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139
138 녹림왕(4)
끝이 보이지 않는 드넓은 사막.
대막에 들어서기 전 그녀는 상단과 계약을 하고 움직였다. 거대한 사막에서 홀로 목적지를 찾아가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사막의 지리를 잘 아는 길잡이의 도움이 필요했다.
내몽고와 대륙의 교류를 담당한 금호상단에 의뢰를 했다. 출발 전 알아봤더니, 목적지에서 멀지 않은 지역으로 가는 상단은 금호상단뿐이었다.
여정은 순조로웠다.
간혹, 불순한 의도를 가진 자들이 있었지만, 거치적거리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 실력을 보여 주었다. 상단의 상인들과 호위는 거친 사막을 주기적으로 횡단했다. 그런 자들에겐 약한 모습을 보이면 좋지 않았다. 초반에 기선을 제압하여 불필요한 접촉을 차단했다.
하나, 상단과 헤어지고 난 후 적풍사와 혈전을 치르면서 적지 않은 고생을 해야 했다. 적풍사는 사막의 악몽으로 불리는 자들로서, 대표적인 도적 집단이었다. 상단과 사람을 털고, 인신매매와 살인을 밥 먹듯이 하는 자들이다.
적풍사의 주 전력은 아니었지만, 사막 전투의 경험에서 차이가 있었다. 뜻하지 않은 사투를 펼치고 나서야 겨우 그가 말한 장소에 도착했다.
이서정은 거친 숨을 토했다. 전투 후 전력을 다해 경공을 시전한 상태였다.
하아, 하아!
황량한 사막.
대략적인 지점이긴 해도, 목적지에 들어서면 알 수 있다고 했다. 한데, 작열하는 태양과 달아오르는 모래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을 뿐이다.
빠득!
“이 작자가 나를 속였어!”
상당한 시일이 걸렸고, 오는 동안 고초가 적지 않았다. 적풍사의 추적을 따돌리느라 그녀의 심신은 지쳐 있었다. 평소라면 하지 않을 언사거늘, 공허함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망망대해처럼 끝없이 펼쳐진 사막을 보고 있노라니 분기를 참기가 어려웠다.
후우우!
이럴 때가 아니다.
절박할수록 흥분은 독이었다. 심호흡으로 분기를 가라앉혔다. 냉철히 사태를 살펴야 했다. 그가 자신을 속일 이유가 없다. 그러지 않고 다른 수를 써도 충분하다. 무엇보다 선택은 자신이 했다. 이제 와 그를 탓한들, 불필요한 심력 낭비였다.
어?
흐릿한 윤곽, 돌을 던진 호숫가의 수면처럼 흔들렸다.
사막의 신기루일까?
그것하고는 좀 다른 형태였다.
해가 사막의 끝에 달려 있었다. 곧 해가 지고 어둠이 찾아올 것이다. 빛과 어둠의 경계 속에 노을이 생기면서 장막에 가려졌던 영역을 흐릿하게 비추었다.
해는 금방 진다.
이서정은 서둘러 흔들렸던 공간을 향해 내달렸다. 이 순간을 놓치면 다시는 찾지 못할 공중누각처럼.
솨아아아!
직감했던 공간에 들어선 그녀는 자연의 신비로움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멀지 않은 공간이었거늘,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마르고 황량했던 사막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청량한 녹주(綠洲)와 그 주변으로 수목과 수풀이 깔려 있었다.
그녀는 허겁지겁 달려가 녹주의 물을 마셨다. 내색하지 않았지만 목이 탔었다.
벌컥, 벌컥!
가뭄의 단비처럼, 말라 가던 육체에 활력이 돋아났다.
이서정은 한숨을 돌렸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지만, 어느새 달과 별이 빛을 발했다. 놀랍게도 외부의 빛을 빨아들인 공간은 대낮처럼은 아니더라도 굉장히 밝았다.
“월아천의 중심에서 북서쪽이라고 했지.”
접시를 올려놓은 듯한 바위가 있었다. 알려 준 내용과 일치했다. 바위의 아래에 유사(流沙)가 있다고. 바위를 기대고 앉아 휴식을 취하려고 했다면 빠져 버렸을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서정은 몸을 회복한 후 유사에 발을 담갔다.
푸스스스!
넓지 않은 유사인데, 발을 디디자 이서정을 빨아들이듯 순식간에 삼켜 버렸다.
그리고 얼마 뒤.
쿵덩!
시야를 가린 모래에 정신이 팔리기도 전에 바닥에 내려섰다. 지하임에도 넓은 공간이었다.
킁킁!
서늘하고 비릿한 향이 이서정의 후각을 자극했다. 기감에 무언가 잡혔다. 이쪽으로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사르르르르!
좋지 않은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강타했다. 그녀는 즉시 작은 횃불을 피워 전면을 비췄다.
츠르르르릅!
눈이 달리지 않은 기이한 형태의 사충(沙蟲)이었다.
상인들에게 들은 적이 있는 놈이었다. 모래 표면 아래 서식하고 있는 지룡(地龍)과 같은 작은 벌레로, 지저사충(地底沙蟲)으로 불린다. 작다고 얕보면 안 된다고 했다. 물리면 열병이 돋아 고생할 수도 있었다.
한데.
눈앞에 있는 지저사충은 고생하는 정도로 끝나지 않았다.
“저게 뭐야?”
크다.
눈이 달리지 않고 입만 달린 기괴한 형태의 뱀처럼 기다란 지저사충이었다. 입을 벌리자 날카롭고 작은 이빨이 톱니처럼 돌았다.
“……이딴 게 있었으면 얘기를 했어야지!”
별거 아닐 거라는 무진의 말이 떠오르자 이서정은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의 압도적인 강함에 힘 한 번 써 보지 못하고 당했을 때, 더욱 강해지겠다고 다짐했었다. 한마디로 강함에 눈이 멀어 앞뒤를 정확히 보지 못한 것이다.
오늘따라 평소보다 화도 많이 나고, 말도 많아졌다. 연이은 격전에 그녀의 침착성에 문제가 생긴 모양이다.
“한 마리면…… 제길!”
말이 씨가 된다고 어느새 세 마리로 불어났다.
그녀는 입을 다물고 빙룡검을 뽑았다. 사부에게 물려받은 검기가 사막을 건너오면서 발전을 이루었다.
솨아아악!
이서정의 결의를 감지한 지저사충도 물러서지 않았다.
스왁!
차가운 검기가 부챗살처럼 퍼지며 무섭게 달려드는 지저사충의 얼굴을 노렸다. 피부가 베어지며 흘러나온 핏물이 모래를 녹였다. 지저사충의 핏물이 짙은 산성을 띠었다.
크어어어어엉!
검기에 당한 지저사충이 발버둥을 치자 공동이 부서질 듯 흔들렸다.
‘단숨에 죽여야 해.’
지저사충과의 전투가 길어지면 위험했다.
한천백룡공(寒天白龍功)을 최대치로 끌어 올렸다. 그녀의 몸 주위로 새하얀 서리가 형성되어 회전했다.
-빙천검예 극의 설풍사!
저런 괴물이 있을 줄 알았으면 녹주에서 하루 쉬고 몸을 충분히 회복한 후에 찾았을 것이다. 그 인간이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아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무진의 문제로만 볼 순 없다. 동행했던 상인들도 이 일대는 금지구역이라고 했다. 상세하게 묻지 않은 이서정의 실수였다.
순백의 검기가 그려 내는 얼음 폭풍에 지저사충이 휘말렸다. 이 정도의 검력이면 지저사충이 얼어붙어야 하나, 워낙 덩치가 커서 한기에 면역이 있었다.
이서정은 전심전력을 펼치며 사투를 이어 나갔다. 여력을 남기면 위험했다. 몸통을 베어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지저사충의 핏물은 위험했다. 한기를 발출한 이유는 베어 낸 부위를 얼려 버리기 위해서다.
푸욱!
이각 동안 사투를 펼친 이서정은 잠재된 전력을 끄집어내고 기어이 지저사충의 머리를 뚫어 냈다.
하아아, 하아아!
숨의 기복이 확연히 거칠었다. 쉴 때마다 억지로 끌어 올린 내력의 역효과가 일어나 기혈에 충격이 갔다.
털썩!
기력이 쇠한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아 호흡을 가다듬었다. 한천백룡공으로 운기요상을 펼친 후 간소하게 치료한 다음 그녀는 일어섰다.
“없기만 해 봐!”
갖은 고생으로 없던 악도 생긴 그녀였다. 평소 그녀를 아는 사람이라면 놀랄 만한 변화가 아닐 수 없었다. 그것은 무진과 함께하지 않았음에도 성향이 비슷해지는 놀라운 효과였다.
이게 바로 낙수효과란 건가?
유사와 지저사충이 만든 동굴이 많았다. 어둡기까지 해 방향을 잡기가 여의치 않았다. 그러나 한천백룡공이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끌림이라고 해야 할까? 내력을 자극하는 한기가 공명을 일으켰다.
우우우우웅!
이끌리듯 이서정은 방향을 잡고 나아갔다.
어느새 들어선 공동에는 한기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극빙의 기운에 이서정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막에서 이 정도의 한기를 맛보다니, 이서정은 무진에 대한 의심을 지웠다.
공동 안의 한기가 외부로 번지며, 멀어질수록 물기가 생성되었다. 유사 위에 녹주가 생긴 것은 공동 안의 한기 때문이었다. 사막의 뜨거운 기운과 빙정의 한기가 만나면서 물방울이 형성된 것이다.
공동의 정면에 오래된 시체가 있었다. 붙잡고 있는 철제 상자에서 새어 나온 한기로 부패가 심하진 않았다.
철궤의 재질이 평범하진 않았다. 북해에서 생산이 되는 한철로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한기를 이기지 못하고 금이 가 있었다. 균열이 난 좁은 틈 사이로 번지는 한기가 이 일대에 영향을 주었다.
이서정은 시체의 신분을 살폈지만 호패가 나오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상흔도 부패가 되어 상태를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시체를 한쪽에 눕히고 예를 취했다. 어떤 사람인지는 몰라도, 그에게도 소중한 물건일 것이다.
딸깍!
철궤를 열었다.
눈을 시리게 하는 새하얀 빛이 발산되었다.
솨아아아아악!
이제까지와는 비교도 하기 어려운 한기를 뿜었다. 이서정은 가부좌를 틀고 한천백룡공을 운기했다.
“드디어.”
사문과 사부의 오랜 비원을 이룰 빙정과 마주한 이서정은 감개가 무량했다. 설마 이런 사막의 중심에 빙정이 있을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대체 어떻게 안 걸까?’
의문이 들었지만 상념은 길지 않았다. 빙정을 흡수하여 한천백룡공의 빙룡무극에 도달해야 했다.
스읍, 꿀꺽!
적지 않은 크기를 단번에 삼켰다. 입속으로 빨려 들어간 빙정을 한천백룡공으로 이끌어야 했다. 발산하는 빙기와 한천백룡공이 서서히 마주하…… 아?
쩌저저저적!
잠잠했던 빙정인데 한 꺼풀 벗기기가 무섭게 한기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까아아악!
***
장필도는 적절히 치료한 후에 옷을 갈아입고 녹림으로 돌아갔다. 우락부락하게 생긴 외형과 달리 눈치가 빨랐다. 자신에게 올 화를 감지했다.
무진은 꽤 흡족했다.
‘어떠냐, 내 안목이?’
-그러다 믿는 도끼에 또 발등 찍히지.
‘네 얘기겠지.’
-너도 정파한테 배신당했으면서 말 돌리지 마라!
‘믿지도 않았는데 배신은 무슨.’
전왕으로 활동한 시절 무진은 무림맹의 선봉장이 되어 마신교를 상대했다. 도탄에 빠진 강호 무림을 구할 영웅으로서 면모를 보였다. 하지만 대외적으로 보인 환상에 불과했다.
무진은 무림을 구원할 영웅도, 대협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실수를 쏟아 내려고 몸부림을 쳤을 뿐이다. 그러니 뒤통수를 맞는다고 해도 딱히 배신감을 느끼지 않았다. 마지막 전투에서도 그들에게 뒤를 맡긴 이유였다.
-돌아오지 않았으면 가만두지 않았을 거면서.
‘당하곤 못 살지.’
마왕과 회귀하지 않고 미래에 살아남았다면, 무림에는 악몽이 펼쳐졌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이 시절부터 무림은 썩어 가고 있었다. 마신교에 물들어 무림은 정기를 잃어 갔다. 개인의 영달과 이득에 사로잡힌 대의가 올바를 리가 있나.
그 순간이었다.
‘아, 벌레.’
-또 뭔데?
‘아냐, 아무것도. 벌레 때문에 빙정을 흡수하지 못하진 않겠지?’
-보통 벌레가 아니면?
‘차기 검후잖아.’
-얘기는 했었어야지. 미래가 달라지기라도 하면 어쩔 건데?
‘난 그녀를 믿어.’
-방금 생각났으면서 그딴 말을!
무진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빙정을 얻은 과정을 자세히는 몰랐다. 기연은 하늘이 내린다고 했으니, 그녀의 운명을 믿고 잊어버렸다.
‘온실 속의 화초는 강해지지 못해.’
-누가 들으면 네가 가르친 줄 알겠다, 이 뻔뻔한 전왕 놈아!
‘뱁새가 어찌 봉황의 뜻을 알리오.’
-문자 쓰지 마라, 짜증 난다!
오랜만에 한 건 한 무진은 매우 흡족했다. 항상 단어가 딸려서 고풍스러운 성향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었다. 근자에 천자문을 읽은 보람이 있었다. 사내로 태어나서 천자문 정도는 읽을 줄 알아야지.
‘이제 당분간은 조용하겠다.’
-그게 마음처럼 될까?
‘초 좀 치지 마. 이 정도 했으면 좀 쉬어도 괜찮잖아.’
-정의는 승리하기 마련이지.
“……?”
이 마왕 놈이 할 소리가 따로 있지.
마왕이 웬 정의야!
이번 여정으로 무진은 여러 씨앗을 뿌렸다. 씨앗이 싹이 되고 잎이 되어 열매를 맺으려면 시일이 걸린다. 뿌린 대로 거둔다고, 인과의 자연스러운 법칙이었다. 마왕은 그것이 못마땅해 꼬투리를 잡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가자, 집으로.”
“예.”
대답과는 달리 철호, 나릉, 육칠의 셈은 각자 달랐다.
하나, 무진은 마차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세간의 이목에도 신경을 썼다.
응?
빙정을 흡수하기가 쉽나?
에이!
괜찮겠지.
무진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