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512
511 구사일생인가?(2)
“너, 진짜 뭐야?”
“뭐긴, 알잖아.”
“요즘 개방은 다 너 같은 거야?”
“삿대질은 하지 말자.”
배신자인 적우화보다 이놈을 먼저 오체분시하고 싶어진 부약빙이었다.
“호호호, 재밌네. 혹시 개방을 기대한 건 아니지?”
“삶에 희망을 가져야지, 기대는 좋은 거잖아. 너 같은 쌍년은 모르겠지만.”
어!
부약빙은 속이 시원했고, 적우화는 미소가 뚝! 끊겼다. 예상치 못한 반전 매력에 다들 당혹스러웠던 모양이다. 실없어 보이는 놈이 사태 파악도 못 하자, 어처구니가 없었던 것일 수도 있고.
“호호호, 너 제법 웃기네. 하지만 어쩌지. 주변에 아무도 없는데.”
“그거야 못생겨서 그렇지. 솔직히 진짜 못생겼어.”
절체절명 속에서 부약빙은 풋! 침을 튀기며 웃고 말았다. 생각지도 못한 대답의 연속이었다. 곧 죽을지도 모르는데, 그 앞에서 못생겼다니!
“못생기긴 했지.”
부약빙도 가만있을 수는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서지 못하면 죽어서도 답답할 것 같았다. 맘에 안 드는 개새낀데, 주둥이는 똑바로 달렸다.
“우문에 현답일세. 안 그래, 이 못생긴 년아!”
“그래, 맘껏 지껄여. 그게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말일 테니까. 우선 네놈의 혓바닥부터 뽑을 거거든.”
“못생긴 년이 심보도 고약하구나. 하긴, 사람은 생긴 대로 사니까, 이해할게.”
“혀를 뽑고, 눈알을 뽑아 주마!”
사실 적우화는 못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부약빙과 비교하면 차이가 있었다. 당장은 변장을 해서 확인은 불가능하나, 육칠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저 부약빙과 적우화를 번갈아 보며 입꼬리를 말아 올릴 뿐이다. 평소 부약빙의 외모에 열등감을 느꼈다면 단숨에 폭발시킬 수 있었다.
그렇다 치고!
‘뭐 하는 새끼야!’
속이 시원한 걸 떠나 부약빙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차라리 퇴로를 확보하려고 했다면 이해라도 하지. 꽉 막힌 사면초가에서 상대방을 약 올리면 답은 뻔히 나오지 않나?
‘……미친놈이었어!’
부약빙은 어이가 없어서 화도 나지 않았다. 여태 미친놈이 알려 준 방향으로 냅다 달렸다는 사실에 허탈함이 밀려왔다. 자신이 대체 뭘 한 건지, 골이 지끈거린다. 한마디로 제 죽을 자리를 찾아온 격이었다.
사사사삭!
적우화의 배후로 하오문도의 역도들이 모였다. 백 명이나 되는 수가 주변을 꼼꼼하게 포위했다. 뒤로는 절애, 앞에는 적으로 둘러싸인 사면초가였다.
차자작!
배신자들이 포위 진형을 좁혀 왔다. 눈에 익은 자들도 있고, 생경한 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부약빙이 알고 있던 하오문도의 수준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나같이 강력하고 패도적인 기세를 발출했다.
“본문의 무공이 아니구나!”
“바보 같은 소리를 하네. 하오문이 언제부터 무공이 있었다고 그래. 하나같이 잡스러운 쓰레기들인 데다, 그나마 괜찮은 무공은 네가 다 익혔잖아.”
“겨우 무공 때문에, 본문을 배신해!”
“본문이 휘둘리는 이유가 무공 때문일 텐데. 가당치도 않은 소릴 하는 걸 보니 여전히 정신을 못 차렸구나.”
똑똑한 척하지만, 부약빙은 철모르는 애송이였다. 대화의 가치를 못 느꼈다. 적우화가 손짓하자, 수하들이 무섭게 쇄도했다. 이곳에 모인 백 명은 하오문도로 치부하기에는 격이 달랐다. 하나같이 대문파의 정예와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았다.
퍼퍼퍼퍽, 빠아악!
허공으로 다섯의 신형이 날아가고, 정면에 선 자의 머리통이 바닥에 내팽개친 수박처럼 터져 나갔다. 환한 대낮이었으면 시뻘건 광경이 펼쳐졌을 텐데, 자체적으로 검열이 되었다.
꽉, 꽈드득!
이어서 목이 잡힌 희생양들이 줄줄이 꿰이면서 인생을 헌납했다. 잡히는 순간 목이 괴이한 방향으로 뒤틀려 버렸다. 다시 돌아오기에는 닭목이 아니라서 불가능했다. 천축의 유가신공을 극성으로 익혔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으나, 적우화의 말대로 하오문도에 지나지 않았다.
“……너 뭐야?”
적우화의 놀람은 당연했다. 부약빙을 최대한 은밀하게 처리하기 위해서 숨겨 놓은 정예를 데리고 왔다. 척살단은 저리 허망하게 죽을 만큼 약하지 않기에 상대의 정체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주둥이만 살아서 나불거리는 놈이 아니었던 것이다.
‘용형조, 비연각, 파옥권이잖아.’
부약빙도 놀라기는 매한가지였다. 개방도인 줄 알았는데, 지나치게 깨끗해서 헷갈렸었다. 또한, 지금은 다른 의미로 놀랐다. 개방도라곤 해도, 지금과 같은 움직임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무공의 완성도도 높지만, 전투 시 연계가 귀신과도 같았다.
‘이 새끼! 대체 뭐냐고!’
지쳤다곤 해도, 바로 앞에서 펼쳐진 광경이 잘 보이지도 않았다. 너무 빠르고, 정확하며, 파괴력 또한 압도적이었다. 적우화가 당황하는 것도 당연했다. 지금까지 추적당하면서 저놈들한테 당한 걸 상기하면, 허무하게 당할 만큼 허술하지 않았다.
“본방을 우습게 보면 곤란하지. 우리가 하오문보다 정보가 빠르고 정확하다 이거야.”
“허튼소리를!”
“허튼소리라니, 너희들 마신교잖아. 하오문도 안에 숨어서 오랫동안 공작했으면서. 어때, 굉장히 정확하지?”
“……어서 놈을 죽여!”
“안됐지만, 난 버티기만 하면 돼.”
적우화를 비롯한 배신자들의 눈빛에 당혹감이 비쳤다. 우연한 개입이 아니라, 개방이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시간을 끄는 행위는 위험했다. 더욱이 놈의 여유가 거슬렸다. 부약빙을 사로잡아 사공을 써야 하지만, 정보가 새 나가선 안 되었다.
‘어떻게 알았지?’
마신교를 지목한 이상, 그들로서는 살인멸구밖에는 다른 수단이 없어졌다. 적우화, 이담산, 조덕은 살기를 드러내며 직접 나섰다.
퍼어어엉!
우우우웅!
암운보를 밟은 이담산이 무섭게 쇄도하며 내지른 괴마권이 육칠의 파옥권과 충돌했다. 거친 파공성이 울리는 가운데, 육칠은 물러서야 했다. 심혼을 울리는 적우화의 음공이 내력의 순환을 방해한 것이다.
슈욱!
타아앙!
육칠은 내력으로 음공을 막아 내며, 재차 주먹을 뻗었다. 휘어지면서 옆구리를 노린 화살이 있었다. 한 발을 쳐 내자, 새끼를 까듯 안에서 화살이 하나 더 튀어나왔다. 이중의 화살로, 막고 난 후를 노린 것이다. 위기에 본능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다면 육칠도 위험했었다.
파아아앙!
눈앞을 가리는 거대한 수장이 육칠을 노렸다. 순간적으로 내력을 짜내며 권기를 발출했다. 전력이 부딪치며 번갯불이 토해졌다. 짜릿하다 못해 육신을 괴롭히는 파문이 번졌다.
큭!
육칠로서도 대응하기 난해한 적의 연계였다. 특히 적우화의 음공과 수장은 상대하기가 훨씬 까다롭다. 수를 교환하는 순간 음험한 경력이 파고 들어와 기맥의 흐름을 흔들었다.
“죽을 자리를 찾아온 걸 후회하게 해 주마!”
“나 육칠, 개방의 사내로서 협의를 실천할 뿐이다.”
“개소리!”
“타구봉을 가져올 걸 그랬나. 듣고 싶네, 개년의 울부짖음을.”
처음의 적극적인 공세와 달리 간격을 유지하며 적절하게 공수를 주고받았다. 교묘하게 설전과 무력으로 시간을 끌려는 육칠의 수작을 알아챈 적우화는 방법을 바꾸었다.
“부약빙을 노려!”
조덕이 배후에서 화살로 부약빙을 노리자, 육칠도 움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일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부약빙을 이용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녀도 어찌할 수 없는 흐름이긴 하나, 육칠은 양심에 찔렸다. 적우화의 신경을 긁어서 최대한 그녀의 신변만은 지켜 주려고 했는데.
‘왜 이렇게 늦는 거야?’
강 대협의 훈련을 받아 강해지기는 했지만, 상대는 단순 하오문도가 아닌 마신교도였다. 감추고 있던 무공을 드러내자 버티기도 벅찼다. 자신은 이런 실전에 나서는 전투형이 아니라, 뒤에서 안전하게 정보나 전해 주는 보급형이었다. 한때는 전장에서 화려한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으나, 재능의 차이가 너무 컸다.
‘불러야 하나?’
그 패를 이런 식으로 쓰면 강 대협한테 혼날 것 같기는 한데.
아차!
적우화의 흑수인(黑手刃)을 막느라 신경이 분산된 육칠은 이담산을 놓치고 말았다. 그 순간 날아온 세 발의 화살에 반응마저 늦었다.
꽈아앙!
서걱!
촤아악!
지축을 뒤흔드는 가공할 무위가 권경에 고스란히 실려 공간을 부수었다. 동시에 날아든 검기는 세 발의 화살을 막아 내고, 강기를 실은 검강이 배후를 피로 물들인다.
“……뭐야?”
적우화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이었다. 완벽히 허를 찌른 기습적인 암습에 스무 명이 넘는 척살단원이 허망하게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놀라고 있을 수만도 없다. 암습을 가한 놈들은 시간을 주지 않고 살수를 뿌렸다.
푸아앙, 커억!
내지르는 권격은 패도 그 자체였다. 인간의 탈을 쓴 짐승 같은 놈이 휘두르는 주먹에 닿기만 해도 고깃덩어리가 되었다. 흉안의 괴수를 옆에서 보조하는 녀석들도 무시무시했다. 검을 휘두를 때마다 수하들이 썩은 짚단처럼 썰려 나갔다.
서걱, 서걱!
어느새 포위 진형이 뚫리고, 세 사내는 좌우로 갈리며 육칠의 앞에 도착했다.
“왜 이렇게 늦게 와! 나 뒈지고 오려고 했어?”
“엄살은, 주변 좀 살피느라 늦었어요.”
“엄살이라니, 저 못생긴 년이 얼마나 위험했는데. 크흠!”
“사람 얼굴 가지고 놀리는 거 아닙니다.”
철호의 사나운 눈빛에 식겁한 육칠은 고개를 마구 끄떡였다. 태진과 서문호는 말로 하면 통하기라도 하는데, 철호는 얼굴 건드리면 답도 없다.
“당신들 뭐야?”
“나는 철호.”
“나는 강태진.”
“나는 서문호.”
“나는 아까 들었지?”
부약빙은 순간 당황했다. 물어본다고 순순히 답해 줄 줄은 미처 몰랐다. 하지만 금세 이해가 되었다. 그들의 인상착의를 확인하자 떠오르는 자들이 있었다.
“천운권!!”
“고금무적강호제일의 협객, 천권 강 대협이십니다.”
육칠은 바로 수정해 주었다. 이대로 말을 하지 않으면 신상에 이롭지 않을 거라는 의도가 듬뿍 담겼다.
“천권께서 어째서 나를?”
“마신교한테 당한 게 있으니까요.”
“잠깐, 나를 이용한 거잖아!”
“그런데요?”
부약빙은 인상을 굳혔지만, 화를 내진 않았다. 강호는 이용당했다고 해서 위로를 해 주는 따뜻한 세상이 아니다. 오히려 파악하지 못한 본인의 무능을 탓해야 했다.
뿌드득!
소강상태가 되자 적우화가 살기등등한 기세를 발산하며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개방도 아니고, 천운권의 제자들의 난입은 예상 밖이었다. 대체 어디서부터 일이 꼬였는지 파악조차 되지 않았다.
“우릴 무시하는 것이냐?”
“너희들 정도에 쩔쩔매면 사부님을 뵐 면목이 없지.”
철호의 응수에 적우화의 얼굴에 생긴 주름이 파르르 떨렸다. 부약빙을 처리하면 끝나는 일이 복잡하게 변했다.
하나, 아직 끝나진 않았다.
“흥, 너희들만 숨긴 패가 있을 것 같아!”
“안됐지만, 여기 못 올걸.”
“……뭐?”
“시작했군.”
***
쿠다다당!
파앗!
구른 지점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면 육체가 버티지 못하고 산산조각으로 흩어졌을 것이다. 바닥을 박차고, 황급히 벗어나며 동료와 연계하여 겨우 막아 냈다.
꽈아앙!
부르르!
권강과 권강이 부딪치며 서로의 역량을 과시했다. 누가 더 우위에 있는지를 가르고 말겠다는 패도무쌍의 승부였다.
우열이 갈리는 순간 희비가 교차했다.
“제법이야. 나를 많이 즐겁게 해 달라고들!”
“네놈이 어떻게?”
“같잖은 수작질은 한 번으로 족하지.”
“우릴 속였구나!”
명암과 권암은 녹림왕의 등장과 기습에 동요했다. 만약을 대비해서 적우화의 뒤를 따랐거늘, 녹림왕이 역으로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수차례의 보고는 녹림왕의 의도대로 조작된 내용이었다.
‘어떻게 안 거지?’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 명암은 권암에게 연락을 취했고, 인원을 추려 만반의 준비를 다했다. 이만하면 하오문주를 배신자로 몰아 제거한 후, 하오문을 손쉽게 장악할 수 있으리라 보았다. 분에 넘치는 전력으로 봤거늘, 녹림왕이 이토록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었을 줄이야.
“순순히 죽어 줘야겠어.”
“우물 안의 개구리 주제에 자신감이 지나치구나!”
“당연하지, 내 우물은 천하를 품거든.”
“오늘은 다를 것이다!”
명암과 권암은 죽음을 각오했다. 품고 있는 마정을 개방하여 마공을 극한으로 쥐어짰다. 일순 명암이 명도마공(冥途魔功)의 경계를 개방하여 일대를 마역으로 뒤덮는다.
꽈아앙!
장필도는 그러한 과정을 순순히 지켜보지 않았다. 마공을 개방하는 순간을 노려 광룡공을 극의로 개방해 결의를 실은 권을 발출했다. 심권의 영역에 든, 미친 용의 포효가 명암의 마역을 두들겼다.
쩌저저적!
크윽!
권암이 혈륜전마공을 극성으로 운용하여 혈륜십자강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명암은 더 큰 피해를 봤을 것이다. 그만큼 녹림왕의 무위는 물이 오를 대로 올라 있었다. 불과 몇 년 전의 녹림왕과는 차원이 다른 영역에 도달했다.
두둥!
녹림왕은 한껏 달아오른 전투에 흥이 돋았는지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명암과 권암은 사태가 여의치 않음을 직시했다. 죽음을 각오했음에도 상대는 그 이상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하물며 방심도 하지 않았다. 마역이 제 역할만 했어도 이렇지 않을 텐데. 반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대로 끝날 수는 없다. 실패하더라도 대업에 지장을 초래할 녹림왕만은 죽여야 했다. 놈은 본교의 앞을 방해할 대적자였다.
“같이 죽자!”
“어디 죽여 봐라.”
초극에 이른 절대고수의 격전이 되었다. 생명력을 쏟아부은 마공의 증폭으로 명암과 권암의 무위는 능히 절대경에 도달해 있었다.
‘천군이나 마장도 아닌데.’
일전에 만난 암주들과는 격이 다르다. 암주 간에도 실력 차가 있다는 의미였다. 듣기로는 빛과 어둠을 쓰는 놈이 명암이고, 암주의 수장이라고 했었다. 암주는 천군과 마장의 보조, 즉 정보 수집, 침투, 세작 같은 공작에 특화되었다.
‘그렇다면 더는 없다는 뜻이군.’
한편으로 형님은 이런 사실을 대체 어떻게 아는 건지 의아할 때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