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tball is money RAW novel - Chapter 20
사진을 도대체 몇 장 찍은 거야?
“혹시~~ 블루샤크의 김건? 선수?”
후쿠오카 억양이 강하게 섞인 콧소리가 간드러졌다.
가까이서 보니 과한 화장만 지우면 앳되고 상당히 이쁜 얼굴이다.
“예. 그런데요.”
“꺄아아아~!! 맞대! 맞대!”
“정말이야!?”
“진짜 멋있어요! 김건 선수!”
어이없게도 시비를 걸러 온 게 아니라 포스터를 보고 사진을 찍고 싶어서 온 거였다.
여학생, 남학생 모두 나의 신분을 확인하자 매우 공손하게 굴었다.
“우리 같이 사진 찍어요! 김건 선수!”
“그러죠.”
“우리 말도 잘하시네요.”
“어느 정도요. 아직 잘은 못해요.”
“도쿄~~ 사람처럼 말하는걸요? 호호호.”
여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양쪽에서 팔짱을 끼며 매달렸다.
진한 향수 냄새에 정신이 어질했다.
내가 화려한 애들과 사진을 찍고 있으니까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나둘 관심을 보이며 몰려들었다.
“내일 개막전에 출전하는 김건 선수에요! 우리 블루샤크의 호프!”
“정말이네!? 김건 선수! 반갑습니다. 우리 악수나 한번 합시다.”
“우리 블루샤크! 잘 부탁합니다!”
이젠 양복을 차려입은 아저씨부터 자이언츠 모자를 쓴 할아버지까지 몰려들었다.
후쿠오카가 무슨 시골도 아니고 엄연한 대도시인데도 분위기가 참 친근했다.
일본 사람들은 소극적이라는 고정관념과는 달리 다들 큰소리로 떠들며 나에게 아낌없는 격려를 보냈다.
이게 후쿠오카 사람들의 기질인가?
1시간 정도 붙잡혀 있다가 겨우 빠져나왔는데 기분은 전혀 나쁘지 않았다.
“사진을 도대체 몇 장 찍은 거야? 사인은 몇 장을 했구? 하하하.”
“괜찮아? 건우야.”
“당연하지. 오히려 힘이 난다. 이렇게 다들 좋아해 주니까. 2부 리그 팀인데도 인기가 좋네. 다들 평생 바꿀 수 없는 자기 팀이라고 생각하잖아.”
“그러니까. 한국도 이러면 참 좋을 텐데…”
“한국 사람들은 국가대표 경기 말고는 관심이 없잖아. 어딜 가나 관중석은 텅텅 비었고… 요즘에는 K리그로 팬들이 좀 모인다고는 하던데…”
“아직 멀었지.”
당시 K리그는 오랜 침체기를 깨고 고종혁, 이동균, 안정민 3인방이 트로이카 구도를 이루며 인기를 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평균 관중 동원력에서 K리그는 J리그에 상대가 되지 못했다.
K리그가 경기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선수들의 스타성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프로축구리그]를 비즈니스로 마케팅하는 능력이 부족했던 거다.“내일 개막전이 끝나고 나면 이젠 외출도 마음 편히 못 할 거야. 그러니까 오늘 마음껏 감상해라.”
숙소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노을이 지는 후쿠오카 바다를 한참 바라보았다.
***
[안녕하십니까. 이곳은 J2리그 개막전이 벌어지는 후쿠오카 스타디움입니다. 오늘 홈팀 하카타 블루샤크와 도쿄 유나이티드의 대결이 펼쳐지는데요. 나가이 해설위원님은 오늘 경기 어떻게 보십니까?] [작년 세 번의 맞대결에서 블루샤크는 도쿄 유나이티드를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습니다. 올 시즌을 대비해서 마르코 젠덴 감독과 외국인 선수들을 보강했지만… 아무래도 열세라고 봐야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장을 가득 채운 블루샤크 팬들의 표정은 밝습니다. 아마도 새롭게 합류한 뉴페이스들에게 기대하는 거겠죠?] [그렇겠죠. 하지만 선수 보강은 블루샤크만 한 게 아니거든요. 유나이티드도 브라질, 크로아티아, 체코에서 뛰어난 선수들을 영입했습니다. 선수들의 네임벨류만 따지자면 영입전에서도 유나이티드가 우위입니다.] [그래도 블루샤크에는 한국에서 온 천재 김건 선수가 있지 않습니까. 들리는 바에 의하면 전지훈련 때부터 모두를 놀라게 했다는데요. 구단에서도 적극적으로 홍보 중이고 그 때문인지 14번 KIM GUN 유니폼을 입은 팬들이 벌써부터 많이 보입니다.] [훗. 그게 헛소문인지 사실인지 오늘 경기 끝나보면 알겠네요.] [나가이 위원님은 상당히 부정적인 시각이네요.] [그렇습니다. 대학교 졸업도 아니고 고교를 졸업한 선수가 프로에 바로 적응하는 건 매우 어렵습니다. 일단 몸이 달라요. 고교레벨에서는 타고난 축구 센스만으로 플레이하는 게 가능하지만 프로에서는 불가능합니다. 성인 선수들의 강한 압박, 몸싸움을 견뎌낼 프로 선수 레벨의 몸이 필요하거든요.] [말씀드리는 순간 양 팀 선수들이 등장합니다.]구단 관계자에 따르면 블루샤크는 단 한 번도 도쿄 유나이티드를 이겨보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 경기에 임하는 선수 중 그걸 신경 쓰는 선수는 하나도 없었다.
그만큼 다들 동계훈련에서 자신감을 얻었다.
내가 공유한 식이요법과 기능 훈련.
그리고 마르코 감독의 탁월한 지도력에 덕분에 블루샤크 선수들은 급성장했다.
마르코 감독도 시합을 앞두고 이렇게 말했다.
“훈련한 대로만 해. 우리가 지금 경기력을 시즌 내내 유지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내년에 1부 리그에서 뛰고 있을 거다.”
팬들이 가득 찬 관중석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전생에서도 이런 기분은 느껴보지 못했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로 진학하며 항상 텅 빈 관중석을 두고 우리끼리 축구 하는 게 익숙했다.
K리그에 가서도 대부분 텅 빈 경기장에서 게임을 했다.
가끔 ‘이게 뭐 하는 짓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 축구는 말 그대로 축구라는 컨텐츠를 파는 건데 아무도 사주질 않으니 김이 빠졌다.
“김건! 김건! 김건!”
내 유니폼을 입은 팬들이 내 이름을 외쳤다.
10대 여학생, 남학생, 아저씨, 어린이 등등 다양했다.
나는 [GUN]이라는 영문 이름이 마음에 들어 선수명을 김건우가 아니라 [KIM GUN]으로 바꿔버렸다.
둥! 둥! 둥! 둥!
북소리가 울려 퍼지고 푸른색 대형 깃발이 휘날렸다.
2부 리그 경기일 뿐인데 이렇게 열광적일 수가.
“성원에 보답을 해드려야지.”
나는 내가 이런 열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오늘 밤 증명하기로 했다.
삐이이이익- !!
[경기 시작됩니다. 아! 하카타 선수들이 시작부터 상대 진영으로 올라가 거칠게 압박합니다. 저! 저럴 수가 있나요!?]도쿄 선수들은 처음 겪어보는 강력한 전방압박에 당황해서 실수를 연발했다.
J리그에서 통용되던 템포 보다 최소 2~3배가 빨랐다.
마르코 감독의 작전은 이러했다.
강력한 전방압박으로 볼을 탈취한 후 최대한 간결하고 빠르게 역습하기.
이 작전이 먹히려면 일단 모든 선수의 기초 체력이 강해야 했고 정확한 패스와 강력한 침투력을 가진 공격수가 최소 두 명 필요했다.
“김건!”
“아우베스!”
하카타 선수들은 볼을 빼앗으면 무조건 나에게 넘겼다.
그럼 나는 재빨리 침투하는 아우베스에게 스루패스를 찔러주거나.
[아! 페인트! 직접 돌파를 시도합니다!! 김건!] [무리에요! 무리!]경기 초반 찔러주는 패스만 거듭하다가 내가 갑자기 드리블을 시도하자 놀란 도쿄 선수들이 덤벼들었다.
[제쳤습니다! 또 제쳤어요!]나는 팬텀 드리블로 두 명을 연속해서 제쳤다.
팬텀 드리블은 라 크로케타, 더블 터치라고도 불리는 드리블 기술이다.
양발의 안쪽을 이용해 볼을 순간적으로 투둑- 치고 나가는 돌파 기술인데 간결한 움직임으로 경기 템포를 늦추지 않고 쓸 수 있어서 내가 애용하는 기술이었다.
크루이프 감독 시절 바르사 드림팀의 에이스 미카엘 라우드럽이 잘 썼던 기술이기도 한데 앞으로 한참 후에나 등장할 메시와 이니에스타도 팬텀 드리블을 밥 먹듯이 쓰게 된다.
지금 1999년에는 생소했던 기술이라 도쿄 선수들은 독특한 리듬감에 어리둥절했다.
“막아! 저놈!”
내가 순식간에 페널티 박스 앞까지 도달하자 당황한 수비수가 내 유니폼을 붙잡으며 어깨빵을 날렸다.
“헉!”
쓰러진 건 내가 아니라 수비수였다.
나는 놈이 어깨빵을 날리는 순간 크로스 카운터를 먹이듯 몸을 앞으로 내밀어 밀치고 나갔다.
이제 남은 건 골키퍼뿐.
파아아아아앙- !!
오른발을 힘껏 휘두르자 축구공이 총알처럼 날아가 그물망에 처박혔다.
나는 별거 아니라는 듯 담담한 표정으로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고오오오오올~!! 김건! 전반전 5분 만에 그림 같은 첫 골을 넣습니다! 나가이 위원님. 방금 드리블 할 때 김건 선수가 했던 기술이 뭐죠? 양발로 볼을 투둑 차던데요.] […]나가이 해설위원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그의 굴욕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블루샤크! 미칠듯한 압박! 대단합니다! 상대가 숨 쉴 틈을 주지 않습니다! 일본에서 이런 축구가 가능했군요!]중계진, 축구 기자 같은 전문가는 물론이고 그냥 축구를 즐기러 온 축알못들 까지도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파란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사냥개 떼처럼 몰려다니며 도쿄 선수들을 분쇄하고 있었으니까.
초록색 피치 위에서 벌어지는 빠르고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고 있으면 감탄이 절로 나왔다.
“김건!!”
일본 선수들.
특히 마츠다가 이끄는 미드필드 진은 온몸을 던져가며 상대를 압박하고 볼을 빼앗았다.
그리고 빼앗은 볼은 어김없이 나에게 전달했다.
나에게 마크맨이 붙었지만 나의 재빠른 오프더볼 움직임을 따라오지 못했다.
“들어가!”
내가 오른쪽 사이드에서 돌파를 시도하자 도쿄 수비진이 오른쪽으로 쏠렸다.
순간 생긴 공간으로 나는 로빙 스루 패스를 집어넣었다.
아우베스가 어김없이 그 공간으로 침투해 나의 패스를 맛있게 잘라 먹었다.
“고오오오오올~!!”
[하카타 2 대 0 도쿄]아우베스는 터치 한 번으로 발사 각도를 만든 후 반 박자 빠르게 슛을 때려 넣었다.
원래 골대 앞에서 볼을 끄는 나쁜 습관이 있었는데 마르코 감독은 아우베스를 엄하게 가르쳐 수비라인을 한방에 잘라 먹는 암살자 라인 브레이커로 변신시켰다.
“충격이 큰가 보군.”
도쿄 선수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