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504
503 전력 강화(2)
온실 속의 화초들에게는 지금과 같은 극약처방의 고육지계가 필요했다.
-그러다 망가지면?
‘거기가 한계겠지. 너는 아니냐?’
-모처럼 맞는 말을 하는군.
‘칼밥 먹고 살려면 그 정도의 각오는 필요하지.’
-그래서 무림이 마신교에 휩쓸렸지.
무진과 마왕은 다른 건 몰라도 무인으로서의 기본을 누구보다 충실하게 지켰다. 그래야만 무림에서 살아남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것을 무시한 자는 무림에서 살아남을 수도 없을뿐더러, 그럴 자격도 없었다.
-여하튼 잔머리 하나는 일품이구나.
‘님도 보고 뽕도 따는 거지.’
사대천주의 썩어 빠진 정신을 개조하고, 아들과 제자들에게는 절대경의 고수와 싸우는 법을 체득할 시간을 주었다. 서로의 역량이 비슷했기에 효과는 배가 되었다. 지나치게 압도적이거나 격차가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성과를 얻기는 힘들었다.
“거길 차다니!”
“눈을 찔러?”
“지옥에나 가 버렷!”
“뒈져라!”
거칠어지는 흉흉한 분위기에 무진은 흡족했다. 자고로 전투란 살벌하고 비겁한 맛이 있어야 한다. 정해진 대로 전투를 해선 절대 실력이 늘지 않는다. 예상치 못한 살수에도 능수능란하게 반응해야 했다.
“왔어?”
“이게 다 뭐하는 짓이에요?”
“보면 몰라?”
“저러다 죽으면요?”
“안 죽어.”
강예와 기희선은 그제야 태진, 철호, 산호가 강한 이유를 깨달았다. 사부란 작자의 행태가 상리를 벗어나도 한참을 벗어났다. 야생에 맨몸으로 던져 놓고 알아서 살아남으란 식이었다. 살아남으려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했다.
‘저러니 강해질 수밖에.’
‘강해지지 않으면 죽겠네요!’
그녀들은 절대 무진과 친해지지 않기로 다짐했다. 수틀리면 뭔 짓을 할지 도무지 예측이 되지 않는 자들이었다. 가까이해서도, 상종해서도 안 되었다. 그것이 안락한 삶의 지혜였다.
꽈아앙, 쩌어엉!
강예와 기희선은 살벌한 비무…… 생사대전에 혀를 내둘렀다. 작은 방심도 허용하지 않는, 실전보다 더한 살기가 뿜어졌다. 강예는 자신이 알고 있던 사대천주가 맞나 싶었다. 저렇게 흉흉한 분들이 아니었기에 생경함을 느꼈다.
“대체 우리를 왜 부른 거예요?”
“마침 대결이 끝나는군.”
“뜬금없이 무슨 말이에요?”
“너희들 차례야.”
“……?”
사대천주와 제자들의 대결이 끝나자, 바로 강예와 기희선을 투입했다. 아직도 현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지만, 무진은 상관하지 않았다.
“우린 동의할 수 없어요!”
“폐하께 허락을 받았으니까, 괜찮아.”
“그럴 리가!”
“애들아, 조져…… 크흠.”
가르침을 내려 주기를 바란다.
무진은 강예와 기희선을 강제로 밀어낸 후 뒤로 물러섰다.
오싹!
강예와 기희선은 자신들을 바라보는 눈빛이 정상이 아님을 체감했다. 상처 입은 맹호를 코앞에서 마주한 느낌이었다.
“다들 정신 차려! 나 공주라고!”
크크크크크!
인지의 부조화와 환장할 대잔치가 벌어졌다. 괜히 공주와 같이 왔던 기희선은 훈련장의 문이 닫히자 절망했다.
“나 다시 돌아갈래!”
손 벌리고 멍하니 있을 때가 아닌데.
***
혈마장은 황실에서 들려온 소식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비록 천군께서 나서진 않았지만, 마장이 셋이나 동원되었다. 황궁 장악의 총지휘자인 몽군룡 왕 태감의 역량을 봤을 때 실패를 예상하지 않았었다.
“황제가 정신을 차렸다는 소문이 사실이었어?”
“광마향에서 벗어났다고 판단이 됩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황제는 무공을 익히지도 않았잖아. 설령 익혔어도 광마향에 그토록 오랜 세월 노출이 되었다면 돌아올 수 없을 텐데.”
“마의께서 알아본다고 하셨지만, 황제를 진맥하지 않는 이상은 밝혀내기가 어렵습니다.”
무당파의 동향도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황궁의 일까지 실패할 줄이야. 본교의 대업이 어느 것 하나 성공하지 못하고 있었다.
“대체 왜?”
“황제의 총기가 돌아오자, 북친왕이 반란을 서둘렀습니다. 더는 기다리지 못하겠다고 왕 태감에게 통보한 이후입니다.”
“확실하지 않으면 기다렸어야지, 어째서 그런 거야?”
“황제의 노림수에 걸려들지 않았나 사료됩니다. 광마향에서 벗어나기가 무섭게 밀천을 동원했고, 천란 공주를 후계자로 내세우는 흐름을 만들었습니다.”
북친왕의 속내를 알아내려는 황제의 덫으로 봐야 했다. 비록 황자들 중 황태자를 정하진 않았어도, 공주가 황위를 잇기에는 많은 걸림돌이 있었다. 누가 봐도 이상한 일일 텐데, 북친왕은 덜컥 황제의 수작에 걸려들고 말았다.
지금까지 기다렸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했거늘, 조급함이 판단력을 흐렸다.
“그래도 그렇지, 밀천이 그리 강했었단 말이야?”
“마장께서 나섰음에도 실패했다면, 밀천을 확실하게 경계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근원적인 문제는 정보력의 부재와 왜곡입니다.”
“맞는 말이야. 정보가 늦는 것도 문제지만, 도중에 잘못된 정보가 교묘하게 섞여 있었어.”
“이대로 두고 볼 수는 없는 일입니다. 조속히 처리하지 못하면 커다란 화근이 될 겁니다.”
정보는 속도전인데, 세간에 떠도는 소문보다 늦었다. 이렇게까지 늦어 버린 연유는 정보의 왜곡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을 기반으로 하여 교묘하게 왜곡하여 대처가 늦었다.
황실 내의 동향이 그토록 급박했다면, 대응이 달라졌을 것이다. 또한, 구대성천이 온전했다면 북친왕의 경거망동을 제어했을 수도 있었다.
“품고 가기에는 출혈이 너무 크군. 장난을 친 대가를 주어야겠어.”
혈마장의 스산한 살의가 고스란히 묻어 나왔다. 연속된 실패들을 나열해 보면 정보의 왜곡쯤은 큰 문제라고 하기도 미미하다. 실패한 사안들에 의한 타격이 워낙 커서, 상대적으로 작아 보였다. 그러나 여태 쌓인 실패의 원한을 풀 데가 필요했다. 어쩌면 재수 없이 본보기로 걸렸다고 봐도 무방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황실의 일은 좀 더 알아보겠습니다.”
“그런 뜻이 아니다. 우리는 본교를 지탱하는 정예다. 한데, 지금은 어떻지? 천군께서도 이젠 셋뿐이고, 우리도 마찬가지고, 너희들도 거의 다 쓸려 나갔지. 마치 하늘이 우릴 시험하는 것 같지 않느냔 말이다.”
황실마저 실패한 이상, 무림대회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그래서 더 조급해지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막다른 길로 몰리는 형국이었다. 어쩌면 모든 계획을 처음부터 다시 진행해야 할 수도 있었다.
“대계의 실행이 예정된 시기보다 최소 오 년에서 십 년이 빨라졌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의도하지 않은 허점이나 간과한 사안이 있었을 겁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찾아내.”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알아내겠습니다.”
혈마장은 이 께름칙한 흐름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알아내야 했다. 이는 마장으로서의 본능적인 감이었다. 모호하고 막연한 실체가 어쩌면 본교의 대업을 방해한 대적이 아닐까 하는.
***
아삭, 아삭!
무진은 의자에 앉아 군더더기 없이 깎아 놓은 평과(苹果)를 맛보기로 시식하고 있었다. 집보다 큰 방은 눈을 어디다 두어도 보기 힘든 고가의 장식품으로 도배되었다.
후르륵, 후르륵!
침묵이 길어져도 흐름은 끊어지지 않았다. 지루함을 이겨 내는 무진의 배려였다. 괜히 어색하고, 무안한 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노력했다. 사소한 듯 보여도, 쉽지 않은 사려 깊은 행위였다. 평소 삶에 대한 진지한 고찰과 경험이 묻어 나왔다.
흠.
물론, 마주 앉아 있는 분께선 못마땅한 기색이 완연했다. 무진의 배려를 전혀 납득하지 못하고 있었다.
“평과와 원수졌나?”
“그럴 리가요, 이렇게 맛있는데.”
“차라리 평과 나무를 집에다 심는 편이 낫겠군.”
“남이 정성스레 키운 평과를 좋아합니다.”
산에서 채취했다면 모를까, 재배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모든 일이 그렇듯, 굉장히 귀찮다. 농사를 봐도, 세상에 쉬운 일이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체감할 수 있었다.
허어!
무진의 천연덕스러운 대답에 황제는 답답한 한숨을 쉬었다. 황궁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것도 그렇고. 대소신료들이 전말을 안다면 삼족을 멸해야 한다고 성토할 일이다.
그런 걸 다 떠나서, 남의 집에 왔으면 최소한의 예의는 있어야 하지 않나. 기껏 손님 대접을 해 주겠다고 최상급 평과를 주었더니, 대체 얼마나 처먹는 건지! 기본적인 예의도 밥 말아 처드신 놈이었다.
황제가 편하지?
문제는 이놈이 충분히 그리해도 될 만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사대천주를 압도한 역도를 밥상 위를 빙빙 도는 파리처럼 대수롭지 않게 짓뭉개 버렸다. 황제의 권력을 넘어선 압도적인 무력이었다. 백만의 병사가 있어도, 무진이 노리면 언제든 뚫고 들어올 수 있었다.
‘오판인가?’
사대천주의 무공을 봐 준다고 할 때만 해도 이놈이 웬일이지? 미쳤나? 그런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예상대로 돈 잡아먹는 귀신 같은 녀석이었다.
“짐이 언제 천란을 훈련에 참여하라고 윤허했지?”
“한 적 없습니다.”
“……?”
“제가 언제 허락했다고 했습니까?”
“천란한테는 짐이 윤허했다고 하지 않았나!”
“공주님에겐 거짓말을 했습니다.”
“……?”
‘그게 뭐 어때서.’라는 무진의 뻔뻔함에 황제는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하는 얼굴이 되었다. 최소한 아니라고 반박이라도 할 줄 알았다. 그것도 아니라면, 지은 죄가 있어서라도 미안한 척은 해야 하지 않나? 되레 내가 그랬다고 당당하게 밝히고 있었다.
솔직해서 좋다고 해야 하나?
황제를 기만하고, 공주에게 사기를 쳤다. 그런데도 당황하기는커녕 대수롭지 않은 일로 치부해 버렸다. 하도 뻔뻔해서 혹시 내가 잘못했나? 황제는 진심으로 되돌아보기까지 했다.
-아빠, 나한테 정말 왜 이래? 내가 그렇게 싫어? 어떻게 그런 짐승 같은 인간한테 딸을 팔아!
어젯밤에 천란이 찾아와 울며불며 원망을 토로했었다. 다른 자식들과 달리 곱게 키웠고, 어지간해서는 청을 들어주었었다. 하지만 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원망을 듣게 될 줄은 몰랐었다.
대체 어떤 정신 나간 인간이 황제를 팔아서 거짓을 입에 담을까? 이토록 무도하고 황당한 일은 생각 자체를 해 본 적이 없어서 얼떨떨하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그런 놈이 있었다.
그것도 바로 눈앞에.
버젓이!!
아삭, 아삭!
맛만 본다면서 여전히 평과를 작살내고 있었다. 금방 다 먹고, 또 깎아 먹는 중이다. 대체 언제까지 맛을 보려는 게야! 오층으로 쌓은 평과가 바닥을 보였다.
“황족을 기만한 죄가 얼마나 큰지 모르나?”
“사람이 살다 보면 선의의 거짓말도 하고 그러는 거죠. 어떻게 융통성 없이 정직하게만 삽니까? 그리 따지면 폐하께서도 거짓말을 하신 적이 있을 텐데요.”
“짐과 그대가 같다고 보는 건가?”
“누가 또 그렇대요.”
깊게 따지면 본인이 더 잘났다고 할 위인이었다. 황제는 집요하게 캐묻지는 않았다. 한편으로, 속아서 보름 동안 지옥 같은 훈련을 받은 천란이 불쌍했다. 진작 말을 했으면 그 고생을 하지도 않았다.
‘순진했구나.’
황족을 능멸한 처사였기에 위언(僞言)은 일절 염두에 두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러한 맹점을 무진이 대놓고 찌르니, 속절없이 당하고 말았다.
“이제 그만하게.”
“공주께선 밀천의 신공을 이제 막 익히기 시작했습니다. 학문이든, 무학이든 처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폐하께서도 익히 아실 테지요. 재능이 만개하는 시기긴 하지만, 이전과 같은 훈련으론 사대천주에 머무를 수밖에 없을 겁니다.”
“천란을 위험한 일에 끌어들일 순 없네.”
“그 마음 저도 이해는 합니다. 하지만 적들은 공주님을 밀천의 다음 대 후계자로 보고 있습니다. 과연 작금의 실패를 두고, 얌전히 있을 것 같습니까?”
“천란이 목표가 될 수 있다는 건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요. 하지만 제가 떠나고 나면 장담할 순 없습니다.”
황제는 확신하지 못했다.
북친왕을 중심으로 반역이 일어날 때까지도 속수무책이었으며, 무진이 나서지 않았다면 역모는 성공했을 수도 있었다. 황궁도 안전하지 않았던 것을 고려하면 무진의 예측이 마냥 허무맹랑해 보이진 않았다.
“그대는 황궁에 머물라.”
“싫습니다.”
고민도 없이 거절할 줄이야. 정녕 황제의 말이 우습게 들리는 모양이다.
“황명을 내린다면 어찌할 텐가?”
“거절할 겁니다. 집에 사랑하는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이 있거든요.”
황제는 무진의 무례가 꼴 보기 싫지만, 신뢰는 하고 있었다. 북친왕처럼 권력에 눈이 멀어 혈육을 배신하진 않을 테니. 돈에 정신이 팔린 속물이긴 해도.
한편으로 친히 관직을 내려 주겠다는데도 마다하는 걸 보면 어떤 모습이 진짜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짐조차 목적의 일환이었나?”
“에이, 우리 사이에 왜 이러실까? 제가 있어서 여태 안전한 건데. 알면서 이러시는 거 보면 폐하도 참 짓궂으십니다.”
이놈이 어딜 찔러!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무진이 넉살 좋게 웃자 황제는 어이가 없었다.
“고맙다고 하기에는 그대는 참 무례하네.”
“충신입지요.”
“아무거나 잘도 갖다 붙이는군.”
황제는 연거푸 한숨을 쉬었다.
입에 쓴 약이 몸에는 좋다고 하는데, 비유하기에는 무리수였다. 입에 독설을 담은 데다가, 후일 몸에 좋다고도 장담 못 하겠다. 자신의 안락한 삶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뒤통수를 칠 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