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1088)
1056화 The King (5)
2020년 6월 15일. 래들렛 AL2 1DR, 잉글랜드. 벨 레인, 런던 콜니, 쉔리. 아스널 트레이닝 그라운드.
아스널이 감독 경험이 없는 미켈 아르테타를 감독으로 임명한 지도 어느덧 반년 가까이 흘렀다. 그리고 이 기간, 아스널은 4승 5무 1패의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뒀다.
무승부가 다소 많긴 했지만, 우나이 에메리 체재에서 5승 8무 5패를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분명 괜찮은 결과였다.
하지만, 아르테타는 더 많은 것을 바란다.
아스널은 여전히 리그 10위다.
남은 10경기에서 최소 승점 20점 이상을 확보해야, 유로파 리그 출전을 바라볼 수 있다.
“내가 시티를 잘 알아.”
“…….”
“좋은 팀이지. 리그 최고의 팀 중 하나야. 그렇지만 완벽하진 않아. 리버풀에 비하면 약점이 확실한 팀이야.”
누구보다 시티의 깊숙한 부분을 안다고 생각하는 미켈 아르테타는 모레 경기의 승리를 자신하고 있다.
리그가 중단되었던 동안 슈코드란 무스타피/키어런 티어니와 같은 수비 핵심들이 부상에서 회복했고, 폼이 떨어져 있었던 스쿼드 전반부에 활기가 생겨났다.
에티하드 원정은 늘 어렵다지만, 무관중으로 진행되는 이상 홈어드밴티지 효과 역시 미미할 것이다.
더구나, 미켈 아르테타가 알고 있는 맨체스터 시티는 특정 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큰 팀이다.
김다온/케빈 더브라위너/김민재.
이들 셋이 부진하면, 시티는 늘 어려워했다.
“이게 시티의 현실이야.”
자리에서 일어선 미켈 아르테타가 감독실을 배회한다.
“다온. 그리고 케빈. 이 두 사람이야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어떠한 클럽에서든 팀의 중심이 될 만한 이들이니까. 그렇지만, 민재? 물론 좋은 선수야. 잠재력이 넘치지. 하지만, 그가 수비의 키를 쥐었다는 것 자체가 시티가 약하다는 증거야.”
축구에서 센터백 포지션은 흔히 ‘중앙 수비수’라는 단어로 묶이지만, 두 명 이상의 수비를 중앙에 세우는 모든 전술은 왼쪽과 오른쪽 센터백에 각기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후방빌드업이 강조되는 현대축구에서 왼발잡이 센터백의 가치가 높아지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모든 중앙 수비수들은 기본적으로 똑독해야 한다.
공격수들의 습관을 파악하고 오프사이드 라인과 미드필드와의 간격을 끊임없이 조절하는 것은 물론, 수비 진영 전체를 그려 두고 파울이 주어지는 상황을 정확히 인지해야 한다.
재능도 타고나야 하는 부분이지만, 이런 역량을 발전시키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덕목은 아무래도 시간이었다.
경험.
“민재는 처음부터 말리게 해야 해. 기분이 좋아지면 월드클래스처럼 플레이하거든. 하지만 너무 충동적이야. 에디 같은 녀석이 계속 귀찮게 하면, 이성을 잃을 거야.”
늘 전술적으로 준비된 모습이긴 했지만, 오늘은 유독 더욱 자신감이 넘치는 아르테타다.
“케빈과 다온은 1:1로 막아야 해.”
물 흐르듯 진행되는 상황 속, 아스날의 코치들은 아르테타가 보여주는 리더십에 큰 신뢰를 보낸다.
비록 여전히 아르테타를 의심하는 사람들은 많이 있지만, 스태프들은 이 남자가 얼마나 좋은 감독인지를 알고 있었다. 모든 부분에서 흠잡을 곳이 거의 없다.
물론 여전히 아르테타는 실수한다.
하프타임 때의 대처도 미숙하다.
그렇지만 아르테타가 김민재를 두고 말한 것처럼, 결국 이러한 것들 역시 시간이 자연스럽게 해결해 줄 문제였다.
더구나 시즌 중반에 부임했다.
본인이 원한 스쿼드도 아니다.
그런데도 우나이 에메리의 밑에서 부진했던 선수들을 부활시켰고, 특히 PL 중하위권 수준보다도 못하다던 수비를 빠르게 안정화했다.
미켈 아르테타 더비(Derby).
새로운 볼거리가 생겼다.
프리미어리그 재개까진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
2020년 6월 16일. 맨체스터 M11 3DU, 잉글랜드. 13 로슬리 스트리트. 에티하드 캠퍼스. 더 퍼스트 팀 센터. 전력/영상 분석실.
사회적 거리두기의 거리가 1M로 줄어들고 몇몇 봉쇄 규정이 완화되면서, 실외에서 진행하는 팀 훈련만이 아니라 실내에서의 미팅 역시도 가능해졌다.
의자를 두 칸씩 띄우고 앉아야 했긴 하지만, 팀 전체가 모였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내일, 우린 4-3-3를 사용한다.”
“…….”
“에디. 포백은 오른쪽부터 워커, 민재, 리크. 그리고.”
“…….”
“주앙. 이렇게 넷이 나선다.”
예상했던 대로, 나의 위치는 계속해서 공격수다.
“그리고 올루프. 중앙에는 군도와 케빈.”
미국에서 돌아온 뒤, 펩과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뭔가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역시도 아니었다.
펩이 내게 괜찮은지를 물었고, 그에 나는 괜찮다고 답한 게 전부다.
“앞쪽이다. 리야드, 라힘. 그리고 가장 위는.”
“…….”
“다온.”
사실 당연한 거다.
지금은 시즌 후반부다.
부상자가 생겨서 포지션에 공백이 난 것도 아니고, 준비 과정부터 모든 게 내가 공격수로 뛴다는 것을 전제로 여태껏 맞추어져 왔다.
그렇다고 리그가 중단되었던 동안 제대로 된 훈련을 진행해 본 것도 아니다.
나 하나 좋겠다고 다시 멋대로 풀백으로 돌아가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 전력이 흔들리는 것도 흔들리는 거지만, 그 전에 팀 케미스트리가 깨진다.
“우린 충분히 이길 수 있다.”
“…….”
“미켈은 우리를 잘 안다고 생각하겠지. 상관없다. 그가 너희를 안다고 생각하는 것 말이야. 상대가 어떠한지를 아는 건 물론 중요하지만, 결국은 여기에서 승부가 결정된다. 여기. 또 여기.”
심장.
그리고 머리.
아는 게 힘인 것은 맞지만, 그 힘을 손에 쥔다고 해도 사용자가 신통치 않다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펩은 그 말을 하고 싶은 거다.
“지난 3개월. 모든 게 멈췄었다. 모두가 집에 틀어박혀 있었지. 뭐, 모두는 아니긴 하다.”
“헤헤.”
“하지만 그것마저도 전부 우리의 삶을 위해서였다. 우린 축구인들이니까. 축구는 우리의 직업이고 또 우리의 삶이다. 그리고 이젠, 삶이 우리의 곁으로 돌아왔다. 난 지금 너무나도 기쁘다. 너희도 틀림없이 그럴 거라고 믿는다. 그러니 내일, 그 기쁨을 내게 보여 달라. 내일 경기장은 텅텅 비어 있을 거다. 그건 무척 슬프지만, 그게 당분간 우리가 마주 보아야 할 현실이다. 하지만 팬들은 여전히 우리를 보고 있다. 이런 것들을 명심하도록. 집으로 돌아가 잘 먹고, 푹 쉬고, 내일 아침에 보자.”
팀 전체의 힘을 북돋는 미팅이 끝나고 난 뒤, 아래로 내려선 나를 펩이 잠깐 붙잡았다.
“자네의 위치 말인데…….”
“네. 이해해요.”
“그래. 그 이야긴 시즌 후에 하지.”
“넵. 그럼 내일 봬요.”
“그래. 조심히 가게.”
3개월 만의 경기.
3개월 만의 미팅.
생각해 보면 시즌과 시즌 사이의 간격도 이만큼 길지는 않았다. A매치나 프리시즌을 치르다 보면, 기껏 주어지는 여유 시간은 한 달 남짓이 전부다.
프로가 된 이후,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긴 휴식을 했다. 재활을 휴식으로 볼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그럼 내일 봐.”
“그래. 선발로 못 뛰어서 혹시 삐졌어?”
“그래. 삐졌다. 어쩔래?”
“펩에게 말해야지. 내가 힘 한번 써줄게.”
“하-! 퍽이나.”
“큭큭. 잘 가!”
탁-
베르나르두와 농담을 주고받은 후, 차에 올라탄 나는 안전띠를 채우고 시동을 걸었다. 이후 클럽하우스를 빠져나가서 본 맨체스터 시내는 여전히 유령도시 같다.
드문드문 보이는 사람들의 표정에도 생기가 사라져 전혀 보이지 않는다.
지금까지만 잉글랜드에서 60만 명의 사람들이 코로나로 인해 일자리를 잃었다. 그중 하루 벌어 하루를 먹고 사는 사람들의 비중이 80%를 넘는다.
뉴스에서는 정부가 일상 회복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끊임없이 이야기하지만, 아직 갈 길은 많이 멀어 보인다.
나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세상은 내가 알던 것보다 더 복잡했다.
오히려, 축구가 단순하게 느껴진다.
“Watermelon sugar high~♬”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조용히 따라부르며, 나는 집으로 가는 길을 재촉했다.
***
2020년 6월 17일. 맨체스터 M11 3FF, 잉글랜드. 애쉬튼 뉴 로드. 에티하드 스타디움.
,경기 시작 2시간 전
맨체스터 시티 0 : 0 아스널
&Match-Up`s Best Eleven(맨시티/상대팀)
&Tactics(맨시티/상대팀) : 4-3-3/4-3-3-
GK ? 에데르송 / GK ? 베른트 레노
RB ? 카일 워커 / RB ? 엑토르 베예린
CB ? 김민재 / CB ? 슈코드란 무스타피
CB ? 에므리크 라포르트 / CB ? 파블로 마리
LB ? 주앙 칸셀루 / LB ? 키어런 티어니
DM ? 올루프 뫼르크 / DM ? 마테오 귀앵두지
CM ? 일카이 귄도안 / CM ? 그라니트 자카
CM ? 케빈 더브라위너 / CM ? 조 윌록
RW ? 리야드 마레즈 / RW ? 피에르-에밀 오바메양
LW ? 라힘 스털링 / LW ? 부카요 사카
ST ? 김다온 / ST ? 에디 은케티아
.
.
경기일, 훈련 때와 마찬가지로 모든 것들은 낯설기만 하다. 드레싱 룸 역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별도의 자리가 만들어져 있는 상태다.
옷을 갈아입을 때를 제외하면, 우린 라커가 아닌 중앙에 1M 간격으로 놓인 의자에 앉아 대기를 해야 했다.
“뭐 하고 있어?”
“약간의 재미지.”
“?”
“팬들을 위한 거야. 지금은 코비드고 모두가 다 힘들잖아.”
“흠-”
“그냥 간단한 메시지인 거지.”
약간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말을 걸어온 건, 오늘 선발 왼쪽 윙어로 나서게 된 라힘이다.
유망주 시절부터 지적받아온 기복은 여전했지만, 그래도 팀 내에서 나 다음으로 많은 득점을 기록하고 있는 남자다. 2019년 한정으론 유럽에서 가장 많은 공격 포인트를 기록했다.
이러한 사실을 이야기했을 때 사람들이 깜짝 놀라는 건 아마도, 너무나도 완벽한 득점 기회에서 놓치는 경우가 제법 많았기 때문일 거다.
득점 후 셀레브레이션을 팬들을 위해 할 거란 나의 말을 듣던 라힘이 잠깐 고민하더니 내게 손을 내밀어 왔다.
“……나중에 나한테도 펜을 좀 줄래?”
“왜? 너도 쓰게?”
“응.”
이야기를 듣는 순간 순순히 펜을 주려고 했지만, 짓궂은 성질이 발동해 나를 미소 짓게 했다.
“왜 웃어? 얼른 줘.”
“음, 그건 조금.”
“뭐? 왜?”
“오늘 네가 득점할 것 같지 않아서 말이야.”
“Oh, Come on. 내가 득점을 못 올릴 거라고?”
“네 능력을 의심하는 게 아니야. 그냥 느낌이 그래.”
“좋아. 내기할까?”
“내기? 좋지.”
발끈하는 라힘을 보며, 나는 오늘 내가 내기에서 패배하게 될 거라는 것을 알았다.
미켈이 팀에 있을 때 종종 라힘을 이렇게 발끈하게 만든 적이 있었는데, 그러는 날마다 어김없이 이 남자가 득점을 올렸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500유로를 잃게 될 수도 있겠지만, 라힘의 득점으로 승리할 수 있다면 전혀 아깝지 않다. 뭐, 금전적으로 승리 수당이 내기 금액의 몇 배는 된다.
그렇게 라힘에게 펜을 전달한 후, 난 유니폼 안에 착용할 이너웨어를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라커에다 걸어 두었다.
잠시 뒤, 가까이 온 다비드가 미소 지었다.
“Stay Strong Manchester. 마음에 드네.”
“힘이 필요할 때니까요.”
“이미 네 덕분에 많은 사람이 도움을 받고 있어. 며칠 전 무료 급식소 말이야. 그것도 네가 한 일이지?”
“Come on- 제가 무슨 천사인 줄 아세요?”
“아니었어? 난 넌 줄 알았는데.”
“Nope. 이번엔 틀렸어요.”
다비드에겐 아니라고 했지만, 실은 내가 실업자들을 위한 푸드트럭을 보낸 게 맞다.
하지만 이미 많은 일을 벌였던지라,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 조용히 일을 처리 중이다. 나중에 알려지더라도 그건 전부 아영이가 한 일이 될 것이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니까.’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짧은 시간 만에 우리의 삶을 바꾼 코로나는 내게도 영향을 주고 있다.
예전보다 더 자주 이웃을 돌아보게 하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일이 얼마나 소중하고 또 중요한지를 끊임없이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축구의 의미가 변했는지 어떤지는 아직은 알 수 없다.
피치로 나가 경기를 뛰고 경쟁 속에 내 몸을 묻어야만, 그것을 정확히 알게 될 것 같다.
그렇기에, 오늘은 무척 중요하다.
“Let`s go, Lads!! 몸 풀 시간이야!!”
나의 일상은 여전히 같은 곳에 있다고.
그 대답을 듣는 하루가 되길 바란다.
***
.경기 시작 1시간 전
@ 기자석
맨체스터 중심가에 자리 잡은 타블로이드 ‘맨체스터 이브닝’은 1868년부터 맨체스터의 소식들을 사람들에게 전해왔다.
이 타블로이드를 향한 맨체스터 사람들의 애정은 제법 높은 편이었고, 특히 축구를 다루는 기자의 경우에는 지역의 유명인으로 대접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 말은 곧, 공신력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의미가 됐다.
“저길 좀 봐.”
“오, 이런 세상에나. 저거 진짜야?”
“응?”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맨체스터 이브닝’의 스튜어트 브래넌(Stuart Brennan)은 맨체스터 시티의 소식에 누구보다 발 빠른 남자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는 본인에게 정보를 캘 목적을 갖고 접근한 리버풀의 한 여성에게 비밀로 유지해야 했던 것들을 술술 털어놓았고, 이후 ‘Goal.com’의 샘 리에게 ITK 자리를 빼앗겼다.
이후 지금까지도, 스튜어트 브래넌은 맨체스터 시티의 사람들에게 냉대를 받는 중이다.
그리고 그런 그의 눈앞에,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레녹스 베이커.
전(前) ‘맨체스터 이브닝’의 맨체스터 시티 전담 특파원 겸 편집자이자, 클럽의 ITK였던 남자다. 한데 2018 FIFA 러시아 월드컵 직후, 그는 모두의 앞에서 자취를 감췄다.
거주했던 아파트 역시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이후 누구도 레녹스 베이커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가 메가 로터리(Mega Lottery)에 당첨되었거나, 아니면 바람을 피우다가 아내에게 걸려 설득하기 위해 독일로 돌아갔을 거라고 이야기했다.
레녹스 베이커가 사라지고 어느덧 2년, 불쑥 나타난 그의 모습에 모두가 당황한다.
“헤, 헤이. 레녹스.”
“안녕. 오랜만이야.”
“응. 응. 어, 그, 그렇지. 저, 정말 그래.”
“하하. 못 보던 사이에 말을 더듬게 된 거야.”
“크흠. 흠. 그, 그건 아닌데.”
“저쪽이 기자석이었지?”
“어? 아, 어. 그래.”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인 사람은 ‘가디언’의 제임스 앵거스(James Angus)다.
고맙다며 자신의 어깨를 두드린 레녹스 베이커가 계단을 내려서자마자, 황급히 휴대전화를 꺼내어 사진을 찍은 그가 메시지를 보낸 후 바로 전화를 건다.
바로 그의 편집장을 향해서다.
“레, 레, 레이몬드? 그가 돌아왔어요.”
– 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레녹스 베이커. 그가 돌아왔다고요.”
미디어. 특히 타블로이드 관계자들 사이에서 레녹스 베이커는 기자들의 유명인이었다. 2000년대 후반 혜성처럼 나타나 빼어난 칼럼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았다.
다만 괴팍한 작업 스타일로 전통 있는 미디어에서의 근무는 어려웠는데, ‘Goal.com’에서 일하게 된 것도 재택근무와 원하는 주제를 다룰 수 있다는 두 가지 조건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현재, 김다온의 재능을 누구보다 빨리 주목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김다온의 별명인 ‘Wonder’도 레녹스 베이커의 칼럼에서 최초로 나왔고, 덕분에 [“레녹스 베이커가 점찍은 선수는 어김없이 스타가 된다.”]라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과거에도 레녹스 베이커는 수많은 재능을 알아봤고, 또 그들을 가장 먼저 구체적으로 다루는 기사를 제출해 왔다.
당연히, 타블로이드로서는 군침을 흘릴 수밖에 없는 인재다. 이제 레녹스 베이커라는 이름을 딴 칼럼은 그날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한다.
무엇보다, 독일 ‘빌트’에서 근무한 이후부터는 클럽 내부 정보를 얻는 데에도 탁월한 재주를 보이고 있다.
레녹스 베이커를 리쿠르트 하라.
한동안, 많은 미디어가 그렇게 움직였었다.
“레, 레녹스?”
“헤이, 스튜어트. 자넨 이만 가 봐도 좋아.”
“……미안한데, 뭐?”
“젭슨이 연락하지 않았어?”
“?!”
화들짝 놀란 스튜어트 브래넌이 가방에 넣어두었던 휴대전화를 확인한다.
“What the…….”
‘맨체스터 이브닝’의 스포츠 부장인 앤서니 젭슨(Anthony Jepson)은 능력 있는 이에게는 한없이 자애롭지만, 그렇지 못한 이에게는 폭군처럼 구는 남자였다.
과거 브래넌은 젭슨의 총애를 받았지만, 지금은 담당했던 클럽 취재를 그만두라는 말을 메시지로 듣는 신세가 됐다.
자연히, 이 감정은 레녹스 베이커에게 향한다.
“멋대로 떠났다가 이렇게 멋대로 돌아온다고?!”
“……미안.”
“Fuck you! Bastard! 넌 상종 못 할 빌어먹을 인간이야!! 제기랄. 젭슨에게 관두겠다고 하겠어!! 어디 한번 잘해 보라고!!”
기자석 주변의 시선이 ‘맨체스터 이브닝’ 좌석에 집중되고, 잔뜩 화를 내면서 짐을 챙긴 스튜어트 브래넌이 거친 몸짓과 함께 경기장을 떠났다.
슬쩍 주변을 돌아본 레녹스 베이커.
그는 쏟아지는 시선이 불편했다.
레녹스 베이커의 정신은 아직 김다온이 다쳤던 2018년 7월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그도 이젠 나아가려고 한다.
‘괜찮아. 난 괜찮아.’
코로나 브레이크 이전까지 김다온이 피치 위에서 보여 준 활약은 레녹스 베이커에게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갈 결심을 주었다.
그렇게 마음을 먹자마자, 레녹스 베이커는 앤서니 젭슨에게 전화를 걸어 회사로 돌아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당연히, ‘맨체스터 이브닝’의 스포츠 부장은 바로 허락하지 않았다.
화를 내며 몇 번이나 전화를 끊었고, 나중에는 아예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레녹스 베이커는 어젯밤 용기를 내어 ‘맨체스터 이브닝’의 건물 앞으로 찾아갔다. 그러곤 앤서니 젭슨이 퇴근할 때를 기다리다 그의 앞에 나타났다.
[“워-우!! ……레녹스??”]많은 용기가 필요했던 자리.
레녹스 베이커는 이렇게 말을 했다.
[“그가 다시 한번 뛰고 있어요.”] [“……뭐라고?”] [“그가. 다시 한번 뛰고 있었다고요. 전 그걸 가까이에서 보고 싶습니다, 젭슨. 그게, 예전부터 제가 해 왔던 일이니까요.”] [“이런, 세상에나. 허-! ”]막무가내도 그쯤 되면 사연이 있다고 느껴질 수밖에 없었던지라, 어이없는 감정을 털어낸 앤서니 젭슨은 레녹스 베이커를 똑바로 바라보며 이렇게 질문했다.
[“도대체, 다온은 자네에게 어떤 존재인가?”]그리고 이에, 레녹스 베이커는 이렇게 답했다.
[“지금부터.”] [“?”] [“지금부터 그걸 알아가 보려고요.”] [“…….”] [“도대체. 그는 어떤 존재인지.”]어떤 존재이기에 자신의 삶을 이토록 송두리째 흔드는가. 레녹스 베이커는 그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하고자, 다시 이 자리로 돌아왔다.
약간 어색한 동작으로 취재 도구들을 테이블 위에 꺼내 올리며, 레녹스 베이커는 쓰고 있던 마스크를 똑바로 고쳤다.
경기까진, 이제 40분 정도가 남아 있다.
***
작가의 말 : 당분간 매주 토요일 투약 치료를 받게 되어, 8월 동안은 토요일 2연재를 토/일 각 1연재로 진행토록 하겠습니다(_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