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the Mu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238)
> 음악천재를 위하여 – 238화 >
“황홀해.”
짐 필머 감독의 얼굴에는 흥분한 감정이 역력했다. 한평생 할리우드에서 몸담고 있지 않았던가. 여태껏 수많은 영화와 음악을 접했지만 지금만큼 온몸이 달아올랐던 적은 처음이었다.
강현은 예상보다 훨씬 이르게 2차 작업물을 보내왔다.
짐 필머 감독은 무려 7곡의 삽입곡을 들으며 마치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단언컨대 마약을 해도 이만큼 아드레날린이 뿜어나오지는 않으리라.
“여기서 곡을 제하라고?”
강현은 7곡의 2차 작업물 중 짐 필머 감독이 원하는 곡들을 선택하라고 전해왔다.
처음에는 곡의 숫자를 잘못 들은 줄로만 알았다. 이토록 단시간 내에 7곡을 작곡할 수가 있단 말인가.
할리우드에서 내로라하는 작곡가와 음악 감독들조차도 해내지 못할 일이다.
하물며 강현이 보내온 7곡 모두 짐 필머 감독의 귀를 사로잡았다.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눈앞에 영상이 펼쳐질 정도였으니 오죽할까.
“이 곡은 절대 못 빼지!”
화룡정점은 오케스트라 연주곡이었다. 다른 곡들이 강현이 직접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연주해 만들었다면 이 곡은 전자악기인 신디사이저를 이용해 만든 샘플곡이었다.
하지만 샘플이라는 명함이 무색하게도 짐 필머 감독은 곡의 서주를 듣자마자 온몸에 전율이 관통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낸 전자화음에 불가할진대 마치 벌집처럼 밀집된 음표의 구성은 작품의 테마인 스릴과 공포와 한껏 맞닿아 있었다.
음울한 슬픔 속에서 피어나는 절규와 환희가 곡조 속에서 웅지의 날개를 펼칠 날만을 고대하며 청중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대체 이러한 명곡을 어떻게 이런 짧은 기간 내에 작곡할 수가 있단 말인가.
혹시나 싶어 강현에게 원래 작곡했던 곡이냐고 물었지만.
‘아니요, 감독님의 각본을 보고 난 직후 작곡을 시작한 곡입니다. 그래서 아직 엉성하고 다듬을 부분이 많아요. 아직 2차 작업물이니 고려하면서 들어주세요.’
말도 되지 않는 소리였다. 강현이 작곡한 곡은 하나같이 각본의 가치관을 그대로 관통한 영감이었다.
하물며 오케스트라 연주곡은 그야말로 각본의 집대성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짐 필머 감독의 벅차오르는 감정을 자극했다.
전자악기로 만든 샘플링이 이 정도일진대 실제 오케스트라를 동원해 연주한다면 그 감정의 해일을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메간, 지금 당장 현에게 연락을 해. 그리고 뉴욕 필하모닉에도 연락을 해보세요. 스케줄이 비는 시간이 있을 테니까.”
하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뜻밖이었다.
“감독님, 죄송하지만 현 씨는 이미 선약이 있다고 합니다.”
“선약? 지금이면 작업실이나 센트럴 파크에 있을 줄 알았는데?”
“평소라면 그렇겠지만 오늘 보스에서 주최하는 자선행사 파티에 참석했다고 하네요. 그리고 그곳에서 지인을 만나서 파티장을 나섰다는 소식입니다. 보스의 편집장 미구엘 씨에게 들은 정보이니 확실할 겁니다.”
“누구를 만난 거지?”
강현은 유명인사였다. 하지만 자신이 유명해지는 것을 왠지 모르게 꺼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뉴욕에서도 그가 드나드는 곳은 작업실과 호텔 말고는 없었다. 이따금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할 때를 빼고는 타인을 만나는 경우가 없다시피 했으니.
하지만 뒤이어 들려온 대답은 짐 필머 감독의 귀를 의심케 했다.
“바바라 그룹의 바바라 탄넨바움 회장이라고 합니다.”
* * *
바바라 탄넨바움이 직접 뉴욕으로 움직인 까닭은 간단했다. 강현을 만나 조언을 듣기 위해서였으니.
바바라 그룹의 회장이자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적인 대부호가 바이올리니스트에게 조언을 듣는다는 것은 어찌 보면 말도 되지 않는 일이었다.
바바라 탄넨바움이 누군가. 20세기를 대표하는 유대인 중 한 명이며, 마이크로소프트사 빌게이츠가 MIT를 비롯한 이공계열 대학생들의 워너비라면 바바라 회장은 아이비리그 대학생들의 워너비이자 일생일대의 롤모델이다.
그만큼 그가 미국에서 이뤄낸 가치는 혁신적이다 못해 혁명적이었다.
사장되었던 철도산업과 금광산업을 부흥시킨 것도 모자라 다각면에서 투자유치를 하고 있지 않은가. 그 혜안과 지식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유명했다.
‘바바라 회장을 만나기 위해서는 1년을 기다려야 한다.’
정재계에 공공연히 떠도는 말이었다. 웬만한 재력가와 권력가라고 할지라도 바바라 회장과의 만남은 쉽사리 성사되지 않았다.
그만큼 그를 만나고 싶어 하는 인물이 즐비하다는 방증일 터.
백악관의 주인마저도 바바라 회장과 만나려면 사전에 약속을 해야 할 정도였으니 그의 명성과 입지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탄야, 내가 왜 현에게 조언을 구하는지 아는가?
바바라 회장은 한 평생을 살아오면서 강현만큼 자신에게 강렬한 임팩트를 선사한 인물을 접하지 못했다.
돌이켜 보면 그와의 첫 만남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다. 동양에서 온 소년이 자신과의 점심식사를 경매에서 낙찰한 것도 모자라 거래를 제시하지 않았던가.
-신비로운 눈동자 때문이었어.
분명 외모는 소년이었지만 눈빛에 깃든 깊이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었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학자 같기도 하였고 티끌 한 점 없이 청명한 눈동자의 빛은 티베트에 존재한다는 고승의 호수처럼 맑고 투명했다.
하물며 강현이 보여준 기행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바바라 채광을 비롯해 이따금 대화를 나누다 보면 강현의 지닌 지식과 혜안에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
소년은 흡사 먼 미래를 내다보는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바바라는 그제야 소년이 자신보다 훨씬 앞서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가 있었다.
-제약회사 AOA.
분명 탐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만큼 매혹적인 투자처였다. 미국의 투자회사는 물론이고 기관에서조차 은밀하게 AOA의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지 않은가.
이유는 간단했다. 제약바이오를 담당하고 있는 AOA측에서 만든 신약이 임상에 돌입한 것도 모자라 가시적인 성과를 낸 것이다.
일각에서는 수개월 전 오스트리아에서 증권가를 진동시켰던 칼빈 제약회사의 신약은 AOA가 앞으로 낼 신약과 비교하면 범 앞에 하룻강아지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야말로 전 세계 바이오시장에 돌풍을 몰고 올 존재라고 평가되고 있었으니.
-탄야, 너무 순탄한다고 생각되지 않나?
허나 아직 대중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정보였다. 하지만 소수의 재력가들과 권력가들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바바라 그룹 또한 AOA에 대한 막대한 투자를 생각하고 있는 찰나였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바바라 회장은 투자를 미루고만 싶었다.
이미 암암리에 대외비 문서를 확인하는 등 수차례 확인 절차를 끝냈지만 그의 손은 쉽사리 결재서류 위에 올라가지 않았다.
“현, 난 그대에게 우리 바바라 그룹이 제약회사 AOA에 투자를 해도 되는지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과연 자신의 물음에 강현은 무어라 대답할까.
사실 강현이 AOA라는 제약회사에 대해 자세히 모를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바바라는 믿고 있었다. 바이올리니스트가 아니라 과거 자신 앞에서 당당히 거래를 제안하던 VH컴퍼니사의 대표 현을 말이다.
그때였다.
“바바라 회장님께서는 제 말을 얼마나 신뢰하십니까?”
“백 퍼센트라고는 선뜻 말할 수가 없겠군. 미안하지만 사업을 하는 사람들의 특성이 그렇지 않겠나. 더군다나 바바라 그룹에는 나를 믿고 지지해 주는 직원들이 있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현의 이름을 걸고 하는 이야기라면 나 바바라는 그대를 전적으로 신뢰할 걸세.”
“알겠습니다. 그럼 제 이름을 걸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강현은 바바라 회장을 직시하며 부연했다.
“제가 만약 바바라 회장님이라면 AOA에 대한 바바라 그룹의 투자를 전면 철회할 것입니다.”
바바라 회장의 갈색 눈동자에 묘한 감정이 일렁였다.
역시, 현은 자신의 잣대로는 감히 평가할 수 없는 신비로운 소년이다.
* * *
‘저질렀다.’
강현이 바바라 회장에게 AOA 투자 철회를 말할 수 있었던 까닭은 간단했다.
지난 삶의 기억을 돌이켜보면 제약회사 AOA는 신약 임상이 성공적이지도 않았음에도 주가 조작을 위해 거짓된 정보를 흘리지 않았던가.
실제로도 전혀 다른 신약의 임상을 몇 차례나 시도해 눈속임을 했었다. 그 과정이 어찌나 철두철미했던지 기관에서조차 껌뻑 속아 넘어갈 정도였다.
그래서일까, 실제로 한동안 월스트릿을 비롯한 미 증권가에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AOA의 주식을 매수하라는 말이 돌았다.
하지만.
그 사기행각도 채 1년이 가지 않아 들통 나게 된다. 다행이라면 기관과 투자회사에서는 미리 눈치를 채고 발을 뺐지만 뒤늦게 들어가 고점에 들어가 물려버린 개미들은 어쩔 방도가 없었다.
그 탓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이전까지만 해도 미국 시민들에게는 AOA 사태가 가장 큰 금융위기였다.
‘훗날에는 AOA의 사기 행각을 본 딴 신약회사들이 많아졌었지.’
괜히 증권가에서 바이오주를 조심하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 아니었다. 강현은 바바라 회장에게 어떻게 부연설명을 해야 할까 고민을 거듭했다. 하지만.
“알겠습니다, 현의 말을 믿도록 하겠습니다.”
“회장님?”
“현이 그렇게 확신을 가지고 말한다면 이유가 있겠지요. 하지만 주춤하는 것을 보니까 이 자리에서 시원하게 설명을 할 수는 없는 것 같군요. 걱정하지 마세요, 오늘 현의 답변에 대한 이유는 제가 차차 AOA를 조사해가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정도란 말인가?
강현은 바바라 회장이 자신을 이토록 신뢰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무렴, 바바라 회장은 미국에서 알아주는 대부호가 아닌가. 웬만한 사람들의 식견과는 하늘과 땅 정도의 차이가 있을 정도로 깊은 혜안을 지닌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강현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었다. 단지 이름을 걸고 말했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만약 현의 조언이 틀렸다고 해도 저는 상관치 않습니다. 그러니 오늘 조언에 대해 개의치 않아 해도 됩니다.”
하지만 바바라의 눈빛은 전혀 신뢰하지 못하는 눈빛이 아니었다. 오히려 강현의 망설임 없었던 태도 때문인지 이전보다 훨씬 강현을 신뢰하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강현은 도대체 자신의 어떤 점이 바바라 회장을 이토록 매료시켰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강현을 만났던 수많은 거장들이 느꼈던 감정과 바바라 회장의 감정은 다르지 않으리라.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회장님.”
“현, 오히려 제가 더 감사합니다. 오늘 이 조언의 값은 제가 어떻게든 톡톡히 치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대가를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으니 마음에 두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더군다나 제가 답변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해드리지도 못했으니까요.”
“아닙니다. 전 현의 조언이라면 세상 그 누구보다 믿을 수가 있습니다. 방금 전 현이 제게 조언을 했을 때의 눈빛이 마치 저를 처음 만나 거래를 제안했던 소년의 눈빛과 같았으니까요. 대가는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바바라 그룹이 만약 AOA 제약회사에 대대적인 투자를 했다면 훗날 늦지 않게 발을 뺀다고 하더라도 적지 않은 피해를 볼 것이 분명했다.
만약 바바라 회장이 그 사실까지 알게 된다면 강현이 받게 되는 대가는 분명 평범한 보상이 아니리라.
하물며 바바라 회장과 더욱 깊어질 유대관계를 생각한다면 천금이 부럽지 않은 조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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