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the Mu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37)
> 음악천재를 위하여 – 037화 >
“편집장께선 이번 콩쿠르를 어떻게 예상하십니까?”
그라모폰의 수석 편집장 애덤 위쇼는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비평가. 세상에 그가 듣지 못한 선율은 없었다. 또한 모든 바이올리니스트들의 연혁을 꿰뚫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애덤이 마른 입술을 쓸어 보였다. 설마하니 자신에게 인터뷰를 요청할 줄이야.
“별들의 전쟁, 그 말이면 되겠군요.”
중국의 장옌, 북유럽의 에릭, 영국의 윌리엄에 이르기까지 이름난 신예들이 빠짐없이 브뤼셀로 향했다. 개중에는 한국까지 찾았음에도 결국 만나지 못했던 ‘현’이라는 바이올리니스트도 있었다. 예컨대 이번 브뤼셀은 콩쿠르 역사상 가장 뜨거울 것이며 찬란할 것이리라. 더군다나.
“선율의 악마들이 자리하고 있으니까요.”
악마의 입에서 악마라는 단어가 나올 줄은 미처 몰랐던 모양. 인터뷰어가 침을 꼴깍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하나의 곡을 오롯이 해석하기 위해 십수 년 동안 매달린다면 믿겠습니까?”
이게 무슨 소리일까.
“바이올린을 그 누구보다 애증하며, 선율을 연구하고 기록하는 자들입니다. 노인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 하죠. 그러니 그들의 머릿속에 도대체 얼마나 방대한 선율이 기록되어 있을까요?”
프랑스의 피에르 가넬, 러시아의 알렉세이, 중국의 등륜 그 외에도 수많은 거장들이 브뤼셀을 찾았다. 한평생 음악만을 바라보고 살았던 이들. 선율에 대해서는 혹독한 비평을 아끼지 않았다. 그만큼 까탈스럽고 까다로운 그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은 과연 우연일까.
“마지막 질문입니다. 그럼 대상은 과연 누가 차지하게 될까요?”
인터뷰어의 질문에 애덤은 고개를 저어 보였다. 그런 질문은 하는 게 아니다. 비평가는 점수를 매기는 사람이 아니었으니. 인생에 옳고 그름이 없듯, 선율에 순위는 있을 수 없는 법. 역시 샤론의 말이 맞았다. 이번 신입은 확실히 되바라졌다.
*
“생각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군.”
어느 거장의 말이었다. 하지만 문틈 사이로 소년을 지켜보고 있던 나머지 거장들도 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한국 나이로 14살이라지만, 실상 보이는 외형은 그보다 서너 살은 더 어려 보였다.
“그런데 지금 알렉세이 씨와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걸까요?”
중국의 거장 등륜이 귀를 쫑긋 새운 채 눈을 가늘게 떴다. 투박한 러시아어가 계속해서 들려오는 것이 뭔가 이야길 하는 것 같기는 한데 그 내용을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궁금하기는 나머지 거장들도 마찬가지인 모양.
“흐음, 저 친구 화가 난 것 같은데?”
프랑스의 거장 피에르 가넬이 알렉세이의 치켜 올라간 눈썹을 보고는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닙니다, 설마 애하고 싸우려고요. 알렉세이 씨 인상이 워낙 차가워서 그런 것이겠지요.”
하지만 모두 은연중 알렉세이라면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애초에 환영하러 나간 것이 아니라 얼마나 건방진지 확인해 보겠다 했었으니. 그때였다.
“잠시만요, 무슨 일인지 나도 좀 봅시다.”
뒤편에 서 있던 거장이 앞으로 비집고 나오는 것이 아닌가? 혹여 소년에게 들킬까 싶어 숨어보던 이들의 인상이 한껏 찌푸려졌다.
“어?”
등륜의 몸이 오뚝이처럼 기울어지는 순간이었다.
*
끼리릭―!
문이 열리는 소리였다. 기괴한 비명소리를 동반한 만큼 거대한 문은 자신이 열릴 줄 몰랐던 모양. 아무래도 무게를 견디다 못한 것 같았다. 그런데.
‘저 사람들은 또 누구야?’
방금 전까지 문틈 사이로 나를 훔쳐보던 양반들. 하마터면 넘어질 뻔하였으나 가까스로 자세를 고쳐 잡는다. 서로 시선을 피하는 게 얼굴에는 겸연쩍은 기색이 역력하다. 일순 이맛살을 찌푸리고 있던 러시안이 깊은 한숨과 함께 손을 들어 얼굴을 쓸어내렸다.
‘친구들인가?’
인종차별주의자라 생각했다. 헌데 그의 친구들은 하나같이 피부색이 특이하다. 나이도 제각각인 것처럼 보이고. 뭐, 외국에서는 마음만 맞으면 열 살 차이도 친구로 치니까. 그런데 이상하게 낯익은 얼굴도 보이잖아? 외국인이라서 그런가.
“어, 어.”
에바가 당황을 감추지 못한 채 말을 더듬을 때였다.
“시건방진 꼬맹이, 전부 너를 보기 위해 찾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나는 저 사람들을 모르는데요, 왜 참견. 늙은이.”
러시안의 미간이 거칠게 좁혀졌다. 가뜩이나 부리부리한 눈두덩이로 나를 노려보는데 그 모습이 마치 잔뜩 화가 난 대머리독수리 같아 보인다. 또 여기서 바이올린을 켜보라는 것인가, 난 손에 들린 케이스를 내려다 봤다. 물론 환상은 아니다.
예민한 악기이니만큼 옮기는 것에도 시일이 필요했다.
막말로 경호원을 배치해서 돌아다녀도 이상할 게 없었다. 한두 푼 하는 물건이 아니니. 아마 경연을 치를 때 즈음이면 도착할 터였다.
그나저나.
‘도대체 뭐야 저 사람들은.’
역시 인종차별주의자의 친구들이란 말인가? 마치 탐닉하듯 나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하나같이 예사롭지 않다. 러시안의 부리부리한 눈매와는 다른 의미로 깊은 눈빛들. 아무렴, 검찰에서 흉악범들을 상대했던 내가 이 정도로 기가 죽을까. 나는 그들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하나 응수해주었다.
“혀, 현.”
일순 에바가 당황을 머금은 채 말을 더듬었다. 아무래도 내가 저들과 눈싸움을 벌일 줄은 몰랐던 모양. 운 좋은 줄 알라고, 늙은 재규어, 부엉이, 펭귄백작, 다들 하나같이 개성이 넘치는 외모의 소유자들이다.
“바이올리니스트 현, 우리가 누구인지 모릅니까?”
그때 부엉이가 걸어 나왔다. 억양과 생김새를 보니 중국인일 확률이 높았다. 그건 그렇고 자신들을 모르냐고? 알게 뭐람, 내가 퀸엘리자베스 소속 직원들을 전부 알아야 한다는 법도 없는데 말이지. 그래도 확인할 건 해야지.
“설마, 이 할아버지와 친구분 되십니까?”
러시안을 힐끔 쳐다보곤 정중하게 영어로 물었다. 부엉이는 잠깐 고민하는가 싶더니 러시안의 눈치를 살피곤 고개를 저어 보였다. 역시, 인종차별주의자가 아시안을 친구로 둘리가 없지.
그 순간.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봄은 어떻게 연주한 건가?”
늙은 재규어가 한 발자국 앞으로 걸어 나오며 나를 바라봤다. 희끗희끗한 머리칼은 물론 군데군데 검버섯 핀 얼굴에서 그의 나이를 가늠할 수 있었다.
“테이프를 보았네.”
심사위원들만 볼 수 있다고 하더니만, 훔쳐볼 수도 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예상했던 퀸엘리자베스의 위엄에 금이 가는 순간이었다. 뭐, CCTV도 없다시피하는 시대였으니 이해해야지. 헌데 도대체 퀸엘리자베스를 주최하는 곳은 어디기에 저토록 나이가 많은 직원을 고용한 것일까.
“마음 가는 대로 연주를 하면 돼요,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은 채.”
간단명료한 대답.
하지만 모두가 고민에 잠긴 듯했다.
늙은 재규어는 설명이 더 필요하다는 시선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누군가가 그랬어요. 바이올리니스트가 보자르에 오면 당연히 활을 들어야 한다고. 그것부터가 얽매인 생각이죠.”
나는 힐끔 러시안을 쳐다보곤 걸음을 옮겼다. 에바가 화들짝 놀라며 뒤따라붙었다.
한편.
알렉세이는 저도 모르게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시건방진 꼬맹이!”
하지만 그 꼬맹이는 이미 시선 너머로 사라진 뒤였다.
* * *
“스펜서의 추천장을 받은 바이올리니스트가 있다고요?”
영국의 윌리엄은 조소를 머금었다. 원래 콩쿠르라는 것이 그러했다. 허황된 소문과 날조가 판치는 곳. 하지만 모든 것은 실력으로 입증되리라. 스펜서는 영국 최고의 신예라 일컬어지는 자신마저도 거부한 지휘자가 아닌가. 런던 심포니의 자존심이자, 영국을 대표하는 거장이기도 한 그였다. 그런 그가 자신도 아닌 다른 이에게 추천장을 써줬다고? 어디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릴.
60명의 예선통과자들이 모이는 자리였다. 전 세계의 수많은 바이올리니스트 중 뽑힌 인원들이다 보니 실력만큼은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드문드문 눈에 띄는 신예들이 보이기도 했다. 베를린필의 수석 바이올리니스트에게 사사 받았다는 참가자는 물론, 중국의 장옌 그리고 북유럽의 에릭까지도.
‘뭐야?’
윌리엄은 처음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너무 어린 아이가 있었기 때문. 퀸엘리자베스가 아니라 주니어 콩쿠르에 어울릴법한 체구이지 않은가. 자신뿐만 아니라 장내에 자리한 모두가 이따금 이 아이를 쳐다보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윌리엄, 추천장을 받은 인물의 이름이 강현이라고 합니다.”
그때 매니저가 다가와 자신에게 귓속말로 알려주었다. 강현이라고? 이름을 보니 동양인인 것은 확실한데. 윌리엄의 시선이 동양계 바이올리니스트들을 이잡듯 훑다 홀로 앉아있는 어린 아이에게까지 닿았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돌렸다.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 같으니.
*
‘이거야, 원.’
동물원도 아니고 대기실에 들어서는 놈들마다 하나같이 나를 보고는 자신의 눈을 의심한다. 철장 안 원숭이를 구경해도 이보단 나으리라. 이제는 아예 노골적으로 나를 노려보는 이들도 있었다. 아마 잘못 들어왔거나 돈을 써서 뽑혔다고 생각하는 것일 테지.
‘일차적으로 24명.’
이름난 거장들에 비하면 아직 햇병아리에 불과한 이들이었지만 바이올린에 대한 지조와 자존심이 하늘을 찌른다. 원체 음악가라는 인물들이 그러했으니. 당연히 자신이 최후의 명단에까지 오를 것이라 의심치 않을 것이다. 헌데 왜일까.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지난 삶 사법연수원에서 느껴봤던 경험이지 않은가. 그때의 본능이 마치 몸속 깊은 곳에서 꿈틀꿈틀하며 다시 싹을 틔우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온몸이 긴장이 된다. 이들은 명실상부 최고의 신예들이니.
시간이 흘러 장내가 분주해졌다.
참가자들마다 바이올린을 꺼내 조율을 하기 바쁘다. 물론, 세밀한 조율은 이미 끝마쳤을 테지만 자세를 잡는 것이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이번 심사위원들은 더욱 유별나다 했다. 혹평을 하는 것은 물론, 한 음절만을 듣고서 연주를 멈추는 경우도 다분하다고 하니. 설마 콩쿠르에서 그렇게까지 하겠냐 싶지만, 설마가 사람 잡는 법이다. 그나저나.
‘저 샌님은 왜 이렇게 쳐다봐.’
기분 나쁜 시선이었다. 영국인 참가자 하나가 날 향해 조소를 머금고는 고개를 돌려 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일차심사 시작하겠습니다. 순서는 무작위로 뽑히며 각 지정된 곡을 연주해주시면 됩니다.”
콩쿠르 측 직원이 대기실로 들어서자 장내에 긴장이 내리깔렸다. 옷 매무새를 다잡는 이도 있었고 손수건으로 손바닥을 닦는 이도 있었다. 하물며 긴장한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미소짓는 이들까지 긴장을 풀기 위해 각양각색의 방법을 동원하는 참가자들이었다.
“그럼, 삼십칠 번.”
직원이 번호표를 호명했다. 첫 순번이다 보니 장내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했다. 대부분이 자신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표정이다. 아무래도 보수적인 심사위원들이 많은 음악계다 보니, 콩쿠르는 첫 무대가 가장 무겁다는 인식이 있었다. 직원은 번호를 호명한 뒤 서툰 발음으로 이름까지 읽어나갔다.
“강현.”
아까 전 그 샌님이 눈을 부릅뜨며 돌아봤고, 나머지 인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 순간 내가 당당히 걸어 나가자 모두가 당황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좌중을 지나쳐갔다. 잘 보라고,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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