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144
143 회포를 풀다(3)
흠.
무진은 그쯤에서 멈추었다.
‘안 되겠네.’
-그렇군.
전력을 쓰기에는 산이 지나치게 협소했다. 최소한 오대명산 정도는 되어야 부서뜨릴 맛이 생기겠지. 집 주변 산에선 가급적이면 전력을 쓰지 않기로 다짐했다.
아~~~~!
태진, 철호, 나릉, 육칠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무진이 데리고 와서 자기 멋대로 뭔가를 보여 줄 때까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신화마정갑과 무진의 일합에 능선이 사라져 버리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버지, 대체 뭐냐고요!’
‘신화마정갑의 위력인가?’
‘그래도 그렇지, 저건 좀!’
‘사부는 인간이 아니야!’
전력인지 아닌지 알 수도 없고, 고작 일합에 불과했다. 분명히 말하지만, 저걸 맞으면 산 사람은 분명 아닐 것이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대체 뭐라고 표현해야 적절할까?
일격붕산(一擊崩山) 그 자체였다.
무공의 초식 표현이 과장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현장감을 제대로 살렸다. 저것이야말로 산을 부수는 일권이었다. 저것 외에 산을 부수는 초식은 전부 허상으로 치부해야 했다.
“뭐하고 있어!”
“예?”
“메워.”
“예?”
“자연을 사랑하자.”
자연을 사랑할 수 있다 치자고요. 자기가 부수고 왜 우리한테! 할 말은 무척 많았지만, 무진은 수련으로 치부했다.
“훈련한다 치자. 이의 있는 사람은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눠 줄 용의가 있다.”
“……!”
있을 리가 있나. 두 번 심도 있다가는, 염라대왕과 빡신 경합을 벌여야 했다.
***
무림의 구도는 오랜 세월 정파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후 세월이 흐르면서 마도가 살아나고, 사도가 세를 확장하였다.
마도는 토벌해야 할 세력으로 낙인이 찍혀 신강 너머로 돌아갔지만, 사도는 밑바닥부터 오랜 세월 자리했던 세력이다.
그런 사도의 문파들이 모여 흑룡성이 되었다.
사파는 흑룡성을 중심으로 세를 넓히며 정파에 대항할 힘을 길렀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 때 정파에서도 경각심을 가졌지만, 대전을 치르기에는 서로 간의 이득이 갈렸다.
그 틈을 흑룡성이 파고들어 현재의 성세를 이루었다.
그렇다고 해서 현 무림의 구도가 흑룡성을 중심으로 흐르진 않았다. 여전히 정파의 세상에서 세를 갈라 자기 영역을 구축했을 뿐이다.
서로를 침범하지 않는 적정선에서 타협을 본 것이다. 과거 마도 결전으로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도 컸다. 굳이 문제를 일으켜 내부적으로 혼란을 가져올 필요는 없다고 본 것이다.
거산방.
청양현을 대표하는 문파는 예로부터 송호문이었지만, 흑룡성이 자리를 잡은 이후로 세를 넓히며 성장한 문파가 바로 거산방이었다.
거산방은 흑룡성을 등에 지고 규모를 키우고 무인을 수급했다. 그 결과 청양에서만은 송호문보다 명성이 높았다.
무림 전체로 따지면 작은 현을 놓고 벌이는 사소한 다툼이지만, 당사자들에겐 다르게 다가왔다. 그 작은 자존심이 서로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하게 했다.
거산방의 방주실에 손님이 찾아왔다.
“거래를 하잔 말인가?”
“후일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또 모르지, 본방을 칼로 세우려는지.”
“송호문이 세를 키우면 거산방에도 위협이 될 테지요.”
거산방주 목진산은 상대방의 제안이 탐탁지 않았지만 협조하기로 약조했다.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었고, 근자에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청양이 작은 현이긴 해도, 개발이 되고 있어 장래는 밝았다. 그러나 누군가와 나누어 먹기에는 여전히 작았다.
물론, 상대방의 말만 듣고 행동하진 않았다. 어느 정도는 명분이 있어야 했다. 작은 다툼이 빌미가 되어, 정파에 명분을 주면 곤란하다.
손님이 나가고, 방주실로 젊은 사내가 들어왔다.
“왔느냐.”
“늦었습니다, 아버지.”
젊은 사내는 거산방주의 직계 아들 목악진이다.
칠 년 전 흑룡성에 보냈고, 이제야 돌아왔다. 흑룡성 산하 타격 부대인 적혈대의 부대주가 되었다. 그 정도만 해도 작지 않은 성과였다. 흑룡성 내에서 거산방이 도움을 받을 만큼은 되었다.
목진산은 손님의 제안을 아들에게 밝혔다.
“어떻게 보느냐?”
“나쁘진 않습니다. 우릴 칼로 쓰려는 게 맘에 들진 않아도.”
“그래서 고민이다. 빚을 지워 놓으면 좋겠지만, 무작정 손을 쓰기엔 소문의 진위도 이상하고.”
“운이 좋아서 작은 명성을 얻은 겁니다. 무엇보다 사람은 변하지 않습니다.”
목악진은 방으로 들어오면서 소문을 듣기는 했다. 계기가 있으면 사람이 바뀌기는 하지만, 쓰레기는 쓰레기였다. 자기 분수를 알아야 했다. 게다가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이 되어 있었다. 이만한 자금이 있다면 거산방에도 위협이 되었다. 싹은 자라나기 전에 제거해야 했다.
“맡겨 주십시오.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서두를 필욘 없다.”
***
무진은 모처럼 시간을 내어 아내와 마을을 둘러보았다. 맘 같아서는 멀리 나들이라도 가고 싶었지만, 송호문은 아내가 없으면 돌아가지를 않는다. 하루라도 빨리 그놈을 데리고 와서 총관 자리에 앉혀야 하는데, 때가 맞지 않았다.
“나 없는 동안 고생 많았어. 조만간 사람 붙여 줄게.”
“괜찮아요, 하나도 힘들지 않아요.”
“지금보다 규모가 커지면 혼자선 어렵잖아.”
“나중에 제가 보고 선택해도 되죠?”
“얼마든지. 보면 만족할걸.”
신의 두뇌를 지녔다는 사람이 부족하면 쓸 사람이 없을 수밖에. 당장 송호문을 운영하는 건 유진 혼자서도 가능하겠지만, 차후 규모와 세가 늘어나면 불가능했다. 자기가 다 해 왔던 터라 만족하기는 어렵더라도, 최대한 사람을 써야 한다. 그래야 개인 생활도 할 수 있지.
‘독수공방은 싫다고!’
무진은 문파의 규모를 키우기 위해 무리할 생각은 없지만, 대세를 따라야 했다. 문도의 수준이 높아지고 있는데, 마냥 작은 문파에 만족하긴 어려웠다. 이 부분은 무진이 잘못 예측한 것이다.
특히 청양에 도로가 깔리고 포구가 발달하면서 상권이 확장했다. 아내의 처가인 보문상단이 발 벗고 나섰다. 일전에 장인어른이 찾아온 연유가 바로 자금의 조달 때문이었다.
“맛있는 거 사 준다니까.”
“저는 고기 소면이 좋아요.”
문파에서 멀지 않은 곳에 면 전문점이 있었다. 대도시의 식당과 비교하면 단출하지만, 청양현에선 유명했다.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여러 가지 재료를 쓰지 않았음에도 인기가 많았다. 면과 육수만 놓고 보면 안휘 제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점심때는 지났다.
일부러 이 시간에 나왔다. 점심때 식당에는 앉을 자리가 없었다. 송호문을 내세우면 자리를 차지할 순 있겠지만, 아내는 그런 걸 좋아하진 않았다.
그래도 식당에는 종종 손님이 있었는데, 오늘은 한 탁자만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네 사내가 면과 함께 술을 시켰다. 술을 팔지 않는 청양옥에서 술을 마시다니 이상하긴 했다.
들어가려다 께름칙한 기분이 든 무진은 아내에게 물었다.
“다른 데 갈까?”
“그래요.”
맛이 좋긴 해도, 굳이 문제가 될 것 같은 장소에 있을 필욘 없었다. 청양현이 조용한 동네이긴 하지만, 식당과 객잔은 과연 사고를 불러오는 장소였다.
무진은 아내가 좋았다. 왜 그런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통했으니까.
입구에서 돌아서는데, 식탁에 앉은 사내 중 한 놈이 주제도 모르고 알은체를 해 왔다.
“이게 누구야? 못 본 사이에 많이 달라졌네. 아는 처지에 그냥 가면 섭섭하지.”
“……?”
기억에도 없는 종자가 왜 알은체를 할까? 돌아서서 상대를 봤는데, 갑자기 기분이 확 나빠졌다. 누군지 확 떠오르진 않아도, 좋지 않은 부류일 것이다.
휙!
몰라봐서 언짢아 할 수도 있으나 아내와 모처럼 나온 길이었다. 말썽을 부려 시간을 잡아먹고 싶진 않았다. 못 들은 척 돌아서 식당을 나왔다.
아내하고 함께하는 황금 같은 시간을 조금이라도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차후, 알은체를 한다면 그때 안면을 터도 그만, 아니어도 그만이었다. 살아 보면 느낄 거다. 친구 필요 없다. 내 가족이 훨씬 중요하다.
“근자에 쥐꼬리만 한 명성을 얻더니 감히 나를 무시하는 것이냐!”
무진이 아내와 함께 나가자 놈이 곧바로 따라 나왔다. 그러고서 한다는 소리가 굉장히 상투적이고 식상했다. 오래전에 알았던 병신이 이젠 자신을 무시한다는, 그런 느낌이 물씬 풍겼다. 명성을 운운했으니 백 중 백이었다.
‘예전엔 나도 병신이었지.’
인정한다.
그 병신과 안면을 텄다면, 저놈 역시도 병신이란 소리다. 여하튼 이쯤 되면 외면하기도 힘들다.
“거산방의 소방주 목악진이에요. 흑룡성으로 들어가 적혈대의 부대주가 되었다더니, 근자에 돌아온 모양이네요.”
“아, 그래.”
과연 아내의 안목과 기억력은 놀라웠다. 언제 봤는지 알 수 없지만, 상대의 신상 내력을 줄줄이 꿰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불쾌했던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또 처맞았네.’
-어떻게 된 과거가 맞고 다닌 것밖에 없냐.
마왕의 핀잔에도 무진은 반박하지 못했다. 사실인 걸 어떻게 해. 그 시절 술판을 벌이다 저놈과 사소한 다툼이 생긴 적이 있다. 그때 또 개망신을 당했었다.
물론, 당시엔 내 잘못이 컸다. 상대를 간파하지도 못하고 자기 분수도 모르고 나댔으니 처맞아도 싸지. 솔직히 죽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다.
살았으니, 이번엔 봐준다.
“오랜만이네. 어쩐 일이야. 여긴 거산방의 구역도 아닌데.”
“그러면 여기가 송호문의 구역이란 거냐.”
“약조된 거 아닌가. 서로 절반씩 나누어서 관리하기로.”
“모르는 척 도망치려던 놈이 말주변만 늘었구나.”
이거 시비 걸려고 작정하고 온 것 같다. 아니면 가는 사람 붙잡고 늘어지지 않았겠지. 더욱이 이 근방은 가문에서 관리를 하고 있었다. 여기까지 찾아와서 말꼬리를 물고 늘어진다면, 어차피 벗어나긴 요원한 일이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모르는 척했다고 시비 거는 거면 모양새가 이상하잖아.”
“그보다, 예전에 빌려줬던 술값이 꽤 많이 나왔더라고.”
“술값?”
“내 식탁에 얼굴을 박아서 술병이 깨졌지 않나. 모르는 척하지 마. 기억이 나는 편이 신상에 이로울 거야.”
당장도 아니고 수년 전에 있었던 사건이다.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술값을 받겠다고 부르다니, 웃기는 자식이었다.
“그래서 얼만데?”
“백 냥은 줘야겠지. 시간도 많이 흘렀고.”
은자로 백 냥이라면 감당 못 할 것도 아니지만, 당시 술값으로 계산해 봐도 두 냥을 넘지 않았다. 그간 이자가 붙었다 해도 날강도나 다름이 없었다.
“이봐요, 그게 어느 나라 셈법이죠?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겠다면 정식으로 거산방에 항의하겠어요!”
“계집이 나설 자리가 아닌데. 혹, 내가 맘에 드나?”
그 순간이었다.
무진은 빛살이 되었다.
커억!
누군가 목이 잡힌 채 바닥에 메다꽂혔다. 얼굴이 지면을 파고들어 몸만 덩그러니 남았다. 이어서 병신처럼 서 있던 세 사내의 안면이 팩팩 돌아가더니 세 방향으로 날아갔다.
쿠다다다당!
순간 벌어진 사태에 정적이 흘렀다.
“다시 말해 봐!”
얼굴이 땅에 박혔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