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the Mu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255)
> 음악천재를 위하여 – 255화 >
“몰라봬서 죄송합니다. 강현이라고 합니다.”
전 세계 거장들의 이름과 얼굴을 줄줄 꿰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빅토르는 강현의 머리부터 시작해서 발끝에 이르기까지 뱁새 같은 시선으로 아래위를 훑고는 말했다.
“듣던 것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군.”
어째 러시아 출신은 하나같이 첫 인상이 비슷할까. 고약한 인상은 마치 불량배처럼 강현을 노려보고 있었다. 시비라도 걸려는 것일까.
강현은 도리어 엷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괜히 이곳에서 힘 뺄 필요는 없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크흠.”
뜻밖의 대답에 빅토르가 헛기침을 하며 뒤돌아섰다.
“현, 그럼 갈까요?”
“예, 선생님.”
히로세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걸음을 옮겼다. 우습게도 차량은 두 대가 준비되어 있었는데 빅토르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혼자 차량에 올라타는 것이 아닌가. 이럴 거였다면 굳이 왜 마중을 나온 건지 의문스러웠다.
그때 히로세가 강현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이 말했다.
“현, 심사위원들 중에는 현의 초청을 반기는 사람도 분명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답니다. 특히 빅토르의 반발은 거셌습니다. 그는 고지식한 사람이니까요. 제아무리 현이 뛰어난 실력을 지녔다고 해도 자신의 눈앞에서 확인을 하지 않는 한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아마 현의 명성이 과장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예상했던 바였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심사위원들은 강현을 제외하고는 한 명도 빠짐없이 중년이 넘어가는 나이대였다. 모름지기 심사위원이라 하면 안목은 물론이고 경험과 연륜이 빠질 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강현은 객관적으로 너무나도 어렸기에.
때마침 빅토르 또한 자리를 비켜주었기에 강현은 속에 품었던 질문을 말했다.
“히로세 선생님, 사실 오기전부터 계속해서 궁금했습니다. 저를 퀸엘리자베스 마지막 심사위원으로 추천하셨다고 하셨는데요,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유라…….”
히로세는 뜻밖의 질문이었는 듯 짐짓 뜸을 들이고는 운을 띄웠다.
“굳이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이게 무슨 말일까.
“현은 이미 세계적으로 그 실력과 재능을 인정받은 비르투오소이자 마에스트로입니다. 아직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심사위원석에 앉지 못하게 된다면 우리 클래식계 또한 발전이 없을 겁니다. 다들 입으로는 제2, 제3의 모차르트 혹은 베토벤을 원한다고 말하지만 아직까지도 보수적인 문화가 뿌리 깊게 내려 있습니다. 저는 과거부터 그러한 문화를 타파하고 싶었습니다. 아마 현이 그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하게 되겠지요.”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히로세가 강현을 퀸엘리자베스로 부른 까닭을. 그때 히로세가 알 수 없는 말을 부연했다.
“그리고 현을 부른 건 제가 아니에요.”
“네? 분명 선생님께서 저를 추천하셨다고 하셨는데.”
“대외적으로는 그렇게 알려져 있습니다만 사실은 아니에요.”
누가 추천해 줬는지 묻고 싶었지만 히로세는 더 이상 말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사이 자동차는 공항을 벗어나 브뤼셀의 중심부로 향하고 있었다.
* * *
“현―!”
브뤼셀 중심가에 위치한 레스토랑이었다. 이미 히로세와 빅토르를 제외한 나머지 심사위원들이 모여 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부분이 초면인 거장들이었지만 과거 퀸엘리자베스의 심사위원을 맡았던 등륜이 자리에서 일어나 반갑게 강현을 맞이했다.
“정말 오래간만이군요. 이렇게 장성한 모습을 가까이에서 마주하니 감회가 남다릅니다.”
등륜은 마치 맘씨 좋은 할아버지처럼 강현을 대했다. 다른 거장들의 눈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것도 그럴 것이 강현은 요즘 클래식계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인물이 아닌가. 특히 프랑스의 거장 유고는 강현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해왔다.
“현, 그럼 교향곡을 만들 때 아무에게도 조언을 받지 않았다는 말인가?”
“예, 그렇습니다만.”
“허어!”
유고는 물론이고 등륜마저도 놀란 시선으로 강현을 바라봤다. 혼자서 작곡을 한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설마하니 대서사시라 불리는 교향곡마저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지 않았을 줄이야.
강현이 작곡한 교향곡들은 하나같이 특이한 구성과 스토리텔링을 지니고 있었다. 음악을 수십 년 동안 해왔던 이들이라고 해도 감히 재단할 수 없는 악보였다. 그때였다.
“그게 뭐가 대단하다고 그렇게 난리들이십니까?”
코끝이 잘 익은 홍시처럼 벌게진 빅토르가 와인잔을 소리 나게 놓으며 말했다. 이미 술기운이 머리끝까지 치민 것처럼 보였다.
“다들 작곡은 옛날부터 하지 않으셨습니까?”
“빅토르, 우리가 작곡했던 곡들과 현이 작곡한 교향곡은 그 궤가 다르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보기엔 오히려 매스컴에서 과도하게 띄워주는 것처럼 보이던데 말입니다. 혹시 압니까, 요즘 세상에는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는데 말이에요. 빌보드 차트 또한 돈으로 매수했는지 알게 뭐랍니까.”
빅토르의 투정에 강현은 헛웃음이 나왔다. 만약 빅토르가 중년이 아니라 이십 대였다면 지금 당장 한 대 쥐어박았으리라.
그때 강현을 대신해 프랑스의 거장 유고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빅토르를 바라봤다.
“빅토르, 자네 오늘 많이 취한 것 같군. 이만 호텔로 들어가서 쉬게나.”
유고의 말에도 빅토르는 자리에서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와인잔을 들어 입을 축이고 있었다.
강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보였다. 주사가 심한 사람과 말다툼을 해봐야 좋을 게 없었다. 하물며 똥이 무서워서 피한다고 했던가.
“아닙니다. 제가 먼저 일어나보겠습니다. 사실 오랜 비행 때문에 피곤하기도 했고요.”
“현, 자네가 먼저 일어나 보겠다고? 이거 원 참.”
유고는 빅토르를 한번 노려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때 빅토르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현을 보며 비아냥거렸다.
“아직 다른 분들이 먼저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새파랗게 어린 애송이가 먼저 자리를 파하다니,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입니다.”
강현은 빅토르의 비아냥을 들으면서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히로세 선생님이 있는 자리에서 화를 낼 수도 없는 법이었으니.
그때 빅토르가 강현의 아무렇지 않아 하는 태도를 보고는 발끈하며 부연했다.
“참, 알렉세이에게도 한번 물어보지요. 과연 퀸엘리자베스 심사위원 자리에 저 친구가 어울리는지 말입니다.”
“빅토르!”
유고가 소리를 번쩍 질렀지만 빅토르는 이미 휴대폰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강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보였다. 아무리 봐도 브뤼셀에서의 나날이 순탄할 것 같지만은 않았다.
* * *
빅토르는 마른 입술을 쓸었다. 그 녀석만 생각하고 있으면 팔자주름이 더욱 깊어지는 것만 같았다. 첫 만남부터 마음에 들지 않지 않았다. 꼭 생긴 것은 여자아이처럼 곱상하게 생긴 놈이 거슬리는 짓만 골라하는 게 아닌가.
“아무리 봐도 심사위원을 할 재목은 아닌데 말이야.”
빅토르는 자신의 안목을 믿었다. 바이올린을 켠 세월이 몇 년이란 말인가. 애송이 녀석이 살아왔던 삶 보다 길지 않은가.
“빌보드 차트?”
웃기지도 않는다. 빌보드 차트 순위권을 기록한 것이 무엇이 그리 화제가 된단 말인가. 언제부터 클래식이 상업성에 고개를 숙이게 되었단 말인가 한탄이 쏟아져 나왔다.
하물며 뉴욕 공연이 아무리 대성황에 끝났다고 해도 반짝 스타일 뿐이다. 과연 애송이의 인기가 십 년, 그리고 이십 년 후에도 유지된다는 보장은 없었다.
“알렉세이 그 친구는 왜 그 자리에서 그런 말을 해 가지고!”
설마하니 믿었던 알렉세이가 그토록 호평을 늘어놓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분명 세월이 흘러 알렉세이의 성격이 유해진 것이 틀림없었다. 아무렴, 모스크바 음악원장을 맡고 있지 않은가.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한없이 유하고 부드러워진 것이리라.
“쯧.”
어떻게든 애송이 녀석을 물먹이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중국의 거장 등륜을 비롯해 나머지 심사위원들이 애송이를 감싸고 돌지 않는가.
특히 일본의 거장 히로세는 가관이었다. 마치 애송이 녀석의 스승처럼 행동하고 있었으니. 그때였다.
“선생님, 금일은 테이프 오디션이 있는 날입니다.”
노크소리와 함께 퀸엘리자베스 관계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테이프 오디션은 말 그대로 전 세계에서 퀸엘리자베스에 지원한 참가자들 중 테이프만을 보고 선별하는 작업을 뜻했다. 물론 그 숫자가 어마어마해서 심사위원들은 각자 짝을 이루어 테이프를 보고는 했다.
“오늘 나와 함께할 이는 누군가?”
빅토르의 물음에 관계자가 잠시 서류를 보는가 싶더니 대답했다.
“바이올리니스트 현입니다.”
빅토리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그래, 얼마나 뛰어난 안목을 지녔는지 한번 보자고.
* * *
후비적.
샤워를 하고 나와 수건을 목에 두르고 있을 때였다. 강현은 또다시 귀가 간지러운 것을 느꼈다. 아무리 봐도 자신을 욕하는 사람이 있는 게 분명했다. 짐작 가는 사람이 한 명 있기는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그때였다.
“현, 금일은 테이프 오디션이 있는 날이에요.”
퀸엘리자베스 직원 에바가 직접 현을 찾아와 스케줄을 전달했다. 7년 전 브뤼셀에서 인연이 있어서 일까 에바와는 어색하지가 않았다.
“에바, 저와 함께 오디션을 보는 심사위원분은 누구시죠?”
내심 히로세나 등륜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심사위원이라고 해도 각자의 의견이 있을진대 괜히 마음이 안 맞는 사람과 짝이 되어 입씨름하기는 싫었으니.
그때 에바가 주춤거리며 말했다.
“빅토르 선생님이십니다.”
강현의 얼굴에 일순 실망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으나 금세 표정을 지워냈다.
어차피 엎질러진 물이 아닌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심사위원을 하다 보면 계속해서 얼굴을 마주치게 될 양반이었다.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고 오히려 빅토르가 어떤 안목을 지녔는지 판단할 수 있는 기회였다.
테이프 오디션이 진행되는 장소에 도착했다. 빅토르는 먼저 와서 찻잔을 기울이고 있었는데 강현의 인사를 보고도 받아주기는커녕 아는 체도 하지 않았다.
‘어린 애도 아니고.’
강현은 빅토르의 신경전을 무시하며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자 에바가 다과와 차를 가져왔다.
테이프 오디션의 요지는 간단했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수천 명의 바이올리니스트들을 선별하는 작업이었으니. 심사위원들이 각자 팀을 이루어 수백 명의 할당을 채워야 했다. 짧게는 삼 분에서 길게는 십 분에 이르는 테이프 내용을 전부 볼 수는 없었다.
“탈락.”
“탈락.”
연주를 하는 자세와 선율의 깊이만 보더라도 상대가 제대로된 바이올리니스트인지 알 수 있었다. 빅토르 또한 과연 거장이라는 명성을 공짜로 얻은 것은 아닌 듯 안목이 뛰어났다. 강현은 괜한 걱정을 했나 싶었다.
“통과.”
“통과.”
두 사람의 의견은 계속해서 만장일치를 이루었다. 빅토르는 의외라는 눈빛으로 강현을 힐끔 바라봤다.
보통의 심사위원같은 경우 탈락 사유를 공유할 법도 하건만 두 사람은 오로지 탈락과 통과라는 말만을 말했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서로 짜기라도 한 것처럼 한 시간째 대답이 똑같았다.
그때였다. 영상으로 보이는 앳된 남학생의 연주에 빅토르는 미간을 좁히는가 싶더니 이내 고개를 저어 보였다.
“탈락.”
하지만 강현은 달랐다.
“통과.”
두 사람의 의견이 처음으로 대립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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