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726)
725화 El fin de la era (4)
※ 2017년 3월 대한민국 A매치 명단
-> 2017.03.09.발표
-> 월드컵 최종예선 소화
-> VS 중국(2017.03.23. @ 중국 창사)
-> VS 시리아(2017.03.28. @ 한국 서울)
GK ? 김승규(비셀), 조현우(울산), 권순태(전북)
DF ? 김다온(아틀레티코), 고광민(서울), 김민재(전북), 김영권(베쉭타쉬), 오반석(제주), 최철순(전북), 정운(제주), 홍철(수원)
MF ? 이청용, 권창훈(벤피카), 기성용(스완시),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 이재성(볼프스부르크), 이창민(제주), 이승기, 김보경(전북)
FW ? 손흥민(토트넘), 황의조(마르세유), 황희찬(잘츠부르크), 염기훈(수원)
감독 ? 호르헤 삼파올리
***
[?洲首?金球??了(아시아 최초 발롱도르가 온다)!! – 시나 스포츠]***
2017년 3월 20일. 28042 마드리드, 스페인. 데 라 히스파니다드 거리, s/n. 마드리드 바라하스 국제공항(Aeropuerto Adolfo Suarez Madrid-Barajas. Av de la Hispanidad, s/n, 28042 Madrid, Spain).
최근 아영이가 매우 바쁜 관계로, 이번에는 나 혼자 스페인을 떠나게 되었다. 옆자리가 허전할 거로 생각했었지만, 그건 순전히 내 기우였다.
“물 있어요?”
“응. 잠깐 기다려 봐.”
현재 나는 마드리드에서 쿤밍으로 직행할 에티하드 항공 EH804 특별편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지금 특별편이란 이름을 덧붙인 이유는 정말로 그러했기 때문이다.
본래, 마드리드에서 경기가 펼쳐질 중국 쿤밍으로 향하려면 최소 두 개의 도시를 경유해야 한다.
본래라면 나 역시, 암스테르담과 상하이를 거쳐 20시간의 비행과 4시간의 기다림을 가져야 했다.
그런데 며칠 전 맨체스터 시티에서 에이전시로 전화를 걸어왔고, 오늘 오전 9시 15분 마드리드에서 바로 상하이로 간 뒤에 쿤밍으로 향하는 비행편이 만들어졌다고 알려왔다.
마음 같아서는 직행편을 뚫고 싶었으나, 중국의 폐쇄적인 정책상 그게 최선이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난 덕분에 3시간 이상의 비행시간과 4시간의 기다림을 몽땅 절약할 수 있었고, 조금 더 일찍 중국에 도착해 경기를 준비할 수 있게 됐다.
지금, 내 곁에 요나스가 와 있는 이유다.
난 그에게서 물병을 건네받았다.
“그거 알아?”
“네?”
“이미 맨체스터에 직항편이 뚫렸다는 거.”
“어디요? 한국이요?”
“응. 대단하지 않아?”
“…….”
이적이 발표된 이후부터, 맨체스터 시티는 말 그대로 친한(親韓) 클럽이 되어 버렸다. 포털 사이트의 분위기만 놓고 보면 맨유가 가진 이미지를 고스란히 가져간 느낌이다.
실제로 맨체스터 시티는 지난 1월 1일 새해 인사를 시작으로, 한국의 모든 국경일을 챙기고 있었다.
보름 정도 전에는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 몇몇과 영상을 제작하기도 했는데, 그게 정말 가관이었다.
자신을 어눌한 발음으로 [“저눈(는) 김똑배(김덕배)입니다.”]라고 소개한 케빈 데 브라위너를 보았을 땐,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었다.
물론 아영이는 배를 잡고 웃었지만, 벌써부터 너무 호들갑을 떠는 건 아닌지가 걱정되었다.
그러다 내가 실망을 주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안 그런가?
“그럴 거야?”
“하-! Darlige Jonas(나쁜 요나스)!”
“큭큭큭큭.”
사실, 일찌감치 내게 쏟아지고 있는 기대가 부담스럽거나 하진 않았다.
축구는 축구니까.
“그곳에 있는 선수들의 반응이 걱정되는 거죠.”
“뭐, 어때. 대부분 나갈 선수들인걸.”
“그래도 몇 년은 함께할 거니까요. 그렇죠?”
“그건 그렇긴 해.”
난 작년 연말에 이미, 펩으로부터 맨체스터 시티의 미래 계획을 설명받았었다. 누가 남을 것이고 누가 떠나는지, 또 누굴 합류시키길 바라는지에 관한 대화를 나눈 것이다.
베르나르두가 꼭 필요하다는 것엔 의견이 일치했고, 맞지 않는 부분은 전적으로 펩을 존중했다.
선수 영입과 전술 선택, 그리고 운영에 관한 전반은 그가 담당하는 영역이니 말이다.
중요했던 건, 내가 그런 대화 자체를 나누었다는 점이다. 맨체스터 시티의 미래에 포함되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고, 그건 적응에 도움을 줄 거다.
띵-동.
“오-! 우리 비행기야. 가자.”
“네.”
요나스에게 들은 말론, 이 특별편은 오직 비즈니스와 이코노미석만 판매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향할 곳은 퍼스트 클래스였고, 승무원들은 준비가 된 것 같았다.
친절한 미소의 스튜어디스 한 사람이 직접 우리를 안내했고,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말해 달라는 이야기를 남긴 후 조용히 커튼을 닫고 사라졌다.
그리고 그 너머로 간이 바리케이드가 만들어졌는데, 사실상 퍼스트클래스 전체를 전세 낸 셈이 됐다.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
“응?”
“자, 봐. 치?즈.”
찰칵-
아내에게 보낼 사진이라고 말한 요나스가 휴대폰을 매만지며, 이런 기회가 아니면 또 언제 이 거대한 비행기를 전용기처럼 사용해 보겠느냐고 말을 했다.
여전히 내 마음 한구석은 편치 않았지만, 일정 부분 동감도 되었던지라 찍은 사진을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까톡-
까톡-
사진이 잘 나왔다고 말한 아영이는 함께 가지 못해 미안하다며, 도착하면 연락하라고 메시지를 남겼다.
거기에 난, 사랑을 듬뿍 담은 담장을 했다.
“그나저나, 어때?”
“뭐가요?”
“에이전트 킴이라니. 재미있지 않아?”
“하하. 그야 뭐 붙이기 나름이니까요.”
A매치 주간이 시작된 오늘, 어떤 뉴스가 아침 일찍부터 업로드됐다.
출처는 터키의 스포츠 전문 웹사이트인 ‘A Spor’로, 베렌 오즈칸(Beren Ozkan)이라는 기자가 [‘킴의 이적에는 에이전트 킴이 있었다.’]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올린 것이다.
지난 1월 중국을 떠나 터키 베쉭타쉬 JK로 이적한 영권이 형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그 비하인드 스토리가 적혀져 있었던 것이다.
2012년부터 3년 동안 광저우 수비의 핵심으로 활약했던 영권이 형은, 부상과 광저우에 불어닥친 리빌딩 바람으로 입지가 크게 흔들리던 중이었다.
이에 형은 진로를 잠시 고민했었지만, 중국에서의 만족스러운 생활과 연봉이란 현실적인 이유로 광저우에 계속 남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 나갔다.
당시 영권이 형이 중국에서 받던 연봉은 42억 원으로, 유로로 환산하면 주당 6만 유로에 달하는 좋은 조건이었다.
게다가 슈퍼 리그에 자리 잡은 관례상 세금을 클럽이 대신해서 내어주고 있었기에, 주급만 놓고 본다면 나보다도 더 많은 연봉을 받았던 셈이다.
한데 그러한 상황에서, 셰놀 귀네슈 감독이 있는 베쉭타쉬가 정식적인 영입을 제안해 왔다.
광저우에게 줄 220만 유로의 이적료와 베쉭타쉬 내에서 최고 수준인 75,000유로의 주급을 포함한 조건이었다.
실질적으로 연봉이 반토막이 나는 제안이었기에 영권이 형은 거절하려고 했지만, 나와 통화를 나눈 이후 마음을 바꿔 터키행을 받아들였다.
당시 내가 했던 말은 이거였다.
[“2014년보다 더 잘하고 싶어요.”]2002년 4강 신화를 원정에서 써 내려가고 싶다는 나의 말에, 생각해 보겠다고 했던 영권이 형은 베쉭타쉬행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했었다.
그리고 그것을 전해 들은 뒤엔 에이전시에 부탁해, 내가 도울 수 있는 최선의 것들을 했다.
그 결과 영권이 형은 2+2계약에 합의, 2018년 이후 언제든 자유롭게 베쉭타쉬를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아마 그때 상황을 보아 가며 중국이나 중동 무대에 도전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 결정은 전적으로 존중할 생각이다.
바로 이런 내용을 ‘A Spor’가 개재했고, 보태어 재성이 형의 이적에 관한 이야기도 덧붙여져 있었다.
영권이 형과 마찬가지로, 재성이 형 또한 2017년 1월 분데스리가 볼프스부르크로 새로이 합류했다.
그 경우에는 내가 조금 더 많은 일을 했다고 볼 수 있었는데, 이적 제안을 해 온 독일 클럽의 이름을 몽땅 들은 후 망설임 없이 볼프스부르크를 권유했다.
케빈 데 브라위너에 이어 안드레 쉬를레/막스 크루제마저 이적한 볼프스부르크는 율리안 드락슬러마저 클럽을 떠나고 싶다고 말하며 크게 휘청거리고 있었다.
클럽의 사정만 놓고 본다면 볼프스부르크는 위기가 맞았지만, 나는 오히려 그게 재성이 형에겐 기회가 될 거로 봤다.
좋은 2선 자원들과 함께 분데스리가의 복병으로 도약했던 시대가 저물어 가는 지금, 재성이 형을 중심으로 한 개편까지도 꿈꿔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엔 재성이 형이 독일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 준다는 전제조건이 있지만, 난 확신이 있었다.
형의 독특한 경기 운영과 템포는 어떠한 리그에서든 먹힐 수 있는 재능이다.
“그래도 말이야, 네 영향력은 상당해.”
“하하. 안 그래도 느끼고 있죠.”
“응?”
“이거 보여요?”
“…….”
잠깐 곁으로 온 스튜어디스가 가져다준 담요에는 에티하드 항공의 로고와 함께, [‘맨체스터 시티가 늘 당신과 함께하겠다.’]는 자수가 박혀 있었다.
에티하드 항공이 아닌 맨체스터 시티가 새겨진 걸로 봐선, 오늘을 위해 특별 제작된 것이 틀림없었다.
‘이래서야, 내가 어디 소속인지 헷갈리잖아?’
최근, 이틀 간격으로 전화를 걸어오고 있는 펩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나와 전술적인 대화를 나누려 하고 있었다.
아직 때가 아니라 말해도 막무가내다.
그래서 지금 내가 가져온 랩톱의 화면에, 펩이 이메일로 보내온 다음 시즌 맨체스터 시티의 전술 구상과 미래 스쿼드가 띄워져 있는 것이다.
펩은 3-5-2와 3-4-2-1을 사용할 생각이었고, 나는 그의 철학에서 왼쪽 윙백으로 출전할 가능성이 컸다.
그 이유는 오버랩을 포함한 직선적인 움직임에 비중을 둘 오른쪽과는 달리, 왼쪽이 훨씬 더 다재다능한 역할을 소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경기 상황에 따라 풀백/센터백/메짤라(Mezz`ala)를 모두 오가야 했는데, 딱히 새로운 것은 없다.
드르르륵-
“…….”
화면에 있는 글자들을 읽으며 스크롤을 내리자, 어떠한 문장이 내 눈에 들어왔다.
[‘다온이 아니면 안 됨.’]“후후후후.”
각 포지션마다 많은 글자를 채워 넣었던 것과는 다르게, 왼쪽 윙백에는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문장 달랑 하나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벌써 1년 가까이 떨어져서 지내고 있었지만, 펩은 여전히 똑같은 신뢰를 내게 보내오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다.
‘이제 3개월도 안 남았어.’
어느덧 80%가량이 진행된 2016/17 시즌을 생각하며, 난 랩톱을 도로 덮어 두곤 편하게 의자에 기대어 좌석을 한껏 뒤로 젖혔다.
피곤한 일정이겠지만, 퍼스트 클래스는 무척 마음에 든다.
띵-
{“Ladies and Gentleman…….”}
활주로의 사정으로 출발이 약 3분 정도 지연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담요를 몸에 두르고 잠을 청해 보았다.
잠시 뒤, 비행기는 무사히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
(남종현) – KBS Sports 9 아나운서
“아시아 최초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를 수상한 김다온 선수가 4개월 만에 대한민국 대표팀에 합류했습니다. 김다온 선수가 도착한 쿤밍 황후이 국제공항에는 많은 중국 팬들이 찾아, 공안 병력이 출동하기도 했습니다. 해당 소식을 이주희 기자가 전합니다.”
***
2017년 3월 22일. 유난, 중국. 판롱 지구, 쿤밍. 99 동펭 E 길. 쿤밍 투 오동 스포츠 센터(Kunming Tuodong Sports Center. 99 Dongfeng E Rd, Panlong District, Kunming, Yunnan, China).
하루 전, 앞서 호텔에 도착한 대표팀에 합류한 나는 숙소에 도착하기 무섭게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야, 니가 주장이다.”] [“어?”] [“내가 추천했고, 다 동의했어. 거절은 못 하니까, 그렇게 알고. 감독님은 저 앞에 있어.”] [“…….”]그리고 그건, 내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였다.
“??得中??????”
“중국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사실, 잘 알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새로운 감독이 왔다는 것 정도는 압니다. 마르셀로 리피는 훌륭한 분이죠.”
경기를 하루 앞두고 가지는 사전 인터뷰 자리에서, 나는 인터뷰 시작과 동시에 많은 질문을 받게 되었다. 중국 기자들은 내가 중국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관심이 많아 보였다.
현재의 중국 성인 대표팀전력을 비롯해, 새로 부임한 마르셀로 리피의 전술에 관해 질문을 던진 것이다.
거기까지는 경기와 관련되었다고 볼 수도 있는 내용이라 성실하게 답변을 했지만, 이어지는 질문을 듣는 순간 말문이 막혀 버리고 말았다.
“???看中?的年?球??”
“허허.”
“왜요?”
“중국 유망주는 어떠냐고 묻네.”
“…….”
지금 질문을 던져온 기자는 중국 축구팬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는 이들의 이름을 말해 오고 있었다.
장위닝(Zh?ng Yuning)이나 웨이스하오(Wei Shihao)와 같은 이름을 말이다. 하지만 나는 두 사람을 전혀 알지 못했고, 그래서 솔직하게 답을 해야 했다.
둘을 전혀 알지는 못하지만, 장차 좋은 선수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이다.
내 대답에 한국 기자들은 여러 종류의 웃음을 지어 보였고, 반면 중국 기자들은 만족스러운 표정이 되어 고개를 끄덕이거나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게 두유노인가?’
순서상 앞쪽을 차지한 중국 기자들의 질문에 모두 답변한 후, 물병을 집어 들어 목을 축이던 내게 한국인 기자가 질문을 던져 왔다.
주장을 맡은 이유와 부담감, 본선 진출을 확정 지었음에도 대표팀에 합류한 것에 대한 질문을 줄을 이었다.
“대표팀은 늘 오고 싶은 곳이고, 본선에 진출했다고 해서 쉴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러시아 월드컵 때까지 훈련할 수 있는 시간은 정해져 있는데, 그걸 낭비할 수는 없으니까요.”
“네. 다음.”
“스포츠 일간의 조태현입니다. 최근 재단을 통해…….”
K리그가 끝난 작년 11월, 나는 공모를 통해 겨우내 재단에서 축구를 가르쳐 줄 선생님을 모집했다.
현역 K리거일 것과 과거 논란이 없었어야 한다는 게 모집의 가장 기본조건이었고, 의외로 많은 26명의 면접을 거친 끝에 다섯 명의 선생님을 모실 수 있게 됐다.
그들은 재단의 유소년들에게 축구를 알려 주는 대신, 적절한 강의료와 무료로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가져갔다.
재단의 시설은 대한민국 내에서도 손에 꼽힐 만큼 훌륭하다고 자부하고 있는데, 겨울 개인 훈련을 최첨단 시설이 있는 곳에서 할 수 있으니 그들에게도 나쁜 조건은 아니었다.
당시 재단에서 훈련한 다섯 명의 선수들은 이후 굉장히 좋았다며 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했는데, 벌써 내년 겨울 면접에 응모하고 싶다는 문의가 쏟아지는 중이었다.
그래서 나는 요즘, 2년 정도 더 현재의 시스템을 가져가는 것과 프로그램을 확장하는 것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또 벌써 성과가 나오고 있었는데, 이전부터 아카데미에서 훈련을 이어오던 강현묵이라는 아이가 경쟁을 뚫고 매탄고등학교 진학에 성공했다.
외에도 총 다섯 명의 아이가 K리그 산하의 고등학교 진학에 성공했는데, 이는 굉장히 고무적인 일이었다.
유럽에 진출할 수 있는 재능을 일찌감치 내보내는 게 궁극적인 목표였지만, K리그의 발전을 외면하고는 재단을 만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앞으로도 더 현묵이 같은 케이스가 나오길 원하고 있다.
“K리그 산하의 유소년 팀들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드는 게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지금은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수준으로 아카데미를 끌어올리는 단계고, 늦어도 2020년에는 대회 참여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많은 이들이 걱정하는 수입과 관련된 경우에도, 스폰서 및 인터넷 방송 수입과 이적료 등으로 충당할 수 있다.
이번 현묵이의 사례만 보더라도, 향후 이적료가 발생하는 이적이 이뤄질 때 우리는 FIFA가 정한 연대 규정에 따라 2.5%의 금액을 가져가게 된다.
단순히 자선을 하는 게 아니라, 엄연히 수입 창출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단체라는 것이다.
그렇게 인터뷰가 끝난 뒤.
“따로 인터뷰하고 싶대. CCTV야.”
“네, 알겠어요.”
중국 최고의 TV 채널인 중국 중앙 텔레비전(CCTV)에서, 따로 인터뷰하고 싶다면서 요청을 해 왔다. 조금 피곤했지만, 그래도 난 이것을 받아들이려고 한다.
대표팀의 권유가 아닌, 스폰서의 권유 때문이다.
아디다스는 다가올 여름 일주일 정도의 중국 투어 일정을 계획 중이고, 나는 단독 호스트 자격으로 참가해 새로운 상품을 홍보하게 될 것이다.
스폰서에게 있어 중국 시장은 가장 중요한 곳 중 하나였고, 그래서 내가 이번 A매치 주간 이 나라에 좋은 인상을 남기길 바라고 있었다.
이는 결국 나의 금전적인 이득으로도 이어지는 것이기에, 난 군말 없이 그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괜히 요나스가 함께 온 게 아니다.
“질문은 다 확인했어.”
“그래요? 어떤데요?”
“그게 조금 황당한데 말이야.”
“벌써 한숨이 나오려고 하는 건 왜죠?”
“하아- 실은 나도 그래.”
요나스게 내게 건넨 인터뷰의 진행 시트에는, 단 하나의 주제만이 영어로 적혀져 있었다.
“중국 축구의 미래? 진짜요? 제게 그걸 묻는다고요?”
“그런가 봐. 나도 계속 물었어.”
“하-!”
한국 축구의 미래에 관해서도 전부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관심이라곤 쥐뿔도 없는 중국 축구에 대해서 말을 하겠나?
그러나 말했듯, 이건 일이었다.
“젠장. 이런 거라면 발롱도르는 사절이라고요.”
“힘내. 멈추고 싶으면 손짓하고.”
“지금부터 할 말이라도 대충 생각해 둬야겠어요.”
“바로 앞에 있을게.”
“네, 알겠어요.”
과연 오늘과 내일, 얼마나 더 많은 Do you know가 쏟아질까?
이제는 슬슬, 그게 걱정이 되려고 한다.
***
[중국 축구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유소년 중심의 성장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다온. 발롱도르 수상자의 애정 어린 조언과 성숙했던 인터뷰 태도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 저우키안(중국 CCTV 수석기자) Via Twitter]