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tball is money RAW novel - Chapter 125
너희들은 카탈루냐 사람들을 몰라
“우리 팀의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나?”
얀티치는 인사도 없이 다짜고짜 나에게 물었다.
소련 KGB 간부처럼 살벌했다.
거짓말하면 고문실에 처넣겠다는 듯.
“그걸 왜 저한테 물어보시죠?”
그래서 더 내 생각을 그냥 말해주기 싫었다.
판힐까지 겪고 나니 감독과의 초반 기 싸움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빅클럽에서 살아남으려면 너무 고분고분해도 안 되고 너무 막 나가도 안 된다.
“흥. 리그의 유일한 동양인이라더니… 당차군. 군대는 갔다 왔나? 너희 나라는 남자들이 군대에 가야 한다며?”
“월드컵 준우승해서 면제됐습니다. 앞으로 유럽에서 뛰는데 전혀 문제없습니다.”
얀티치가 차가운 눈으로 나를 빤히 보았다.
이 남자는 축구를 안 했으면 뭔가 폭력적인 집단에 몸담았을 거 같다.
판힐처럼 화를 내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는데도 위협적인 살기를 내뿜었다.
“이번 시즌 남은 경기들. 너를 중심으로 팀을 만들어갈 계획이야.”
나는 표정 변화 없이 그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우리 팀의 문제는 왼쪽입니다.”
“역시.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말인데…”
얀티치 감독은 본인이 구상한 전술을 알려주었다.
놀랍게도 그가 말한 전술은 내가 생각한 전술과 같았다.
그게 지금 우리 팀의 선수 구성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걸 우리 둘은 알았다.
***
“바르샤! 바르샤! 바르샤!”
“카스티야 촌놈들 꺼져라!!”
“뭐야!? 이 카탈루냐 빨갱이 새끼들! 니들은 스페인 사람도 아니야!”
“에스파뇰! 에스파뇰! 우리의 힘을 보여주자!”
얀티치 감독의 바르사 데뷔전은 하필 악명 높은 [카탈루냐 더비]였다.
같은 바르셀로나에 있는 [RCD 에스파뇰]은 창단한 지 100년이 넘은 전통의 축구단이다.
에스파뇰의 주축은 바르셀로나에 사는 카스티야 출신 사람들로 같은 동네 사는 카탈루냐인의 팀 바르사와 사이가 나빴다.
에스파뇰의 홈구장 [바르셀로나 올림픽 스타디온]은 경기 전부터 살벌한 공기가 감돌았다.
“레알과 사이가 안 좋은 건 역사적으로 이해가 가. 하지만 이건 좀 아니잖아? 같은 도시 사람들끼리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맞아. 최근에 더 심해진 거 같아. 적대감을 부추기는 나쁜 세력들이 있어.”
“그냥… 축구일 뿐인데… 쫌. 적당히 즐기지.”
나와 이니에타, 엔리켈이 버스에 나란히 앉아 수다를 떨었다.
올림픽 스타디온은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있었지만 안전 때문에 우리는 경찰차의 호위를 받으며 이동했다.
최근 갑자기 코너에서 튀어나와 버스에 돌과 병을 던지는 돌아이들이 많아져서 다들 신경이 곤두섰다.
“너희들은 카탈루냐 사람들을 몰라…”
차비 에르난이 한마디 했다.
이니에타와 엔리켈은 스페인 다른 지역 출신이고 차비는 카탈루냐 성골이었다.
살짝 어색해진 분위기에서 사비올란과 리칼메가 모두를 웃게 만들었다.
“이게 위험하다구? 이 정도는 그냥 애교 아니야? 나는 스페인 와서 축구 하며 얼마나 마음이 편한지 몰라. 우리 고향에서 더비 경기가 열리면 진짜 사람이 죽기도 하거든.”
“맞아. 맞아.”
리칼메와 사비올란이 담담하게 고향 아르헨티나 이야기를 했다.
둘은 각각 보카 주니어스와 리버 플레이트 출신으로 두 팀은 같은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연고로 하는 앙숙 오브 앙숙이었다.
두 팀이 붙는 더비를 [엘 수페르 클레시코]라고 불렀는데 그날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전쟁이 벌어진다.
전쟁 같은 게 아니라 진짜 피와 살이 터지는 전쟁 말이다.
아르헨티나 친구들 이야기에 버스 분위기가 숙연해졌고 더 이상 불만은 나오지 않았다.
“버스 문 열리면 내려서 최대한 빨리 입구로 뛰어가. 사람들 떠드는 말에 절대 동요하지 마. 쳐다보면 지는 거야.”
“예!”
원정 경기는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야! 이 배부른 돼지 새끼들아!!”
“니들 오늘 다리 부러져서 실려 나갈 줄 알아!”
“야! 중국놈! 당장 우리 동네에서 꺼져!”
버스에서 내리자 에스파뇰 울트라들이 철조망에 매달려 우리를 반겨주었다.
에스파뇰 울트라의 폭력성은 라리가에서도 최악을 달리고 있었다.
팀 재정이 변변치 못하다 보니 결국 악만 남은 소수의 열성팬들만 똘똘 뭉쳐 일반 팬들과도 충돌을 일으키며 구단의 골칫거리가 되었다.
“14번. 레프트윙 김건.”
나는 원톱에서 포지션을 레프트윙으로 옮겼다.
얀티치 감독은 판힐과 다르게 나를 따로 불러 내가 여기서 뛰어야 하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해주었다.
나를 중심으로 팀을 운영하겠다는데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내가 레프트윙 자리에 서자 관중석이 술렁거렸다.
내 왼쪽에 있던 바르사 팬들 몇몇이 일어나 나의 이름을 외쳤다.
“소렌. 이거다 싶으면 과감하게 올라가요. 뒤는 나한테 맡기고.”
“알겠어. 고마워. 건.”
내가 왼쪽 풀백 파블로 소렌에게 말했다.
소렌은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얼마 전 풀백 보강을 위해 임대해 온 선수다.
우습게도 소렌을 원했던 건 판힐이었는데 이제 그는 없었다.
소렌은 우수한 선수였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소렌! 경기 시작하자마자 오버래핑합니다! 총알 같은 스피드!! 아! 높은 위치에서 볼을 빼앗깁니다! 위기에요! 뒤가 텅텅 비었어요!]한번 올라가면 내려올 줄 몰랐다.
평소에는 얌전한데 일단 경기에 몰입하면 공격적인 성향이 발현되어 통제가 안 됐다.
오죽하면 코치들이 레프트 풀백을 사달랬더니 레프트윙을 사왔다고 투덜거렸을까.
[바르사! 왼쪽 공간이 뻥 뚫렸습니다! 하지만! 김건! 어느새 내려와 태클로 막아냅니다!] [엄청난 활동량이네요! 언제 저기까지 내려온 거죠?]나는 왼쪽 최전방부터 최후방까지 움직이며 공격과 수비를 병행했다.
나와 얀티치 감독은 그때 감독실에서 이 전술을 만들었다.
“현재 우리 팀에는 소렌을 대처할 풀백이 없어. 활동량도 좋고 수비도 좋고 다 좋은데 문제는 통제가 안 되는 공격성이야.”
얀티치 감독은 며칠 훈련을 지켜보고 선수들의 성향을 전부 파악하고 있었다.
“내 경험에 의하면 공격성이 강한 풀백은 그냥 날뛰게 놔둬야 해. 걔들은 미친개거든. 미친개에게 목줄을 채우면 평범한 개만도 못하게 되지.”
“동의합니다.”
“사비올란도 문제야. 스피드는 있지만 짧은 거리에서만 위력을 발휘해. 그 친구는 왼쪽 공간을 장악할 능력이 없어.”
“동의합니다.”
얀티치는 나와 같은 걸 보고 있었다.
“나는 너를 원톱에 놓고 싶어. 하지만 팀을 위해 아직은 그럴 수가 없어.”
“제가 왼쪽에서 뛰면 되는 겁니까?”
“응. 그렇게 해줄 수 있겠나?”
“감독님이 해달라고 말씀해주세요. 그럼 기꺼이 하겠습니다.”
“훗. 좋아. 부탁하지.”
이렇게 나는 왼쪽을 장악하라는 임무를 받았다.
레프트윙으로 뛰며 플레이 메이킹을 했던 경험은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미드필드진과 수비진이 모두 나를 위해 움직였다.
여기서는 나 혼자 공격과 수비를 컨트롤해야 했다.
[김건! 왼쪽에서 볼 받았습니다!]차비 – 이니에타 듀오는 이제 자신 있게 중원을 휘저었다.
둘은 에스파뇰의 거친 수비를 벗겨내며 사이드로 양질의 패스를 뿌려주었다.
나는 볼을 몰고 내려앉은 에스파뇰 수비진의 측면을 노렸다.
에스파뇰의 전략은 단순 무식했다.
8명이 4-4 버스 두 대를 세워놓고 공격을 막아내면 공격수 둘이 역습하는 전술이다.
“어딜!”
나는 팬텀드리블과 스쿱턴을 조합해서 첫 번째 라인을깨트렸다.
촘촘하게 서 있던 두 번째 라인이 덤벼들었다.
[김건! 사이드스텝으로 또 벗겨냅니다! 슈우우웃- !!]슛은 아깝게 골대를 벗어났지만 나의 움직임에 에스파뇰 선수들은 충격을 받았다.
두 번째 라인을 벗겨낸 사이드스텝 때문이다.
[간단한 동작 같지만 수비수에게는 당혹스러운 교묘한 스킬입니다. 느린 화면을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티비 해설자들도 난리가 났다.
느린 화면으로 김건우의 움직임을 분석했다.
[김건 선수가 볼을 왼쪽으로 치면서 지면을 밟는 움직임을 보세요. 수비수와 확연히 다르죠?] [오. 오. 그러네요.] [수비수가 땅을 딱 한 번 밟는 동안 김건 선수는 무려 5번을 밟습니다. 바로 저 움직임 때문에 수비수가 김건을 따라가지 못하고 역동작에 걸리는 겁니다.]땅강아지 훈련의 성과였다.
나는 발을 최대한 지면에 붙이고 미끄러지듯 방향을 전환했다.
미묘한 동작이었지만 피치 안에서는 큰 차이를 만들었다.
페널티 박스 안에서 벌이는 공격수와 수비수의 대결은 찰나에 승패가 갈린다.
이 움직임을 만들기 위해 나는 몸의 무게 중심을 최대로 낮추었고 가혹한 코어 운동을 통해 신체 밸런스를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김건! 다시 왼쪽에서 돌파를 시도합니다! 에스파뇰 선수들 당황합니다!]에스파뇰 선수들은 나의 돌파에 위협을 느끼고 왼쪽으로 몰려들었다.
“내가 바라던 바다.”
나는 슬쩍 물러나며 중앙으로 스루패스를 찔렀다.
“고오오오올~!!”
사비올란이 중앙에서 열린 공간으로 뛰어 들어오며 볼을 차넣었다.
원톱 자리에 서자 날렵한 사비올란의 폼이 살아났다.
“건! 나이스 패스!”
“나이스 골~! 사비!”
나는 녀석과 기쁨을 나누었다.
에스파뇰 선수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도 두 줄 수비로 버티면 어떻게든 팽팽하게 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반전 10분 만에 플랜A가 깨져버렸다.
“니들 다른 계획은 있어?”
아직 80분이나 남았다.
에스파뇰의 당황은 곧 공포가 되었다.
바르사 선수들은 무서운 기세로 공격을 퍼부었다.
사비올란 – 리칼메 – 이니에타 – 차비 – 엔리켈까지 상대 진영으로 올라가 맹폭격했다.
삑- ! 삑- ! 삐이이이익- !
[경기 끝났습니다! 바르셀로나가 카탈루냐 더비에서 에스파뇰을 6대 0로 쓰러트립니다! 얀티치 감독! 첫 경기부터 무시무시한 공격력을 보여줍니다! 드림팀 바르셀로나가 돌아왔습니다!]에스파뇰 전이 바르사 부활의 시작이었다.
우리는 무서운 기세로 연승 행진을 벌였다.
28R까지 전승을 거두며 라리가 리그 2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순위표에서 우리 위에 있는 팀은 레알 마드리드뿐이었다.
우리는 30R에서 레알 마드리드와 두 번째 엘 클라시코를 벌이게 된다.
그런 와중에 우리는 챔피언스리그 8강전을 치르기 위해 이탈리아로 떠났다.
상대는 세리에A 최강 유벤투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