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207
206 왜 안 물어봐(1)
“넌 비밀 병기다.”
“제가요?”
“그래, 완숙한 경지에 이를 때까지 진신을 내보이지 마.”
“그래서 하는 말씀인데, 폐관 수련을 해도 될까요?”
“네 쓰임이 작지 않지만, 허락하지.”
“감사합니다, 주군.”
“단, 성과 없으면 뒈진다.”
“옙!”
상전에서 쓰임새 다하고, 집 안에 뚫리지 않는 금고를 완성한 후 무공 연마에 전력을 기울였다. 대륙 지도를 꿰고 있는 나에게 폐관 수련을 할 장소는 얼마든지 있었다. 안가를 비롯한 숨어 지낼 공간을 구주 곳곳에 지어 놓았으니까.
비밀 장소 중 정기가 가장 충만한 장소를 찾았다. 안휘성 내에 있는 융산으로 후일 신공을 얻으면 여기서 수련하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래서 고이고이 숨겨 두고 있던 수련 장소였다.
융산의 중턱에 자리를 잡은 후 하늘의 무를 완성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스승을 따로 구하진 않아도 되었다. 머릿속에 남아 있는 천무의 흔적이 무공의 길을 알려 주었다. 내 몸을 타인에게 빼앗긴 혜택이었다.
이미 지나가 본 길이라서 그런가.
무공의 적합도가 높았다. 마치 내가 가야 할 길을 알려 주듯, 무의 깊이가 쑥쑥 늘어 갔다. 나이가 들어 새로운 무공을 익힐 때가 지난 줄 알았거늘, 놀라우리만치 일취월장했다.
공청석유의 효능으로 탁기를 배출해 내력의 흐름과 순환이 몰라보게 좋아졌다. 공력이 일정 수준에 이르렀을 때 벽을 넘어 육체에 변화를 일으켰다.
천무진경이 칠성에 올라선 것이다. 실로 믿어지지 않는 성취였다. 내가 이렇게나 빼어난 자질을 갖추었나 의심이 들었다.
‘주군께선 내 자질을 꿰뚫어 보고?’
잡혀서 개고생만 하는 줄 알았다. 금제만 없었다면 언제나 도망가려고 발버둥을 쳤다. 나는 주군의 혜안과 믿음에 살짝 감동했다.
‘그래도 굳이 돌아갈 필요가…… 헉!’
-요새 조용했지?
‘실수야.’
-크크크크!
금제는 실수 따윈 구별하지도, 용납하지도 않았다.
잠깐, 나도 약하지 않잖아. 경지에 오른 천무진경으로 어떻게든 해 보면 되지 않을까?
쿠웨웨웨웩!
되기는 개뿔!
천무자가 되살아나도 주군에겐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다. 강시가 된 채로 주군에게 처맞던 광경을 잊어선 안 되었다.
뚜득, 뚜득!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다고 했던가. 혈맥이 끊어지는 고통과 뼈가 어긋나는 기괴한 골음이 뇌리를 강타했다.
털썩!
다시 상기한 금제의 고통은 예전보다 진일보하여 배신은 꿈도 못 꾸게 해 주었다. 이 금제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체감했다.
한편으로 주군이 자신을 잊지 않고 있다는 의미가 되었다. 그걸 위안으로 삼아야 하는 처지가 궁색하게 느껴졌다.
자리를 털고 일어난 나는 운기조식을 하여 몸 상태를 점검했다. 찢어지고 부서지는 극심한 고통에도 육체의 상태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추궁과혈을 받은 것처럼 상쾌했다.
‘지랄맞네.’
-나?
‘아냐!’
-크크크크!
이 미친.
주인이 심어 놓은 금제다웠다.
쿠웨웨웩!
한바탕 몸부림을 치고 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다시는 쓸데없는 잡념은 떠올리지 않기로 다짐했다. 이 고통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복장을 정비하고 융산을 내려가기로 했다. 미련은 두지 않았다.
쌔애애액!
경공을 발휘하자 신형은 섬광이 되었다.
나조차 깜짝 놀랄 속도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게 과연 내 다리가 맞나? 백만 냥짜리 다리가 되었다.
원체 신법에 관해서는 자신이 있었다. 천무자의 천섬보는 날개를 달아 주었다. 부신약영(浮身掠影)이라고 했던가, 발을 땅에 대지도 않는데 쭉쭉! 뻗어 나갔다. 이뿐이 아니다. 한참을 내달려도 호흡이 달리지 않았다. 체력과 내력이 일취월장을 넘어섰다. 이젠 내가 생각해도 강자의 반열에 올라선 것이다.
‘난 이제 천면호리가 아니라고!’
주군에게 한시라도 빨리 성취를 보여 주고 싶었다. 다른 녀석들이 강해질 때 솔직히 배알이 꼴렸었다.
송호문이 보였다.
그는 정문에 선 자를 향해 걸어갔다.
“이봐.”
“누구?”
아차!
기쁜 나머지 얼굴을 바꾸지 않았다. 나릉은 급히 되돌아가서 얼굴과 복장을 바꾼 후 돌아왔다.
“자네 대체 어딜 갔다가 이제 온 거야?”
“일이 있었어.”
“아까 별 미친놈이 알은체를 해서 얼마나 놀랐다고.”
“살다 보면 겪을 일이지.”
이제야 집에 들어온 느낌이다.
한데, 주군이 집에 없었다. 돌아오면 막중한 임무를 주겠다고 했는데, 여전히 집안의 하인 상태였다.
‘설마 나 잊은 건 아니지?’
***
“이 일대가 분명합니다. 조만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그 말은 며칠 전에도 들을 것 같은데.”
“……송구합니다.”
“흠, 골치 아프게 하는군.”
사막에서 특이한 계집이 설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당시에는 대단하게 여기지 않았다. 소문이란 늘 과장이 보태져서 왜곡되곤 하니까. 하지만 계집이 뿌리고 다니는 소문의 실체는 마음에 걸렸다.
‘이 서늘한 기운, 보통의 빙공으론 어림도 없다.’
작열하는 태양이 뜨겁게 달구어 놓은 모래는 불덩어리나 다름이 없다. 밤이 되면 식어 버리는 열기지만, 대낮의 열기는 어지간해선 식지 않는다.
그런데 반경 오십 장에 달하는 범위가 얼어 버렸다.
빙공이 극한에 이른다면 모를까, 계집의 정신 상태가 정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무언가를 먹어서 잘못되었거나, 빙공을 수련하다 주화입마가 왔을 수도 있었다.
‘빙정일까?’
추론일 뿐, 사내로선 감을 잡지 못했었다. 단순히 소문만 듣고 움직이지는 않았다.
시험 삼아 넷째를 선동해 계집을 사로잡으려고 했다. 계집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녀석이라 부채질은 어렵지 않았다. 하물며 마녀라 불리긴 해도 미녀였다.
“내가 미친년 잡는 데는 도가 텄지. 특히 내 아랫도리를 맛본 년은 다른 쪽으로 미치거든. 재미 좀 볼 때 같이 할래? 내가 꽤 의리가 있다고. 크크크크!”
자신만만해하는 넷째는 그길로 떠났다. 얼마 뒤 넷째는 상하체가 분리되어 싸늘한 시체가 되었다. 비록 아둔한 놈이기는 해도, 무공만 따지면 약하지 않은 녀석이다. 그런데도 당했다면 마녀라 불릴 만했다.
넷째의 죽음으로 처지가 곤란해졌다. 내키지 않지만, 궁주에게 마녀를 잡아 오겠다고 했으니 나서야 했다.
호언장담을 한 이상, 반드시 사로잡거나 시체라도 가져와야 했다. 처음엔 순조로웠다. 그런데 다 와서 계획이 꼬이고 있었다. 계집의 빙공이 가늠한 경지보다 강한 데다가 정확한 위치를 찾기가 어려웠다.
‘정신은 나갔어도 감각은 살아 있다 이건가.’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는 무인의 감각이었다. 생존 본능이 위험을 알아차렸다고 봐야 했다. 온전했다면 더 골치가 아팠을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건 좀 이상한데. 놓치고 있는 것이 있나?’
계집의 이동 동선을 찾아보니 외지인이 분명했다. 사막에 익숙지 않은 자가 대사막에서 태어난 전사들의 눈을 피해 도망칠 수 있을까? 상식적으론 불가능했다.
그런데도 몇 번이나 허탕을 치고 말았다.
‘좋다, 누가 이기나 해 보자!’
방법을 달리하기로 했다. 계집을 찾기 위해 일정 부분 희생을 감수하기로.
‘먹잇감을 던져 주지.’
물론, 하나를 내어 줬으니 두 개는 얻어야 했다. 사전에 바람쟁이에게 연락을 넣어 놓았다.
그는 손해 보는 걸 극도로 혐오했다.
***
“확실히 양고기보다는 말고기가 훨씬 낫다. 소고기보단 못해도.”
“저희 입맛에도 말고기가 나은 것 같습니다.”
양고기만 먹었더니 입에서 양 노린내가 나는 것 같아 질겁하는 육칠과 철호였다. 향신료를 뿌리면 그것대로 향이 짙어서 곤혹이었다.
“너희들도 봤다시피, 난 진성 평화주의자야. 절대 먼저는 안 건드려.”
“아무렴요, 저희는 항상 강 대협을 믿고 있었답니다.”
잡것들이 주제를 모르고 죽인다, 만다, 개소리를 지껄이는데 그냥 둘 수는 없잖아.
내 목숨이 자기들 것도 아니고.
과신이 지나친 놈들에게 하늘 밖에 하늘이 있음을 알려 준 후 남은 물건들을 박박 긁었다. 특히 놈들이 타고 온 말의 일부를 도축해 식량으로 삼았다.
현지인이야 양고기에 익숙해서 입맛에 맞을지 몰라도, 무진은 여전히 적응을 못 하고 있었다. 생존을 위해서라면 양고기가 아니라 벌레도 잡아먹겠지만. 다른 먹을 것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면, 굳이 입에 맞지도 않는 음식을 먹을 필요는 없지.
-결국, 말고기 때문에 도륙했군.
‘그래, 나 그런 놈이다.’
말고기가 탐나서 죽이면 어때서?
무진은 담담했다. 자기들이 황제라도 되는 양 으스대는 놈들에겐 걸맞은 최후였다. 염라대왕 앞에 가서 꼭 말 때문에 죽었다는 판결을 받길 바란다.
이런 걸 두고 말죽음이라고 하지, 아마.
개죽음보단 낫다고 봐야 하나? 육칠과 철호에게 진지하게 고민해 보고 내가 원하는 답을 내라고 했다. 자고로 답이란 항상 주관적인 법. 항시 내 뜻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보다, 길은 잘 외우고 있는 거지?’
-나 같은 고급 인력을 감히 길잡이로 쓰겠다는 것이냐!
‘그래서 사막에서 헤매자고?’
-이젠 외울 생각도 안 하는군.
‘각자 잘하는 거 하자는 거잖아. 제발 투덜거리지 좀 마라. 마왕답지 않게 혓바닥이 왜 이렇게 길어.’
길잡이로 고용한 막호와는 근처까지만 가기로 약속했다. 막호가 먼저 약속을 깨지 않는 이상, 무진은 지켜 줄 예정이다.
도중에 의도치 않게 휘말린다면 불가항력이긴 하나, 금 열 냥은 불특정의 돌발적인 상황에 대해서도 고려한 액수였다. 모래를 파 봐라, 검은 물밖에 더 나오나. 황금은 나오지 않는다.
이동하고, 쉬고.
한참 선두에 서서 가던 막호가 멈춰 섰다.
“쉴 시간이냐?”
“그렇습니다.”
“이제 얼마나 남았어?”
“오일 안에 도착할 겁니다.”
숨통을 막히게 하는 사막의 열기가 식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근처에 나무 그늘이 있었다. 그곳에서 쉬기로 했다.
원래 간단히 쉬었다 갈 거면 게르나 천막을 치진 않는다. 정 더위를 피할 공간이 없다면 또 모를까.
그런데 무진은 항상 간이 게르를 치라고 했다.
“뭐해, 어서 빙공 꺼내지 않고.”
“……알았어요.”
간이 게르에 들어가면 북궁혜는 자세를 잡고 앉아 빙공을 운용했다. 외부로 냉기를 발산해 게르 내부를 식히는 작업이었다.
솨아아!
서늘한 기운이 게르 안을 감돌자 찌는 듯한 열기가 가라앉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게르 안은 차가워지지만, 북궁혜의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순간적으로 강력한 냉기를 발산하는 것과 달리, 냉기를 은은하게 조절하는 쪽이 훨씬 힘겨웠다.
그뿐이랴, 최소 두 시진 이상은 빙백수라신공을 틀어 놓고 있었다. 진기의 운용이 시간이 지날수록 누적되어 내력의 고갈이 급속도로 누진되었다. 빠져나가는 내공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천막 꽉 닫아, 냉기 빠지잖아.”
“예, 사부님.”
“낭비 좀 하지 마라. 얘도 고생이잖아.”
“알겠습니다.”
빙백수라신공에 전념하는 중 북궁혜는 진기의 흐름이 흔들릴 뻔했다. 고양이가 쥐의 백년해로를 걱정해 주는 것도 아니고.
‘이 작자는 대체 뭐냐고!’
북해의 직계에게만 전수되는 빙백수라신공의 가치를 안다면 이런 식으로 사용해선 안 되었다. 더위를 식히기 위해서 빙백수라신공을 필사적으로 운용하고 있다는 걸 조상님들이 안다면, 무덤가에서 들고일어날 일이었다.
‘안 되는데, 말 못 하겠다고!’
북궁혜는 설중양과 북풍대가 전멸당한 그날을 여전히 잊지 못했다. 눈으로 보고도 믿어지지 않는 광경이었다. 북풍대는 궁의 주력 중 하나였다. 하물며 설중양은 아버지도 인정한 북해 최고수에 꼽혔다.
‘배신자이긴 해도 설중양은 강한데!’
기습이고 뭐고, 그딴 건 중요하지 않았다. 북해의 율법은 살아남은 자를 강자로 취급했다. 스스로 강자임을 인정받고 싶으면,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그것이 북해를 지탱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기습한다고 당할 사람도 아니잖아.’
그럼 자신은 뭐가 되냐고! 예측된 범위 내에서 행동한 장기짝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걸 빼놓고서라도, 그날 보여 준 허공섭물과 삼매진화는 평생을 가도 잊히지 않을 진풍경이었다. 그게 인간이 할 수 있는 짓일까.
‘전성기의 아버지라면?’
그녀는 완강히 부정하지 못했다. 아닐 거란 믿음은 있지만, 상대는 땀 한 방울조차 흘리지 않는 괴물이었다. 그처럼 막대한 내력을 쓰면 호흡의 떨림이라도 있어야 정상이다.
이 인간은 식후 간식거리처럼 후딱 해치워 버렸다. 북풍대는 도축장에 끌려간 가축들과 다르지 않았다. 도살자 앞에서 가축 주제에 죽인다, 만다 했으니 비웃음은 당연했다. 얼마나 같잖게 느껴졌을까?
같은 북해인으로서 부끄럽기까지 했다.
“야.”
“……?”
“죽을래?”
느닷없는 사망 선고에 정신이 번쩍 든 북궁혜는 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왜 그러시는데요?”
“냉기가 약하잖아.”
아~~~!
냉기 조절 똑바로 하라는 타박에 북궁혜는 빙백수라신공을 좀 더 세밀하게 조절하여 끌어 올렸다.
너무 세도 이 인간은 가만두지 않았다. 잠시 한눈팔았다가 딱밤을 맞고 사경을 헤맬 뻔했었다. 처음에는 딱밤인 줄도 몰랐다. 극성의 탄지공에 두개골이 뚫린 줄 알았다.
‘하아, 내 처지가 이게 뭐야!’
빙공을 더위나 식히기 위해 펼쳐야 하는 현실에 북궁혜는 깊은 자괴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짜증 나는 현실은 따로 있었다.
‘너무하잖아. 더위도 안 타는 인간이!’
저 인간은 한서불침이 분명했다. 더위를 전혀 타지 않는다. 달구어진 사막을 걷는데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 그런 인간이 더위 탄다고 개지랄을 떠니 억장이 무너졌다.
“무공이란 게 정말 편하군요.”
“너도 익혀 보려고?”
“그럴 기회가 있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무진과 막호의 시답지 않은 대화가 이어질수록 북궁혜는 혈압이 치솟았다. 자신은 마지막 남은 기력까지 쥐어짜며 내력을 운용하고 있는데, 누군 한가롭기 짝이 없었다. 세상 참 불공평했다.
“가족은?”
“저 같은 길잡이하고 가정을 꾸리고 싶어 하는 여인이 있겠습니까. 좋아하던 여자들도 얼마 버티지 못하고 떠나더군요.”
“하긴 돈이 중요하지. 세상에 돈보다 중요한 건 별로 없거든.”
“아무렴요. 저는 그렇다 치고, 손님은 어떠십니까?”
“나야 평범하지. 천상의 선녀 같은 마누라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귀여운 딸내미, 그리고 그냥 아들이 있거든.”
“아, 부럽습니다.”
평범하긴 누가?
일반적인 가정의 가장인 듯 진솔한 척 지랄하고 있었다. 이 안의 막호만 빼고 누구도 무진을 평범한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
평범한 가장이 허공섭물과 삼매진화를 생리현상처럼 사용하진 않잖아. 그런 사람이 평범하면, 이 세상에 특별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