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the Mu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239)
> 음악천재를 위하여 – 239화 >
“탄야, 이번 점심을 낙찰한 상대가 누구지?”
바바라와의 점심식사는 소더비에서는 일약 ‘황금의 시간’이라고 불릴 정도로 값어치가 뛰어난 경매 상품이었다.
단순히 바바라 회장과 함께 점심을 먹을 수 있는 권한이었지만 일 년에 단 한 번 나올뿐더러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그 가격과 경쟁을 매년 천정을 치솟았다.
“아야사키 히데오라는 자입니다.”
“아야사키 히데오?”
“일본에서 대대로 내려온다는 가신 가문의 일원입니다. 히데오사의 장남이지만 가업을 이어받지 않았습니다. 과거부터 머리가 비상한 것은 물론이고 증시를 읽는 것에도 뛰어나 증권가에서 이름을 알렸다고 합니다. 일본 내의 정계에서도 러브콜을 받았을 정도로 젊은 나이에 비해 능력과 인지도가 뛰어난 편입니다.”
바바라 회장은 짧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설마하니 일본인이 황금의 시간을 낙찰했을 줄을 몰랐기 때문이었으니. 자신과 점심 식사를 원하는 이들은 대개 미국과 유럽의 부호들이 즐비했다.
아무렴, 그들이 아니고서야 수백만 달러를 지불하면서까지 자신과 대화를 나눌 필요가 없었기에.
“또한 일본인이지만 월가에서 그 능력을 인정받은 인물입니다. EPE에서 직접 임원으로 섭외를 했을 정도로 증시를 읽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월가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예, 월가에서는 그를 가리켜 살색의 황소라고 부른다고 하더군요.”
살색의 황소라는 말에 바바라 회장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황소는 월가를 대표하는 랜드마크이자 주가의 활황을 뜻하는 은어다. 과연 어떠한 인물이기에 살색의 황소라고 불리는 것일까.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아야사키 히데오입니다!”
듣던 대로 젊은 동양인이다.
바바라 회장은 오붓하게 마련된 레스토랑에서 그를 맞이했다. 맨해튼에서도 예약을 하지 않고는 찾기 힘들 정도로 유명한 레스토랑이다.
더군다나 점심시간이 아닌가. 하지만 널찍한 레스토랑에는 바바라 회장과 아야사키 히데오만이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회장님께서는 EPE의 투자 방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바바라 회장은 식사를 나누는 동안에도 아야사키 히데오의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을 해주었다.
그는 듣던 대로 머리가 비상했으며 증시를 읽는 능력이 탁월했다. 범인이라면 생각지 못할 범주의 가정을 하는 통에 바바라 회장은 대화를 하는 내내 꽤나 흥미로웠다.
하지만 증시를 읽는 능력이 뛰어날 뿐이지 강현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아무렴, 강현은 마치 미래를 내다보는 것처럼 움직이는 혜안을 가지고 있었으니 그와 비교하려면 적어도 투자의 황제라 불리는 워렌 버핏을 데려와야 말이 맞을 것이다.
“회장님, 실례지만 한 가지만 더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지금은 히데오 씨가 순전히 지불한 시간이니까 말입니다. 무슨 질문을 하시더라도 대답해 드리지요.”
“정말 감사합니다.”
아야사키 히데오는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수백만 달러나 써가면서까지 고마워할 필요가 있겠나 싶겠지만 그가 바바라 회장과 나눈 대화는 그 값어치를 뛰어넘고도 남았다.
“항간에 들리는 소문으로는 바바라 그룹이 제약회사 AOA에 대한 투자를 전면 철회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월가에서는 말이 되지 않는 뜬 소문이라고 치부하고 있지만 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히데오 씨의 생각이 맞습니다. 그건 뜬소문이 아니에요.”
“회장님께서 왜 AOA에 대한 투자를 전면 철회하신 것인지 이유를 들어볼 수 있겠습니까? 제 짧은 식견으로는 도저히 AOA에 대한 투자를 철회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신약에 대한 임상이 성공적이었다는 정보가 이미 입수가 되었고 월가는 물론이고 기관에서조차 대대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실정입니다. 본래대로라면 바바라 그룹이 제일 먼저 높은 지분을 선점하고 선두를 달릴 수 있었던 기회가 아닙니까?”
바바라 회장은 찻잔을 들어 입을 축이고는 소리 나게 놓았다.
“조언을 받았기 때문이지요.”
“조언이라고요?”
아아샤키 히데오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표정이었다. 도대체 바바라 회장에게 그 누가 조언을 해줄 수가 있단 말인가.
그와 점심을 먹는 것에만 수백만 달러를 지불할 부호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하물며 백악관의 주인이라고 할지라도 바바라 회장을 만나기 위해서는 약속을 잡고 기다려야 할 정도였으니 오죽할까.
예컨대 바바라 회장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은 그의 부모님 말고는 없을 것이다. 그때 바바라 회장이 히데오의 생각을 읽은 것마냥 부연했다.
“제가 유일하게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의 조언이라면 투자를 철회하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 조언이 AOA의 투자에 대한 실리보다 더 큰 값어치였습니까?”
“히데오 씨, 착각하는 게 있군요. 조언은 조언일 뿐입니다. 선택하는 것은 오로지 제 몫이지요. 오늘 저와 히데오 씨의 만남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히데오 씨에게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었지만 듣고 선택하는 것은 오로지 히데오 씨의 몫이니까요. 저는 그저 제게 조언을 해준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을 뿐입니다. 믿음이란 가격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아닐까요?”
아야사키 히데오는 뭔가 깨달은 듯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바바라 회장을 바라봤다.
“회장님, 혹시 그분이 누구인지 말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바바라 회장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빙긋 웃어 보였다.
아마 지금쯤이면 히데오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인물들의 이름이 스쳐 지나가고 있을 것이다. 미국 정·재계에서 내로라하는 인물들은 물론이고 빌게이츠와 워렌 버핏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걸출한 전설들의 이름이 스쳐 지나가는 가운데 바바라 회장이 운을 띄웠다.
* * *
“오빠, 귀 간지러워?”
강현이 귓불을 긁자 유하가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봤다.
어깻죽지에 머리가 닿는 유하가 고개를 들어 바라보자 그 모습이 마치 귀여운 강아지처럼 느껴지는 강현이었다. 괜스레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미소 지었다.
“누가 내 얘기라도 하나 봐.”
“우리 학교 애들일 거야. 오빠가 이전에 강연 온 뒤로 남학생 중에서도 오빠 팬이 많이 생긴 거 알아?”
“남학생들이?”
“그렇다니까, 평소에는 클래식 이야기도 하지 않던 애들이 요즘에는 오빠 이야기를 한다니까. 더군다나 MIT로 진학이 확정된 애들은 이미 오빠를 천재로 생각하고 있어. 특히 카라일이라고 오빠랑 그라이핀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눴던 친구 말이야.”
강현은 설마하니 남학생들까지 자신을 좋아하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필립스에서 했던 강연을 생각하면 무리도 아니었다. 명문고교의 학생들조차도 강현의 지식 앞에서는 혀를 내둘렀으니.
“그런데 오늘은 언제쯤 돌아와?”
“아마 뉴욕 필하고 미팅을 나눠보고 결정할 거 같은데······.”
“히잉.”
어째 집에서 자신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강아지 같았다.
손유하 또한 마음 같아서는 강현과 함께 나서고 싶을 테지만 괜히 자신이 방해가 될까 작업실에 남겠다고 자처한 것이었다. 강현은 미팅이 끝나는 데로 곧장 돌아오겠다는 약속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였다.
쪽.
손유하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강현의 소매를 잡고는 볼가에 뽀뽀를 한 것이었으니. 나쁘지 않은 감촉에 강현이 미소 짓자 도리어 손유하의 얼굴이 잘 익은 홍시처럼 붉어졌다.
겉모습은 지난 삶의 얼음여왕과 닮았을지 모르나 아직은 수줍음이 많은 새침데기였다.
* * *
“정말 반가워요, 현!”
뉴욕 필하모닉의 악장 안토니오였다. 그는 과장된 몸짓을 하며 강현을 반겼는데 어찌나 살갑게 맞이해주는지 오히려 강현이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괜히 런던 심포니의 드미트리를 떠올리며 악장 하면 차갑고 냉소적인 분위기가 풍길 거라 염려한 것이 기우일 정도였으니.
“현의 무대는 항상 빠짐없이 영상으로 챙겨보고 있답니다. 만약 한국이 미국과 가까운 나라였다면 난 매번 현의 무대를 보기 위해 한국을 찾아갔을 거예요. 이번 오케스트라 연주곡을 위해 저희 교향악단과 협연을 하고 싶다고 하셨죠?”
제아무리 짐 필머 감독의 명성이 높다고 해도 교향악단은 나름대로의 룰이 있었다.
역사적으로 지고한 명성과 업적을 이룬 교향악단들은 대개 상업영화와 드라마의 협연은 맡지 않기로 유명했다.
그런 의미로 뉴욕 필은 과거 여제 카라스가 베를린 필을 맡았을 때 쌍벽을 이뤘을 정도로 대단한 명성을 지니고 있었다.
“마에스트로께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신다고 하셨습니다. 저희 단원들 또한 마찬가지고 말이에요. 아무래도 현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이야기였을 겁니다. 저희 마에스트로를 만나보시면 아시겠지만 꽤나 보수적이시니 말이에요. 만약 영국 왕실에서 공연했던 현의 무대를 마에스트로께서 직접 보시지 않았더라면 분명 목에 칼이 들어와도 거절하셨을 거예요.”
아무렴, 앳된 동양인 소년이 영국 왕실공연에서 직접 지휘를 맡았다.
그것도 인종차별이 유럽만큼이나 심한 영국에서. 더군다나 지휘는 나이와 성별을 떠나 그 실력을 더욱 인정받는 세계였다.
앳된 동양인 소년이 런던 심포니의 단원들을 능수능란하게 지휘하는 모습은 일반인들에게도 충격이었지만 수많은 거장들에게도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수년이 지난 지금도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고 있는 것이 그 방증이었다.
“사실 이번 일이 아니더라도 저는 현 씨와 협연을 해보는 것을 손에 꼽을 정도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왕립음악학교에서도 꽤나 많은 일을 하셨더군요. 특히 음악회 이야기는 아주 놀라웠습니다. 왕립음악학교에 재학 중인 학부생들 또한 천재들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탁월할 정도이니까 말이에요.”
“왕립음악학교 음악회도 아십니까?”
“하하, 왕립음악학교에서 제 오래된 친구가 조교수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 친구에게서 현의 이야기는 빠짐없이 듣고 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악장 안토니오는 말하는 재주가 아주 뛰어난 사람이었다.
강현이 말수가 적은 편임에도 그 공백을 메꿀 정도로 대화가 끊임없었다. 특히 안토니오는 강현의 무대를 빠짐없이 챙겨보았다는 것이 거짓이 아닌 듯 웬만한 연주회의 레퍼토리를 외우듯이 술술 읊었다.
강현은 혹시 안토니오가 뉴욕에도 존재한다는 팬클럽 F.H(Forever Hyun)의 지부장이 아닐까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때였다.
“마에스트로!”
안토니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활짝 열린 문 너머로 뉴욕 필하모닉의 마에스트로와 짐 필머 감독이 함께 걸어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헌데 두 사람의 표정이 영 심상찮다. 그 순간 짐 필머 감독이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강현을 바라봤다.
“현, 도대체 바깥에서 대기 중인 기자들은 누구인가?”
“예? 기자들이라고요?”
“그래, 스튜디오 바깥에 어떻게 알았는지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더군!”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강현과 뉴욕 필하모니 측의 관계자들이 짐 필머 감독의 스튜디오에서 미팅을 가진다는 것은 아주 극소수만이 알았기 때문.
하지만 놀랄 것은 단지 그 때문만이 아니었다. 짐 필머 감독이 침을 꼴깍 삼키고는 진지한 얼굴로 부연했다.
“내가 아는 기자에게 물어보니 지금 월가에서 이상한 소문이 돈다고 해.”
“소문이라니요?”
“바바라 그룹의 바바라 탄넨바움 회장을 움직인 빅 핸드가.”
바로.
“바이올리니스트 현, 자네라는 소문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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