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CEREED RAW novel - Chapter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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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 불허의 상황
존재는 자신에게 돌덩이가 날아옴에도 가만히 있었다.
스스스-
놀랍게도 돌은 존재의 몸에 닿기도 전에 가루가 되어 사르라 졌다.
존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망설임 없이. 동요 없이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입구를 부수고 들어온 강한 기운의 소유자인 두 명에게 시선을 준채로.
거친 음성 속에는 온갖 감정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 중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권태로움이었다.
지옥에는 8개의 수문(水門)이 있고, 그 수문은 지옥의 사신이 움직이는 나룻배로만 올 수 있으며, 그 8개의 수문에는 머리 3개 달린 케르베로스가 그곳을 지키고 있다. 이 수문을 지나면 바로 지옥이다. 하지만 지옥 안에는 땅으로 통하는 6개의 지문(地門)이 존재하며, 이 지문은 특수한 곳으로, 수문에서 감당 못할 존재가 오면 지문으로 오개 된다. 마지막으로 지옥의 높디높은 허공에 천문(天門)이 존재한다. 지문에서도 감당하지 못하는 존재가 오면 이곳 천문으로 오게 되는데, 몇 천, 혹은 몇 만 년에 문이 열릴 정도로 그만큼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만약 천문에서도 감당할 수 없는 죽은 존재가 오면, 지옥의 정 가운데 있는 9층탑으로 보내진다.
아주 아름답게 건축이 된 9층탑으로.
“괜찮느냐?”
과격하게 입구를 부수고 들어온 인물이 좌중을 훑으며 말했다. 그의 앞에는 등에 방패를 맨 존재가 오만하게 서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
검은 눈동자.
호리하지만 단단함이 느껴지는 체구에 잘생긴 남성의 얼굴.
카크였다.
카크의 옆에는 마족 휘베리오가 다소 놀란 얼굴로 존재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도 본 것처럼.
존재도 휘베리오를 바라보았다. 둘의 눈이 마주쳤다. 권태로움에 찌든 거친 얼굴에 생기가 돌며 미소가 어렸다.
지옥의 존재들에게 타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죽은 자와 무슨 타협을 하겠는가!
타협은 쓸모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존재는 말을 이었다. 존재의 음성에 권태로움이 많이 사라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존재가 밝힌 자신의 정체.
예상은 물론이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곳에서 소환된 존재였다.
카크의 부하들은 존재가 2대 천문의 주인이라는 것에 놀란 것이 아니다. 다만, 존재가 지옥에서 왔다는 사실에 놀란 것이다. 하지만 카크는 자신이 원하지 않아도, 고대의 9클래스 마스터 마법사 리자르트가 남겨놓았던 지식 덕분에 지옥의 천문이 어떠한 곳인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나 강한 생명체가 그곳을 지키고 있는 것인지도.
존재의 말이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달그락거리는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해골이 쌓여 있는 곳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대전을 막고 있던 입구가 파괴되자 마법이 발동하며 해골에게 영향을 미친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그곳에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대는······.”
휘베리오의 중얼거림에 존재. 아니, 클로디아가 생기가 느껴지는 거친 음성으로 보답했다.
[오랜만이구나. 우리의 친우 마족이여.]안면이 있었음직한 말이었다.
카크도 놀랐고, 일행들도 놀랐다.
달그락-
처음엔 그저 소수의 해골만이 움직였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뭉쳐있던 많은 해골들이 움직이며, 스스로의 팔과 다리 혹은 머리를 찾자 소리는 더욱 크게 들렸다.
존이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바로 존의 경악성이 대전을 울렸다.
“해골이!”
하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때 해골들은. 아니, 스켈레톤 무리는 각자의 무기를 취하기 위해 병장기가 있는 곳으로 달그락 거리며 시끄럽게 움직여갔다.
그때 휘베리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오랜만입니다. 천문의 왕이시여.”
*** *** ***
주변은 온통 생명의 빛을 발하는 초록의 식물들과 그 옆을 흐르는 청명한 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넓고 푸른 들판에 피어있는 아름다운 꽃들이 바람에 흩날린다.
지상낙원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린 만한 풍경이었다.
그 위를 한 명의 여성 엘프와 한 명의 남성 인간이 한가로이 길을 걷고 있었다.
아름다운 얼굴과 늘씬한 몸매를 지닌 엘프는 허벅지를 드러내는 하늘색 원피스 계열의 옷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바람이 불때마다 하늘거리는 초록색의 비단 같은 머릿결이 눈부시게 빛나며, 살짝살짝 보이는 뾰족한 귀가 묘한 매력을 던져주었다.
그 엘프의 옆에는 여자가 보아도 질투를 유발시킬 만큼 아름다운 용모를 지닌 인간 남성이 있었다.
조각한 듯 한 반듯한 외모에 붉은 입술. 그리고 희디흰 피부색과 푸른색으로 빛나는 머리카락이 그의 외모를 더욱 빛나게 했다.
여성 엘프가 머리를 쓸어 올리며 듣는 이로 하여금 시원함을 느끼게 해주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옥의 존재가 인간계엔 무슨 볼일이죠?”
여성 엘프의 말에 인간남성이 무뚝뚝한 어조로 대답했다.
“강제 소환된 것 같소.”
“설마요. 인간계에서 지옥의 존재를 소환할 수 있는 생명체가 있을려구요?”
“매개체에 꾸준히 노력을 쏟아 부으면 가능할 것이오.”
여성 엘프는 인간남성의 무뚝뚝한 말투에 코웃음을 흘리며 시원히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를 쓸어 올렸다. 세상 무엇보다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칼이 하얗게 빛나는 가늘고 긴 손가락사이로 사르르 빠져나갔다.
찬란하게 빛나는 미모는 능히 태양에 버금갔다.
“그나저나 우연치고는 대단하네요.”
“······뭐가 말이오?”
자신의 의도대로 인간이 궁금한 듯 묻자, 그녀는 신나하며 밝은 어조로 명랑하게 말했다.
“파멸의 검. 파흐샤즈의 출현과 동시에 나타난 포스리드. 그리고 그 뒤로 나타난 마계의 마족. 그리고 오늘 나타난 지옥의 존재.”
그녀는 말을 멈추고는 인간을 쳐다보았다. 인간도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싱긋 웃어 보였다. 하지만 남성인간은 아찔한 그녀의 미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뚝뚝한 표정을 지우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무표정한 모습도 너무나 멋져 보였다.
그녀는 남성의 그런 모습에 토라진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흥, 우연치고는 너무 대단하지 않나요? 저희도 살아가는 동안 어쩌다 보아야 할 것들을, 이렇게 한 곳에서 한꺼번에 보다니 말이죠.”
“우연히 겹치면······.”
그는 말끝을 흐리며 가만히 눈을 감았다.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푸른 잔디위에 앉은 미남미녀.
남자를 쳐다보는 여성 엘프.
눈을 감은 남자.
휘이잉-
눈을 감은 그의 안면으로 시원하면서 따스한 바람이 불었다. 이제 곧 여름이다.
남자는 감았던 눈을 뜨며 말을 이었다.
“그것은 필연이지.”
“그렇군요.”
엘프의 표정이 걱정스럽게 변했다. 남자는 그런 그녀의 근심어린 표정을 보며 다정하게 말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우리를 건들지만 않으면 되잖아. 저들도 멍청하지 않는 이상 우리를 건들지는 않을 거야.”
갑자기 부드러워진 남성의 말투에 여성 엘프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그의 부드러운 말에 웃음으로 보답했다.
드래곤의 섬에서 나타난 시원한 바람은 그들을 한차례 훑고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