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the Mu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2)
> 음악천재를 위하여 – 002화 >
기름 냄새가 난다.
어렸을 적 자주 맡았던 냄새다. 드라이클리닝을 위해 사용되는 용제. 단가가 낮은 용제는 석유냄새가 진하게 나지. 열 평 남짓한 세탁소 안에서 그 냄새를 어찌나 맡았던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뇌리에 선명히 아로새겨져 있었다. 하물며, 죽는 순간까지 그 냄새가 코끝을 찌르지 않는가······.
헌데 어렸을 적 무던히도 싫었던 그 냄새가, 지금은 그립다.
죽음의 고통은 없었다. 지하철 기관사에게는 죄송할 따름이다. 부디 죄책감을 가지 않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나버린 삶속에 사무치는 아쉬움이라면, 부모님을 뵙지 못했다는 것. 한 평생 아들만 바라보고 살았던 촌부에게 나는 너무나도 모질었다. 그런 것 치고, 죽음은 편히 다가왔다. 마치 이불보에 누워있는 것처럼 푹신하기까지 하네.
그 순간.
“현아, 일어나야지!”
의문의 목소리와 함께.
찬바람이 얼굴을 덮쳤다. 나는 조심스럽게 눈을 반개했다. 백열등이 눈을 부시고, 은행잎새처럼 노랗게 변질된 벽지가 보였다. 뒤늦게 기름 냄새가 바람을 타고 코끝을 찌른다. 나는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하곤 눈을 부릅떴다.
아, 아······.
하얗게 새어버린 머리카락은 다시 어두워져 있었고, 주름이 가득했던 얼굴은 숫제 처녀인 냥 아름다웠다. 그 흔했던 검버섯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리웠던 얼굴. 비록 수십 년 전의 모습이기는 했지만. 나는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분명, 죽음의 끝에서 마주한 주마등일 텐데 이토록 눈물이 뜨겁게 느껴질 줄이야.
한 번만.
단 한 번만 안아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때였다.
“아들, 무슨 일 있어?”
어머니가 토끼 눈을 뜨며 날 다독였다. 그러곤 따스한 손길이 머리맡을 쓰다듬었다. 눈물이 흠뻑 이불보를 적시고, 가슴을 세차게 두드렸다. 평생 불효를 하며 살아왔던 나였다. 죽음의 끝에서 어머니를 마주하게 될지는 정말 몰랐다. 마치 다시 아기가 된 냥 눈물을 토해내며 어머니를 있는 힘껏 껴안았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어머니.
그 말이 계속해서 입속에 맴돌았다.
* * *
과거로 돌아왔다.
일주일이 흐른 뒤에야 나는 과거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었다. SF소설에나 등장할법한 이야기지만 기억속의 허구가 아니다. 모든 것이 생생했고 활기가 느껴졌다. 봄날의 시작을 알리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눈을 밝힌다. 아이러니했다. 죽음의 끝에서 가장 그리웠던 시절로 돌아갔다니.
“고맙습니다.”
하늘을 보며 말했다. 후회가 가득했던 삶이었다. 성공한 삶인 줄 알았지만 허영을 벗겨내고 보니 그 누구보다 덧없는 삶이었다. 다시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하늘에 계신 누군가가 내린 선물을 나는 헛되이 쓰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일순 창공을 가로지르던 이름 모를 새가 내 다짐에 응답이라도 하듯 크게 선회했다.
“강현, 중간고사 성적표 받아가라.”
짧은 스포티한 머리에, 사각턱을 지닌 선생이다. 강봉두라는 이름만큼이나 강직한 인상을 지녔다. 나는 거추장스러운 교복을 고쳐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덩치에 비해 품이 넓었다. 비단 강현만의 일이 아니었다. 중학교로 올라온 지 석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또래의 학생들은 대부분 미래를 생각해 교복을 크게 골라 입었다.
“인마, 앞으로는 공부 좀 열심히 하자.”
강봉두는 혀를 차며 성적표를 건네주었다. 강현은 멀쑥한 표정으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지난 삶 독종이라고 불렸던 별명이 무색할 정도로 성적표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모르는 이가 본다면 운동부라고 착각을 할 만큼.
‘쯧.’
나는 담임선생과 마찬가지로 속으로 혀를 찼다. 내가 공부에 미치게 된 계기는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아직까지는 공부와 담을 쌓을 시기였음이 분명했지만 그래도 마음이 썩 편하지 않았다. 한때 ‘날고 긴다’하는 수재들조차도 혀를 내두르며 인정했던 독종이 바로 나, 강현이었다. 과거로 돌아온 지 일주일이 흘렀지만, 작아진 체구보다 이런 꼴등 성적표가 더 익숙지 않았다.
“현아, 너 우리 동아리 안 들어올래?”
젖살이 빠지지 않은 남학생이다. 강현은 가슴팍에 달린 명찰을 보고는 남학생의 이름을 확인했다. ‘김대우’ 초등학교시절 꽤나 함께 어울렸던 친구. 인간관계가 좋지 않은 강현의 삶속에서 유일하게 친구로 자리매김했던 아이였다. 물론 그것도 세월이 흘러가면서 잊혀 졌지만.
“야, 설마 저번에 내가 게임기 안 빌려줘서 삐진 거냐!”
“뭐?”
“너 일주일동안 우리 반 한 번도 안 왔잖아. 내가 그때도 말했는데, 그거 내 게임기 아니라 사촌형아꺼라서 못 빌려준다고······.”
김대우는 꽤나 억울해 보이는 모습이다. 아무래도 과거의 나와 트러블이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일주일동안 녀석을 찾지 않았고.
“화난 거 없어.”
“그럼, 우리 동아리 들어와!”
“동아리?”
김대우는 금세 미소를 띠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나이가 어릴수록 감정의 변화가 빠르다. 더욱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라면. 통통한 젖살이 출렁일 정도로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났다.
“클래식(classic)!”
김대우는 동아리 이름을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음악과 관련한 동아리였다. 그러고 보니.
“현이, 너 초등학교 다닐 때 바이올린 켰잖아!”
기억났다. 초등학교 시절 우연찮게 방과 후 교습을 받으며 바이올린을 배웠던 것이.
어머니는 무척이나 좋아하셨다. 자신의 어릴 적 꿈도 바이올리니스트였다며.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음악은 좋았지만, 재능이 없었던 것은 물론. 음악을 배울 말한 돈도 없었기에.
“됐다.”
나는 고개를 저어보였다. 다시 얻은 기회나 마찬가지인 삶이다. 재능도 없는 음악을 하면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그러면 학교 끝나고 오락실이나 가자!”
그러고 보니,
중학교 일학년 무렵 오락실을 자주 들락날락거렸었다. 것도 김대우와 함께. 그때는 광적으로 오락실을 좋아했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육체는 어릴지 모르나, 정신은 닳고 닳은 중년이었다.
“됐어.”
“뭐어? 너 내가 아는 강현 맞냐······?”
김대우가 눈을 가늘게 뜨며 강현을 바라봤다. 요 며칠 새 부척이나 달라진 강현이다. 행동거지하며, 말투까지 일주일전과 비교해보면 과하다싶을 정도로 점잖아졌으며 눈빛 또한 달라져 있었다. 마치 삼촌이 조카를 보는 시선이 아닌가.
“그럼 뭐할 건데!”
김대우의 성난 물음에 난 성적표를 떠올렸다. 비록 중학교 중간고사지만.
독종이라 불렸던 내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남긴 성적. 다행이라면 중학교 일학년 성적이 향후 고교를 선정함에 있어 반영되지 않는 점이다. 나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공부.”
* * *
“아들, 쉬엄쉬엄해.”
어머니, 유현자 여사의 얼굴에 걱정이 서렸다.
지난 몇 주 간 아들의 모습이 달라져도 너무도 달라졌기 때문.
항상 오락실을 제집마냥 찾던 아들.
단칸방이 딸린 세탁소는 기름 냄새가 난다며 치를 떨며 싫어했던 아들.
허나 불과 며칠 새에 어린 아이의 모습이 사라졌다시피 했다. 말투는 물론, 행동까지 의젓해졌다. 제 부모가 힘들까봐, 그 작은 몸으로 동네를 빨빨거리며 뛰어다녀 세탁물을 수거까지 해왔다.
하물며 거기서 끝일까. 저녁을 먹고 난 뒤에는 작은 책상 앞에 앉아 엉덩이를 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벌써 수 시간 째, 자습서를 부여잡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 모습. 유현자 여사의 얼굴에는 복잡한 감정이 가득했다.
“여보, 혹시 나 몰래 현이한테 이상한 거 먹인 거 아니야?”
“그게 무슨 소리에요?”
“아니. 내 평생 현이가 저렇게 공부를 하는 걸 본적이 있어야지 말이야.”
“이이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사이가 돈독하셨다. 아버지는 기억속의 무뚝뚝한 모습이 아니었다. 장난도 많이 치셨고, 아들과 함께하는 등산을 무엇보다 좋아하셨다. 아무래도 무뚝뚝했던 과거의 모습은 나 때문에 만들어진 것일 터. 괜스레 가슴이 미어졌다.
“현아, 이제 자야지.”
“알겠어요, 아버지.”
“아이고, 우리 현이가 이제 아버지라고까지 부르고 말이야.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보다. 흐흐흐.”
단칸방이다. 세 식구가 몸을 눕히면 가득 찰 만큼 작은 방이었기에 아버지의 웃음소리가 보다 선명히 들렸다.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잠을 청하기에는 나이가 많았지만, 기분이 좋았다. 안락함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그 어떠한 호사스러운 저택에서 잠을 청할 때보다도 더.
“시험지 뒤로 돌리고, 컨닝하다 걸리면 그 자리에서 바로 시험지 찢어 버릴 줄 알아라. 다들 각오해.”
기말고사 당일이 되었다. 강봉두가 으레 겁을 주며 학생들을 살피며 책상 사이로 걸음을 옮겼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툭.
한 학생을 보곤 자리에 멈춰 섰다. 강봉두의 사각턱이 실룩이고 눈이 가늘어졌다. 시험지를 나눠준 지 불과 오 분. 대부분 첫 장에서 헤매고 있는 반면 벌써 두 번째 장으로 넘어간 학생이 있다. 문제를 푸는 속도는 어찌나 빠른지 지문은 다 읽고 있는 걸까 의문이 들었다.
‘어휴.’
강봉두는 학생의 얼굴을 확인하곤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강현이었다. 중간고사에서 반 꼴등을 차지했던 장본인. 그럼 그렇지, 이번 시험도 죽을 쓰고 있는 게 분명했다. 제아무리 1학년 성적이 고교선정에 반영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저렇게 문제를 풀어도 될까 싶다. 따끔하게 혼내고 싶지만 시험지를 열심히 풀고 있는 다른 학생들 때문이라도 어쩔 수가 없었다.
한편.
‘쉽네.’
강현은 정답을 체크해 나가고 있었다. 남들이 보기엔 문제를 푼 다기 보다 찍고 있다고 보일 테지만 그만큼 쉬웠다. 대한민국 입시전쟁에서 정점을 차지했던 자신이다. 더불어 극악의 암기량을 자랑한다는 사법고시조차도 동차합격을 자랑했었다. 집중력과 끈기는 이미 타의추종을 불허했다. 중학교 수준의 문제라고 해봐야 땅 짚고 헤엄치는 것이나 다름없다.
째깍째깍.
시험지의 낱장이 이제 남지도 않았건만 시계초침은 여전했다. 불과 시험이 시작된 지 이십분도 흐르지 않은 상황, 다른 학생들은 수학문제를 푸는데 열중이다. 시간을 확인하던 강현은 고개를 돌리다 강봉두와 눈이 마주쳤다.
뭐야?
강봉두의 눈이 이글이글거렸다. 마치 시험 다 끝나고 보자는 듯한 시선이다. 예전 같았으면 호랑이 선생의 시선이 무서워 눈을 피했겠지만, 오랫동안 검사생활을 했던 강현이다. 무섭기는커녕 한때는 그렇게 어른스러워보였던 선생이 이제는 젊게만 느껴졌다. 강현은 대충 강봉두의 시선을 마주보다 고개를 돌렸다. 흐흐흐. 두고 볼 테면 두고 보라지, 놀라 자빠지게 만들어 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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