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tball is money RAW novel - Chapter 47
팀원끼리는 미안한 거 없어
“명훈아~ 오랜만이다. 잘 지내지?”
내가 웃으면서 손을 흔들자 가명훈은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은 누가 봐도 나쁜 짓을 하다가 걸린 애새끼 같았다.
누가 봐도 이상한 반응에 다른 한국 선수들뿐만 아니라 하이팅크 감독까지 고개를 갸웃했다.
“아주 기분 좋은 경기였어~~”
나는 휘파람을 불며 기분 좋게 마인츠로 돌아갔다.
이걸로 하이팅크호 승선을 위한 밑 작업은 모두 끝났다.
***
3일 후 마인츠 경기장 드레싱룸.
마인츠05 선수들의 표정은 밝았다.
지난 후기리그.
임시 감독과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경기를 치러야 했던 것과는 달리.
이번 시즌은 선수영입부터 프리시즌까지 클롬 감독의 지휘 아래 차근차근 준비를 마쳤다.
지난 시즌에 없던 새로운 선수들도 대폭 보강되었고 기존 선수들도 충분한 훈련량에 자신감이 넘쳤다.
“은쿠파. 너무 긴장할 거 없어.”
“후우~ 후우~ 언제나 리그 첫 경기는 떨려.”
“걱정하지 말고 나만 믿어. 내가 널 분데스리가2 득점왕으로 만들어 줄 테니까.”
새롭게 영입한 선수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선수는 스위스 국적의 공격수 블레즈 은쿠파였다.
아프리카 콩고 출신 흑인으로 압도적 피지컬을 자랑하는 전형적인 센터포워드였다.
은쿠파 때문에 지난 시즌 호흡을 맞췄던 바비츠는 후보로 물러났다.
올 시즌 마인츠05가 승격하려면 스위스산 주포 은쿠파가 제대로 터져야 한다.
나는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차출 때문에 바쁠 테니까.
“승격이니, 개막전이니… 다 잊어.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우리의 축구를 하면 되는 거야. 우리는 강하다! 가서 우리의 강함을 보여주자!!”
“우와아아아!!”
클롬 감독의 개막사(?)는 간결하고 강력했다.
우리는 한 떼의 게르만 군단이 되어 함성을 지르며 피치로 나아갔다.
“와아아아아아!!”
나뿐만이 아니라 마인츠05 선수들 모두가 놀랐다.
우리를 응원하는 팬들이 낡은 경기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지난 시즌 내가 등장하기 전까지 마인츠 홈경기 평균 관중은 2천 명대였다.
오늘은 2만 명이 훌쩍 넘는 홈팬들이 낡은 슈타디온 암 브루히베르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 경기장이 매진을 기록한 건 아마 내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일 거다.
“하이팅크 감독님이 보고 계시겠지?”
관중석을 빙 돌아보며 VIP석을 찾았다.
여기서 얼굴은 안 보이지만 분명히 나의 경기를 보러 왔을 거다.
체코에게 5대빵으로 진 상황에서 그에게도 해결책이 필요할 테니까.
나는 마인츠 구단에 부탁해서 하이팅크 감독에게 정식 초청장을 보냈다.
마인츠 구단도 기뻐했다.
하이팅크는 유럽에서도 일류 축구 감독이었기 때문이다.
삐이이이익- !!
전반전 시작하자마자 우리는 오늘의 상대 FC 쾰른의 진영으로 모두 달려갔다.
시즌 첫 경기임에도 우리는 거침없었다.
파도처럼 몰아치며 쾰른 선수들을 압박하자 팬들도 함성을 지르며 힘을 더했다.
[굉장한 움직임입니다! 지난 시즌보다 압박이 더 빠르고 정교해졌어요!] [그렇습니다. 클롬 감독. 이제 앞에 붙은 초보 딱지를 떼어도 되겠어요!]클롬 감독의 단체 훈련량은 결코 많지 않았다.
그는 인간의 체력과 집중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걸 잘 알았다.
그래서 단체 훈련을 가장 효과적으로 하는 방법을 계속 연구하는 중이다.
덕분에 우리는 짧은 시간 조직력을 끌어올릴 수 있었고 잘 만든 독일산 엔진처럼 빈틈없는 압박을 가할 수 있었다.
“건! 받아!”
압박으로 빼앗은 볼은 언제나 처럼 나에게 배달됐다.
쾰른 선수들도 그걸 예상하고 내 앞을 막아서며 필사적으로 패스 공간을 막았다.
[김건! 원터치 패스!!]그들이 이렇게 나올 거라는 걸 알고 있던 나는 대비책을 만들었다.
바로 원터치 패스.
쾰른 선수들이 나를 둘러싸는 순간 나는 빈틈으로 볼을 튕겨 냈다.
그 순간 쾰른 선수들이 비운 공간으로 우리 선수들이 침투해 볼을 받아냈다.
[은쿠파!! 슈우우웃!! 아! 골대를 훌쩍 넘깁니다!]페널티박스 오른쪽에서 원터치로 찔러준 침투 패스를 은쿠파가 노 마크에서 슛했는데 그만 홈런을 때리고 말았다.
팬들의 탄성과 한숨이 이어졌고 은쿠파는 고개를 떨구었다.
원래 나이보다 20살은 많아 보이는 노안에 아프리카 전사 같은 몸이었는데 속은 섬세한 소녀였다.
공격수라는 생물 중에는 의외로 이런 멘탈을 지닌 선수가 많다.
창조성과 예민함은 한 끗 차이기에.
“괜찮아. 쿠파. 앞으로 찬스가 계속 올 거니까. 실수는 잊어버리고 집중해.”
“미안해. 건.”
“우린 팀이야. 팀원끼리는 미안한 거 없어.”
겨우 위기를 넘긴 쾰른은 우리의 전방 압박에 휘둘리면서 필사적으로 해결책을 찾으려 했다.
역사적으로 1부와 2부를 오가며 산전수전 다 겪은 팀답게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의 압박은 지난 시즌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빠르고 정교해졌다.
“어라…”
쾰른 골키퍼가 측면으로 패스해서 헤딩 경합을 유도했다.
중앙이 가장 압박 강도가 강하다는 걸 알고 찾아낸 해결책이다.
몸과 몸을 부딪치며 거친 볼 경합이 이어졌다.
혼전 중에 볼이 측면으로 흐르자 쾰른 미드필더 슈마허가 대각선으로 냅다 차버렸다.
[아! 수비수 맞고 볼 굴절됩니다!!]볼이 날아가다 우리 수비수 프랑크 허벅지에 맞고 각도가 틀어졌다.
그 틈에 수비라인 앞을 어슬렁거리던 공격수 볼프강이 번개처럼 볼을 낚아채 라인을 뚫어버렸다.
하프라인까지 수비진을 올리고 있었던 마인츠는 볼프강에게 피치의 절반을 무방비로 내주었고 볼프강은 골키퍼 1대1 상황에서 침착하게 골을 성공시켰다.
[마인츠 0 대 1 쾰른]볼프강이 폴짝폴짝 뛰며 기뻐했다.
마인츠 응원단은 싸늘히 가라앉았다.
지금까지 점유율 7 대 3에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었는데 상대의 첫 슛에 어이없게 골을 먹었다.
“괜찮아. 이건 상대의 행운이었어. 우리가 2골 넣으면 돼.”
나는 박수를 치며 선수들을 독려했다.
허나 주장 바하와 노장 선수들, 은쿠파의 표정은 혼란스러웠다.
“압박해! 더 압박해!!”
클롬 감독은 사이드라인에서 열심히 팀원들을 독려했다.
보통의 평범한 감독이라면 조심하라든지 침착하라던지 신중하라던지 할 텐데.
클롬의 선택은 “더 압박해!”였다.
그는 항상 이렇게 말했다.
“축구에서 100프로의 완벽함은 없어. 단지 완벽하려고 노력하는 과정만이 있을 뿐이야. 그렇기 때문에 실수를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고 실수를 두려워할 필요도 없어. 우리는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축구를 하고 결과는 축구의 신에게 맡기면 되는 거야.”
문제는 우리 팀원 중에 축구의 신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거다.
우리 진영에 한 명도 남기지 않고 전부 상대 진영으로 넘어가 싸우는 전방 압박 전술은 전투로 치면 퇴로를 없애고 싸우는 배수의 진이다.
뒤를 돌아보는 순간 배수의 진은 깨진다.
[슈마허 다시 롱패스! 수비진을 넘깁니다!]압박의 강도가 느슨해진 틈을 놓치지 않고 쾰른의 플레이메이커 슈마허가 마인츠 수비라인을 넘기는 절묘한 롱패스를 날렸다.
볼프강이 다시 라인을 깨며 들어가 또 1대1 찬스를 만들었다.
“고오오오오올~!!”
[마인츠 0 대 2 쾰른]불과 3분 후에 두 번째 골을 먹었다.
볼프강은 쾰른 동료들과 얼싸안고 만세를 불렀고 마인츠 응원단은 야유할 힘마저 잃고 침묵했다.
클롬 감독이 단시간에 쌓아 올린 것들이 빠르게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원래 과격한 정책이나 과격한 이론은 기존 세력의 저항에 부딪치기 마련이다.
클롬의 전방 압박 전술도 마찬가지다.
그가 주창하는 [공격적인 수비 전술]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반대로 싫어하는 사람도 많았다.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전술.
전통적인 축구 전술은 수비를 단단하게 하고 신중하게 공격하는 걸 기본으로 한다.
클롬은 여기서 [단단한 수비]라는 개념을 파격적으로 해석했다.
물러서며 수비하는 게 아니라 전진하며 수비한다는 개념의 전복.
이 공격적인 수비전술이 게겐 프레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려면 아직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했다.
“뭐 잘못한 거 있어? 고개 들어. 팬들이 보고 있잖아.”
나는 프랑크와 발터의 엉덩이를 두드리며 웃었다.
둘은 사고 쳐서 교무실에 끌려온 고등학생처럼 바짝 쫄았다.
올 시즌 마인츠 승격의 여부는 이 19살 센터백 듀오의 성장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무조건 쾰른보다 한 골 더 넣을 거니까. 쫄지 말고 배운 대로 해. 우리 감독은 위르겐 클롬이다. 그의 방식이 결코 틀리지 않았다는 걸 우리가 증명해야 해.”
나는 흔들리는 노장 선수들의 멘탈도 잡았다.
이럴 때일수록 감독을 믿고 따라야 한다고.
선수가 감독의 전술을 의심하기 시작하면 팬들도 의심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끝장이 난다.
“이제 적응시간은 끝났어. 너의 진짜 실력을 보여줘. 은쿠파.”
“… 알겠어.”
나는 경기를 빨리 재개하라는 주심의 경고를 듣고서도 최대한 경기를 지연시키며 선수들을 독려했다.
삐이이익- !
분위기를 전환하려면 최대한 빨리 추격 골을 넣어야 한다.
[김건! 볼을 직접 몰고 올라갑니다!]새 시즌 첫 경기를 하며 달라진 분위기를 느꼈다.
상대 선수들이 나를 두려워했다.
내가 저지른 구타 사건이 워낙 강렬했고 그에 따른 괴소문들이 한몫했다.
내가 태권도 고수라거나 동양 무술 대가라는 식의 소문들.
나는 이 소문에 대해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거기에 내가 아쉬탕가 요가 상급자라는 게 축구잡지에 소개되며 더더욱 나에 대한 오리엔탈리즘 적인 아우라가 강해졌다.
“확실히 경기하기 편해졌어.”
축구의 1대1은 심리전이다.
공격수가 수비수를 두려워하는 순간 다리가 굳는다.
반대로 수비수가 공격수를 두려워하면 틈이 생긴다.
[돌파! 연속 돌파! 김건! 오른쪽으로 파고듭니다!]나는 일부러 상체를 흔들며 팔을 크게 휘둘렀다.
그다음 쾰른 수비수가 움찔하는 틈에 볼을 치고 나갔다.
“쿠파!”
페널티박스 안에 은쿠파가 등지고 서 있었다.
예전 스트라이커 바비츠는 할 수 없었던 포스트 플레이다.
나는 은쿠파에게 볼을 밀어주며 박스 안으로 돌입했다.
“들어온다! 막아!!”
내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지나치는 순간 은쿠파가 몸을 반대로 돌리며 터닝슛을 때렸다.
골키퍼는 나의 움직임을 신경 쓰다가 그냥 서서 볼이 들어가는 걸 지켜봐야 했다.
“고오오오올~!!”
[마인츠 1 대 2 쾰른]마인츠 관중석에서 오늘 처음으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은쿠파가 아이처럼 겅중겅중 뛰며 달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