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4
004 이럴 줄은 몰랐지(3)
“좋아요, 더 때려 주세요!”
“……?”
헛소리가, 잘 못 들었겠지.
상식적으로 내 아들은 심지가 굳지 않다. 인질로 잡히면 가장 먼저 배신할 놈이다.
“강하게, 강하게, 강하게요!”
“……?”
아버지의 온기가 담긴 사랑의 매다.
얼마나 그리웠던지.
아, 달달하다.
무진에게 아버지의 매질은 훈훈한 사랑의 과실이었다. 전장에서 무수히 많은 칼침에도 무덤덤했건만. 아버지의 매질은 감동 그 자체였다.
울컥했다.
‘이놈이 진짜로 미쳤나?’
실성하지 않고서야.
한 대로는 부족하더냐?
강우경은 아들의 생경함에 살짝 두려움이 생겼다. 도가 지나치면 아내가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쯤에서 물러서자니, 아비로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오냐.
그리 소원한다면 들어주마.
빠악, 빠악!
좋아요! 더! 더! 더!
남편과 아들의 뜻하지 않은 열의를 이선미는 망연히 지켜봐야 했다. 풍경이 훈훈하기는 한데, 절대 보고 싶지 않은 괴상한 부조화를 이루었다. 아비는 사력을 다하고 있거늘, 아들은 아파하기는커녕 오히려 좋아죽었다.
스무 대나 때렸다.
강우경에겐 용량 과다였다. 아들의 엉덩이가 멀쩡하지 않을 것 같아 내심 걱정이 되었다. 곤장 열 대만 맞아도 평범한 사람은 장독(杖毒)에 걸려 사경을 헤매다 죽을 수도 있었다.
“이제 네 죄를 알렸다!”
“알기는 요, 아직 멀었습니다! 그러니 더 때려 주세요! 이 못난 아들이 아버지를 번번이 실망시켜 드렸어요! 다시는 그런 일 없도록 제대로 때려 주세요!”
“……?”
왜 말이 그렇게 올바르게 나오고 그러냐?
너 내 아들 맞아?
그렇다고 매질을 멈추려 하니, 아들이 소원이란다. 어째 그동안 아들을 잘 못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그렇다고 기세에서 밀릴 수는 없는 노릇.
그간 봐온 아들은 꼼수의 달인이었다. 이런 식으로 한 번 강하게 나가면 나중에는 손을 쓰지 않을 거란 계산이 밑바닥에 깔려 있을 수도 있었다.
아들의 개수작에 넘어갈 순 없지.
마음은 아프지만 강우경은 매질을 멈추지 않았다.
그럴수록 무진은 오랜만에 맞아본 아버지의 매질에 대한 그리움을 만끽했다.
부자간의 정은 확실히 육체의 대화 속에서 피어나는 모양이다. 같이 목욕하며 등을 밀어줄 때, 부자의 정을 만끽할 수 있는 것처럼.
‘중독될 거 같다!’
양귀비를 다량 흡입한 듯, 마약은 멀리 있지 않았다.
매질이 이렇게나 달달했나?
고통이 쌓일수록 아버지의 정을 맘껏 느끼고, 또 느꼈다. 마치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흥얼, 흥얼!
나도 모르게 흥에 젖어 노랫가락이 나왔다. 어딘지 모르지만, 청산리엔 미녀가 있을 거다.
빠아악!
팟!
지켜보던 이선미가 화들짝 놀랐다.
“여보, 피나욧!”
“어…… 이런!”
무진의 엉덩이가 선혈로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피가 날 때까지도 좋다고 맞은 것이다.
‘이 정도쯤이야.’
시산혈해의 지옥 속에서 살았었다.
엉덩이에서 피 나는 것쯤은, 침 바르면 금방 낫는다. 피 좀 났다고 엄살떠는 놈이 있으면 척추를 접어서 등과 엉덩이가 만나는 기적을 선사해 주었다.
하물며 전장의 사신이라고 불린 전왕이다. 온몸에 피 칠갑을 하고서도 껄껄껄! 호탕하게 웃으면서 마인들을 씹어 주셨다. 금덩이 빼고 다 씹은 적은 없지만.
“……이 미련한 놈아! 아프면 아프다고 해야지! 피가 날 때까지 맞고 있어!”
“당신이 조절했어야지! 내 아들 어쩔 거야!”
“아니 그게. 내 아들도 되는데.”
“금쪽같은 내 아들 엉덩이에서 피나잖아!”
평소에는 이선미가 져 주지만, 실제로는 송호문의 실세였다. 열 받으면 강우경도 얄짤없다. 그땐 되도록 말 걸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아들이 엇나가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봐도 과하지 않았다.
“어머니 저 괜찮아요. 전, 얼마든지 참을 수 있어요. 아버지도 걱정하지 마시고, 어서 더 때려 주세요!”
“……오지마 새꺄! 아차!”
“여봇!”
이쯤 되니 무섭다.
강우경도 허세로만 치부하지 않았다. 피가 바닥으로 질질 흐르고 있는데도 아들은 처웃고 있었다. 얼마든지 때려달라는 자신만만한 얼굴이 섬뜩했다.
“때리기만 해욧, 각방 쓸 줄 알아요!”
“아니, 그게 난……!”
아들은 때려달라고 사정하고, 아내는 때리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하고.
망할, 왜 이렇게 된 거야?
강우경은 가장의 권위가 무너지는 와중에도 갈팡질팡했다. 피가 나는 아들의 엉덩이를 더 때릴 자신도 없었다. 적당히 석 대 정도만 맞고 엄살을 피워줬으면 하는 바람인데, 맞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이 녀석이 이런 식으로 아빌 엿 먹여!’
아들이 선 자리에 피 웅덩이가 생겼다. 자칫 과다출혈로 사망하면 패륜 범죄가 되어 버린다.
“그만했으면 됐다. 다시는 그러지 말거라.”
“아버지~~~! 제가 정말 잘 못 했습니다!”
“……다가오진 말고!”
“전 괜찮다니까요.”
일어서자 엉덩이에서 나온 피가 다리로 흘러내려 와 적시고 있었다. 그런데도 해맑게 웃으며 다가오니, 강우경은 재차 뒷걸음을 치고 말았다.
뭘 잘못 먹어도 한참 잘못 먹지 않고서야.
그렇다 치고.
나한테 왜 이러는 것이냐?
어서 과거의 내 아들로 돌아…… 아니고, 어쨌든 돌아…… 에잇 꺼져라!
“무진아, 피 나잖아. 치료해야지.”
“어머니, 피 조금 난다고 죽지 않아요. 사지가 잘린 것도, 내장이 튀어나온 것도, 대가리 터져 뇌수가 흐른 것도 아니잖아요.”
“……!”
전장에서 사지 잘리는 것쯤은 일도 아니다. 팔 하나 잘렸다고 해서 끝나는 문제인가, 살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사용해야 한다. 잘린 팔을 집어 던지는 일은 빈번하고, 다리가 잘리고도 아등바등 붙잡고 늘어졌다.
대가리가 박살이 나고서야 죽음에 이를 수 있었다. 치열한 전장에선 삶보다 죽음이 훨씬 평안하게 다가왔다. 시신을 치워야 하는 동료들의 심정을 상기하면.
평소대로라는, 대수롭지 않은 무진의 해맑음이었다.
이선미는 정신이 붕괴할 뻔했다. 아들이 너무 많이 맞아서, 아예 맛이 가 버리지 않고서는 하기 힘들었다.
“여봇!”
“왜, 또 나야!”
강우경은 한동안 극성맞은 아내를 맞이해야 하는 현실에 억울했다. 그저 아들이 정신 차리고 살라고 훈계를 했을 뿐이다. 이런 식으로 책임을 전가하다니, 남편으로서 심히 유감스러웠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혼을 좀 내라고 닦달했으면서.
그런데 화근의 원흉이.
우헤헤헤헤!
속도 없이 웃고 있다.
“두 분은 여전히 사이가 좋으시네요!”
저게 아들이야, 철천지 웬수야?
부부싸움도 살아 있어야 할 수 있다. 죽어 버리면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다. 아버지, 어머니의 무탈함에 무진은 마냥 흐뭇했다.
‘젊으시네요.’
회귀 전의 자신보다 어린 아버지와 어머니였다. 부디 만수무강하시기를 바란다. 이제 다시는 속을 썩이는 짓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 어머니의 바람대로 말썽부리지 않고 살아가기로 맹세했다.
“아버지, 어머니! 형이 또……?”
주춤!
내원으로 강무호가 들어왔다.
형이 사고를 쳤다기에 곤란한 부모님을 위로하려고 왔거늘, 엉덩이를 피 칠갑한 형이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뭔 상황이래?
게다가 웃는다.
움찔!
일체의 동요 없이 언제나 냉철한 검을 뿌린다고 하여 무정검(無情劍)으로 불리는 강무호였다. 아버지의 기대가 큰, 장래의 송호문 제일 검이기도 하다.
‘그런 녀석이……!’
동생은 재능을 갖추었다. 이때의 나와는 차원이 다르다. 타고난 자질만 놓고 보면 명문정파의 후기지수보다 뛰어났다. 그러나 송호문은 동생의 재능을 만개할 그릇을 갖추지 못했다.
제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지녀도 배경이 받쳐 주지 못하면, 서글픈 인생이 되어 버린다. 무너져 가는 가문을 일으켜 세우려다가 결국에는…… 차마 상상하기도 싫은 결과였다.
다시는 그런 일 당하게 두지 않는다.
“무호야!”
“…….”
무호는 당황스러웠다.
바닥에 피를 질질 흘리면서도 밝은 얼굴로 다가오는 형이 낯설다 못해 무섭기까지 했다. 당황한 무호는 아버지처럼 무장해제당한 채, 목석이 되고 말았다.
와락!
하필 강렬하게 끌어안았다.
“보고 싶었다.”
“……?”
***
무진은 아내와의 보금자리, 침대에 배를 깔고 누웠다. 아버지, 어머니, 동생을 다시 볼 수 있어 행복하다. 이런 복에 겨운 시절이 다시 오리라고는, 이젠 꽃길만 걷게 해드릴 것이다. 확실히 사람은 다시 태어나야 효자가 되는 것 같다.
헤벌쭉 얼굴에 미소가 그려졌다.
그에 반해 유진의 고운 미간에는 내천(川)자가 진하게 그려져 있었다.
“당신, 지금 웃음이 나와요?”
“좋은 날 왜 그래?”
“아버님도 무심하시지, 당신 엉덩이가 이게 뭐예요.”
“내가 잘못한 거야.”
“그래도요, 흉터 생기잖아요. 호오오, 호오오. 아파요?”
“아프긴, 간지럽네.”
천하의 전왕이 엉덩이를 깐 채 누워있었다. 아내는 엉덩이에 약을 바르며 호호, 불어 주었다.
“당신 엉덩이가 얼마나 예뻤는데. 이렇게 막 다루기에요. 그리고 이 엉덩이는 내 소유물이잖아요.”
“말이 좀 이상하잖아.”
“뭐가요?”
“크흠, 내 어디가 그렇게 좋았던 거야?”
“몰랐어요? 당신은 날 구해준 왕자님이에요. 전 왕자님하고 결혼한 행복한 사람이고요.”
내가 언제?
기억이 안 난다. 구해준 적이나 있었나? 다른 사람하고 착각하는 게 아닌가 했다.
어떤 새끼가!
날 닮았나?
나중에 만나면 죽이진 않으마.
남편은 잊었을지 몰라도, 유진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철모르던 8살, 무작정 아버지를 따라나섰다가 위기에 빠진 소녀를 구해준 소년이 현재의 남편이라는 것을.
그 인연으로 혼례를 올리게 되었다.
‘진짜, 내가 미친놈이지.’
아내는 현모양처의 표본과 같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믿어주고, 응원을 해주었다. 하지만 그때는 나를 조롱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복에 겨워서 제 손으로 밥상을 걷어찼네.’
이 좋은 사람을 놔두고, 어떤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뻘짓을 했는지 모르겠다. 지나고 나면 다 부질없는 허상에 지나지 않은 것을.
그나저나.
“나 언제까지 까고 있어야 해.”
“상처가 나으려면 통풍이 잘되어야 해요.”
“괜찮아, 약 바르고 붕대 감았잖아.”
“그래도 상처 덧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고요.”
아내를 바라보고 있자니, 나 스스로 주체하지 못할 만큼 감정이 격정적으로 끓어올랐다. 더는 두고 볼 수가 없다. 무의식과 의식의 사이를 건너뛴 채 그녀를 잡아끌었다.
투득!
엉덩이에서 피가 흐른다.
하나, 전왕은 괘념치 않았다.
피쯤이야.
사랑하는데.
한참의 열락이 지나고, 본문의 일로 아내는 서둘러 방을 나갔다. 무진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다시는 주어지지 않을 기연이다.
이대로만 살아간다면 더할 나위 없다. 괜한 짓은 한 번으로 족했다.
한편으로 어떻게 돌아왔을까? 마음이 정리되자 의문이 들었다. 회귀란 게 간절한 마음만으로 된다면, 돌아오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응?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묘한 위화감.
내 안에서 이질감이 느껴졌다. 기척이 사라지려고 하자, 내부를 관조했다.
본질을 읽어나가기가 무섭게.
-좋았나?
‘뭐?’
머릿속에서 말을 걸어왔다.
내가 미치지 않고서야?
작금의 상황이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되기는 해도. 정신착란이나 분열을 일으킬 만큼 나약해지진 않았다. 전왕공을 훈련하지 않았다고 해도, 단련된 영혼은 현실을 날카롭게 직시했다.
‘어디서 들어본?’
목소리가 낯이 익었다.
처음 들어보는 말투가 아님을 깨달았다. 꽤나 끈질긴, 악연을 상기시켰다. 점차 기억의 끝을 따라 회귀의 시발점으로 향했다. 어느 순간 연상되었다.
‘너?’
-잊지 않았군.
마왕 장천경.
무진은 인상을 찌푸렸다. 과거로 돌아왔다는 사실에 취해, 의식에 자리한 마왕을 인지하지도 못한 것이다.
이는 마치 주인은 세를 주지 않았음에도 무단으로 점거한 몰상식한 행동이었다.
주인의 언성이 거칠어지는 건 인지상정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처맞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이게 지금 뭐 하자는 거냐?’
-나도 영문을 모르겠다.
‘모르면 끝나냐?’
-어쨌든 소원 들어줬잖아.
와, 뻔뻔한 거 보소.
남의 의식 속에 숨어들어 정신 분열을 일으키고 있는 주제에. 과거로 돌아왔으니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자기합리화를 해버리네. 마왕다운 교묘한 화술이었다.
하나, 개수작에 넘어갈 전왕이 아니시다.
‘네가 모르면 또 누가 알아?’
-나도 이럴 줄은 몰랐다니까!
‘그럼 꺼져 새끼야!’
-나보고 자살하라고, 내가 왜? 그리 억울하면 죽여 보든가.
‘이게 보자 보자 하니까!’
-보자는 사람 어디 갔나? 내 목을 쳐라.
목도 없는 새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