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the Mu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98)
> 음악천재를 위하여 – 198화 >
“유하 남자 친구?”
손강욱은 묘한 눈빛을 띠며 나를 바라봤다.
“이야, 방송보다 실물이 엄청 잘생겼네요. 우리 차가운 조카가 왜 그렇게 강현 씨를 좋아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웬만한 아이돌보다 훨씬 멋있습니다.”
손강욱은 성큼 다가와서는 두툼한 손바닥으로 인사를 권했다. 예상외로 상당히 부드러운 양반이지 않은가.
“안녕하십니까. 강현이라고 합니다.”
“나 참, 정신 좀 봐. 저는 유하 삼촌인 손강욱이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첫인상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었다. 전장에 나가던 장수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졌고 순박한 미소만 보고 있자면 시골에서 힘깨나 쓴다는 농부 같았다.
“강현 씨, 아직 형수님이 화랑에 오지 않은 것 같아서 그런데 시간이 괜찮다면 제게 화랑 안내를 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화랑의 안내요?”
“유하 삼촌이지만 여기는 함부로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라서 저도 오늘이 첫 방문입니다. 하하하.”
손강욱이 머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갤러리에 제일그룹 오너 일가가 찾은 횟수는 적었다. 것도 왕회장이나 손일선 같은 실세가 아니고서는 엄두조차 못내는 것 같았으니.
“알겠습니다. 안내해 드리죠.”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미 제일 갤러리에 마련된 작업실에서 음악 작업을 한 지도 수년째다.
이제는 눈을 감고도 갤러리를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로 건물 내부에 익숙해진 것은 물론이요 웬만한 작품들의 연혁은 김미현보다도 내가 더 잘 알고 있으리라.
“폭풍 속의 그림자라, 아주 심오하고 멋진 작품이에요.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사고 싶군요. 강현 씨는 위 작품이 얼마인지 아십니까?”
역시 보는 안목이 뛰어나다. 데이빗 호킨스의 작품으로 20세기 현대미술의 극한을 보여줬다는 작품이 아닌가. 가격 또한 갤러리에 전시된 작품들 중에서는 수위권을 다툴 만큼 비쌌다. 모르긴 몰라도.
“삼십억쯤 된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아무렴, 현대미술이라는 것이 원체 부르는 게 값이지 않은가. 예컨대 시간이 흐를수록 작품의 값어치는 계속해서 상승할 것이다. 이만한 재테크가 없었지. 그때였다.
“예에에!?”
“네?”
“그렇게 비싸단 말입니까? 난 고작 해봐야 수십만 원짜리인 줄 알았는데 말이에요. 금으로 만든 것도 아닌데 웬만한 건물보다 비싸다니 강현 씨가 아니었다면 농담인 줄 알았을 겁니다!”
손강욱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떠졌다. 정말 가격을 모르고 있었던 모양.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재벌가라면 모름지기 사교의 일환으로 미술계에 대한 공부도 어렸을 적부터 했을 텐데 말이다.
“하하, 제가 어렸을 때부터 미술 쪽은 싫어해서 말입니다.”
그때 손강욱이 마치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마냥 부연했다.
손강욱은 계속해서 신기한 눈으로 ‘폭풍 속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삼십억?’ ‘이게 진짜 삼십억이라니?’ ‘허어’ 등 혼잣말을 내뱉으며 허탈한 웃음을 터뜨려 보였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지. 미술에 관심이 없는 평범한 사람이 보기에는 그렇게 느낄 수도 있었으니. 하나 손강욱은 재벌 2세가 아닌가.
“전무님.”
그 순간 손강욱의 비서로 보이는 자가 급히 뛰어와 귓속말을 전했다. 손강욱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를 돌아보며 다시 순박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강현 씨, 아무래도 오늘 만남은 여기에서 마쳐야 할 것 같습니다. 형수님이 화랑에 도착했다고 하는군요. 쉽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분이라 제가 늦게 가면 아마 문전박대를 당할 것 같습니다. 바쁘실 텐데 안내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저도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하하하, 그러면 다음에 또 뵙도록 하지요.”
손강욱은 짧게 목례를 해 보이고는 뒤돌아섰다. 그 순간 그의 걸음걸이가 다시 달라졌다.
* * *
“오래간만입니다.”
무거운 공기가 감돌았다. 임혜라 이사장은 눈앞에 앉은 이가 제일그룹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손강욱 전무께서 갑작스럽게 갤러리를 찾아오실 줄 몰랐습니다. 미리 연락을 주셨더라면 제가 마중을 나갔을 텐데 말이에요.”
“형수님, 아직도 야박하게 직급으로 부르시는 겁니까. 갤러리에 처음 와봤는데 비싼 작품들이 수두룩하더군요. 아마 지상에 있는 ‘가짜’들 말고 지하에는 ‘진짜’들이 쌓여 있겠지요?”
임혜라 이사장의 미간이 좁혀졌다. 손강욱은 제일그룹 내에서도 비밀을 가장 많이 알고 인물 중 하나가 아닌가. 어찌 보면 시아버지인 손장원 회장보다도 손강욱이 더욱 왕구렁이 같은 인물이었으니.
“형수님,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제일전자의 분식회계와 관련한 정황 증거를 검찰에 내놓으세요.”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제일전자의 분식회계를 제일재단 측에서 암암리에 손써주고 있는 걸 제가 모를 것 같습니까. 제일 갤러리와 제일재단은 하나의 끈으로 이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일 테니 주인인 형수님께서 더욱 잘 알고 계시겠지요.”
손강욱의 안광은 마치 호랑이를 닮아 있었다. 굳게 닫힌 입술과 짙은 눈썹 아래 깊은 눈빛은 담대함을 자랑했으니.
관상을 볼 줄 모르는 이가 보더라도 범虎이라고 표현할 만큼 기세가 대단했다.
“손강욱 전무, 설령 그런 게 있다고 할지라도 제가 내놓을 것 같습니까?”
“못 내놓을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네?”
손강욱은 뜨거운 커피를 단숨에 입안에 털어놓고는 운을 띄웠다.
“더럽게 뜨겁네.”
“지금 뭐하자는 겁니까?”
“분식회계와 관련된 정황 정보를 내놓지 않으면 제일재단과 갤러리의 비리를 전부 밝히겠습니다. 벼룩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일 테지만 형수님께서 그렇게 부정적으로 나오신다면 어쩔 수가 없지요. 먼저 제일재단과 갤러리가 가지고 있는 비리 몇 개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임혜라 이사장의 눈이 부릅떠졌다. 설마하니 손강욱이 제일재단의 비밀을 이토록 속속히 알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그제야 자신의 남편인 손일선이 왜 그렇게 손강욱을 견제했는지 알게 되었다.
“어차피 분식회계 정황 증거를 넘긴다고 할지라도 능력 좋으신 형님께서는 유치장에서 길어봐야 한 달 동안 수감되어 있을 겁니다. 그 정도면 아주 싼 값에 해결하는 거라고 생각되는데 말이에요. 기간은 사흘 드리겠습니다. 그 안에 결정을 안 하시거나 헛짓거리를 하시려 들면 제가 먼저 선수를 치겠습니다.”
손강욱은 빙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배웅은 나올 필요 없다며 우스갯소리까지 하지 않는가.
임혜라 이사장은 마치 돌부처가 된 것마냥 자리에 우두커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손강욱은 걸음을 옮기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한 달이면 모든 게 끝납니다.”
* * *
“손강욱이 제일 갤러리를 찾았다고?”
할아버지의 얼굴에는 심각한 기색이 역력했다. 손강욱이 갤러리를 찾은 것만으로도 큰 사달이 벌어진 것 같았으니.
“왜 그러세요,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짐짓 뜸을 들이다 결국 마른 입술을 쓸었다.
“현아, 손 회장이 왜 후계자로 손일선 사장을 선택했는지 아느냐?”
“자식 중 능력이 가장 뛰어나서가 아닐까요?”
“아니란다. 손 회장의 자식 중에서 가장 능력이 뛰어났던 이는 다름 아닌 차남 손강욱이었어. 사실 손 회장은 자식들이 어렸을 적에는 내심 손강욱을 제일그룹의 후계자라고 점찍어두고 있었단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설마하니 왕회장이 손일선도 아닌 손강욱을 후계자로 점찍어두고 있었다니. 사실 아직까지도 믿기지가 않았지. 하나 왕회장의 죽마고우인 할아버지의 말이었으니 분명 진실이리라.
“하지만 손 회장은 손강욱의 내면에 숨은 성정을 알아채고는 단호하게 거리를 두었지.”
“내면에 숨은 성정이요?”
“손강욱은 손일선 사장과는 다르게 야욕이 큰 인물이란다. 원하는 것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할 테지. 손일선 사장이 제일그룹이라는 회사를 중점으로 두면서 야망을 펼쳐 가는 데 반해 손강욱은 자신의 야망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라면 제일그룹도 팔 수 있는 사내란다.”
그제야 왕회장의 선택이 이해가 되었다. 일평생 일궈온 회사이지 않은가. 제일그룹이 곧 왕회장이요 왕회장이 곧 제일그룹이리라.
손일선은 그 유지를 이어받아 제일그룹을 세계로 확장시키지만 손강욱은 자신의 야망을 위해 제일그룹을 매각할 터였으니. 손강욱을 후계자로 앉히는 것은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는 꼴이리라.
“이번 제일전자를 검찰에 고발한 것도 손강욱일 테지. 할애비는 걱정이 되는구나. 만약 손 회장이 건강했다면 이런 일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왕회장과 함께 반평생을 같이 동고동락하시지 않았던가. 할아버지의 얼굴에는 왕회장을 걱정하는 기색이 가득했다.
“손 회장이 쓰러지자마자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손강욱이 자신의 야망을 드러내기 시작했으니 이를 어찌할꼬.”
* * *
미심쩍은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할아버지의 말씀처럼 왕회장이 쓰러지자마자 손일선 사장이 구속되지 않았던가.
제아무리 검찰이라고 할지라도 ‘날고 긴다’는 제일그룹의 실세를 그토록 단시간 내에 쉽사리 구속할 수는 없었을 터였다. 마치 준비된 각본처럼 움직이는 게 눈에 보였을 정도이니.
“강현 학생, 도착했어요.”
김 기사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평창동 저택에 도착했다. 애마를 몰지 않은 이유는 생각할 것이 많았기 때문이었으니.
‘여러모로 이번 생에도 제일그룹과 많이 엮이는구나.’
지난 삶에는 제일그룹의 장학생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지 않았던가. 당시에는 물욕과 권력만을 좇아 제일그룹의 개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번 삶은 복합적인 관계로 얽혀 있었으니. 왕회장과의 친분은 물론이고 손유하와의 관계 때문일지라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미래가 달라질 수도 있다.’
할아버지의 수명이 연장된 것만 봐도 그러했지.
지난 삶 기억 속에서는 제일그룹에 이러한 풍파가 없었다. 만약 있었다면 대학교 시절부터 제일그룹 장학생에 관심이 많았던 내가 기억을 못 할 리가 없었을 터였다.
“강현 학생?”
평창동 저택의 가정부 아주머니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앞길을 막아서지는 않으셨다. 경호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찌 보면 왕회장의 자식들보다도 내가 평창동 저택을 찾은 횟수가 많았을 정도였으니.
“잠시 회장님을 뵈러 왔습니다.”
“이걸 어째, 회장님이 아직도 정신이 없으신데.”
“그래도 괜찮습니다. 잠시 뵐 수 있을까요?”
이미 임혜라 이사장에게 연락을 하고 온 터였다. 가정부 아주머니 또한 임혜라 이사장에게 연락을 해 허락을 받고는 나를 왕회장의 침실로 안내했다.
띠띠띠띠.
생명으로 직결되는 파라미터, 즉 바이탈사인을 체크하는 기계의 소리만이 침실 안을 울렸다.
왕회장은 마치 깊은 잠에 빠진 것처럼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으니. 어째 당장에라도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호통을 칠 것 같은 모습이지 않은가.
“할아버지.”
불러봤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외국에 나가 있는 손유하 또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무언가 단서라도 있을까 평창동 저택을 찾았지만 왕회장의 곁에서 단서를 찾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점점 의심은 확신이 되어가고 이었으니.
‘손강욱이 한 짓이다.’
이토록 주도면밀하게 움직인 것만 봐도 범인을 예상할 수가 있었다. 노회한 김남천이 괜히 손강욱과 손을 잡은 것이 아닐 터였으니.
그때였다.
어?
왕회장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마치 내가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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