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193
192 가족 사기단(1)
가문의 명운이 걸린 비무의 승리로 전성기를 구가하게 되었다. 연을 맺고 싶어 하는 문파와 무인이 줄을 이었고, 안휘성과 강소성을 대표하는 상단과 계약을 맺었다.
이전과는 비교하지 못할 만큼 규모와 성세가 커졌다.
이젠 단양을 넘어 강소성의 중심 문파로 발돋움할 발판을 세웠다. 그뿐이랴, 가문의 무력도 몰라보게 일취월장했다. 비전 검법을 개량하여 한 차원 높아진 무력을 갖추었다.
일섬, 나락, 번천, 청화, 전광뢰, 구섬룡, 벽뢰신으로 이어지는 전광검은 이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렇다고 아예 다르다고 볼 순 없다. 조금 달라졌을 뿐이지만, 그 한 단계의 차이가 검의 완성도를 차원이 다른 영역으로 끌어올렸다.
분명 기뻐야 했다.
그러나 곽가장의 장주와 장로들은 입맛이 썼다. 규모와 무력이 안정적으로 늘어 가고 있었다. 이대로만 가면 강소성을 대표하는 가문으로서 이름을 떨칠 것이다.
그럼 뭐하냐고!
“언제까지 여물만 먹어야 하는 겁니까?”
“반찬 투정 부리지 마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매일 풀떼기만 먹고 어떻게 힘을 씁니까?”
“잘.”
잘, 이라니!
악마의 단어였다. 저 단어를 언급하자 장로들은 열병이 난 환자처럼 몸을 심하게 떨었다. 다시는 상기하고 싶지 않은 악몽이 떠올랐다. 여전히 매일 그날의 악몽이 찾아오는 꿈을 꾸고 있었다.
‘누군 고기 먹고 싶지 않냐고!’
가문으로 들어오는 돈이 상당했다. 이전과 비교하면 최소 열 배는 늘었다. 그럼에도 돈을 함부로 쓰지 않았다. 아니, 못 썼다고 봐야 정확할 것이다.
주위에선 변하지 않는 검소함에 칭송이 자자하지만, 매일 풀떼기만 먹은 곽철웅이 소태 씹은 얼굴로 투덜거렸다.
“어차피 벗어날 수도 없잖습니까.”
“벗어나고 말고의 문제가 아냐. 빚을 청산한 관계가 되어야 해. 언제까지 빚을 지고 살 거냐!”
“차분히 갚아 나가면 됩니다. 사업도 잘되고 있고요.”
“자그마치 십만 냥이다. 이걸 차분히 갚는다고 될 거 같아! 그리고 이자가 얼만지 알고서 하는 소리냐!”
무진의 그늘에서 벗어날 생각은 애당초 하지 않았다. 그건 말 그대로 불가능했다. 그날 하북팽가의 무인들을 한 호흡도 되기 전에 도륙한 광경은 죽는 날까지 잊히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지.’
곽철용은 무진의 강함을 떠올릴 때마다 짙은 의문을 표했다. 송호문에서 그와 같은 자가 나왔다는 것 자체가 비정상적이었다. 도저히 그냥 있을 수 없어 조사할수록 어처구니가 없는 존재였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적당히 개량했는데, 좀 더 개선의 여지가 있을 것 같기도 하네요.”
떠나기 전 무진이 던진 말이었다.
조금 개량된 전광검만으로도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성취를 올렸다. 개량된 검공을 봤을 때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무인으로서의 새로운 열망이 꿈틀거렸다.
“대체 왜 그러는 겁니까?”
“그가 떠나기 전 전광검에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했다.”
아!
장주의 말에 곽철웅과 장로들은 동시에 탄성을 터뜨렸다. 개량된 검공의 가치도 놀라웠거늘, 그 이상의 검공이 될 수 있다니, 격이 달랐다.
하찮은 무공이라도 손을 보려면 무공에 대한 깊이와 이해가 최소 일대종사급에 이르러야 한다. 하물며 최상승의 무공서를 창안하려면 최소 소림의 달마대사나 무당의 장삼풍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다.
“이래도 풀떼기만 먹는다고 투정할 것이냐!”
“고기 너무 많이 먹으며 살찝니다. 채소 많이 먹어야지요.”
절대종사의 경지에 이르면 탈속하여 세속의 재물엔 눈을 돌리지 않는다고 했다. 달마대사와 장삼풍이 금전에 목말라 한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는 일이니까.
그러나 무진은 달랐다.
약간 개량된 검공만으로 십만 냥을 뜯어 간 위인이었다. 여기서 더 진보된 검공이면 대체 얼마를 줘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최소 십만 냥은 기본으로 깔고.
이자를…… 허억!
상상만으로 다들 밥 먹다가 헛구역질을 하고 말았다. 토할 정도로 살인적인 액수였다. 가공할 이자율에 소름이 돋았다. 그렇다고 돈을 제때 주지 않으면 그 인간이 어찌 나올지 뻔히 예상이 되었다.
지금의 전성기가 최악의 암흑기가 될 수 있었다. 어쩌면 아예 흔적도 없이 사라질지도.
그 인간의 금전에 대한 탐욕은 겪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었다.
그래, 포기하고, 탐하지 않으면 더는 빚을 지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참 이상한 존재였다.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더는 빚을 지면 안 된다. 삶이 척박해지고, 피폐해진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한 번 단맛을 본 인간은 이성을 억누르기가 어렵다.
“미안하다.”
“썼군요.”
“너라면 어쩔 테냐?”
“별수 없겠죠.”
가문은 나날이 강해지고 있지만, 핵심 수뇌부들은 나날이 가난해지고 있었다.
그날 대륙전장에서 사람이 찾아왔다. 중년인은 이번에 단양에 세운 지부의 지부장이었다.
“어쩐 일인가?”
“강무진 특급 고객께서 곽가장의 이름을 대고 돈을 빌리셨습니다.”
“……?”
골이 지끈거렸다.
풀떼기지만 먹었던 점심이 역류하는 기분이다.
“얼마나?”
“천 냥입니다. 얘기가 되지 않았다면 물리셔도 됩니다. 대신, 내어 주시면 이 서신을 드리라고 했습니다.”
“……아닐세. 내어 주지.”
천 냥을 내어 주면서도 힘이 들어가는 곽철용이었다. 이대로 무진의 전낭 노릇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힘이 세시군요.”
크흠.
내어 줄 거면 시원하게 내어 주어야 하거늘. 사람이란 게 이렇게 간사하다. 무의식적으로 손에 힘이 들어가 체면을 구겼다. 간신히 마음을 추스르고 서신을 챙겼다.
서신을 펼쳐 본 곽철용은 혀를 내둘렀다.
허!
전광검의 일식, 일섬이었다.
이전보다 훨씬 개량된 검공임을 알 수 있었다. 특히 놀라운 점은, 전광검을 익히지 않고서는 성취를 가늠하기 어려웠다는 것.
-이만 냥입니다.
전광검은 총 칠초식으로 구성되었다.
일초식이 이만 냥이면 그다음 초식은 대체 얼마란 소린가? 초식은 후반으로 갈수록 위력도 달라졌다. 하물며 개량된 전광검은 연환결이 가미되었다. 하나가 아닌 다음의 초식과 이어져야 제 위력을 낸다.
“우린 망했다!”
“그러게요.”
애초에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다른 이들에게 말해 봤자, 배부른 투정에 지나지 않았다. 외부에서 보기엔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으니, 씨알도 안 먹힐 수밖에.
그야말로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았다. 다른 말로, 죽 쒀서 개 준 꼴이다.
***
쨍그랑.
그나마 남아 있는 접시가 바닥으로 떨어지며 볼품없이 깨졌다. 이를 말리던 여인도 접시처럼 바닥에 엎어졌다. 아픈 몸을 이끌고 며느리의 앞을 노인이 막아섰다.
“이놈들, 예가 어디라고! 썩 꺼지지 못하겠느냐!”
“노인네가 세상 물정을 모르시네.”
병든 노인이 엄포를 놓지만, 장정들의 발길질에 나가떨어졌다. 이어서 애들이 울면서 매달렸다. 사내들은 사정을 두지 않았다. 애들이건 노인이건.
“그러게, 돈을 제때 갚아야 할 거 아냐.”
“말미를 좀 주세요. 꼭 갚을게요!”
“그렇게 말하는 것들치고 제날짜에 갚는 놈들이 없더라고. 애들아, 뒤져!”
“이러지 마세요!”
장정들이 여인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가 방을 뒤졌다. 돈이 될 만한 게 있나 싶었지만, 예상대로 값나가는 것은 별로 없었다. 그나마 남아 있는 것은 붓과 벼루였다. 오래된 것이긴 한데, 이런 걸 탐내는 별종들이 종종 있었다.
“술값도 안 나오겠네.”
“그것만은 안 돼요! 제발!”
“놔라, 좋은 말 할 때.”
여인이 바지 끄덩이를 잡고 매달리자 귀찮아진 사내는 힘껏 밀쳤다. 여인은 별 저항도 못 하고 멀찍이 나가떨어지며 바닥을 굴렀다. 변변히 먹지도 못한 여인이 장정을 막아 세우긴 애초에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다시 일어서서 막고 있었다.
여인으로선 저 벼루와 붓을 지켜야 했다. 그것은 시아버지께서 남겨 준 유일한 유품으로 남편이 애지중지한 물건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그것만은 내어 줄 수 없었다.
“엄마한테 이러지 마, 이 나쁜 새끼들아!”
“먹물깨나 먹은 집안이라며. 애새끼들이 입이 거네. 바른 교육이 필요하겠어. 애들아, 밟아!”
“저희가 학자들을 많이 훈육했지요. 크크크크!”
장정들은 아이들에게도 무자비한 폭력을 서슴없이 휘둘렀다. 노인과 여인이 아이들을 지키려고 감싸느라 피투성이가 되어 갔다.
그때였다.
“이놈들, 멈추지 못할까!”
다 떨어진 문을 열고 들어선 사내가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그러자 사내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히죽였다.
“어이구, 우리 학사님께서 협객 나리의 얘기를 좋아하시나 봅니다. 이러다 우리 다 처맞고 나뒹구는 거 아닌지 몰라. 안 그러냐?”
“그렇습니다요, 형님. 저는 무서워서 오금이 다 저립니다. 크하하하하하!”
고함을 지르며 달려든 학사는 장정들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그러나 싸움을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학사가 뒷골목에서 구르고 구른 왈패들의 상대가 될 리 만무했다.
퍽!
그런데 맞았다.
무리의 중심인 사내는 터진 입술을 닦았다.
“주먹이 완전 쇳덩인가 봅니다. 형님이 피를 다 보고.”
“턱이 나간 거 같다. 이거 대체 얼마나 줘야 하냐?”
“전치 백 냥짜리 아닙니까.”
“백 냥은커녕 한 냥도 없겠다. 그러면 어쩌냐?”
“어쩌긴요, 몸으로 때워야지.”
“뭐해, 그럼! 밟아.”
마치 네가 먼저 때려서 어쩔 수 없이 팬다는 듯, 학사는 장정들의 노리개로 전락했다. 이를 악물며 달려들지만, 독기만으로 상대하기엔 이 썩은 바닥에서 구른 사내들에겐 턱도 없었다.
무인들에겐 그저 그런 왈패지만, 양민들에겐 저승사자보다 무서운 존재였다.
퍼퍼퍼퍼퍼퍽!
넘어지자 사내들은 가차 없이 학사를 밟았다.
커어억!
배를 맞은 학사는 헛바람을 토해내며 피거품을 뱉어내야 했다. 그로서는 안 된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와 아내, 자식들이 당하는 걸 보고 가만있을 수가 없었다. 냉철하다고 자평했지만, 한순간 눈이 뒤집혔었다.
“……이놈들, 황법이 무섭지도 않더……냐!”
“어이구, 우리 학사님께서 법을 그리 좋아하시는 분이셨어. 이거 어쩌나, 그렇게 법을 잘 알면 관아에 신고해. 애들아, 우리 곧 잡혀가게 생겼다.”
“이거 무서워서 발길질도 제대로 못 하겠네요. 어이쿠, 엇나가서 얼굴 맞았네.”
법을 거론해 봤자 고리대금업자들에겐 통하지 않았다. 이들만큼 법에 대해서 잘 아는 자들도 드물었다. 고리대금이 원래 관의 협조 없이는 해 먹기 힘든 장사였다.
유착 관계가 있는 그들에게 학사의 협박 따위가 통할 리 만무했다.
“법 좋아하시면 빨리 이자나 갚으세요, 이 새끼야. 자기 식구들 하나 챙기지 못하는 비루먹은 개새끼가 먹물 좀 먹었다고 지랄하지 말고.”
“이런 놈들이 꼭 자기 주제를 모르고 체면을 따지더라고요!”
낙방한 학사는 저들의 조롱에도 대꾸하지 못했다. 처참하게 짓밟혀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것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상처는 저들의 말이 틀리지 않는다는 것에 있었다.
‘다…… 내 잘못이다.’
가족 하나 건사하지 못하는 놈이 무슨 나라를 올바르게 다스리겠는가. 처음부터 자신에겐 맞지 않았던 일이다. 하늘이 자신의 주제를 알라고 내려 준 시련이었다.
크윽!
그는 소리 죽여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