들리는군.”
“협박이 아니라 상생. 아, 어민들끼리 불필요한 경쟁 줄이고 좀 다 같이 잘살아 봅시다.”
노인은 비웃으며 [공판장]이라 쓰여 있는 중앙시장 팻말을 가리켰다.
“공판장에서 이런 깽판을 쳐 놓고선 다 같이 잘살아?”
“영감님!”
“공판장은 공개판매장이니 공판장이야. 비조합원들도 여기선 차별하면 안 돼. 그것도 어기는 놈들이 무슨 다 같이를 입에 올려.”
노인이 자리를 떠나려 하자 그가 비웃으며 말했다.
“이번엔 넘어가 드리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입니다. 지금 어협조합에 가입 안 한 사람들 얼마 없는 거 알죠. 영감님이 어민들 꾀어서 어협 가입하지 말라고 하는 거 다 압니다. 제발
똥고집 좀 그만 부리세요.”
***
“자- 그럼 경매 시작하겠습니다.”
황릉 중앙시장의 최대 명물 생선 경매는 다소 흉흉한 분위기 속에서 시작되었다.
“첫 경매는 청일 과메기. 응찰자는 번호표를 들어 주세요.”
단상에 나선 중개인도 이를 의식하는지 부러 목소리를 돋우는 것 같았다.
오늘의 경매 첫 상품은 과메기였다. 소개를 들어 보니 10년 동안 백화점에 납품하던 상품이란다.
살이 통통 오른 과메기가 나오자 도매상들이 휘휘 돌아다니며 상품성을 따졌다.
바야흐로 총성 없는 전쟁의 시작.
중개상인들은 약 30초간 치열한 눈치 싸움을 벌였다. 자기들끼리 무슨 수신호를 보내며 귀엣말을 하는데,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손에 진땀이 난다.
“경매 시작합니다. 시작가 400!”
이윽고 경매가 시작되었을 때.
“410”
“420”
“450!”
고요했던 경매장은 언제 그랬냐는 듯 활활 타올랐다.
“470!”
“500!”
숫자가 진짜 빠르게 올라간다. 정신 놓고 보니 어느새 가격이 두 배까지 갔다.
“이야 이거 진짜 손에 땀 나는데요.”
“그러게. 주식 상한가 구경하는 것보다 재밌다.”
응찰자 번호표만 있으면 아무 숫자나 막 불러 보고 싶을 정도.
“550, 550, 550! 오케이. 한미마트가 최종 낙찰되었습니다.”
중개인이 세 번 가격을 말하는 게 최종 낙찰을 뜻하는 모양이다.
그 뒤로 해삼, 삼치, 광어 등이 경매장에 올랐고, 치열한 흥정 싸움이 계속되었다.
그렇게 보니 참 이 바닥도 재밌다.
그림 같은 풍경에 유유자적 사는 것처럼 보이던 어민들이, 사생결단으로 덤벼들지 않겠나. 역시나 속사정을 알고 보면 안 치열하게 사는 곳이 없다.
“그리고 다음은…… 에. 원광수산. 오징어 되겠습니다.”
그러나 영감님의 원광수산이 경매장에 오르자 갑자기 분위기가 변했다.
중개상인들이 슬금슬금 눈치를 보더니 한 곳을 바라봤다. 아까까지 영감님과 싸웠던 최 반장의 얼굴이었다.
‘뭐야 저 분위기는?’
대체 뭘까? 경매 시작하면 물건에 집중해야 하는데, 다들 눈이 엉뚱한 데로 가 있다.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니었다. 상품이 오르면 중개상인들이 이리저리 쏘다니며 상품성을 재는데, 영감님네 오징어는 반응이 영 썰렁했다.
“자 그럼 경매 시작하겠습니다. 시작가 400.”
준철은 이 썰렁한 분위기의 실체를 곧 확인할 수 있었다.
“400…… 400요. 400 없습니까?”
방금까지 불타올랐던 중개상인들이 서로 눈치 보기만 바쁘다.
노인은 이 상황을 예감한 건지 착잡한 얼굴로 다른 이들의 시선을 외면했다.
“400…… 정말 없습니까?”
“그럼 원광오징어는 유찰(무효)토록 하겠습니다. 13일에 2차 경매가 있을 예정이니, 도매 사장님들께선 잘 판단하시고 응찰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 뒤로 같은 반응이 연달아 보였다.
다음에 등장한 수산물은 최고가를 쓰며 낙찰받았는데, 최 반장과 싸운 아줌마의 생선은 또 반응이 없었던 것이다.
“이것으로 중앙시장 1차 경매를 마치겠습니다. 13일에 2차 경매가 있을 예정이니, 유통사 사장님들께선 많이들 참석해 주십쇼.”
그리고 그렇게 경매가 허무하게 끝났을 때.
준철은 어렵지 않게 이 규칙을 알 수 있었다.
‘……이거 중개인들 담합 아니야?’
표정이 어두운 이들은 어민협동조합에 가입 안 한 어민들이다.
한마디로 비조합원들은 이번 경매에서 학살을 당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