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102)
101화
2012년 7월 16일. 워싱턴 북동37, 영국. 노던 아레아 플레잉 필즈, 스테픈슨 길. 워싱턴 풋볼 허브(Washington Football Hub. Northern Area Playing Fields, Stephenson Rd. Washington Football Hub).
어제 하루, 우린 미팅과 휴식으로 시차 적응을 시작했다.
난 숙소에서는 성용이 형과 같은 방을 쓰게 되었고, 승무원분을 잠깐 호텔 로비에서 만난 것 빼고는 평범한 하루를 보냈다.
그분은 나보다 네 살이 많았는데, 딱히 이렇다 할 매력을 느끼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래도 일단 연락처는 교환한 상태다.
“다들, 눈빛이 바뀌었네요.”
“그렇지.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첫 번째 훈련을 앞두고, 나는 벤치에 앉아 준비하며 주변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형들의 표정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눈빛이나 분위기는 어제까지와는 분명한 차이가 났다.
이번 대회에서의 결과에 따라, 축구 인생이 크게 요동칠 수 있다는 것을 다들 잘 알기 때문일 거다.
그리고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지만.
축구화의 끈을 동여매고 일어나, 가장 먼저 연습장의 잔디 상태를 점검해 본다.
이른 새벽부터 내린 비는 여전히 계속되었고, 물기를 머금은 잔디는 약간 미끄러웠다.
오늘은 가벼운 런닝과 스트레칭 정도로 일정을 마무리할 계획이지만, 부상을 조심해야 한다는 건 늘 똑같다.
그래도 날씨를 제외하면, 모든 것들은 만족스러운 수준이다.
협회에서 잡아준 숙소도 그렇고 훈련장과 경기가 치러질 곳까지의 거리라든가, 음식에도 크게 신경을 썼다는 게 잘 드러나고 있어서다.
기존에는 월드컵이나 아시안 게임 정도를 제외하면, 이외의 대화라든가 올림픽팀 이하의 연령 별 팀은 한국에서 가져온 즉석밥, 컵라면, 김치 외의 각종 즉석 음식 등에 의존했다고 한다.
현지에서 재료를 구해 한국 음식을 만들기도 했지만, 늘 맛있고 좋은 음식을 먹는 건 커다란 고민거리 중 하나였다.
그래서 이전까지 대표팀에는 음식 가지고 불평해서는 안 된다는 문화가 존재해 왔다고 들었다.
한국에서 치러지는 대회야 시설도 갖춰져 있고 또 배달도 시켜먹을 수 있어 문제 될 것이 없지만, 해외 대회에서는 이런 사정 때문에 경기력을 100% 보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이전에는 ‘정신력’의 문제라는 식으로 말하기도 했다던데, 난 그게 참으로 우습다고 생각했다.
정신력이란 자발적인 의지에서 나오는 것이지, 주변 환경이나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 나오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런 건, 당연한 것이 아니다.
포르투갈에서 뛰는 동안 A매치를 다녀온 동료들에게서 들은 이야기와 비교만 해봐도 그렇다.
특히 5월에 하비 가르시아는 처음으로 스페인 대표팀에 호출을 받았는데, 단순한 평가전이었음에도 대표팀 선수단을 위해 스페인 최고의 주방장 두 분이 훌륭한 음식을 제공했다고 한다.
연령별 대표 경험을 말해주던 다른 나라의 친구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는데, 나라를 위해서 뛰는 선수들에게 최고의 대우를 해주는 것은 무척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올림픽 대표팀은 차후 한국 스포츠에 좋은 본보기가 되어주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
우리가 출국하던 날, ‘풋볼일레븐’에서는 대표팀과 동행하게 된 기존엔 볼 수 없었던 모습들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현재 호텔엔 서울의 호텔에서 근속하고 계신 주방장 한 분이 와계시고, 미리 한국에서 재료를 띄워 우리가 묵을 숙소에 갖추어 두기도 했다.
그래서 어젠 무려 4성 호텔 주방장님이 만들어주신 궁중 떡볶이를 먹을 수 있었는데, 혹시나 해서 한국에서 가져온 과자들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아도 됐다.
나야 제대로 된 대표팀 경험이 처음이라서 그냥 좋아하고 있었지만, 형들은 꽤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이게 다 세금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인데, 어제부터 형들은 꼭 좋은 경기력으로 보답하자면서 굳은 의지들을 드러냈다.
한국을 대표한다는 건 저런 것인가 싶다가도, 아직은 잘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뭐, 차츰 알게 되겠지.
“자- 다들, 조심하고! 오늘부터 집중해서 가보자. 세네갈 경기 선발은 18일 밤에 알려줄 거니까, 그렇게 알고. 아직 아무것도 정해진 건 없으니까, 파이팅하고 가보자. 한국!!”
“어-이!!”
장거리 비행 뒤에 치르는 훈련은 벤피카에서도 많이 경험해 본 것이다.
나야 포르투갈을 떠날 일이 없었지만, 대표팀을 다녀온 동료들이 있어 똑같은 훈련을 진행했었기 때문이다.
장거리 비행을 하게 되면 일단 근육이 굳고, 고도를 오간 탓에 심박 수도 평소보다 많이 떨어져 있다.
여기에 시차로 인한 호르몬과 체내물질의 변화와 기후와 잔디 같은 사정들도 고려해야 할 대상이 된다.
다행히도 나의 경우, 영국의 잔디 사정이 포르투갈의 것과 비슷해 적응이 수월하다는 장점이 있다.
처음 합류했던 1, 2월은 포르투갈에서 가장 비가 많이 오는 시기인데, 이때 잔디는 여기처럼 조금 미끄럽고 꼭 스펀지를 밟는 것과 같은 느낌이 났다.
그래서 난 거기에 맞춰 미리 축구화도 챙겨왔다.
‘아디다스’가 한국 시장을 겨냥해서 만든 ‘ADIZERO TRX 태극기 컬러’가 바로 그것이다.
주변에서도 꽤 반응이 좋아, 나와 치수가 같은 형들에겐 몇 족 선물로 주기도 했다.
어차피 축구화야 넘치도록 많았으니까.
훈련하는 내내 한국에서 온 취재진들이 우리를 촬영했다.
난 그런 카메라를 보며, 연신 손을 흔들었다.
런닝이 끝난 뒤에는 두 번째 스트레칭을 하는 시간이 이어졌고, 그동안 성용이 형과 내게 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영국의 잔디를 밟으면서 달려본 형들이, 자신이 느낀 감상을 말하며 요령과 같은 것을 배우려고 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난 그에 성심성의껏 답해줬다.
“자, 이제 마무리들 하고! 호텔로 돌아가서 미팅할 거니까, 씻고 편하게 입고 모이자. 자, 박수 세 번 하고 마무리.”
짝! 짝! 짝!
“수고하셨습니다-!!!”
영국에서의 첫 번째 훈련, 역시나 모든 것들은 순조롭다.
***
2012년 7월 19일. 리즈 LS11, 영국. 엘런드 로드, 비스턴. 엘런드 로드(Elland Road. Elland Rd, Beeston. Leeds LS11, England).
·경기 시작 2시간 전
대한민국 0 : 0 세네갈
& Match-Up`s Best Eleven(대한민국/세네갈)
& Match-Up`s Tactics(대한민국/세네갈) :
GK ? 정성룡 / GK ? 우스마네 마네
RB ? 김창수 / RB – 살리우 시스
CB ? 곽태휘 / CB ? 압둘라예 바
CB ? 김영권 / CB ? 파파 게예
LB ? 김다온 / LB ? 파페 수아레
DM ? 기성용 / DM ? 이브라힘 섹
CM ? 박종우 / DM ? 셰이쿠 쿠야테
CM ? 구자철 / CM ? 모하메드 디아메
RW ? 김보경 / RW ? 사디오 마네
LW ? 손흥민 / LW ? 무사 코나테
ST ? 지동원 / ST ? 칼리두 예로
.
.
영국, 우루과이, UAE와 같은 조에 속한 세네갈은 런던 올림픽의 복병으로 평가를 받는다.
23세 이하 연령대에서 아프리카 팀은 항상 많은 변수를 제공해왔고, 이 수준에서 주목받은 선수들이 유럽으로 향해 대표팀 선수로까지 성장해온 것이다.
그리고 이번 세네갈의 올림픽 대표팀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노르웨이 트롬쇠 IL에서 뛰고 있는 카라 음보지(Kara Mbodj)는 이미 오래전부터 프랑스/벨기에/포르투갈의 클럽 다수로부터 관심을 받았고, 프랑스 LOSC 릴에서 성장한 파페 수아레(Pape Souare)또한 빅리그로 향할 재목이란 평을 받았다.
외에도 RSC 안덜레흐트에서 뛰는 셰이쿠 쿠야테(Cheikhou Kouyate)와 세네갈 국내 리그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는 무사 코나테(Moussa Konate)도 포진되어 있었다.
또 FC 메츠로 이적해 많은 기회를 받으며 가파른 성장세를 보인 사디오 마네(Sadio Mane)도 있다.
세네갈 대표팀의 감독 조세프 코토(Joseph Koto)가, 평가전을 하루 앞두고 진행되었던 인터뷰에서 강한 자신감을 피력한 이유도 바로 이런 것들 때문이다.
그는 ‘힘들겠지만 승리할 수 있다.’는 말로, 세네갈이 더 강하다는 걸 에둘러 표현했었다.
“평가전이라는 것을 명심해라! 다쳐봤자 좋은 건 하나도 없으니까. 알다시피, 오늘도 저 바깥에는 스카우트가 즐비하다! 난 너희들이 원하는 것을 안다! 올림픽에서 너희가 얼마나 좋은 선수인지를 보여주는 길이 세네갈을 위한 길이고, 또 너희가 더 큰 무대에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된다!”
세네갈은 늘 프랑스 이중국적자가 많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들이 가진 열망은 예전과 크게 바뀌지 않았다.
아프리카 출신의 선수들은 어린 시절부터 축구선수로서 성공하는 자신을 꿈꾸고, 팀보다는 개인적인 역량을 발휘하는 일에 더 많은 중점을 둔다.
그런 그들을 하나로 묶는다는 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지만, 아주 작은 계기 하나면 세계 최고의 팀도 두렵지 않을 모습으로 바뀐다는 걸 조세프 코토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아프리카 출신의 선수들은 절대 순종하지 않는 야생마이지만, 그런 만큼 한 번 가속력을 붙이면 무섭게 달려나갔다.
이러한 면에서, 조세프 코토는 지금까지의 준비과정이 무척이나 순조로웠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비록 개최국인 영국과 남미의 강호 우루과이와 한 조가 되긴 했지만, 그는 다음 라운드에 진출할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제 남은 건, 그 자신감을 선수에게 전해주는 일뿐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일본과 함께 아시아 최고로 불리는 대한민국 올림픽팀을 상대하는 건 좋은 선택이었다.
한국 역시 정보가 부족한 가봉의 전력을 파악하고자 세네갈과의 평가전을 택했는데, 양측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UAE와 가봉의 정보 일부를 이미 교환한 상태다.
결과적으론 양측의 필요가 맞아떨어져 성사된 경기였지만, 만약 이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다면 대회를 일주일 앞두고 선수들의 사기를 크게 진작시킬 수 있다.
‘뭐, 한국 정도야.’
음악 소리에 맞춰 웃고 춤을 추는 선수들이 가득한 세네갈 올림픽팀의 라커룸 분위기는, 차분하고 조용한 대한민국 라커룸 분위기와는 사뭇 대조되고 있다.
***
좋았던 분위기가 급격히 냉랭해지기 시작한 건, 어젯밤 감독님이 선발 명단을 발표하고 난 직후였다.
본래 감독님은 국영이 형을 선발로 출전시키려고 했는데, 형이 갑자기 손을 들어 올리며 자신은 뛸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하면서부터 많은 것들이 이상해졌다.
급하게 선수단을 해산한 감독님이 국영이 형을 따로 불렀고, 형은 오늘 아침 호텔을 떠나 런던에 있는 한 병원으로 극비리에 이동했다.
그리고 몇 시간 전 모두가 결과를 전달 받았는데, 왼쪽 발등에 실금이 가는 부상이었다.
회복까지 최소 두 달이 필요하단 진단이 내려졌고, 형은 여태껏 통증을 참고 뛰어왔다고 모두에게 고백했다.
축구선수의 진단에 관해서는 의심할 필요가 전혀 없는 병원이었던지라, 감독님은 곧장 회의를 소집해 국영이 형을 선수단에서 제외하는 방법을 선택하셨다.
올림픽 명단은 예비를 포함하더라도 23인이고, 실제 대회에서 뛸 수 있는 인원은 18명뿐이라 얼른 조처해야 했다.
일단 공식적인 발표는 평가전이 끝난 뒤에 진행될 예정이고, 국영이 형의 자리는 우영이 형이 대신하게 될 것 같았다.
만약 팀이 그대로 중앙미드필드를 가져간다면 말이다.
호텔의 앞에서 버스에 오르기 전, 우리 앞에 선 국영이 형은 미안하다면서 많은 눈물을 흘렸었다.
이번 대회에 많은 것이 걸려 있는 건 국영이 형 역시 마찬가지였던지라, 우리는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지금 분위기가 무거운 것도 바로 그것 때문이다.
국영이 형에게 일어난 일 때문에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 나도 예외일 수 없다는 생각이 서로의 머릿속에 생겨난 까닭에 현재 대표팀의 의지는 그 어느 때보다도 분명했다.
긍정적으로 해석해보면 약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괜히 이걸로 위축되지나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뭐야? 왜 이렇게 공기가 무거워?”
“응?”
그런 분위기 속, 밝은 얼굴로 등장한 강찬일 감독님은 왜 이렇게 침울해져 있느냐면서 우리에게 농담을 던져왔다.
“야, 벌써 군대 가냐? 인상 좀 펴라.”
그리고 그 말을 시작으로, 다들 혼자만의 생각을 멈추고 조금씩 목소리를 내게 되었던 것 같다.
어느새 우린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고, 그라운드로 나서기 전 라커룸 앞에서 따로 스크럼을 짜며 이렇게 말하게 됐다.
“국영이한테는 미안하지만, 그래도 우린 제대로 해야 하지 않겠냐? 집중하고, 다치지 말고, 어제도 봤지만 쟤네들 진짜 빠르니까. 뒷공간 주지 않도록 하자. 알았지?”
“네!”
“넵!”
“좋아. 가자. 한국!!”
“어이!!”
이제는 완벽히 시합에 몰두할 준비를 마쳤다.
조금 걸어가자 먼저 복도에 나와 있던 세네갈의 선수들이 보였는데, 딱히 서로 인사를 나누지는 않았다.
어차피 서로 모를 테니까.
단, 나는 조금 예외였다.
[여기에서 다 보네.] [그러니까 말이야.]나는 오늘 세네갈 팀 명단에 오른 두 명의 선수를 알고 있다.
우선 수비수인 압둘라예 바(Abdoulaye Ba)는 아카데미카 소속으로 안면이 있었고, 질 비센테 소속의 칼리두 예로(Kalidou Yero)와는 그라운드에서 직접 부딪쳐보기도 했다.
그래서 팀에도, 이 두 선수의 스타일을 말해뒀다.
그리고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농담을 빙자한 신경전을 끝마친 뒤, 우린 서로에게 행운을 기원하며 각자의 자리로 돌아섰다.
현재 세네갈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의 면면을 보면, 대부분이 프랑스/벨기에/포르투갈/잉글랜드와 같은 나라에서 뛰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런 점 때문에 어떤 형들은 조금 겁을 내는 것도 같았는데, 난 형들에게 하나도 겁을 낼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함께 뛰어본 내가 장담하는데, 평소 실력만 발휘한다면 여기에 있는 형들의 실력이 훨씬 더 낫다.
[입장합니다-!!]앞쪽에서 큰 목소리가 들려오고, 우린 약간 어두운 터널을 벗어나 바깥으로 향했다.
날씨는 아까부터 잔뜩 흐려 있었지만, 다행히도 비는 내리지 않고 있다.
영국에서의 처음이자 마지막 평가전.
경기장의 한쪽은 이미, 붉게 물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